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Singin' in the Rain

우츠기 란기리의 어느 비오는 날, 약 2000자.

세포신곡 본편, DLC, 은자, 막간을 플레이 한 사람의 뇌에서 나온 글이며 스포일러 함량은 불규칙적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원흉은 모든 것이 날조죠.


소나기가 내렸다. 물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던 소리는 이윽고 빠른 속도로 타이프 라이터를 치는 것처럼 거세졌다. 창문이 없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던 우츠기 란기리는 홀린 것처럼 복도의 창문에 바짝 달라붙었다. 강한 빗발이 부서진다. 풍경이 순식간에 회색으로 잠겼다. 란기리는 속삭였다.

"무테이."

나의 벗. 그는 우산을 가지고 나갔던가? 안 될 일이다. 안 될 일이고 말고! 외출하는 무테이의 가방에는 언제나 만년필과 책, 자료로 삼을 책 몇 권이 들어 있다. 그 위대한 저작 활동 도구가 깡그리 젖어버린다고 생각하면 식은땀이 멈추지 않는다. 란기리는 서둘러 현관으로 향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보나 마나 이 날씨에 나가서는 안된다고 충고하는 사감일 테니. 그런 하찮은 이유로 이 우츠기 란기리를 멈추려고! 란기리는 우산을 들고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빗방울은 우산을 뚫을 기세로 쏟아졌다. 세상이 번쩍거리고 잠시 뒤에 하늘이 찢어지는 북소리를 내었다. 사람이 없어진 거리를 향해 이동하던 란기리는 우산을 썼는데도 젖은 팔을 털며 혀를 찼다. 열린 입으로도 빗방울이 날아 들어왔다. 아아, 정말로 번거롭구나! 란기리는 우산을 접어 옆에 걸쳤다. 다시 한번 천둥이 쳤다.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 란기리는 이 흥분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곡조를 알고 있었다.

"O Freunde, nicht diese Töne! Sondern laß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오 친구들이여! 이런 곡조들이 아닌, 좀 더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자.)"

무테이가 이 곡을 즐겨 들었기에 란기리도 잘 알고 있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 란기리는 친구를 놀라게 할 심산으로 곡조를 익혀 무테이 앞에서 부르곤 했다. 무테이가 성악가도 아닌 친구의 노래를 웃으며 '시끄럽구나' 고 일축하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였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무테이가 매번 시끄러워하면서도 매번 부르기 시작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던 것이다. 장엄한 빗소리 속에서 란기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알고 있어, 알고 있네, 무테이! 나는 이래 봬도 자네의 란기리니까 말이야!

"Küsse gab sie uns und Reben, Einen Freund, geprüft im Tod"

저 편에서 우산을 쓰지 않은 누군가가 걸어온다.

순백색으로 덮인 누군가다.

젖어서 무거운 다리가 놀랍도록 강인한 의지에 이끌려 움직였다. 란기리는 일어서서 두 세 걸음 내디뎠다. 아아,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내게는 네가 보이기 때문이다. 내디딘 발 앞에 있는 물웅덩이는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란기리의 얼굴을 뚜렷하게 비추지 못한다. 자네치곤 너무나 허술한 무대가 아닌가! 하지만 내가 춤춘다면 좀 더 화려해 보일 지도 모르지. 란기리는 마음이 가는 대로 두 팔을 벌리고 단상으로 뛰어 올랐다. 천둥소리에 섞여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아-

아아-

너무 오랫동안 춤추지 않아 몸이 굳어 버렸나 봐. 내 부끄러운 모습을 이해해주게. 나의 사랑해 마지않는 벗.

란기리는 숨을 헐떡이며 쓰러진 채 얼굴을 처박은 물웅덩이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센 노인이 다 죽어가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넘어지며 발에 걸린 휠체어가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휠체어에 걸어둔, 애써 챙겨온 우산은 완전히 박살 나 흉측하게 우산 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란기리 노인은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번 같은 구절을 반복한다.

"Küsse gab sie uns und Reben, Einen Freund, geprüft im Tod……"

자연은 입맞춤과 포도나무를 주고, 죽음조차 빼앗아 갈 수 없는 친구를 주었다.*

란기리 노인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에 일어난 작은 소란이었다.

*위키페디아 환희의 송가 항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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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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