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어떤 노인에 대하여

우츠기 저택의 어떤 노인, 약 1400자.

세포신곡 본편, DLC, 은자, 막간을 플레이 한 사람의 뇌에서 나온 글이며 스포일러 함량은 불규칙적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원흉은 모든 것이 날조죠.


란기리 노인을 단순한 치매 환자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노인은 때로 희극 배우처럼 화려했으며 때로 미치광이처럼 번득였고 때로 저명한 학자처럼 명민했고 때로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희미했다. 고용인들 사이에는 노인이 곧 별채로 이동할 예정이며 운이 없는 고용인이 거기에 딸려갈 거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맴돌곤 했다. 그러나 란기리 노인이 미치광이처럼 허공을 향해 말을 걸어도, 벽에 머리를 박으며 누군가를 부르짖어도 당대 가주는 저택에서 노인을 쫓아내지 않았다. 어쩌면 쫓아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젊은 고용인들은 저들끼리 모여 유산이나 체면 등의 이유를 거들먹댔지만 나이 든 고용인에게 호된 꾸짖음을 들을 뿐이었다. 비슷한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소란을 견디지 못한 차대 당주는 젊은 고용인을 내쫓고 노인을 별채로 보내 버렸다. 빈자리는 입이 무겁고 진중한 고용인들로 채워졌다.

그 모든 소동 가운데 란기리 노인은 유령처럼 자유롭게 저택과 별채를 누비고 다녔다. 새로운 고용인들이 당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인을 진짜 유령처럼 취급했으나 아랑곳없었다. 인형처럼 서 있는 고용인에게도 노인은 신사적으로 인사했으며, 즉석에서 대화 장소를 화려한 사교 파티장으로 바꾸곤 했다. 때로 쾌활하게, 때로 열광적으로……당주의 엄중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아이스클러 창시자의 달변에 현혹되지 않은 고용인은 얼마 없었다. 몇 번이나 낯익은 얼굴이 사라지고 낯선 얼굴이 나타나는데도 란기리 노인의 일관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노인에게서 두려움을 느낀 사람만이 저택에 남은 말년에도 그 열변은 어디선가 간혹 들려오곤 했다.

저택 대부분의 사람에게 눈엣가시 취급을 당하던 노인이었으나, 그가 손자를 아끼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비록 그것이 온화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의 태도와 멀다 해도 말이다. 노인이 아이를 열렬하게 지지할 수록 아이는 가족들 틈에서 고립됐다. 그런데도 아이는 노인의 서재를 찾아와서 그가 종종 보이는 젊은 우츠기 란기리의 편린을 두려워하며 자리를 지켰다.

란기리는 선도자에게 들뜬 목소리로 우주의 중심이나 세계의 끝, 보이지 않는 벽 등의 이야기를 알아 듣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속삭이곤 했다. 란기리의 눈에는 친밀함이 가득했다. 이야기의 절반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랑스러운 손자를 바라보는 눈은 아니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고하노라! 란기리는 손자에게 계승한 레몬 사탕처럼 눈을 빛냈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에 담근 손자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윽고 목에 채운 솜을 토해내듯 정신을 차린 손자는 어르신이 너무 이상해지면 도망치라는 충직하고 오래된 고용인의 충고를 따라 방을 떠나갔다. 화려한 무대의 불이 꺼진다. 란기리는 노인으로 돌아와 공허하게 벽을 바라본다.

아아……나의……■■■.

그 속삭임을 정확히 들은 사람은 이쪽 편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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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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