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이 피날레를」
아토 하루키 메인.
-세포신곡 전력 60분 「종막/피날레」
-세포신곡 DLC 플레이 이후의 감상을 추천합니다.
“하루키 아저씨!”
툭, 하고 누군가 어깨를 두드린다. 하루키는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녹음이 푸르게 우거진 어느 계곡의 산장. 드럼통을 통으로 써서 만들었다는 바베큐 그릴 위에서는 고기와 야채들이 익어가는 소리가 터져나오고 캠프 파이어 근처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통기타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니지, 저건… 저건 누군가가 아니라 에노모토 노아다. 교회 일을 도우면서 배웠다는 솜씨가 과연 뛰어났다. 중간에 음이 이탈하는 부분은 있었지만, 그 정도야 웃어넘길 수 있을테지.
“무슨 생각하고 계세요?”
“음, 별 생각 안했어.”
한 곡이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하루키는 에노모토 노아가 쑥쓰러워 하며 통기타를 내려놓는 동안 손에 든 맥주를 홀짝였다. 건네받을 때에는 상당히 차가웠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야외에서 오랜 시간 있었던 탓인지 다소 미지근한 것이 아쉽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쯤 그릴에서 열심히 고기를 굽던 이소이 레이지와 쿠마자키 리쿠가 요리가 완성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래도 인원이 스무명을 넘어가다보니 고기 분량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닌지라 다섯 명 정도가 그릴 앞에 붙어있다. 카렌은 아무래도 배고픔 보다는 심심함이 더 컸던 모양이다.
“고기 다 구워졌다니까 제가 받아올게요!”
“엇, 아냐. 같이 가자. 카렌도 먹어야지.”
그 나잇대 아이답게 금새 튀어나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붙잡아, 함께 그를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릴 앞에 서있던 인원 중 한 명인 하라다 미노루가 일회용 그릇에 고기를 담아 연장자인 우츠기 노리유키와 하츠토리 하지메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하츠토리는 채식주의자인지라 별도의 그릴에 구운 야채가 한 접시 가득 헌상되어있다. 젓가락으로 구운 양파를 한 입 배어무는 모습이 퍽 만족스러워 보였다.
“아빠! 나랑 하루키 아저씨한테도 한 접시 주세요!”
“앗, 카렌! 하루키 선배님이라고 해야지!”
“괜찮아요. 선배님이라고 하면 너무 딱딱하잖아요.”
그보다 죄송하네요. 재료 분비부터 밑작업, 고기 굽는 일까지 다 맡겨버리고…. 하루키가 그렇게 말끝을 흐리자 쿠마자키 리쿠가 호탕하게 웃었다.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이런 건 잘 아는 사람이 해야 더 맛있는 법이라고요. 그러는 사이 저편에서 쟈부치 요우와 야나기 니나가 주변 사람들에게 고기나 구운 야채를 차례대로 나누어준다. 아이바 이부키가 특별히 잘 구웠다는 너스레를 덜며 건네주는 고기와 야채 한 그릇을 받고, 본래 자리로 돌아온 하루키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 한 조각을 후후 분 다음 덥석 베어물었다.
“아뜨뜨.”
“앗뜨거~”
둘이서 똑같은 소리를 내면서 입을 벌려 열기를 내뱉는다. 그럼에도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알맞게 배어들어있는 양념과 간 덕분이다. 과연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봤다는 사람이라 다른건가. 하루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캠프 파이어 너머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드라마 『세포신곡』을 촬영하며 몇 개월 동안이나 함께 지낸 이들의 얼굴이 불꽃 너머에서 일렁였다.
“그러고보면 카렌은 요새 어떠니?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지 않아?”
“히히, 실은 학교 애들은 전부 알아요! 전에는 사인도 해줬는걸요.”
“어머니도 자랑스러워하시겠네.”
“그럼요! 사인하는 방법도 엄마가 가르쳐줬어요!”
왕년의 유명 가수가 가르쳐주는 사인이라. 하루키는 빙긋 웃어보이고는 새삼스런 감각으로 광장을 둘러보았다. 스턴트맨, 아이돌, 직장인…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배우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키 자신처럼 어릴 적부터 연기를 배우다 데뷔한 사람도 있다. 레이지와 시나노, 에노모토가 전자, 그외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였다. 그래도 촬영장의 분위기는 대체로 온화했고 완성된 영상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이번에 방영된 마지막화의 시청률은 방송국 기록을 경신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어쩌면 이번 연말대상은 우리가 받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좋겠네. 그땐 카렌이 일등으로 수상소감을 말하기로 하자.”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캠프 파이어의 불길도 줄어든다. 몇몇 사람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안으로 들어가고 또 몇몇은 늦은 술잔을 나누며 밤공기를 들이마시는 시간이었다. 일찌감치 카렌을 아버지와 함께 안으로 들여보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하루키는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는 인기척을 느꼈다.
“즐거웠니?”
하라다 미노루다.
“네, 즐거워요. 가끔은 이런 자리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다행이네.”
캠프 파이어의 불길은 이제 거의 잦아들어서 깜부기불에 가깝다. 하지만 불길이 얼마나 작아졌던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책임지고 불을 꺼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걸 증명하듯이 푸른 양동이가 옆에 놓여있었다. 하루키는 그 속에 담겨있을 물을 상상했다.
“여기 좀 더 있을래?”
“아뇨, 이제 들어가야죠.”
“좀 더 지내다 가도 좋을텐데.”
“괜찮아요.”
기포 하나 없이 고요히 잠겨있는 물을.
“제가 선택한 피날레는 여기가 아닌걸요.”
아역 배우인 레이지와 하루키는 이소이 라이와 함께 쉬러 들어갔다. 하츠토리는 아직 우츠기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에노모토 노아와 야나기 니나는 둘이서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바 이부키는 쿠마자키 리쿠, 쿠라치 테루미와 함께 있었는데 아무래도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누구도 상처입지 않는 세계.
무엇도 잘못되지 않는 세계는 아마도 이러하겠지.
하라다 미노루는 어느새 이소이 사네미츠의 모습이 되어있다. 주변은 어느새 고요해져, 마치 이 공간만이 따로 떨어져나온 것 마냥 적막하고…. 아토 하루키는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시고, 웃는다.
“미안하다곤 안 해요.”
어쩌면 우리가 전부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모든 슬픔을 끌어안고 모든 실수를 올바른 타이밍에 바로잡아 이르게 되는 어느 지점이 있었을 지도 몰라죠.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어긋나고 실패하고 배신하고 상처 준 끝에서야, 우리는 겨우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거에요.
상처투성이 손으로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그런 피날레를.
“다만 나는 내가 선택한 피날레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게, 누군가의 시나리오라 해도?”
하늘의 별이 길게 꼬리를 끈다. 유성우가 어느 한 점을 중심으로 흰 선을 그리며 어둠을 분절시킨다. 몇 십 몇 만개의 고리가 하루키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어쩌면 신의 계시와도 닮아있는 풍경.
“괜찮아요. 그게 시나리오라 해도, 내가 내 의지로 선택한 거니까.”
그리고 이것 또한, 누군가의 의지로 선택된 피날레일지도 모르고요. 하루키는 어쩌면 애매하게 느껴지는 말을 건넨다. 그 말을 건네받은 하라다 미노루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그런가, 그렇구나. 가능하다면 너를 여기에 잡아두고 싶었어…. 그런 말이 바람처럼 흘러간다.
“그래도 고기, 맛있었어요.”
“응.”
“이만 갈게요.”
“하루키.”
“네.”
“잊지 말아줘.”
하루키는 무엇을? 하고 되묻지 않는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을 뿐이다. 그 순간 어떤 마법은 풀리고 무언가 연결되어있던 것이 끊어진다. 하라다 미노루는 눈을 몇 번 깜박이고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빛의 고리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조명이 꺼져가듯이, 별빛이 스러져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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