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스탠다드 트라이앵글 옵저버

화분조 고등학생 AU.

#1.

눈을 뜨면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무늬의 하얀 천장이 보였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감각이 먼 배경음악처럼 이어진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몇 번 눈을 깜박이고 기침을 한 다음에서야 자신이 양호실 침대에 누워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면 오늘 아침부터 속이 영 좋지 않아서 1, 2교시 내내 불편하게 앉아있다가 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 보건실로 내려왔었지. 소화제를 받고 자리에 누운 건 좋았는데 잠시 후 심한 구토감이 올라오는 바람에 개수대에 그대로 구토하고 기절하듯 잠든 기억까지 떠올린 우츠기는 앓는 소리를 내며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보건 선생님은 아픈 학생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게 자신의 할 일이라며 웃고는, 속이 안정될 거라며 제산제 한 포를 내주었다. 우츠기는 그걸 감사히 받은 뒤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건실을 나왔다. 지금쯤이면 자신의 반은 한창 체육 수업을 받고 있을 테니 적당히 시간을 죽이다 돌아가면 될 것이다. 인적 드문 계단참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면 두 무리로 나뉜 아이들이 한창 축구를 하는 중이었다. 자신이 찾는 사람이 축구팀 안에 있을 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우츠기는 스탠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의아한 기분으로 운동장을 다시 훑어보던 우츠기는 운동장 한쪽에 세워진 낡은 농구대 근처에 서 있는 하츠토리 하지메와 그 옆에 있는 하라다 미노루를 발견했다. 짙은 갈색의 농구공이 하라다의 손을 떠나 막 허공을 가르던 참이었다. 하지만 던져진 공은 골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맥없이 튕겨 나갔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미노루가 쫓아갔다.

별일이군. 시간표가 바뀌기라도 했나? 우츠기 노리유키는 현재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가설을 세우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제산제를 꺼내 포장을 뜯었다. 스틱형으로 포장된 제산제는 제법 기능에 충실한 맛이었다. 찐득한 맛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노라면 공을 주워 돌아온 미노루가 하지메에게 공을 가볍게 패스했다. 농구공을 받아든 하츠토리 하지메가 골대 라인 앞에 섰다.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하지메가 쫓아가, 미노루에게 패스한다. 6교시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두 사람은 계속 그런 식으로 슈팅 연습을 반복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지만, 종이 치는 것을 듣고 본관으로 돌아오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퍽 즐거워 보였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고지식하게 마지막 내용물까지 전부 짜 먹은 제산제 포장재를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2.

하라다 미노루가 다니는 고등학교에는 비스듬한 숫자 8 모양의 작은 연못이 있다. 그 모양새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하치 연못」이라 불리는 그곳은 깊이가 그리 깊지 않고 안에 사는 생명체도 없어서 위험도는 한없이 제로에 수렴했다. 그런데도 달에 한두명은 그 연못에 빠져 폭삭 젖은 꼴이 되어버리곤 했는데, 하라다 미노루는 운이 좋은 탓인지 고등학생 2학년이 되도록 아직 한 번도 그곳에 빠지지 않았다.

그곳에 빠지면 사랑에 빠진다…같은 이야기도 있었지만 신빙성은 없었다. 애초에 종류가 너무 다양했다. 지망하는 학교에 떨어진다더라, 붙는다더라, 사랑이 깨진다더라, 시험점수가 오른다더라, 내려간다더라, 악령이 보인다더라, 다른 세계로 간다더라, 그런 걸 믿느냐던 사람이 그날 오후에 빠졌다더라 등등. 결국 믿을만한 건 연못에 빠지면 젖는다는 단순한 물리법칙뿐이었다.

그러므로 하츠토리 하지메의 신발도 젖었을 것이다.

구름다리에서 본 풍경은 맥락이 삭제되어있다. 하라다 미노루는 본관 그림자에 잠긴 연못가에 서 있는 하츠토리 하지메와 우츠기 노리유키를 보고, 연못 가운데에 떠 있는 하얀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하츠토리 하지메가 신발을 신고 땅을 걸어 다닌다는 사실이 문득 생경하게 다가왔다. 미노루는 그 생경함의 연장선으로 맨발의 하츠토리가 천천히 수면을 걸어가 신발을 주워드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 탓에 현실의 풍경을 인식하는 것이 한 발짝 늦었다.

둥근 연못에 둥근 파문이 넘실넘실 퍼져나간다. 우츠기 노리유키가 연못가에 하츠토리 하지메를 남겨둔 채 연못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우츠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석양빛으로 곱게 닦여있던 수면이 평정을 잃고 술렁이는 듯했다. 이윽고 허리를 굽힌 우츠기의 손이 하얀 신발에 닿는다. 하라다 미노루는 그가 웃는 얼굴로 하츠토리 하지메를 돌아볼 것을 알았다.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구름다리는 연못에서 너무 먼 탓이다.

#3.

하츠토리 하지메는 곧잘 「침착하다」라거나 「어른스럽다」,「신비하다」 같은 소리를 듣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츠토리랑 같이 있으면 절로 진정되는 기분이 든다니까. 한 클래스메이트가 농담처럼 꺼낸 말에 긍정도 부정도 없이 부드럽게 미소지으면 옆에 선 또 다른 클래스메이트가 그래, 이런 부분! 약간 달관한 종교인 같아! 라며 맞장구를 쳐온다. 그러면 하츠토리 하지메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구나. 신뢰받고 있다니 기뻐. 하지만 나라고 해도 슬픈 일은 슬프고 괴로운 일은 괴로워."

이를테면,

친구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풍경을 본다던가.

곧장 다가가지 못했던 것은 그와 자신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담임과 보호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진로 진학 상담실은 본관 4층 복도에 있었는데, 거기서 분관 1층 계단참으로 가장 빨리 달려가려면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정신 나간 짓이다. 그러는 대신 하츠토리 하지메는 멀리 연결된 실을 잡아당기듯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오른쪽을 향해 걸어갔다. 검은 쇠로 이루어진 창틀이 시야를 가로지른다. 하나, 둘, 셋.

네 번째 창틀에서 풍경이 변했다. 하츠토리 하지메는 걸음을 멈췄다. 계단참에서 넘어진 사람이 하라다 미노루라는 건 굳이 망원경을 동원하여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왜냐면, 둘은 친구이기 때문에, 몇 시간 전에도 함께 점심을 먹었기 때문에, 부 활동 때문에 2층 미술실에 가야 한다는 그를 배웅했기 때문에. 비슷한 사유로 그 곁에 서 있는 사람이 우츠기 노리유키라는 사실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우츠기 노리유키가 넘어진 하라다 미노루를 향해 몸을 살짝 굽히곤 한쪽 손을 내민다. 계단참과 1층 복도 사이에 엎어져 있던 하라다 미노루가 그걸 보더니 어렵사리 한 손을 뻗어 우츠기의 손을 마주 잡는 것이 보였다. 첫 번째 시도는 잘되지 않았다. 두 번째가 되어서야 하라다 미노루가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섰다. 겨우 사족보행에서 이족보행으로 돌아온 미노루가 제 옷의 먼지를 툭툭 털어낸다. 우츠기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하지메의 긴 머리카락을 스치며 등 뒤로 넘어갔다.

소리쳐 부르면 그들은 분명 눈치챌 것이다. 하지만 하츠토리 하지메는 그렇게 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행동을 선택했다. 말간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오른다. 침착하고 어른스럽고 신비하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가 보이기에 가장 적당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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