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스페셜 제로 다이브 33

카노 아오구+아토 하루키.

-카노 플래그 스포일러 대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자신의 수명이 33살에 끝난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가 찾아와 그리 예언한 것도 아니고 머리 위에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타이머가 달린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알았다. 그건 본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왜, 어떻게 죽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아오기 카나오는 33살에 죽는다】는 명제만이 저 먼 앞에서 한밤의 네온사인처럼 빛날 뿐이었다.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카나오에게는 상당히 거지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오기 카나오라는 개체에게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두뇌가 있었다. 그는 대책을 강구했다. 혹시 모를 병을 예방하기 위해 매일 운동을 했고 바보같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꾸준히 사고능력을 길렀다. 물론 인간관계를 다지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멍청한 놈들에게 애꿎게 발목이 잡힐 리스크와 보통의 인간을 가장하여 얻는 사회적 신뢰라는 자원을 두고 정확하게 저울질을 한 결과였다.

작전은 꽤 성공적으로 먹혀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20대 중반을 넘어설 무렵 아오기 카나오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으로 압축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저 빌어먹을 명제대로 자신이 33살에 죽는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개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방법도 떠올렸다. 그건 업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룩하고 대단한 족적을 남기면 아오기 카나오라는 이름은 역사에 영원히 남겠지. 그 기틀이 될 '위대한 발견'은 이제 코앞에 있다. 카나오는 기꺼이 그 연구에 제시간을 바쳤다.

그리고 매미 울음소리도 점차 잦아들던 2008년의 어느 가을날, 그의 연구 속도를 따라오기는커녕 수수방관하던 팀원들이 별안간 말을 걸어왔다. 실험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가 2차 퇴고를 마치고 완성 직전에 놓여있을 때였다. 환경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아오기 카나오는 순간적으로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말야아, 아무리 대단한 발표라도 그걸 신예 나부랭이가 하면 학계에선 싹 묻힌다고오.

-하지만 교수나 상임이사랑 인맥이 있는 우리 이름을 붙여서 발표하면 대우가 확 달라질거얼?

-너한테도 나쁜 얘기는 아니야아. 연봉 협상에서도 유리하도록 우리가 잘 말해줄게에.

-좋은게 좋은거잖아아.

"그렇군요."

카나오는 예의 바르게 웃었다.

그 빌어먹을 새끼들은 다음날 다 찢겨 죽었다.

무죄 판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아오기 카나오가 이전과 같은 환경에서 일상을 보내기란 불가능했다. 일단 이름과 얼굴이 알려졌다. 그가 한 행동이 끔찍한 살인이라며 규탄받았다. 분명한 근거와 자료를 토대로 무죄를 인정받았거늘 무지한 쥐새끼들이 찍찍거리길 멈추지 않았다. 살인범이자 정신질환 판정을 받은 아오기 카나오를 선뜻 받아들여 주려는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고립되었고 여기저기를 떠돌았지만 초조해하지는 않았다. 33세의 명제는 뜻밖에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무죄 판정을 받고 사계절이 두 번 정도 순환했을 무렵일까, 아오기 카나오는 지고천 연구소로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제로 끌려왔다. 예고도 없이 쳐들어온 방문자 앞에서 그의 거부 의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묵비권은 강압으로 치환되었다. 청각과 시각, 발언권을 엄중히 차단당한 채 오랜 시간 암흑 속에 방치되어있다가 겨우 구속이 풀렸을 때는 무기질적인 책상과 볼펜 하나, 글자가 빽빽이 들어찬 서류 몇 장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외부출입 불가, 외부연락 불가, 외부유출 불가.

단, 지고세포 관련 사항에 관해서 만큼은 모든 연구 권한을 허가한다.」

당연하게도, 지고세포라는 녀석의 샘플을 미리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오기 카나오는 이미 자신의 힘으로 장애물을 부순 경험이 있었다. 여기가 어떤 엄중한 장소던 누가 상대든 간에 다시금 길을 개척할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흔쾌히 사인했고, 지정된 방으로 이송되었고, 「지고세포」를 마주했다.

운명의 이끎이라는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 거라고, 아오기 카나오는 저주와 탄성을 내뱉었다. 지고천 연구소는 일반 윤리와 도덕 개념을 깔끔하게 도려내 버린 주제에 구제니 신이니 하는 환상을 좇는 미친 집단이었지만 동시에 인류사의 위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지닌 지고세포를 가장 가까이에서 치밀하게 연구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만약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그의 이름과 업적은 말 그대로 영원토록 남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름은 아오기 카나오가 아니라 카노 아오구가 되었지만, 그는 쩨쩨하게 발음에 연연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본질이 새겨지는 것이었으니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날이 이어진다. 카노 아오구는 두뇌 기능과 자아 컨트롤 능력에 충분한 자신감을 품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으나 데드라인인 2015년을 맞이했을 때는 과연 마음이 초조해지고 말았다. 33세의 명제는 그가 언제 며칠 몇 시 몇 분에 이러이러하게 죽는다는 상세지침을 내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노는 32세에 맞이한 12월 25일에 시설 내 식당에서 철제 나이프 하나를 몰래 빼돌렸다. 방 안에 구비된 가구들을 활용하여 매일같이 갈고 닦은 칼날은 들었던 얘기랑은 다르지만 희생양 한둘 쯤이야 가볍게 만들 수 있다는 듯이 반짝였다. 카노 아오구는 그 날에 제 얼굴을 비춰보다가 히죽 웃어 보였다.

신경 곤두선 3월은 천천히 지나갔다.

일이 터진 것은 4월 8일이었다.

카노 아오구의 작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두 번째 희생양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 정신 나간 악력으로 허리를 붙잡고 늘어지지만 않았더라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도 거뜬히 성공했을 것이다. 숨을 몰아쉬며 회의실에 뛰어들고서야 주변인의 표정을 본 카노 아오구는 자신의 몸에 묽은 물감처럼 끼얹어진 피와 검은 액체를 발견했다. 흑색과 적색이 손가락 마디를 따라 서로 뒤엉키며 복잡한 가지를 펼친다. 그걸 바라보던 푸른 시선이 움직였다. 경악한 얼굴의 연구원들이 한 덩어리로 뭉치려 했다.

카노는 예의 바르게 웃었다.

자, 이제 카노 아오구는 반출구의 흙바닥을 밟으며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건 자유를 향한 걸음이며 빌어먹을 33세의 명제에 한 방 먹여주기 위한 예비 동작이고, 틀림없이 이루어진다. 지고세포 감염체가 맞이하는 뻔하디 뻔한 결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카노는 이대로 탈출하여 이 성공작 모르모트들을 비롯한 바깥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새겨놓을 작정이었다. 다만 그 걸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건조한 총소리가 울려 퍼진다. 제기랄, 정말 몇 발자국 남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허나 상술했다시피 카노 아오구의 두뇌는 만물의 영장에 걸맞은 성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가 품은 집념은 일반적인 인간의 갈망을 초월했다. 검은 상념이 소용돌이치며 이성을 갉아 먹어가는 최후의 최후의 순간에 살아남은 뇌세포로 자신을 낙인찍을 수단을 떠올린다. 카노는 그 작전을 실행하기에 걸맞은 상대가 제 마지막 인간관계라는 것을 확정한 순간 피가 들끓는 흥분을 느꼈다. 그래, 기억되고 유지될 수 있다면 그 영역이 역사 교과서 위든 한 인간의 머릿 속이든 차이는 없다.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서!

어서 나를 죽여!

그리고 네 죄책감과 자책에 내 이름을 똑똑히 짊어지고 살아!

그게 나의 영생永生이다!

하지만 카노 아오구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쥐새끼는 총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촘촘하게 설치한 죄책감과 자책, 영웅 심리의 덫이 해체된다. 더는 죄악감의 대명사가 될 수 없게 된 카노 아오구가 영민한 두뇌로 자신에게 남은 길이 하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33살의 명제가 웃는다. 그건 마른 체형에 키가 크고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그건 아소 코지다. 건방진 소리나 지껄이는 아소 짱이다. 태연하게 거짓말을 나눴으면서도 그 거짓말을 토대로 서로를 믿었고 마침내 그 믿음으로 카노 아오구를 살해한….

─그래도, 나쁘지 않죠?

하.

"빌어먹을 놈."

카노 아오구는 쓰러지는 제 몸을 느리게 인식한다. 처리실에서 빠져나온 이래 머리를 들쑤시며 술렁이던 검은 속삭임은 이미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속삭임에 모든 것을 파먹혔던 것 같다. 부서진 제 예상이 최악의 형태로 흩뿌려진 풍경이 언뜻 일렁인 것 같다. 하지만 흐려지는 시야는 그걸 정확히 포착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굳이 붙잡을 생각도 없었다. 다만 생각한다.

아소 짱, 이번에는 성공했나 봐?

아소 코지는 틀림없이 자신의 몫까지 살아갈 것이다. 자신을 스치듯이 지나가 멀리 뻗어갈 그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기꺼웠다. 둥근 모래시계의 마지막 한 알이 아래로 추락한다. 【아오기 카나오는 33살에 죽는다】. 마침내 참으로 성립한 명제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한 번 반짝이고는 암흑에 잠겼다.

그대로 지옥으로 떨어진다.

의외로 편안한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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