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세포신곡 온라인 온리전이 끝났다.

지고천 연구소 온라인 입교 설명회 후기(를 빙자한 개인감상)

-2021년 10월 10일 게시글입니다.


우선 세포신곡 온라인 온리전 【지고천 연구소 온라인 입교설명회(@ LabJigo_ONLY )】를 열어주신 주최진 분들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 온리전을 개최한다는 것도 쉬운 결정이 아니셨을 텐데 꼼꼼한 이벤트 사전 준비부터 시작해 이벤트 당일 벌어진 여러가지 돌발 상황들에 이르기까지 정말 잘 대처해주셨습니다. 앞으로 남아있는 배송 과정도 무탈히 진행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이후로는 개인적인 신변에 가까운 이야기가 진행되므로 관심이 없으시다면 그대로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시면 됩니다. 편의상 이후로는 반말투로 진행됩니다.


이전 장르를 잡은지가 어언 1200년 전이다. 이제는 말라버린 마음과 타성적인 관례를 따라 흘러갈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불타오를 수 있는 장르를 만나게 된 것은 기적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기적이다. 덕분에 내 글에 회의감을 가지고 삶에 부정적이던 나도 바보같이 웃고 고뇌하고 머리 싸매고 후카오상ㅠㅠ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동인녀 츠즈이씨』라는 만화에서 메마른 사회생활을 하며 지쳐있던 오타쿠 주인공이 간만에 놀러온 오타쿠 친구를 만나 미친듯이 놀며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 그대로다. 오타쿠는 덕질로 살아간다.

덕질의 범주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다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니 내 경우만 짚고 넘어가겠다. 몇 년 전에 중학생 마피아가 나오는 장르를 판 적이 있다. 그때는 모두가 내 글을 좋아해주었고 나도 내 자신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글을 쓰고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서 애정도 점차 식었고 연성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타장르로 옮겨갔다.

타장르는 중학생 마피아처럼 대형 인기장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꽤 좋아했다. 얼마 뒤에는 자캐 커뮤에도 입덕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글 연성과 그림 연성 사이의 격차를 인식하게 되었다. 어떤 투명한 벽이 글과 그림 사이를 가로지르는 감각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글러치고는 꽤 운이 좋게도 면전에서 글 연성을 까내리는 발언을 많이 듣지 않았다. 듣지 않았다기 보다 그 의미를 곧바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편파는 피하지 못했다.

편파에 대한 고리타분한 (그러나 동시에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는 일단 접어서 던지자. 결과적으로 나는 커뮤를 포함한 동인판이란 글 연성 보다는 그림연성을 선호하며 글을 불호하는 분위기 자체도 마치 유쾌한 농담처럼 쓰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걸 뚫고 나가려면 어지간한 필력으로는 안된다. 어쩌면 신의 필력이라도.

상당한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꼈다. 와중에 자커판에 익숙해진 탓에 커뮤에서 자캐로그를 쓰는 대신 누가 그걸 읽어줄 거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읽어주신다면 감사합니다. 하지만 안 읽는데도 상관없어. 어차피 글은 별 관심도 안 주니까. ....그렇게 커뮤판에서 가열차게 놀다보니 슬슬, 로그를 쓰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그를 쓸 의욕이 없으니 커뮤를 뛸 여력도 나지 않았다. 2차를 해볼까 해도 작품을 즐길수는 있지만 옛날처럼 연성을 하고 기뻐 날뛰기엔 기력이 없었다. 그럼 오타쿠로서는 끝난 셈이다. 아마 이대로 어떤 인간도 아닌 채로 끝나겠지. (그러나 나는 이 시기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뛴 커뮤에서 자컾을 만들어온다.... 인생사는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생각을 할 쯤에 『세포신곡』을 만났다. 피가 끓었다. 거의 잊어버리고 창고에 처박아둔 2차창작욕망이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그럼에도 나는 마냥 기뻐하진 않았다. 동인판에서 글 연성이 기본적으로 어떻게 대해지는지는 이미 질리도록 알았으니까. 적당히 연성하다보면 내 안의 열기도 식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써서 올린 것이 「아토 하루키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상냥한 세계」와 「그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지 말아줘」같은 글들이다. 첨언하자면 나는 이 장르에 오기전까지는 극한의 주인공른 비엘러였다. 그런데 갑자기 논커플링이라니? 쓰면서도 내가 놀라워 죽을 지경이었다. 써서 올린 뒤에는 진짜로 죽었다. 사람들이...... 반응을 주는 것이다..... 마치 첫 참가한 플리마켓에서 별 생각없이 수제 수세미를 들고갔는데 사람들이 귀엽다면서 줄서서 사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글 연성인데? 왜? 커플링글도 아닌데? 왜? 그냥 논커플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게 좋은가요?

사람들은 그게 좋다고 해줬다.

나는 사고가 단순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기뻐서 다음 글도 구상했다. 그런 흐름이 거의 반년 정도 지속되고 있고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글 연성을 많이 좋아해주신다.

.....

2020년에는 글 따위 절필할거라고. 나 같은 게 쓰는 글이 세상에 빛을 보는 일이 있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어차피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고. 사실.... 그건 내 뿌리 깊은 생각이라 지금도 극적으로 변하진 않았다. (어두운 이야기 죄송합니다)

하지만 세포신곡에서 만난 사람들과 떠들고 고찰하고 교류하고 회지를 내고 온리전을 치루며 실컷 웃고 울면서, 즐거웠다. 두근거리고 설레고 탐라가 들썩대는게 유쾌했다. 이런 즐거움을 알아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는 자책 저 너머에 '그래도 그땐 재밌었지'하는 별빛 같은 게 생긴다. 그걸 보고있으면 나도 조금은 더 걸어갈 수 있는 인간이란 기분이 된다. 물론 한 두 걸음만에 또 기운 빠져서 엎어져 한숨만 쉬겠지만 지금 이 순간 정도는, 기운내서.

세상에 천년 만년 영원히 이어지는 건 없으니까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은 이어지지 않겠지. 그래서 최선을 다해 즐겁게 뛰어다녔고 실제로도 즐거웠다. 행사를 열어주신 주최진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함께 즐겨주신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조금 더 세포신곡을 즐길 예정이니 내키시면 언제든 어울려주세요.

그리고 글연성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주세요(본심)

이후로는 행사 반성문이 이어집니다.


1. 왜 부스 상품소개란에 인포 링크가 없었는가? :

제가 9월 20일쯤부터 수요조사를 계속 돌리고 수요반응을 꽤 얻었는지라 딱히 링크 안 걸어도 살 마음 있으신 분은 이미 정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했습니다... 이거 때문에 불편하셨던 분들이 계시겠죠 정말 죄송합니다ㅜㅜ

2. 왜 상품란에 표지 이미지가 없었는가? :

제가 준비한 회지 목업 이미지가 있었는데 막판에 페이지수 변경이 되면서 거기 적힌 금액과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서 목업을 같이 실어버리면 불필요한 혼동이 일어날까봐 넣지 못했어요. 표지 파일은 앞뒷표지가 다 들어가는지라 미관상 보기 불편할 것 같았고... 그래서 어차피 이름은 비슷하지 않으니 구분가능 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치만 조금 더 생각했더라면 표지 이미지 넣는게 더 구분하기 쉬웠겠죠.... 네.... 다시 한 번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3. 축사 이벤트에서 커플링 실수 하셨어요? :

.......제가 처음에 별 생각 없이 요우니나에 체크해두고 어느 커플을 할까 하다가 막간컾을 컨셉으로 잡고 메모장에 쓴 다음에 그걸 붙어넣기하고 그대로 제출을 눌렀습니다... 주최분들이 실수하신게 아니라 제가 멍충이 짓을 한거에요(ㅠㅠ) 부디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 주최진 분들을 탓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저 공컾 전부 좋아해요. 이렇게 말하니까 어쩐지 변명 같지만. 변명 맞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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