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 하루키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상냥한 세계
이소이 레이지 중심.
-SS+ 루트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제목 구성은 아카키 히로타카 작作 『야한 이야기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지루한 세계』에서 따왔습니다. 내용적 공통점은 없습니다.
깼다.
천장이 낯설다. 왠지 멍한 머리로 숨을 들이마시다가, 내쉰다. 바깥에선 햇빛이 들어오고 어디선가 아이들이 떠들면서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면 오늘은 주말이었던가. 시계를 확인하지도 않고 떠오른 생각을 더듬다가, 갑자기 몰려오는 두통에 몸을 웅크린다. 뇌를 직접 주무르는 듯한 압박과 어쩔 도리 없는 두근거림. 틀림없다. 이건, 이건.
"레이 형~ 아직도 자고 있어?"
덜커덩,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그쪽을 보면, 생전 처음 보는 검은 머리카락의 아이가 있었다. 나이는… 얼추 10살 정도?
"…누구?"
이것저것 물어봐야 할 것이 많은 듯한 기분이 드는데 입에서는 의문 하나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내 질문을 들은 아이는 눈을 크게 뜨는가 싶더니,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통탕 통탕 복도를 걸어가 버렸다. 열린 문 사이로 '하루 형~ 레이 형이 이상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 그러고 보면 우리 집에는 복도가 있었지. 왠지 엄청나게 당연한 일을, 이제 와서 깨달은 기분이 된다.
"레이 형! 하루 형이 그럴 줄 알고 해장 요리해놨으니까 얼른 나오래."
다시금 토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돌아온 아이가 침대까지 다가온다. 다가온 거로도 모자라 이불을 슥슥 가져가 버린다. 아무리 봄이라지만 체온으로 잘 데워진 이불이 사라지는 것은 괴롭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그렇다, 이건 숙취다) 엉망진창인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만둬, 레이지…."
주르륵, 흘러나온 말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그만은 무슨! 빨리 일어나! 안 그럼 오늘부터 술꾼 형이라고 부를 거야!"
레이지는 가차 없다. 어릴 때는 좀 더 귀여웠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은데. 이럴 때 보면 정말 하루 형이랑 피를 나눈 형제라는 게 실감 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하루 형이랑 피를 이은 (?) 형제니까, 피장파장인 셈이지만.
"알았어, 알았다고."
별수 없으니까 침대에서 일어난다. 보이는 풍경은 책상과 책장, 창문과 시계, 쓰레기통 등이 있는 흔한 방 안의 모습이다. 누군가가 '이걸 현대 일본인의 생활 양식 샘플로 쓸까.' 라고 말해도 문제없을 정도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레이지가 내 양쪽 팔을 잡고 앞으로 잡아당겼다.
"넋 놓지 말고 일어나 일어나! 나 배고파!"
"잠깐만, 잠깐만, 그렇게 잡아당기면…!"
당연하게도, 침대에서 바닥으로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
"오셨습니까, 주정꾼 아저씨."
"그렇게 부르지 마십쇼…."
"왠 존대. 아직 술기운이 덜 빠졌나 봐?"
레이 형 때문에 넘어졌잖아! 아니, 그건 어딜 봐도 쌍방과실이지.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부엌으로 나와보면, 평소와 같은 하루키 씨 (가 아니라), 형이 있다. 이 갈색과 흑발 집안에서 혼자 머리카락이 금빛인 것은 갈수록 아버지를 쏙 빼닮아간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질색팔색을 하던 다음 날의 일…이었다는 기분이 든다. 그때 아버지는 어떤 얼굴이었더라. 이상하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역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가. 끙하는 소리를 내며 식사가 차려진 자리에 앉으면, 하루키 형이 마지막으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자, 진하게 끓인 바지락 된장국. 쭉 들이키고 정신 차려."
"하아,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아!"
그렇게 시작된 아침 식사는 그렇게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그릇이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 레이지가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소리, 내가 숙취 때문에 앓는 소리, 하루키 형이 웃으면서 답해주는 소리 등등으로 가득 차 있었던 탓이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을 주말의 아침 식사 풍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부엌 식탁 쪽 벽에 걸린 사진에 눈이 닿는다. 하나는, 익숙한 남자와 조금은 낯선 여자가 함께 서 있는 사진. 그 아래에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 두 사람과 우리 셋이 함께 찍힌 사진이다. 그걸 '가족사진'이라고 인식하고 있자니, 눈 앞에서 누군가의 손이 왔다 갔다 했다.
"레이. 왜 그리 넋을 놓고 있어?"
"……."
손의 주인을 본다. 하루키 형이 이쪽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네미츠 씨는?"
"왠 편집자 말투? 어머니랑 아버지는 이틀 전에 이탈리아로 여행 가셨잖아."
아, 그랬지. 그러고 보면 공항으로 가는 두 사람을 셋이서 배웅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 이탈리아 남부 지역 여행 코스였지. 그거 때문에 나랑 하루키 형이 돈을 모았었으니까 확실하다. 레이지는 우리가 볼 테니까 신혼 기분으로 다녀오세요. 어머니에게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던 하루키 형도 떠올랐다.
"두 사람, 즐겁게 지내는 것 같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랑 아빠한테서 이탈리아 사진 왔어?"
"지금은 주무시고 계실 거야. 사진 도착하면 보여줄게."
"응!"
시계 분침이 45분을 가리킨다. 국에 담긴 바지락 된장국은 얼마 남지 않아 조갯살이 그대로 보였다. 젓가락 끝에는 밥알이 붙어있다. 식탁보의 무늬는 덩굴 포도 무늬. 벽에 걸린 액자는 진갈색. 우리 가족의 성은.
"레이?"
아, 젠장. 또 넋이 나가 있었다. 정신 차려야 하는데 왜 이러지. 별거 아니라고 말하려는 순간에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레이?! 뭐야, 너 어디 아파?!"
"레이 형!"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말하려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
"진짜, 사람 놀라게 하지 마. 병원 응급실 가야 하는 줄 알았다고."
"미안…."
"레이 형,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너 오늘 친구랑 숙제한다고 했잖아. 가야하는 거 아냐? 그렇게 말하면 레이지는 조금 불안한 얼굴로 나와 하루키 형을 번갈아 쳐다본다. 아무래도 내가 어지간히도 걱정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 아직 어린 동생에게 걱정을 끼친다니 언어도단이다. 나는 수심 가득한 동생을 몇 번이고 안심시킨 다음, 손수 짐을 챙겨 배웅해주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머뭇거리는 기색이 있지만, 확실히 활기찬 목소리가 들린 뒤 현관문이 닫혔다. 찰카닥.
"그러면, 일단 방에서 좀 더 쉴래?"
"설거지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됐네요. 지금도 숙취에 시달리는 얼굴이거든?"
그냥 쉬고 있어. 심심하면 거실에서 TV라도 켜서 보고 있던가. 하루키 형은 그렇게 말하며 내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물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하니 우리가 먹은 그릇들을 바로 씻어내고 있는 모양이다. 가서 접시 닦는 것이라도 도와줄까 싶었지만, 확실히 오늘은 상태가 좀 이상하다. 정신이 흐트러진다고 해야 할까, 되려 꽉 맞물리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뭔가가 재구성되는 듯한 기분.
가만히 서 있다간 주저앉을 것 같아, 거실 소파로 걸음을 옮긴다. 깔끔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온다. TV 리모컨은 손을 뻗으면 금세 닿을 위치에 있었지만 킬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신에 초등학교 저학년 용의 공룡 무늬 노트가 눈에 들어와, 그걸 펼쳐보기로 했다. 어린아이다운 글자를 읽으면서 페이지를 넘기면,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오늘의 숙제 / 가족 이름 한자로 쓰기!
아빠 : 이소이 미노루/磯井 実
엄마 : 이소이 라이/磯井 來
큰형 : 이소이 하루키/磯井 晴己
작은형 : 이소이 키레이/磯井 樹礼
나 : 이소이 레이지/磯井 麗慈
아, 그래서 나도 레이였나.
묘한 감각으로 페이지를 앞으로 넘기면, 선생님이 붉은 펜으로 첨삭한 말이 보인다.
오늘도 열심히 했구나. 매일매일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선생님도 응원하겠습니다.
"이런, 아무리 형제라도 프라이버시는 지켜야지."
어라, 하는 사이 노트를 뺏겼다. 시선을 돌려보면 어느새 설거지를 끝내고 온 모양인지 하루키 형이 있다.
"진짜 빠르네."
"양이 얼마 안 되니까. 그 보다 앉아서 쉬라니까."
"아, 응."
갈색 소파는 너무 푹신하지도 딱딱하지도 않다. 나를 따르듯이 자리에 앉은 하루키 형이 쭈욱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 보면 오늘은 일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게 물어보면 맡은 의뢰도 끝난 참이고 루이가 푹 쉬어도 된다고 했어,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듯한 이름은 5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서야 '오토와 루이씨를 말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되었다.
"레이지, 건강한 모양이네요."
"너 또 존댓말 쓴다. 오늘따라 왜 그래?"
"음, 어라."
"이상한 꿈이라도 꿨어?"
"…잘 모르겠어."
하루키 형은 흠, 하고 이쪽을 본다. 그 시선은 예상했던 것보다 따스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레이지는 걱정할 것 없어. 활기찬 아이인걸. 오늘 만난다는 친구도 아마 카렌이겠지."
"카렌이라면, 쿠마자키 카렌?"
"그래. 너도 몇 번 얼굴을 봐서 알잖아? 어머니 친구인 스미레 씨의 딸."
"어."
"어, 라니."
너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냐? 그런 걱정을 하게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스미레 씨는. 스미레라는 사람은, 분명 쿠마자키 리쿠라는 사람의 부인이시고, 카렌이라는 레이지 친구의 어머니고. 음? 뭔가 달랐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진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술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머리를 어디 부딪치기라도 했나. 진지하게 여기저기를 짚어봤지만 혹도 상처 자국도 없었다.
"별일이네. 어디 이차원이라도 여행하고 왔어?"
"여행한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좋아, 그럼 대청소라도 할까."
"일련의 사고방식을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청소하다 보면 머리도 정리될 거야!"
자, 일어나 일어나! 하고 재촉하는 하루키 형에게 등이 떠밀린다.
아니, 진심이야?
*
진심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와! 레이 형이 소파에 패잔병처럼 쓰러져있어!"
"하다못해 승전의 흔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냐고."
"어서 와, 레이 군. 숙제는 잘하고 왔어?"
아, 내가 레이고 레이지는 레이 군인가. 하긴 '키'는 애칭과 조합하기가 어렵다.
"있잖아, 오는 길에 선생님들 봤어!"
"선생님들?"
"쟈부치 선생님이랑 야나기 선생님! 손 꼭 잡고 있었어!"
"그렇구나. 하지만 그런 얘기 학교에서 대놓고 하면 안 된다? 곤란해하실 거야."
"응!"
"저녁은 먹었어?"
"아직~ 그렇지만 카렌이랑 같이 핫도그 먹어서 배불러."
그러니까 방에서 얌전히 놀고 있을게! 레이지는 그렇게 말하며 후다닥 세면실로 들어갔다.
"그럼 저녁 준비까지는 여유가 좀 있나. 고생했어 레이지. 좀 쉬어."
"…하루 형."
"응?"
"아토 하루키라는 이름 알아?"
시곗바늘이 느긋하게 째깍거린다. 세면실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요란하지 않지만, 나름의 소음을 자아냈다. 석양이 새어 들어오는 바깥에서는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났다.
"모르겠는데. 레이가 아는 사람이야?"
"응."
시계 소리가 멈춘다. 물소리도 멈췄다. 아이들은 침묵했다.
하루 형은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 타이르듯이 말한다.
"아토 하루키라는 사람은 없어, 레이."
"미안. 아니, 미안함다. 나도 잠자코 있으면 될 텐데. 정말로."
"레이."
"그렇지만 머리가 좋지 못한 나라도 눈치챌 건 눈치채요."
"괜찮아."
"괜찮지 않아. 이건 결국 내가 보는 환상인 거지? 마지막 순간에 이런 뻔뻔한 짓을 하다니… 진짜 웃음 밖에 안 나오네요."
"……."
하루키 형은, 아니, 하루키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표정은 마치 마지막까지 잘 쌓아 올렸던 도미노를 한 번에 무너뜨려 버린 인간의 얼굴 같다. 그런 것을 자주 본 적은 아니지만 그럴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도 자신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을 테지.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떨구자, 앞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났다.
"아냐, 네가 아니야."
"아니라니."
"이건 「내」가 보여주고 있는 거야."
고개를 든다. 눈앞의 사람은.
"하다못해 네게 평온함만이라도 주고 싶었어."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얼굴로, 불타는 듯한 석양빛을 받고 있었다.
"…언제?"
"같이 종루로 향하던 때. 그때 핏방울이 옮겨갔어."
"!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구나, 당신…!"
"남 말 할 처지야?"
한 걸음, 상대방이 가까워진다. 부지불식간에 뺨에 닿은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부탁이야. 이대로 속아주지 않을래?"
"……."
"오래 걸리지 않아. 아니, 이건 영원이 될 수 있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현실은 아니죠."
이번에는 그가 침묵했다. 떨리는 손을 붙잡으면, 담담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평온한 꿈으로는 안 되는 거야?"
"안됨다. 저는 거기서 나눈 약속이 있거든요. 역량 부족으로 실패하긴 했지만."
"그건 네 탓이 아니야."
"그렇다고 당신 탓도 아니죠."
석양은 붉다. 마치 핏빛처럼.
"즐거웠어요. 정말로. 하지만 나는 내가 여태껏 쌓아 올린 「이소이 레이지」가 좋슴다."
설령 이루고자 했던 약속이 실패로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돌무더기와 화염 속에서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해도, 당신의 절규를 아득하게 들으며 죽음의 공포에 발밑부터 잠겨가게 되더라도.
─무사히 돌아온다면, 당신을.
그 약속을 나누었던 순간을 아름다운 꿈 너머로 파묻어 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 그렇구나. 그렇다면 나는 너의 의지를 존중할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다고 해야겠네요. 이소이 레이지가 계속해서 10살인 모습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믿었을지도 몰라요."
"어쩔 수 없지. 나는 레이지가 자란 모습을 모르니까."
정말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하루키 씨는 이마를 맞대왔다.
"부디 이 꿈이, 조금이나마 네 고통을"
*
깼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돌과 철근 파편에 짓눌리는 상체가 지끈거렸다. 하체에는 이미 감각이 없고, 입안의 비린내는 감돈다기보다 넘쳐흐른다고 표현해야 할 지경이었다. 손은… 아, 이거 글렀다. 애초에 척추가 무사한지도 알 수 없다. 희미하게 남은 의식은 바람 앞의 촛불 같아서 금방이라도 훅 꺼질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오래 있었으면, 그걸로 끝이었을지도.
정말이지. 딱 한 걸음 정도 남은 지점이었는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울음보다는 웃음이 나온다. 극한의 공포를 앞에 둔 인간은 그만 미쳐버린다고 하는데 그런 걸까. 그래도 후회는 들지 않으니 그걸로 됐다고 하자. 사실 모두 함께 돌아갈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서 사네미츠 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사람을,
아버지라고.
아아, 아니다. 이 이상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도를 넘어서 유쾌해졌던 마음이 단숨에 뒤집혀버리고 만다. 더 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서 추해지고 만다. 그 꿈을 뿌리치고 나온 의미를 잃고 만다. 그러니까 생각하면 안 된다.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도 무의식은 미친 듯이 타들어 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결국 이렇게 외치고 말았다.
도와줘, 죽고 싶지 않아.
*
…멀리, 세 번 빛나는 빛의 고리를 본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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