細胞神曲

그 희곡과 저주의 꽃말

가명조ncp가 꽁냥꽁냥 떠들 뿐

코끝에 은은하게 맴도는 달콤한 향기와 풋풋한 풀내음, 싱그러운 생명력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아토는 생화가 장식된 화병을 손에 들고 생각했다.

여긴 어디지?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더라….

흰 꽃잎으로부터 시선을 돌리자 바로 눈앞에 새하얀 그림자가,

"으악, 가까워!"

…새하얀 가운을 입은 카노씨가 입꼬리만 주욱 끌어올린 오싹한 표정으로 이쪽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래… 이곳은 지고천 연구소의 지하 2층. 정전으로 인해 컴컴한 복도를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탐색했었지.

일단 화병을 근처 탁상에 살포시 내려두고 손에 들린 손전등…을? 이건… 손전등이 아닌데? 약간 서늘한 촉감의 손 안을 빠듯하게 꽉 채우는, 손?

화들짝 놀라 손을 털어내자 휘감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아플정도로 꾸와악 조여왔다.

"윽! 아파,요. 카노씨. 손 좀…"

"아소짱도 참~~~ 엄살은☆"

겨우 느슨해진 손아귀에 피가 통하며 저릿저릿한 감각이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붙잡힌 손을 뿌리치려 이리저리 손목을 비틀어봐도 넝쿨처럼 휘감긴 손가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손을, 왜, 잡는건데요?!"

"그야~ 아소짱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미아나 시체가 되면 곤란하니까~~???"

"하!? 그럴리가 없잖아요.. 그만, 놔,주시죠."

"왜 그럴 일이 없다고 확신해?"

"……"

또다.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 빤히 관찰하는 눈길. 한겹의 유리알 너머로 반들거리는 파란 눈동자가… 마치 유리관 안의 실험쥐가 된 기분이었다. 해부라도 하는 듯한 집요한 시선을 흘려넘기며, 표정과 목소리는 태연하게 꾸며낼 수 있었지만 긴장한 손바닥에 점점 땀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간의 긴장된 침묵 끝에, 카노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순순히 쥐고있던 손을 자유롭게 풀어줬다. 아소짱의 그런 멍청한 면도 정말 좋아해~ 라며 듣는 사람을 몹시 열받게 만드는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긴 했지만.

하아…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뱉으며 긴장으로 뻣뻣해진 어깨를 풀었다. 어째 뒷목도 뻐근한게 근육이 놀란 탓인지 화가 나서 그런건지 영 구분이 가질 않았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아직도 얼얼한 손을 주무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지금껏 눈치채지 못한 게 이상할만큼 칠흑같은 어둠 속, 시야에 보이는 거라곤 일체 없었다. 애초에 시력이 썩 좋은 편도 아닌지라, 유독 희끗희끗한 옆 사람의 실루엣과 방금 내려둔 손 닿을 거리의 화병 속 하얀 꽃잎의 생김새 정도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소짱, 불빛불빛!"

"제가 발광할 수 있는 생명체도 아니고 그렇게 말씀하셔도… 아, 휴대폰 플래시가 있었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자 깨진 타일들과 파편으로 어지러운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리운 느낌마저 드는데…

한 발짝, 내딛자마자 발을 헛디뎌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젠장.

"역시 손 잡아줄까~~~~~?"

"극구 사양합니다."

"아하핫♡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차라리 엎어져서 코가 깨지면 깨졌지, 나이 합이 60에 가까운 남자 둘이서 하하호호 손잡고 다닐까보냐.

…아까는 기억이 잘 안나니까 노카운트다.

손끝에 남아있는 감각을 지우고자 바지에 손을 슥슥 문질렀다. 카노씨는 기분나쁘게 한쪽 입꼬리를 쓱 들어올려 웃고선 곧장 뒤돌아 가운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 팔랑팔랑 옷자락을 흔들며 앞서 걸어나갔다. 발밑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 …서둘러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두 사람 분의 발소리만 들려오길 몇 분째, 말없이 한치 앞만 겨우 보이는 어둠속을 걷다보니 시간감각이 망가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걸어온거지? 여기 복도가 이렇게나 길었었나? 그러고보니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거지?

그때, 적막을 깨고 카노씨가 말을 걸어왔다.

"아소짱, 목 안말라?"

"안 말라요."

"카노씨는 탄산 빠진 메론 크림 소다가 마시고싶네~~"

"그런 이상한 게 이런 곳에 있을리가 없잖아요…"

"자판기라던가 잘 찾아보면 나올지도?"

"이곳 자판기에는 그렇게 다양한 메뉴가 있나요?"

"아니? 그럴리가. 기껏해야 커피 정도라고. 아소짱은 불법적인 실험이 자행되는 사이비 소굴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거 아냐~?"

"당신 정말 짜증나."

"응? 뭐라고 했어 아소짱?"

"저는 커피보다는 홍차가 좋다고요."

"헤에~ 그렇구나~"

"……"

"카노씨는 시럽을 열 번정도 넣은 커피를 마셔."

"그정도면 시럽에 커피를 탄 게 아닌가요?"

"시럽이 있는 곳은 알고 있으니까~ 홍차를 발견하면 아소짱 것도 특별히 넣어줄게♡"

"아뇨. 괜찮습니다."

잠깐 설탕 시럽을 잔뜩 넣은 홍차맛을 상상했더니 속이 안좋아졌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정신력이 1 감소했다는 느낌. 실제로 마신 것도 아닌데 뇌리에 들러붙는 이 끈적끈적한 설탕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보니 카노씨는 주로 지하 3층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었죠?"

"응? 맞아~ 내가 가진 카드로는 2층부터는 다니기 불편하니까. 내가 관여하지 않는 실험쪽은 딱히 관심이 없기도 하구?"

"네… 그렇군요…"

"내가 지내던 곳이 궁금해졌어? 가볼래~~~?"

대답하기도 전에 카노씨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빠르게 연타했다.

"잠깐,"

그러나 엘리베이터의 불은 점등되지 않았고, 카노는 별다른 미련없이 홱 돌아섰다.

"흐응… 역시 안되는구나? 어쩔 수 없네☆"

"아니, 여기서 더 아래로 내려갈 생각은 없으니까요…"

"아~소~짱~ 빨리빨리~ 여기 앞이 캄캄해서 걷기 불편해."

"네네, 지금 갑니다."

이럴거면 본인이 불빛을 드는 편이 좋지않나? 차마 내뱉지못한 불만을 속으로 삼키고 서둘러 발걸음을 맞췄다.

계속해서 그의 뒤를 좇다보니, 어쩐지 카노씨의 뒷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카노씨는 늘 곁에서 동행하고 있었지 앞서 걸어간 적은 없었던가.

솔직히 신뢰할만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수상쩍은 동행자였지만, 의외로 도움도 많이 되고… 돌아볼때마다 항상 눈을 마주쳐주는 상대에게(그게 빌어먹을 백발 안경이라 하더라도) 저도모르는새 꽤나 의지하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소짱? 무슨 생각중?"

"우왓! 갑자기 돌아보지 마세요. 딱히, 아무생각도…"

"거짓말이네."

"아, 그러고보니 당신이 사라진 직후에 괴물에게 습격당했거든요. 이 장소 덕분에 화를 면했습니다."

"허어? 그랬구나~~ 큰일이었네!"

"네, 정말이지 큰일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이 앞에…"

"앞에?"

"음… 이 주제는 여기까지 하죠."

"하? 그거 농담? 재미없어. 최악."

"하하, 재미없는 사람이라 죄송하게 됐네요."

시나노에 대한 건 굳이 비밀로 할 것 까진 없지만, 역시 최대한 미룰 수 있을만큼 미루고 싶달까.

어쩐지 유쾌해져 성큼성큼 걷다보니 어느새 카노씨를 제치고 앞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것 같아 거침없이 방향을 잡고 걸어가자 순순히 뒤따르는 걸음소리가 이어졌다.

뚜벅뚜벅 이어지는 규칙적인 백색소음에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여전히 시야는 한정적이고 어디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지금 이 시간이 편안하게 느껴진다면… 자신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감정을 이해하는 것을 보류했다. 가끔은 직감이 이성적인 논리를 이기는 법이지. 지금은 그냥 이 분위기를 좀 더 누리도록 할까.

"카노씨는 식물 좋아하세요?"

"그다지. 지고세포 이식에 성공한 식물이라면 좀 관심이 생기는 정도? 뭐, 의지도 없는 식물이 발현해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겠지만 말야."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참… 카노씨다운 대답이네요."

"그렇지? 아소짱은 이미 알고있어. 식물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아소짱. 꽃이든 열매든 모든 식물을 차별없이 사랑하고 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뭐… 좋아하는 꽃이라면 토끼풀? 조금 평범할지도…"

"아~ 닮았네."

"네? 뭐가요?"

"슬슬 귀찮아져서 노코멘트할게."

"혹시 아까의 복수인가요?"

"응?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걸~☆"

"그러면 음… 세포를 이식시킬 화분을 고른다면 어떤 식물을 고르실건가요?"

"독말풀."

"아~ 악마의 나팔이던가요? 카노씨와 잘 어울리는 꽃이네요."

"그거 무슨 의미?"

"그러고보니 제가 들고 있던 화병 카노씨가 준건가요?

"응~ 일단 그렇다고 해둘까?"

"일단? 네, 뭐…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어요. 감사합니다."

"아소짱 은근 손 많이 간다니깐."

"댁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무지 열받네. 아무튼… 그 흰색 꽃, 무슨 꽃이죠?"

"몰~~~라? 카노씨는 식덕이 아닌걸."

"흠… 여기서 나가면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시시콜콜한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소소하고 가벼운 주제의 스몰토크. 그 사람의 기호나 성격, 호불호는 알 수 있지만 신상정보와는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이야기들. 그야말로 '카노'씨와 '아소'씨가 할 법한 잡담들이었다.

"도넛이라… 심플한 쪽을 선호하는 편이죠. 카노씨의 최애 도넛은 너무 달아서 먹기 고역이니까요."

"아~~~ 아소짱 여전히 맛알못이네☆"

"폰데? 그 동글동글하게 생긴 도넛이 그나마 먹을만 했어요. 쫀득한 식감도 재밌고."

"그것도 맛있지~ 시즌한정으로 매번 새로운 맛을 내줘서 좋아♡ 마음에 드는 맛은 시즌이 끝나면 더이상 못먹게 되니까 그전에 잔뜩잔뜩 먹어둬야 하는 점이 조금 곤란하지만~?"

"당신은 평소 식생활이 도넛밖에 없는건가요?"

"실례네. 케이크나 쿠키나 초콜렛이라든가 먹고있다고?"

"당신 혈액까지도 달 거 같네요."

"핥아볼래~~~~~?"

"당분도 철분도 부족하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아소짱의 혈액은 풀맛이 날 것 같지… 궁금하니까 핥아봐도 돼?"

"되겠냐고요. 절대로 거절합니다. 아니, 메스는 또 언제 꺼낸거야? 오지마!"

"헉, 헉… 콜록콜록. 죽, 죽겠다…"

"허억, 헉, 그러니까 왜, 갑자기 뛰고 난리,우욱."

"당신이 그런 걸 들고 쫓아왔잖아!!!"

"니가 도망가니까 쫓아간거지 이 쥐새끼가!!!! 카드키랑 휴대폰이랑 다 네가 들고 있는거 잊었냐?! 너 없이 나 혼자 여기 남아서 어쩌라고!"

"……"

"……화내서 미안? 그치만 아소짱의 질색한 반응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어♡"

"때리고 싶은데 손가락 까딱할 기운도 없네. 하… 아뇨… 저도 카노씨를 두고가서 죄송합니다."

"그럼 우리 화해한거네? 앞으로도 잘부탁해 아소짱♡♡♡"

무리한 뜀박질로 인해 심장은 아직도 쿵쾅거리고 숨은 헐떡거리지만, 목구멍에서 간질거리는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하, 하하하… 콜록,"

"뭐야 갑자기 왜 웃어? 실성했어?"

"아뇨, 그냥 갑자기, 이 상황이 웃겨서…"

"싱겁긴."

학창시절에도 이렇게나 실없는 이유로 숨이 찰만큼 뛰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다 큰 성인남성 둘이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맞다맞다! 아소짱! 이번에 릴리더위치 신상 도넛 나온거 알고있어????"

"아~ 시나노가 어제부터 그것때문에 시끄럽던데, 디타검 콜라보 도넛말이죠?"

"꼭 먹어보고 싶네에~ 아소짱도 그렇게 생각하지?"

"여기서 틀린 답변을 하면 또 전력질주를 해야하는 패턴? 진심으로 더이상 달릴 기력 없으니까 사양할게요… 어차피 주말에 레이지가 놀러오면 셋이서 방문하기로 했다고요."

"그으~렇구나? 잘됐네!"

그래.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레이지가 일본에 놀러오기로 했었지. 멀리서 찾아오는 동생을 마중하러 나가려면 어서 여기서 탈출해야…?

"드——디어 탈출이다!"

회백색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카노씨가 탑승한다. 그가 어서 타라는 듯 손짓하자 얼결에 걸음을 옮기다 문 앞에서 간신히 발을 멈췄다. 주저하는 팔을 붙잡고 끌어당긴 카노씨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점차 줄어든다.

층수를 표시하는 불빛이 깜빡깜빡 점멸할 때마다 심장박동이 불규칙적으로 쿵쿵 뛰었다.

안돼.

무엇이?

그 엘리베이터를 타서는 안돼.

띵!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카노씨가 먼저 내 앞을 지나쳐 걸어간다.

"안돼! 잠시, 잠깐만요. 내리지마세요."

"뭐~~~야??? 빨리 나가고 싶은 거 아니었어?"

"아니, 기다려주세요. 일단, 다시, 다시 돌아가서 다른 탈출구를…"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카노 씨가 잽싸게 걸어나갔다. 서둘러 붙잡으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급히 그의 뒤를 따랐으나 설렁설렁 걷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안돼, 잠깐만요, 카노 씨! 기다려!"

"이 앞은 본동이고 출구는 저 앞이야~ 나보다 잘 알고 있겠지만?"

"가지마! 기다려주세요!"

"……"

"내가, 내가… 기다리라고 하잖아!"

손에서 식물줄기가 뻗어나간다.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뻗어나가는 줄기는 몇 미터 전진하지 못하고 흰 손에 의해 가로막혔다. 어째서?

"아아, 안돼 아소짱.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순 없어."

그게 대체 무슨.

"그야, 카노씨는 이미 죽었는걸?"

탕!

한 발의 총성, 그리고 그 탄피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는 검고 붉은색으로 얼룩진 카노씨가,

푸르른 녹빛을 배경으로 무사히 서있었다.

이번에는 늦지 않았어. 아아, 다행이다.

"아아 정말이지 귀찮게구네!! 어리광이 심하잖아 매번!"

어느새 꺼내든 메스로 스스로의 목을 그은 카노씨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아아, 그렇지. 이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 내가 나로서 발버둥치고 연기해 낸 희곡의 일부.

앞으로 천천히 스러지는 카노씨의 입이 벙긋 움직였다. 입모양을 읽어보니 그가 남긴 말은…

다음에 또 봐?

쏟아지는 햇빛이 눈꺼풀 위를 따갑게 찔러온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아침이 밝았구나…….

"하……… 릴리더위치 신메뉴가 나올 때마다 꿈에 출현하지 말라고요, 이 빌어먹을 백발안경. 연구동이 무너진지가 언젠데. 완전 악몽이잖아…"

어젯밤 기껏 일찍 잠든 보람도 없이 최악의 컨디션으로 출근! 그나마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것이 위안이 되어줬다…

"하루키? 일찍 출근했군."

"아, 오토와 소장님. 오늘따라 눈이 일찍 떠진 바람에…"

"그런 것치곤 꽤나 피곤해보인다만. 오늘 오전 근무는 우리 두 사람 뿐이니 편히 말하도록."

"아, 다른 분들은 도쿄 지부에 외근이었나? 쉽게 풀리나 했는데 마무리가 번잡한 일이었네."

그때 사무실에 못보던 화분이 눈에 띄었다.

"루이, 그건?"

"이번에 선물로 들어온 화분인데 사무실에서 키워도 좋을 것 같아서. 맡아주겠어?"

"물론이지. 마침 분갈이용 흙도 넉넉히 주문해뒀는데 잘됐네."

새로 들어온 신입 화분의 상태를 살피려 고개를 숙이자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이 꽃…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것 같은,

"무슨 꽃이지?"

"모르겠군. 너라면 알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희소한 꽃인가?"

화분을 자리로 가져와 자세히 살펴보니 기억의 실마리가 잡혔다. 아, 이 꽃. 꿈에서 본 그 꽃이네. 이런 우연이 다 있을 수가 있나?

그러고 보니 탈출하면 이 꽃의 이름을 찾아보기로 했었지.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이긴 해도 탈출한 건 한거니까… 한 번 찾아볼까?

약간의 시행착오 끝에 검색결과가 나왔다.

해오라비난초

이런 이름이었구나. 꽃잎의 모양새가 어쩐지 카노씨를 닮은 듯…

미지근해진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며 오늘도 떨쳐내지 못할 저주를 생각한다. 빌어먹게도 화창한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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