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발행 회지

타임 꽃 피는 소리가~When your Time bloom~

친우조(오토와 루이&아토 하루키). 세포신곡 온리전 「지고천 연구소 온라인 입교설명회」 참가 회지의 유료 발행 게시글입니다. (※24.10.09 무료로 전환)

인포 목업 제공 젬즈비님(@Gems_Bee)

※샘플 페이지는 아래 주소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butterflybox.postype.com/post/10718867

※본 회지는 2024년 10월 9일 이후 무료화되었습니다※


!Attention!

※본 회지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되어있습니다※

① 세포신곡-Cell of Emperio-의 본편 및 엔딩 스포일러.

② 자체적으로 생각한 동인 설정과 타임라인.

③ 등장 캐릭터와 인간관계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

④ 후속작 세포신곡-Cell of Mirage-에 대한 날조 예상.

위 사항을 염두하고 페이지를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1. 10. 09

세포신곡 온리전 『지고천 연구소 온라인 입교설명회』 참가 회지.

Written By Mikyel. (@essqy)


01.

하루키가 입원한 병원의 제3병동은 대체로 조용하다. 외부인의 방문을 받아도 난동을 부리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안정되어있거나, 혹은 아예 그런 증상을 보이지 않는 환자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부인의 출입이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은 아니다. 오토와 루이는 병문안을 갈 때마다 병원 접수처를 통해 제3병동 담당자들에게서 방문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야 했다.

사실상 형식만 남은 단계나 다름없었으나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병동으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제3병동으로 이어지는 하얀 복도를 걸어갈 때마다, 오토와 루이는 그 의미를 되새김질했다.

자신의 친우는 이제 누군가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어쩌면 그 하얗고 청결한 병실에서 영원히.

제3병동으로 이어지는 문의 인터폰을 누른다. 「303호실 아토 하루키 환자의 면회를 왔습니다. 조금 전 연락드린 오토와 루이입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목소리가 흘러들어간다. 기계 너머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무겁고, 차갑고… 조금, 버거운 문.

오토와 루이는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루이 군. 안녕.”

병실로 들어가면 평소와 같은 아토 하루키가 있다. 작은 서랍장 위에 놓인 꽃병에는 튤립. 얼마 전 오토와 루이가 병문안을 오면서 살짝 기운을 잃은 프리지아 대신 새로 갈아준 꽃은 무척이나 생생한 색깔로 피어있었다. 루이는 그 붉은 색을 지나쳐 천천히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하루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루이 군은?”

“난 건강하다.”

“그렇구나.”

계절은 이제 늦여름에 접어들어서 바깥의 햇살은 강렬하다. 오토와 루이도 땀샘이 없는 인간이 아닌지라 여기로 오는 동안 제법 땀을 흘렸다. 하지만 아토 하루키가 입원한 병실은 직사광선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각도에 있어 조금 선선했다. 천장에서 돌아가고 있는 에어 컨디셔너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이는 장소의 쾌적함이나 깔끔함과는 상관없이, 이 곳 이 자리에 앉을 때마다 갑갑함을 느끼게 된 지 오래였다. 먼지 쌓인 무력감, 닦여지지 않는 우울. 하지만 그건 하루키를 향한 감정은 아니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하면 그건.

“요전에 수첩을 정리했다.”

“응.”

“중요한 정보가 없나 살펴보던 와중에 옛날 메모를 찾았어.”

“응.”

“……하루키.”

“응?”

“같이 프랑스로 여행가기로 했던 거, 기억하나?”

“흐랑스.”

조금 흐린 발음으로 말하고, 아토 하루키는 오토와 루이를 바라본다. 그러나 동시에 루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토와 루이는 이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루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거긴 어디?”

여름 매미가 심하게 운다. 저러다 발성기관이 찢어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토와 루이는 아직까지 식지 못한 땀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게 보였는지 아토 하루키가 손을 뻗는다. 긴 손가락이 루이의 땀방울을 훔쳐냈다. 손끝을 바라보던 하루키가 가볍게 손가락을 문질렀다. 작게 키득거리면서.

“루이 군, 땀투성이.”

약 2개월 뒤, 아토 하루키는 병실에서 실종됐다.

02.

4월 8일 아침에 일어난 일은 다른 무엇보다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오토와 탐정 사무소 나고야 지점에서 보호중이던 시나노 에이지의 연락이 끊긴 것이 4월 4일. 뒤이어 그의 보호역을 맡고 있던 친우 아토 하루키마저 연락이 닿지 않게 된 지 사흘 째 되던 날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하루키에게 그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이 좋았을까. 아니, 그랬더라도 어차피 월요일 시점에는 들키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건에서 손을 뗀다.」 그렇게 판단한 것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키도 보통 때였다면 납득해주었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몸이 병약한 체질이다. 경찰이 개입해야할 사안이라는 말을 듣고 그래도 내가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며 영웅심리를 발휘할 타입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은 오토와 루이에게도 상정 외였다. 연락을 받지 않는 하루키. 연락은 받은 바 없고 행방도 알지 못하는 나고야 영업소의 직원들. 딱 한 번 걸려온 전화는 서에서 경위를 설명하고 수사를 요청하는 사이 휩쓸려가, 결국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불길하고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덕분에 잠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애초에 나고야 지점의 영업소장이 도쿄까지 출장을 온 것은 당연히 그에 따라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시나노 에이지의 수색 요청이 더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토 하루키까지 실종됐다. 오토와 루이는 공연히 밤에 잠을 깨는 횟수가 늘었다. 마음이 편치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루키한테는 아직도 연락이 안 닿냐?”

“네. 어디서 뭘 하는 건지.”

“이것 참, 둘 다 무사해야 할 텐데….”

밤새도록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침을 준비하는 어머니도 연신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사람은 밥을 먹고 출근하여 해야 할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라, 오토와 루이는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 나갈 채비를 했다.

오토와 가의 현관 신발장 위에는 작은 꽃 화분이 있다. 이 화분을 선물한 장본인이자 식물을 좋아하는 아토 하루키의 말에 따르면, 타임Thyme이라 불리는 허브의 한 종류라고 한다. 차키를 깜박한 아버지가 잠시 방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 화분을 바라보던 오토와 루이의 시야 속에 한껏 부풀어 오른 꽃망울 하나가 담겼다.

그 순간 꽃잎이 피어난다.

빗방울이 물웅덩이에 잠기는 듯한,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듯한,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비눗방울이 터지는 듯한 가벼운 소리와 함께.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확인한다.

오전 9시 2분이었다.

03.

“일단 나고야 쪽으로 연락은 넣어뒀습니다.”

탐정이라는 직업은 이래저래 경찰과 연이 많은 편이다. 그게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표자와 영업소장의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바쁜 와중에도 어찌어찌 얼굴을 내민 나츠히코 경부보는 두 사람에게 호의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재빠른 수색이나 결과를 보장할 순 없다며 다음 운을 띄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은 의혹에 불과하니까요. 사원분의 발신기 추적경로가 끊어졌다는 이야기도, 지금 당장 경찰이 움직일 강력한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일개 탐정과 공권력은 다르니까요.”

“알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이 진전되면 나고야 쪽에서도 대표님에게로….”

갑자기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어쩌면 아토 하루키가 보낸 연락인지도 몰랐다. 오토와 루이는 경부보와 아버지에게 무언의 허락을 구한 뒤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기대와 달리 발신인은 하루키가 아니었다. 그보다 이 메일 주소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의뢰인인가?

메시지를 확인한다.

단정한 화면에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아토 하루키가 사망했습니다.】

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 악질적 스팸이라고 판단할 사이도 없이, 다음 순간 오토와 루이는 익숙한 신발장 앞에 서있었다. 현기증은 없다. 두통도 없다. 다만 심한 혼란이 일었다. 귓가에는 잔향殘響이 남아있다. 시선을 옮기면 타임 꽃 화분의 꽃잎이 은은하게 빛났다.

“…이야기도, 당장 경찰이 움직일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부탁드립니다.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오토와 루이의 행동에 아버지와 나츠히코 경부보가 눈을 깜박인다. 실례를 무릅쓰고 몇 번인가 더 부탁을 거듭하자, 잠시 헛기침을 한 그가 입을 열었다. 나고야 쪽 제 지인에게 재차 연락해보겠습니다. 서로 잘 아는 동기고 나름의 자리에 있는 만큼 무언가 진전이 있을 겁니다. 오토와 루이는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똑똑히 들었다.

“별난 일이구나. 네가 누군가에 그렇게까지 부탁하는 걸 보다니.”

경찰서를 떠난 뒤, 아버지가 정말 의외라는 투로 말을 건넸다. 오토와 루이는 자신이 겪은 기이한 일에 대해 설명하려다 우선 핸드폰을 확인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전 나츠히코 경부보와 이야기를 나누다 메시지를 확인했던 시각으로부터 사십 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뒤였다. 기이한 메시지는 도착한 흔적조차 없다. 루이가 살짝 안도한 순간이었다.

【아토 하루키가 사망했습니다.】

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

04.

오토와 루이는 익숙한 신발장 앞에 서있었다. 귓가에 잔향이 맴돈다. 그는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가면서 확인한 메시지 보관함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대로변을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신칸센 역으로 향해달라고 부탁하고 핸드폰의 귀퉁이를 매만지고 있노라면 전화가 걸려왔다. 오토와 겐지. 아버지다.

《여보세요, 루이? 너 어디 있는 거냐?》

“저 바로 나고야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어엉?》

“급합니다. 도착하는 대로 연락하겠습니다.”

《…알겠다. 연락해라.》

아버지는 무언가를 감지한 것인지, 아니면 한 사람의 성인인 아들을 일단 믿어보기로 한 것인지 길게 캐묻지 않았다. 오토와 루이는 정중하게 전화를 끊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출근시간대를 지난 덕에 도로는 크게 막히지 않았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려, 가장 빠른 나고야 행 티켓을 구매한다. 열차가 약 2시간 뒤에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루이는 일단 매표소 앞을 벗어나 대합실의 빈자리에 앉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합실 특유의 소음과 이야기소리가 한데 뒤섞여 주변을 맴돌았다.

그동안 아토 하루키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통화권 외에 있다는 알림음만 반복해서 재생될 뿐 연락은 닿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의문의 메시지는 대체 누가 보내고 있는 것일까. 하루키를 관찰하는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보내는 것인가? 그렇다고 가정하더라도 시간과 얽힌 이 기묘한 사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시간이라는 것은 비디오 플레이어처럼 매뉴얼만 읽으면 누구나 되감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토와 루이는 가능한 모든 가정을 펼쳐보려 했지만, 상황이 워낙 비현실적이었던 탓에 잘 되지 않았다.

상황 정리에 잠겨있다 보니 열차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오토와 루이는 플랫폼에 섰다.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도착한 열차의 문이 열리고 표를 예약한 사람들이 열차에 올라타 각자의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오토와 루이 또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티켓을 예약한 탓에 자리의 방향은 열차 진행 방향과 반대로 뒤집혀있었고 창가 자리에는 나이 든 노인이 앉아 졸고 있었지만 크게 거리낄만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들고 있는 짐이 많지도 않다. 루이는 아버지에게 지금 나고야로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고

【아토 하루키가 사망했습니다.】

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

오토와 루이는 익숙한 신발장 앞에 서있었다.

05.

몇 번인가의 시도와 측정이 지나갔다, 오토와 루이는 세 가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아토 하루키는 생명의 위기를 겪고 있다.』

둘째, 『누군가 그걸 관측하며 자신에게 전달하고 있다.』

셋째, 『오토와 루이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메시지가 날아오는 조건은 특정할 수 없었다. 나츠히코 경부보를 만나든 만나지 않든, 그에게 간곡히 부탁하든 부탁하지 않든, 택시를 타고 신칸센으로 향하든 바로 나고야로 가달라고 하든 행동의 결과에 큰 차이는 없었다는 뜻이다. 또한 어떤 선택에서 하루키가 3시간을 버텼다고 하여, 다음에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메시지가 날아오는 시간이 동일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행동이 되감기는 일이 많아질수록 메시지가 날아오는데 걸리는 평균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은 다행이었지만….

【아토 하루키가 사망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루키에게 보내는 발신 메시지는 점점 제대로 된 형태를 잃어간다. 이제는 의문의 암호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착신인의 반응은 없다. 메시지가 아예 닿지도 않는 거겠지. 오토와 루이는 무익한 집착은 그만두고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

“나츠히코 경부보도 말씀드렸으리라 생각하지만 수색이라는 게 그렇게 몇 시간 만에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나고야의 경부보는 난감하다는 기색이다. 오토와 루이는 그 앞에서 지고천 연구소 중부지소의 수색을 개시해달라고 부탁한 참이었다. 시곗바늘이 무정하게도 흘러가 오후 4시를 가리켰다.

“애초에 정말로 그곳에 있다는 확증도 없으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저희 사원 둘은 분명히 그곳에 있습니다. 발신기의 경로도….”

“그런 식으로 말씀하셔도 곤란합니다. 이 사람이 여기서 사라진 것 같으니 여기를 수색해 달라, 다음엔 저기를 해 달라. 그런 요청에 일일이 응했다간 경찰관은 전부 업무과중으로 쓰러져버릴 겁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대책을 강구해볼 테니 그만 돌아가시죠. 경부보는 그렇게 말하며 완강히 오토와 루이를 돌려보낸다. 이 이상 달라붙어봐야 일이 해결되기는커녕 반감을 살 뿐이라는 짐작은 쉬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인 뒤 밖으로 나온다. 애초에 붐비는 장소가 아닌 탓에 경찰서 내부는 한적했고 걸어가는 구둣발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날, 아토 하루키가 죽었다는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4월 9일 자정이 가까워지던 밤 11시 51분, 나고야 G현 소재의 국립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구급차로 실려 온 아토 하루키라는 인물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는데 이 사람을 알고 있냐는 내용이었다. 오토와 루이는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일련의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이제야 끝난 것일까. 모든 것은 막을 내린 것일까.

그러나 병원에서 만난 하루키는.

“안녕, 당신은 누구?”

이미 이전의 하루키가 아니었다.

06.

가을의 색채가 더해진 숲에서는 마른 낙엽의 냄새가 난다. 다만 샛길에 가까운 길을 헤쳐 나갈수록 코끝에 은은한 탄내가 감겨왔다. 반년이 지났다고는 해도 건물의 근간까지 전부 불타고 무너져버릴 정도의 화재가 일어나, 이제껏 제대로 된 뒤처리가 진행되지 않은 자리다. 오토와 루이는 제 앞에 늘어진 나뭇가지를 손으로 걷어내며 아토 하루키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 약간의 흰 장미와 함께 폐허에 앉아있는 이의 표정은 제법 평온했다.

“루이도 같이 가줄 거지?”

루이는 통감한다. 관객이 앉은 자리에서는 무대의 뒤편으로 나가버린 배우를 볼 수 없듯이, 자신이 알고 있던 아토 하루키는 어딘가로 퇴장하고 말았다고. 저 연보랏빛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보기만 해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아토 하루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면, 오토와 루이는 그를 함부로 두고 떠날 수 없다.

“자, 다들. 따라오렴. 이게 지고천에서 보내는 사랑이아.”

오토와 루이는 사로잡혔다. 튕겨나간 핸드폰의 화면이 밝아져, 깊은 어둠 속에서 액정이 번뜩였다. 아무도 건드리지도 않은 화면에 문자가 떠오른다. 아토 하루키의 모습을 한 것은 그걸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루이는 저도 모르게 그 내용을 읽었다.

【CODE : E / 아토 하루키를 회수합니다.】

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

오토와 루이는 익숙한 신발장 앞에 서있었다. 타임 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자약했다. 손끝으로 건드리면 작은 꽃망울들이 살짝 흔들리며 진한 향기가 전해진다. 타임Thyme 꽃이니까 시간Time을 뛰어넘는 건가. 루이가 간단한 추론을 하는 동안 차키를 찾아낸 오토와 겐지가 현관으로 돌아왔다.

그 날, 오토와 루이는 나츠히코 경부보를 만난 뒤 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장 나고야로 내려왔다. 거기서 G현 스야마 시로 이동해, 도쿄에서 나츠히코의 연락을 받은 경부보를 만나 수색을 부탁하는 대화를 나눴다. 변함없이 지지부진한 대화를 나누고 경찰서를 나오는 과정에서 예의 그 메시지가 2번 정도 도착했다. 당연히 흐름은 중도에 뚝 끊어졌지만, 오토와 루이는 자신이 정한 루트를 벗어나지 않았다. 세 번째로 같은 루틴을 반복하고 간신히 경찰서를 나왔을 때에는 이미 오후 6시였다.

친우라는 존재는 그리 쉽사리 포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중학교 시절, 그의 의지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아토 하루키가 대상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 그가 지금 지고천 연구소에서 생명의 위기에 처해있음은 명백하다. 하지만 오토와 루이는 실질적으로 그를 도울 수 없었다. 지금 이런 행동들이 하루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완전히 무의미한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경찰에 신고한 뒤 도쿄에서 다른 일을 하는 편이 여러모로 효율적이고 편할 것이다. 하지만 루이는 자신이 생각해 낸 모든 방안을 빠짐없이 수행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몇 걸음 걸어 나갔을 무렵 또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토 하루키가 사망했습니다.】

4월 8일의 바람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오토와 루이는 아토 하루키가 자신이 알던 모습 그대로 이 바람을 쐴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화분 앞을 떠났다.

저녁 11시 51분, 나고야 G현 소재의 국립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토와 루이는 곧바로 물과 가디건 등을 챙긴 뒤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의 아토 하루키는 다행스럽게도 자신을 못 알아보진 않았지만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들어보면 자신과 함께 있던 이들 중 몇몇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괜찮다. 하루키. 너는 분명 최선을 다했을 테지. 스스로 내린 결정과 선택을 후회하지 마라.”

친우는 흐릿하게 웃는다. 오토와 루이는 물병을 건넸지만, 하루키는 그 물을 받아들기만 할 뿐 마시지는 않았다.

이윽고 반년의 시간이 지났다. 하루키는 지고천 연구소에서 죽은 쿠라치 테루미의 성묘를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또 다른 사망자인 야나기 니나의 묘는 유족이 알려주길 거부하여 알 수 없고, 다른 생존자 가족인 쿠마자키 부녀와는 연락이 거의 닿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날 보면 그곳의 기억이 떠올라서 괴로운 거겠지. 어쩔 수 없어.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조금 쓸쓸해보였다.

그래, 다녀와라. 오토와 루이는 이 또한 그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루키는 또 흐릿하게 웃고는, 다녀오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CODE : D / 아토 하루키를 회수합니다.】

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

오토와 루이는 익숙한 신발장 앞에 서있었다.

07.

한 가지 가설에 도달했다.

『4월 8일 하루 동안 아토 하루키가 죽음을 맞이하면 자신은 같은 날 오전 9시 2분으로 돌아간다. 4월 8일이 지났더라도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시간은 다시 4월 8일 오전 9시 2분으로 돌아간다.』

의도는 알 수 없었다. 조건이 무엇인지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가설을 확정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이 가설에 의하면 오토와 루이의 시간이 되감긴다는 것은 아토 하루키의 시간 또한 되감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죽음」이든 「회수」든. 그걸 기뻐하기에는 다소 가혹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비관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기현상이다. 오토와 루이는 자신이 지고천 연구소 중부지소로 찾아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고 직접 실행도 해보았다. 나고야 경찰서의 경부보를 만나고, 업체에서 렌터카를 빌려 지고천 연구소 근처로 도착했을 때는 저녁 8시였다. 진득한 석양 속에서 셔터를 단단하게 내린 건물은 흡사 농성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차량을 몰아서 그대로 입구를 부수면 들어갈 수 있을까. 오토와는 그런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유리문도 아니고 셔터가 내려온 문이다. 구급차를 불러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저지르는 무모한 짓에도 정도라는 게 있었다.

게다가 만에 하나 자신이 죽을 경우 아토 하루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끊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루이는 렌터카에 몸을 실은 채 굳게 닫힌 셔터문과 곧게 서있는 건물을 응시했다. 문제점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건물의 창문은 전부 닫혀있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불투명한 시트지가 발린 채로.

불길한 기분이 몸을 스멀스멀 타고 올라온다. 그 오한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저녁 11시가 넘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무엇을 입에 댈 기분도 들지 않았다. 이윽고 차량 내부의 전자시계가 11시 29분을 가르킬 무렵, 건물에서 아무런 전조 없이 굉음이 터지더니 내부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셔터문은 여전히 굳게 잠긴 채였다. 하루키는 아직 저 안에 갇혀있을까? 아니면 이미 구조된 이후일까? 루이는 초조한 기분으로 지고천 연구소 주변을 둘러보다,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히 핸들을 잡았다.

아토 하루키는 자신의 병실에 있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이의 병실에 앉아 그 사람이 깊이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조금 창백한 얼굴을 한 여성이다. 오토와 루이는 그 사람이 야나기 니나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이전에는 그저 고인이었던 사람.

들은 바에 의하면, 이번에 살아남은 것은 하루키를 제외하면 아이바 이부키와 야나기 니나 두 사람이 전부라고 한다. 이런 말은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생존인원수는 바로 이전의 경우와 동일했다. 다만 생존자를 대하는 하루키의 태도가 사뭇 달랐다.

“그 사람을 지켜주고 싶어.”

친우는 다달이 머리카락을 금빛으로 물들이던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오히려 단숨에 갈색으로 물들이고는 이 편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느냐며 웃었다. 그동안 옷차림새는 마치 그림자를 표방하듯이 짙어져갔다. 그 일은 네 책임이 아니다, 왜 모든 걸 네가 감당하려 하느냐…하는 말도 소용없었다.

“니나에게는 내가 필요해.”

더 이상 어떻게도 되돌릴 수 없는 눈빛이었다. 오토와 루이는 물었다.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아토 하루키는 흐릿하게 웃고는.

“비밀.”

그렇게만 답했다.

【CODE : C / 아토 하루키를 회수합니다.】

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또 지난한 시간이 흘러가고 저녁 11시 51분에 전화가 걸려왔다. 뜻밖이었던 것은 생존자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두 명을 제외하면 연구소에서 만난 이가 대부분 생존했다고 했다. 루이는 이번 시점에서 처음으로 살아있는 쿠라치 테루미를 마주했다. 한평생 신념을 가지고 올곧게 살아온 자의 얼굴이었다.

시나노 에이지는 (이때까지 그랬듯이) 탈출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오토와 루이는 애도의 뜻을 표하고는 곧바로 도쿄 본사에 그의 죽음을 전할 준비를 했다.

하루키는 최선을 다했다. 이것도 그가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루이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하루키는 조금씩 이상해져갔다. 물론 일생일대의 사건을 겪으면 좋든 나쁘든 사람은 변화를 겪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건으로부터 채 반 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그 장소에서 처음으로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던가, 그 사람과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노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아토 하루키 답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고, 이전처럼 그 사람의 연인을 대신하겠노라 선언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긴 했지만….

“니나, 임신했거든. 그래서 출산 뒤에 식을 올리려고 해.”

메시지가 도착했을 때, 오토와 루이는 차라리 안심하고 말았다.

【CODE : B / 아토 하루키를 회수합니다.】

08.

자신이 아토 하루키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의미한 일은 없는 것일까. 오토와 루이는 나고야로 향하는 신칸센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일순이었다고는 하나 아토 하루키가 회수되었다는 메시지를 보고 안도한 것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만약에 자신에게 힘이 있다면, 아주 약간이라도 능력이 있다면 아토 하루키를 도울 수 있을 텐데.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만 더 그를 믿어보자는 마음도 들었다. 사망을 안내하는 메시지는 이제 거의 날아오지 않고 지난 시점의 코드는 B였다. 일련의 흐름이 갑자기 어그러지지만 않는다면 이번에 아토 하루키가 도달하게 될 곳은 (아마도) A일 것이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A는 가장 높은 등급을 의미한다.

다시, 4월 9일 아침이 되었다. 오토와 루이는 아토 하루키의 병실 바깥에서 아버지와 오랫동안 통화를 나눴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뒤 병실로 돌아가자, 침대에 반쯤 기대 앉아있던 하루키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아버님, 많이 걱정하셔?”

“오후 신칸센으로 바로 내려오겠다고 하시는군.”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네가 얼마나 걱정을 끼쳤는지 알고 하는 소린가?”

아토 하루키는 겸연쩍은 표정만 짓는다. 오토와 루이는 어두워진 액정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몸은 어때?”

“당장 불편한 곳은 없어.”

“뭔가 마음에 남은 부담은?”

“…….”

얇은 침묵이 이어진다. 아토 하루키가 묵는 병실은 굽이진 복도 제일 안쪽에 있는지라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찰 조사도 이제 막 병원에 들어온 사람을 붙잡고 이것저것 캐물을 정도로 급박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루키가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았다.

“이소이 레이지라는 사람이 있었어.”

과거형이다. 오토와 루이는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좀 경계도 했지만, 나중에 가선 우리를 정말 많이 도와준 사람이야. 시나노를 구하는 데도 정말 큰 도움을 줬어.”

그 말대로, 시나노 에이지는 생존했다. 지금은 옆 병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루이는 하루키가 시나노를 비롯해 많은 동료를 잃었을 때와 비슷한 깊이의 슬픔으로 이소이 레이지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았다. 루이에게는 그저 이야기로 듣는 한 사람일 뿐이지만 아토 하루키에게는 바로 곁에서 숨 쉬었던 사람이니 당연하겠지. 생명의 위협에서 몇 번이고 구해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 사람은?”

“탈출하지 못했어. 나를 대신해서,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버리는 바람에….”

안타까운 일이군. 그런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토와 루이는 하루키의 곁에서 일련의 사건을 같이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루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굳어진 입가에서 숨길 수 없는 괴로움이 엿보였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방심했는지도 몰라.”

바람이 분다. 한창 피어난 벚꽃이 와르르 쏟아지며 하늘을 메웠다.

“만약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해.”

“하루키, 지나간 일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라.”

“냉정하긴. …그치만, 그렇지. 나는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왔으니까. 계속 고민할 수는 없는 일이지.”

하루키가 천천히 웃는다. 루이는 유리창으로 반사되어 보이는 그 웃음이 흐리다고 생각했다.

“이게 나의 평온인걸.”

반년 뒤 메시지가 도착했다.

루이는 모든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았다.

【CODE : A / 아토 하루키를 회수합니다.】

꽃이 피는 소리가 들린다.

09.

대체 하루키는 앞으로 얼마나 더

10.

비가 내리고 있다. 아토 하루키는 자신의 책상에서 팔을 괸 채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오토와 루이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가, 하루키의 잠든 얼굴을 보았다. 편히 쉬는 도중에 미안하긴 하지만 이제 슬슬 깨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루키, 몇 시까지 자고 있을 거냐.”

“헉?”

적갈색 눈동자가 깜박인다. 어, 시나노는? 두서없이 나오는 얼빠진 물음에 루이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이제부터 도쿄로 돌아가는 시나노의 송별회다. 다들 벌써 가게에 모여 있어.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 그런 말을 들은 하루키의 얼굴이 어리둥절해졌다.

“아…. 미안. 가자, 루이.”

하루키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긴다. 딱히 더 둘러보지 않아도 괜찮겠나? 응, 괜찮아. 그보다 얼른 가야지. 루이는 그 이상 묻지 않고 사무실의 불을 껐다. 찰칵이는 소리와 함께 사무소가 어둠에 물든다. 어디선가 빗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잠그고, 복도를 걷는다. 복도는 조명으로 환했지만 이미 늦은 시간인 탓에 인기척은 거의 없었다. 오토와 루이는 복도 끝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렸다. 이곳의 엘리베이터는 시설이 조금 노화되어 올라오는 속도가 느리다.

“하루키.”

“왜 그래?”

“네가 만약 누군가를 구하려 기나긴 시간을 반복했다고 하자.”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이건 네가 바라는 최선의 결말인가?”

엘리베이터가 올라온다. 아토 하루키가 조금 고개를 기울이다 웃었다.

“최선이 아니면 안 되는 거야?”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대로 시나노의 송별회 장소로 향하면 그만이었다. 그곳에서 루이와 하루키는 적잖은 양의 술을 마시고 다음날 좀 고생을 하게 되겠지만 사회 경험이란 게 있으니 숙취음료라도 미리 마시고 가면 될 일이다. 지고천 연구소의 사건도 적당히 (정말로, 적당히) 마무리 되었으니 하루키는 이 이상 마음 앓이를 하지 않아도 좋을 테지. 물론 루이가 의미 불명의 기현상을 겪을 일도 없다. 평온한 일상에 그런 것은 필요 없다. 앞으로는 그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것처럼, 고요한 나날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하루키는 여전히 이토록 흐리게 웃을 테고.

오토와 루이의 뒤편에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거기에는 오토와 가의 신발장과, 그 위에 놓인 타임 꽃 화분이 있었다. 뜻밖의 풍경에 아토 하루키가 당황한다. 오토와 루이는 엘리베이터를 등 진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하루키. 이대로 끝나선 안 돼.”

꽃이 핀다.

비가 내린다. 아토 하루키는 자신의 책상에서 팔을 괸 채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오토와 루이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가, 하루키의 잠든 얼굴을 본다. 편히 쉬는 도중에 미안하긴 하지만 이제 슬슬 깨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루키, 몇 시까지 자고 있을 거냐.”

“어, 헉?”

적갈색 눈동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두서없는 질문이 반복된다. 오토와 루이는 그에 답하면서, 이번에는 조금 강경하게 나가야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잊은 물건이나 업무는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와도 좋아. 별 생각 없이 뒤를 따라오려다 그 말을 들은 하루키가 사무실을 살펴본다. 루이는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반쯤 열린 창문 앞에서 하루키의 걸음이 멈춘다. 너머에서는 비 내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천천히 그 뒤로 다가간다.

“루이. 이건 악몽의 시작이 아니라, 평온한 꿈의 종말이야.”

“…그런가, 그렇군.”

열린 창문 너머는 어둡고 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의 출입을 고려한 위치도 아니었다. 그대로 나간다면 맥없이 추락하여 병원신세를 지게 될 게 뻔했다. 그런데도 루이는 하루키를 말리지 않았다.

“가야 해. 아니, 「가고 싶어」.”

그것은 일찍이 중학생 시절의 아토 하루키에게서 보았던 「의지」와 같다. 오토와 루이는 이제야 자신이 찾아 헤매던 단서를 발견한 기분이 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을 그만 깨끗하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아토 하루키에게는 의지가 있다. 누군가를 구하고자 하며,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는 선한 의지가 있다. 그 의지는 부서져선 안 된다. 줄곧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관철해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하게 아토 하루키를 구원할 것이므로. 그것이 아토 하루키와 오토와 루이의 만남을 비롯한 모든 인연의 시작점이므로.

계속해서 회수될 만도 하다고, 오토와 루이는 생각한다. 이걸 아는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료를 잃어버려 마음이 부서지거나 남은 동료를 지키려는 마음에 이제까지의 자신을 버리는 아토 하루키는 온전한 그라고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지금의 하루키는 반드시 모두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분명히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루키가 창문 밖으로 손을 뻗었다.

오토와 루이는 눈을 뜬다. 렌터카의 시동을 끈 채로 잠시 잠들었던 탓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내부의 공기가 조금 탁했다. 슬슬 이걸로 끝인지도 모르겠군. 루이는 벗어두었던 안경을 다시 쓰고는 환기 장치를 켰다. 바람소리와 함께 차 내부의 공기가 순환하기 시작했다.

11시 51분에 전화가 걸려왔다. 오토와 루이는 익숙한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 병실에 입원중인 아토 하루키를 만났다. 거기에는 눈에 익은 면면들이 있었으나, 결국 이소이 레이지의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만약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해.”

“하루키, 지나간 일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어, 루이. 그 경험을 포함한 모든 것이 나인걸. 지금 여기 있는 내가 겪은 일인걸.”

“…….”

“그러니까 슬퍼하지 않을 순 없어. 탄식하지 않을 순 없어.”

하지만 그걸 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겠지.

아토 하루키가 무언가를 견디려는 듯이 웃는다. 오토와 루이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몇 주가 지났다. 아토 하루키는 이소이 레이지와 관련된 인물이 이제야 자신을 만나러 온다며 유급휴가를 신청했다. 그 얼굴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다. 루이는 간결한 휴가신청서를 바라보다 물었다.

“돌아오면, 얘기 해줄 겁니까?”

“물론입니다, 소장님. 그 사람을 만나면 이것저것 정리될 거예요.”

결재란에 사인이 난다. 아토 하루키는 감사 인사를 남겼다.

하루키가 자리를 비운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오토와 루이는 이걸로 여섯 번 정도 반복되는 10월의 하늘 아래 핸드폰을 보았다. 소장님,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계속 핸드폰을 만지시네요. 코테츠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온다. 카치야가 있었으면 또 한바탕 주의를 들었을 것이다. 루이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두 시간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CODE : S / 아토 하루키가 신의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꽃 피는 소리가.

11.

오토와 루이가 눈을 떴을 때에는 공기가 탁한 차 안이었다. 건조한 공기 탓에 목이 마르다. 루이는 천천히 차량 글러브박스에서 작은 페트병을 꺼낸 다음 목을 축였다. 이때까지 이 시점으로 돌아온 적은 없다. 그렇다면 아토 하루키가 겪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의미일까. 그 미소를, 이번에야말로 선명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일까.

11시 51분에 전화가 걸려왔다. 오토와 루이는 핸들을 움직여 국립병원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병원 복도를 걷는 동안, 왠지 모를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 들었다.

“으앗, 루이! 어떻게 온 거야?”

“네가 여기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데. 너 도쿄 출장 중이었잖아?”

오토와 루이는 대답하지 않고 물이 담긴 500ml 페트병을 건넸다. 하루키가 얼떨떨해하면서도 물병을 받아들어, 뚜껑을 따고 물을 마셨다.

“몸은 괜찮나?”

“……건강해. 먼지랑 연기를 좀 마시고… 좀, 마지막에 살짝 발을 삐끗하긴 했지만.”

“흐음. 시나노는 옆 병실이던가?”

“당연하다는 듯이 크로스 체크하려고 들지 마!”

병원은 절대안정이 기본이므로 아무리 1인실이라 해도 고성이 새어나갈 순 없다. 소리죽여 항의하는 친우 앞에서 루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시나노 병실은 또 어떻게 안 거냐고.”

“난 탐정사무소의 영업소장이다.”

“영업소장이 너무 유능하지 않아?”

하루키가 한숨을 쉰다. 숨기는 게 있다기보다는 처한 상황에 비해 과분한 걱정을 받게 되어 머쓱해진 이가 낼 법한 음색이었다.

“지고천 연구소에서는 꽤 큰일이 있었던 것 같더군.”

“응. 그건 이야기하자면 긴데… 들을래?”

“네가 한숨 자고 일어나면 듣지.”

“혹시 여기서 자고 갈 생각이야?”

“잘 아는군. 간병인용 침대 빌린다.”

“출장은 대체 어디다 팔아먹고 온 거야?!”

그렇게 티격태격하고 있노라면 입원실의 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밤중의 혈압체크를 위해 들린 간호사일까.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돌린 루이는 그곳에 서있는 2명을 발견했다. 한 사람은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시나노 에이지,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하루키 씨, 몸은 어떠신……. 소장님?!”

“시나노. 너무 놀라는 거 아냐?”

“아는 사람인가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저와 아토 씨의 상사예요!”

“오토와 루이입니다. 오토와 탐정 사무소 나고야 지점의 영업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어이쿠, 실례했습니다. 이소이 레이지입니다. 일단은 프리터. 이름은 아름답고麗 자애로운慈 레이지麗慈라고 씁니다.”

너 정말 그 멘트 좋아하는구나. 등 뒤에서 아토 하루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갈색 머리카락을 한 청년, 이소이 레이지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 옆에서 시나노가 밝은 웃음소리를 낸다. 루이는 잠깐 그 모습을 바라보다 레이지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저희 쪽 아토 하루키와 시나노 에이지 사원이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은 모양입니다. 상사로서 감사를 표합니다.”

“어…… 아뇨. 감사받을 만한 일은 별로.”

“별로라뇨! 레이지 씨가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일읇.”

“네, 얘기가 길어지니까 시나노 씨는 컷트. 두 분은 할 얘기가 많으신 듯 하니 저흰 잠시 물러나겠슴다.”

능숙하게 시나노의 입을 막은 레이지가 병실 문을 닫고 나간다. 떠들썩하던 병실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정말이지, 대체 뭐 하러 온 거야.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하루키의 목소리에 약간의 안도감이 서려있음은 탐정이 아니어도 알아챌 수 있다. 서로 신뢰를 쌓았군. 루이는 그렇게 판단했으나 굳이 소리 내서 말하진 않았다.

“그래도 루이의 얼굴을 보니까 엄청 안심이 되네. 이제야 간신히 돌아왔다는 느낌?”

하루키가 웃는다. 오토와 루이는 무언가 눈부신 것을 보는 감각으로 그 모습을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나도 네 얼굴을 보게 돼서 안심했다.”

2015년 4월 9일 새벽 01시 28분의 일이었다.

12.

반년이 지났다. 아토 하루키는 의동생 이소이 레이지, 지금은 도쿄로 돌아간 시나노 에이지와 함께 놀이공원으로 놀러갈 약속이 잡혔다며 휴가계를 제출하러 왔다. 그 얼굴은 기대감과 분노를 절반씩 섞어 중후한 그라데이션 기법으로 발라낸 것 마냥 비장했다.

“얼굴이 굉장한데요.”

“카페에서 한 번 걷어찰 뻔했던 사람이라서, 놀이공원에서 실수로 밀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무슨 일 있으면 변호사를 선임하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릴게요.”

결재란에 사인이 들어간다. 오토와 루이는 그 서류를 그대로 하루키에게 건네주었다. 영업소장의 자리 앞의 노란 꽃 화분은 오늘도 건강하게 자라나는 중이었다.

하루키가 자리를 비운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오토와 루이는 이걸로 일곱 번 정도 반복되는 10월의 하늘 아래 핸드폰을 보았다. 소장님,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계속 핸드폰을 만지시네요. 코테츠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온다. 카치야가 그 목소리를 듣곤 말없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루이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코테츠가 카치야에게 연행된다. 루이는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핸드폰의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두 시간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하루키였다.

【돌아가면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한 보고예정.】

이외의 내용은 없다. 오토와 루이는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했다.

【확인했다. 즐겁게 보내고 조심히 귀가해라.】

발신 버튼을 누르면 화면 속에서 사각으로 접힌 편지봉투가 날아간다. 새삼스럽지만 대상과 곧바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꽤나 기껍게 여겨져, 오토와 루이는 미소지었다.

그건 오늘 제 친우가 지었던 것과 같은, 후련한 웃음이었다.


〔후기〕

안녕하세요. 미키엘Mikyel입니다.

『타임 꽃 피는 소리가~When your Time bloom~』

약칭 타임 꽃 회지를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지의 아이디어 자체는 상당히 예전에 떠올린 것인데, 아무래도 내용이 길어지겠다 싶어서 언젠가 회지 형태로 낼 수 있다면 좋겠네~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이렇게 실제로 낼 수 있게 되니 감개무량하네요. 아토 하루키와 오토와 루이의 관계에 집중한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새삼스럽게 엔딩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다시 플레이해보기도 하면서 여러모로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글에서는 크게 티가 나지 않았지만 오토와 루이는 작게는 n시간 ~ 매 엔딩마다 거의 6개월의 타임 루프를 겪은 셈인데 용케 멘탈이 나가지 않았네요. 역시 하루키를 위해서라면 버틸 수 있었던 거지? (* 개인망상입니다)

제목은 단순한 말장난입니다. 시간이니까 타임Time 타임Thyme. 재미있나요? 이 제목으로 레디메이드 표지를 찾았는데 타임 꽃이 들어간 표지는 찾기가 어려워서 여러모로 고민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타임 꽃인데 벚꽃이나 안개꽃을 넣자니 너무 뜬금없어서…. 사실 즉흥적으로 지은 제목인데 제 나름대로는 괜찮지 않나 생각중입니다. 대신에 부제를 정하느라 하루종일 물구나무 서있었네요. 촌스럽지만 않다면 다행이라는 마음입니다.

타임 꽃이 타임 리프의 요소가 된 것은 제목이 정해진 다음의 일입니다. 이전까지는 그냥 하루키가 죽었다는 메시지가 오면 강제로 타임 리프 하는 오토와 루이의 이야기였네요. 제목을 정한 덕분에 내용이 조금이나마 화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날조에 가까운 설정이긴 합니다만 타임루프 소재는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우정을 끼얹는다면 더 맛있지요. 친우조 관계성 짱. 다만 역동적인 내용은 아니어서 좀 지루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글의 완급 조절이 어렵네요. 다음에는 좀 더 재밌고 멋진 글을 쓸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기회가 될 수 있다면 세포신곡 회지를 또 내보고 싶어요. 주객전도 발언이지만 레디메이드 표지 구경하는 게 재밌어서… 물론 마음에 드는 표지를 전부 사면 전 회지를 일 년에 백 권 내는 사람이 되겠지요(joke).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어딘가에서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Thanks to : 표지 분양해주신 젬즈비(@Gems_Bee) 님.

언제나 신세를 지고 있는 많은 분들.

이 책을 구매해주신 여러분.

서식지 :

https://butterflybox.postype.com/

https://withglyph.com/butterflybox


01.

아토 하루키는 한숨을 내쉰다. 친우 오토와 루이가 의문의 신기루에 삼켜져 행방불명이라는 소식을 들은 지 어언 두 시간째가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장님, 괜찮으시려나요.”

“루이는 신중하고 냉정하니까 금방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거야.”

“저도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하루키 씨, 너무 긴장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진정하세요. 잠깐 마실 거라도 사올 테니까요.”

“…그래. 부탁할게.”

공교롭게도 산전수전 다 겪은 시나노 에이지와 이소이 레이지 두 사람과 함께 있다 보니 감정을 숨길 여력이 나지 않는다. 하루키는 두 사람이 이끄는 대로 얌전히 노점 벤치에 앉고는 그늘 아래에서 숨을 돌렸다. 노점 곁에는 곧장 꽃집이 있어, 여름 햇살을 피해 유리창 안으로 들어간 몇 가지의 화분이 보였다. 로즈마리, 크로커스, 그리고 저건… 타임 꽃인가.

언젠가 오토와 가에 선물했던 것과 같은 화분을 바라본다. 그대로 매미소리가 멀어졌다. 사람들의 발소리나 이야기 소리도 사그라들었다. 그저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피어있는 타임 꽃의 줄기와 잎사귀만이 이 세상을 이루는 근간처럼 확대되어 보였다. 아직 피어나지 못한 동그란 꽃망울이 문득 흔들리는가 싶더니.

꽃잎이 피었다.

물수제비를 뜨기 위해 던진 돌멩이가 튀어 오르는 듯한, 가게에서 산 탄산음료의 뚜껑이 경쾌하게 열리는 듯한, 음료 속에 들어있던 얼음이 문득 녹아내리며 유리잔과 부딪치면서 내는 듯한 가벼운 소리와 함께.

…….

30분 뒤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토와 루이가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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