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알리오 올리오를 포크에 세 번 감고」

애니+츠바이크

-세포신곡 전력 60분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후회는 용병의 덕목이 아니다. 하기사 한없이 뒤를 돌아보는 일이 어떻게 덕목이 될 수 있겠느냐만은, 아무튼 그건 전장을 걸어오며 살아온 어느 용병에게는 특히나 성정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당연하다. 아침에 한 말실수를 점심때 사과할 수 있는 여느 직업과 달리 용병이란 당장 1초 후의 목숨이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직업이다. 한탕 크게 벌었다가도 빚더미에 올라앉고, 건강한 육체를 가졌다가도 앗 하는 사이에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용병을 대상으로 한 보험상품이 없는 이유가 달리 있는게 아니다. 하이 리스크 노 리턴. 이른바 본전치기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병, 애니의 행동은 지극히 결과중시적인 방향으로 굴러간다. 앞일을 깊이 고민하거나 지나간 일을 반추하며 회상에 잠길 여력은 배분되지 않았다. 그건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윤리적으로 올바른가에 대해서는 고뇌하지 않았다. 자신이 택한 행동에 엄숙한 도덕을 찾는 일이 더 웃기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병은, 애니는, (적어도 그는 지금 그런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오래된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는 것에 망설임을 두지 않는다. 세오도아 리들이라는 이름이 거대 선박 사고에 휘말린 생존자의 이름이라는 걸 알아도 손을 멈추지 않는다. 기이한 인질사고에 대해서도, 리들 가문이 부를 축적해온 방식에 대해서도, 하다못해 리들 가문이 잃어버렸다는 라임 아쥬르에 대해서도….

“그런가요.”

드레퓌스 츠바이크, 라고 통용되는 남자는 자기가 물어본 주제에 덤덤한 얼굴이다. 애니는 식탁에 놓인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를 솜씨좋게 휘감아 입 안에 넣었다. 대를 거듭할수록 전대의 아들이라 자칭하면서 살아온 지가 3세대 째라는 남자 앞에는 붉은 색채가 먹음직스런 토마토 스파게티가 가득했다. 가끔은 이렇게 먹어주지 않으면 봉골레가 꿈에 나온다고 하는데, 과연 어디까지가 진담일지.

“넌 해봤어?”

“글쎄요, 이런저런 자료 조사를 하다가 겸사겸사 들은 정보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파고들진 않았으니… 정보의 질적 측면은 당신이 우위겠죠.”

“흐음.”

LDL은 기본적으로 서로의 직업에 깊이 참견을 하지 않는다. 아니, 직업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타인에게 참견을 하지 않는다. 서로의 목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인간미가 없는 조직이지만, 공교롭게도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대다수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리더가 이 말을 들으면 몹시 싫어할테지만) 때문에 애니와 세오도아, 츠바이크가 있던 초기 시절의 LDL에는 어떤 간격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교류는 사실 위태로운 거미줄에 더 가까웠다.

그게 언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는, 당연히 둘 다 알고 있다. 애니는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보다 봉골레 파스타를 더 좋아하는 아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언젠가 그 아이가 자신의 지하공간에서 무언갈 깊이 읽고있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그때 내뱉었던 말들도.

“후회하게 될까요.”

현실은 한 발짝 늦게 밀려든다. 고개를 들면 기껏 푸짐하게 만든 스프게티를 포크로 빙빙 돌리는 츠바이크가 있었다. 무엇을, 하고 물어야 할 타이밍일 테지만 애니는 묻지 않았다. 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하고?”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바보같은 소리 마. 애니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확실히 용병시절에는 그런 아이러니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서 미친다. 너무나 많은 것을 몰라서 죽는다. 그 죽음 앞에 지식과 무지의 가치판단권을 내미는 것은 잔혹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미 돌이킬 수가 없다. 산 사람만이 입에 쓴 풀을 가득 물고 이빨로 씹는 기분으로 비척비척 나아갈 뿐.

나아가면서, 마음을 정할 뿐.

“나는 후회 안 해.”

“단언하시는군요.”

“너는 후회할거냐?”

“확언하긴 어렵군요.”

“문과로군.”

“출판사 편집자니까요.”

하지만, 글쎄, 어떨까요. 정말로 당신의 인생에, 나의 인생에 후회가 몰려드는 날이 없을까요? 물론 이건 탁상공론이지요. 하지만 가끔은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슬쩍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대형사건이 터지는 날이 오면…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사실은 좀 더 노력했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런 후회가 발치가 엉겨붙어 제대로 걷기도 힘들겠죠. 사실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오지 말라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늘따라 수다쟁이군.”

“업무만 한다고 입이 굳었어요. 재활이 필요합니다.”

“어쩐지 깨작거린다 싶더라….”

하지만, 생각해보라고. 세오도아는 나를 구해줬어. 굳이 그럴만한 의무도 의리도 없었는데 말야. 설령 그게 녀석에게 숨겨진 어떤 계획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나는 녀석 덕분에 살아있어. 세오도아가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었겠지. 그러니까 나는 세오도아라는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내고 싶었어. 단순한 호인인지, 앞뒤 생각 없는 바보인지, 아니면 그냥 줏대없는 변덕쟁이인지.

“어느 쪽이던가요?”

“셋 다.”

“동감이에요.”

사실, 애니는 세오도아의 모든 것을 알아낸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 자료조사를 통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인간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애니는 그를 조사했다. 추론했다. 자기 나름대로 그의 형상을 더듬어 그려냈다. 긴 그림자가 생긴다.

“자, 생각해보자고.”

우리가 상상도 못할, 어찌 수습할 도리도 없는 대형사건이 터져서 우리가 해온 행동들에 대해서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건 그렇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아니야. 세상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일들 중에 하나지. 그럼 여기서 사건을 조금 좁혀보자고.

A. 세오도아를 믿으므로 그에 대해 전혀 조사하지 않은 나.

B. 세오도아를 믿으므로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한 나.

A의 상태에서 후회할 수 있는건 무엇이겠어? 끽해야 많은걸 예전에 알았더라면, 하는 수준의 후회겠지. 그럼 B는 어떨까. B에서는 이 모든걸 차라리 몰랐더라면, 하고 후회할 수 있겠지. 어찌 보면 둘 다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어. 뭘 것 같아?

“무지와 정보.”

“맞아. A에게는 정보가 없어. 반면에 B에게는 정보가 있지. 그럼 어느 쪽이 더 행동을 취하기 유용할까?”

“손패가 하나라도 더 많은 쪽이겠죠.”

“그래, 그렇기에 나는 세오도아를 조사했고, 조사한걸 후회하지 않을 작정이야.”

“확실히 조사하지 않음을 후회하는건… 당신 적성에 안 맞겠군요.”

“그때 가서 정보를 박박 모으려 해도 늦었을 테니까.”

가볍게 웃고, 알리오 올리오를 포크에 감는다. 상대방도 조금씩 식사를 시작해서 거대한 파스타의 산이 조금씩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스파게티 자신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설사 있더라도 그가 어찌할 수는 없는 방향으로.

“만약에.”

“어.”

“지금 이 순간, 그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날이 올까요.”

애니는 픽 웃는다.

용병에게는 너무 낯간지러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너도 네가 하고픈 일을 후회없이 할 거잖아.”

츠바이크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긍정이란 때로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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