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트위터 조각글 모음 07

!!세포신곡 본편DLC은자막간까지의 스포일러!!

#01 멘션_온_단어로_짧은_글_연성

[우리 집]

하라다 군. 힘들면 합창 연습에서 빠져도 된단다.

10월에 있을 합창대회를 대비해 9월부터는 맹연습에 들어가야 하는데, 하라다 미노루는 뜬금없이 생활지도실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전 학년이 참가하는 합창대회. 규율을 중시하는 학교 분위기 탓인지 어느 한 명이라도 빠지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선생님들로 가득한 곳인데.

다만 그는 왜요? 라고 묻지 않는다. 대답은 이미 뻔히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어머나 선생님 모르셨나요, 하라다 군의 아버지는 작년에 작고하셨어요, 네. 정말 다들 깜짝 놀라버렸죠… 그렇게나 점잖으시던 분이.) 그렇다고 답이 단번에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하라다 미노루는 잠시 눈을 굴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괜찮아요."

단순한 대답이 흘러나온다. 담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거든요."

거짓말은 단순할수록 통한다. 선생님은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가, 그가 얼굴에 두른 미소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 하교하는 아이들이 깔깔 웃는 소리가 들린다. 하라다 미노루는 그 소리가 굉장히 멀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래. 만약에 힘들면 선생님에게 말하렴.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남기고 학생 지도실을 나온다. 가벼운 걸음으로 반을 향해 돌아가던 미노루는 저 멀리 2학년 교실이 있는 층에서 들리는 합창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석양빛 물든 공기에 아이들의 음색이 번져나간다. 서툰 음정에 웃음이 섞인다. 웃지 말라고 했잖아! 아마도 반장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버럭 화를 내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금 노래가 시작됐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입술이 아주 약간 벌어지다 닫힌다.

노랫소리가 길게, 아주 길게 이어졌다.

[단풍]

가을이 오면 단풍이 든다. 당연한 일인데 하라다 미노루는 어쩐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미노루 군은 어떤 때 보면 참 어린아이 같아. 이소이 라이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라이, 난 이렇게나 세상이 선명한 색깔로 이루어졌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된 기분이야. 정확히는 당신을 알고부터, 당신과 함께하게 되고부터.

당신과 가족이 되고서부터.

호들갑이 너무 심하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라이는 미노루의 손을 잡는다. 임신 6개월 차에 가까워지는 몸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부풀어 올라, 누가 보아도 임산부인 게 표시 날 정도였다. 공원 벤치에 앉아 카디건을 입은 라이와 손을 마주 잡고 있던 미노루의 눈앞으로 문득 붉은 무언가가 떨어진다. 잽싸게 그것을 쥔 미노루는 천천히 손바닥을 펼쳤다.

"단풍이네."

"어머나, 운이 좋네 미노루 군. 떨어지는 낙엽을 잡으면 행운이 있다잖아."

"그런 말이 있었던가?"

"방금 지어낸 거지만."

뭐야, 조금 설렜는데. 두 사람은 키득키득 웃고는 손바닥만 한 단풍잎을 같이 바라보았다.

"책 사이에 끼워뒀다가 나중에 아이에게 보여줄까?"

"후후, 좋은 생각이야. 분명 아이도 기뻐할 거야."

"그치? 음~ 그나저나 이름은 어떤 게 좋을까. 이것저것 생각해봤는데 의외로 어렵네."

"정 어렵다면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는 건 어때?"

"아아, 그렇네. 하츠토리에게 물어볼까?"

미노루는 장난스럽게 웃는다. 라이는 개조님께 너무 무례하게만 굴지만 마, 라며 농담을 했다.

몇 년 뒤, 미노루는 스스로 그 단풍을 바스러뜨렸다.

[상흔]

기억에 남는 상처, 기억해야만 하는 상처는 아무리 옅은 것이라도 반드시 몸에 흔적이 남는다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이것은 인간에게 통용되는 이야기다. 감상보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동물의 몸에는 기억에 의한 상흔은 거의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흔이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사치스러운 기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일반적인 범위에서 이야기되는 흉터는 제외한다) 이 지점에서 관념을 뒤집어보자. 기억을 상흔이라는 형태로 남길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데이터의 인지와 기억, 동시에 리딩이 가능한 존재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신에게도 상흔이 남을까?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다대한 흥미를 느낀다. 신에게 물질적인 육체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그에게 '상흔'과 유사한 개념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존재하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을 창조한 신이 기억할 수밖에 없는 어떤 사건을 일으킨다고 가정할 경우 그 상흔은 과연 어떠한 형태로 열매를 맺어, 우리 세계에 무슨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사건'을 일으킨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과장된 이야기지만, 신이 세상 만물을 예측할 수 없는 존재라면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는 우리가 신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신에게 상흔을 새기는 것으로 우리가 한 단계 더 나아간 인지로 나아갈 수 있다면

(이하의 내용은 얼룩져 읽을 수 없다)

[만년필]

알고 있습니까? 만년필의 영문 명칭은 Fountain Pen이라고 합니다. Fountain이란 우리 말로 번역하면 샘물, 분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이 펜을 샘물이나 분수와는 상관없는 만년필(萬年筆)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게 되었을까요. 그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제 마음에 드는 것은 펜에서 잉크가 샘물처럼 솟아올라, 만년을 쓸 수 있다 하여 만년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가설입니다. 어쩐지 로망이 있잖아요?

물론 실제로는 때가 되면 잉크를 채워 넣어주거나 세척을 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그것도 만년필을 쓰기 위한 필수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즐겁지요. 물론 다른 필기구에 비하면 월등히 비싼 가격을 자랑하긴 하지만, 애용하는 만년필이 있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니까요.

사실 제가 만년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동료 기자였던 H 군 덕분입니다. H 군에게는 아버지가 남기셨다고 하는 유품인 만년필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이지 아름답고 매혹적인 물건이었어요. 반짝이는 모래 같은 무늬가 일품이었죠. 당시 만년필에 대해서는 잘 모르던 저도 어라, 이거 상당히 비싼 거 아냐? 라고 생각했을 정도랍니다. 유감스러운 건 H 군도 만년필의 제조사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지는 바람에 출처를 영원히 물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지만요.

음, 네. H 군은 업무상의 일환으로 신흥종교의 취재를 하러 갔다가 그대로 거기에 발을 들이고 말았습니다. 그러고는 어느 날인가부터 소식이 뚝 끊어져 버리고 말았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니면 어디로 가버린 건지…. 참 싹싹하고 밝은 청년이었는데. 하지만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고 했으니 그런 마음의 어둠이 종교의 빛을 갈구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이렇게 만년필을 수집하게 된 계기도 따지고 보면 그 친구 덕분인데...

어두운 이야기를 했네요. 원래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네, 그러니까….

#02 트친그림_내_글로_쓰기

https://twitter.com/essqy/status/1442393110944780290

01 (@ snmt_gaby)

다행인 점이 있다면 레이지가 준비한 그릇이 꽤 단단한 소재였다는 점에 있다. 바닥에 부딪힌 그릇에서 작은 종을 내던진 듯한 소리가 난다. 엎어진 자세에서 몸을 추스르던 레이지는 부엌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 어깨를 긴장시켰다. 한창 원고를 진행하던 중이었는지 대강 머리를 묶은 사네미츠가 다급히 문을 열고 나타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대체 무슨 소리가…. 레이지?"

"…죄송해요."

슬슬 점심때라고 생각해서 뭔가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해서. 레이지가 머뭇머뭇 설명하는 동안 사네미츠의 시선이 부엌 조리대 아래에 끌려 놓인 작은 의자와 바닥에 엎어진 우묵한 그릇, 그리고 주눅 든 레이지의 모습을 차례로 담았다. 사네미츠는 조금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파도가 모래성을 무너뜨리듯이 살짝 웃었다. 웃으며 레이지 앞에 무릎을 굽혔다.

"뭔가 먹고 싶은 게 있었어?"

"…샌드위치를 만들면 좋을까 했어요."

"그럼 같이 만들까?"

아이가 고개를 든다. 그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사네미츠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02. (@ Jaeng2_1234)

졸리다. 아니, 정말로 졸리다. 아토 하루키는 체면상 띄워놓은 서류 작업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리도 아니다. 5월 중순의 봄 햇살은 너무 다정해서 이대로 한숨 돌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 쉽다. 맞은편 자리의 코테츠도 졸음을 이기지 못했는지 크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영업소장인 오토와 루이와 부소장 카치야 호마레는 업무상의 이유로 부재중. 이래저래, 약간은 딴짓을 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업무시간에 대놓고 웹서핑은 안 되지. 쿨한 사회인은 그러지 않아. 자기변명인지 모를 생각을 해도 심심한 건 심심하다.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하루키는 조금 전 메이커로 내린 홍차를 홀짝이고는 삼색 볼펜을 손에 쥐었다. 물론 자필로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고 작은 포스트잇 위에 초록색 덩어리가 생겼다. 조금 고민하던 하루키는 유쾌한 죄악감을 느끼며 거기에 안경을 그려 넣었다. 작품명. 오토와 탐정 사무소 나고야 지점 영업소장.

내친김에 그 옆에 무심해 보이는 눈매의 감자도 그린다. 장난으로 시작한 것인데 썩 어울리는 바람에 그만 웃음이 나올 뻔했다. 황급히 기침으로 무마한 하루키는 (그게 과연 잘 통했는지는 차치하고) 또 다른 후배를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나노는... 뭐가 좋지? 약간 활달한 강아지 같은 이미지는 있지만 그렇다고 개를 그리자니 좀 어려운데.

무의식적으로 펜을 움직인다. 뒤이어 종이를 본 하루키가 눈을 의심하며 포스트잇을 들여다보는 사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꽤 재밌나 보군."

"으악!"

돌아보면 마리모가 인간이 되어 서 있다. 아니, 설명이 잘못됐다. 마리모의 모델이 된 인물이 소리 소문도 없이 서 있었다.

"낙서인가?"

"앗, 잠깐…."

낙서를 본 오토와 루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웃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화라도 내줘. 하루키가 비참한 심정으로 말하는 사이 옆 책상에서 펜을 빌린 루이가 무언가를 끄적이고는 하루키에게 포스트잇을 돌려주었다. 의아한 기분으로 그걸 살펴보면.

"……."

누가 봐도 비실비실한 콩나물이 얹혀있다.

오케이, 루이. 이거 기억해둘 거니까.

03. (@ uyu_kuru)

"이즈, 새로운 몸은 어때?"

"그럭저럭 쓸 만해. 신체 능력도 나쁘지 않고."

"신원은 미상, 이라고 했던가?"

"맞아. 나야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말이야. 애초에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래도 그 모습도 굉장히 잘 어울려."

"대하는 언제나 그런 식이지. 그래도 기왕이면…."

"기왕이면?"

"검은 머리에 검은 눈, 인 편이 좋았으려나."

"아아, 그편이 조금 더 형제 같으니까?"

"일부러 말한 거지? 이 악취미."

"뭐 어때. 좋잖아."

"가족이 있다는 건."

*

"엣취!"

"레이지, 괜찮아?"

"괜찮아. 재채기일 뿐이니까."

"그래도 잘 챙겨입어야지. 감기 걸리면 안 돼."

"……저기, 하루 형."

"왜?"

"형은, 때때로 굉장히 쓸쓸한 얼굴을 해."

"그래?"

"지금도."

"……그래?"

"응.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괜찮아. 너는 이미 최선을 다했어. 그 연구소에서, 나를 구해주러 온 것만으로도"

"그렇지만 형은……."

"……."

"…미안, 아무것도 아니야. 돌아가는 길에 뭔가 사 먹자, 하루 형아!"

이소이 레이지가 미소짓는다. 아토 하루키는 손끝을 움찔거리다, 주먹을 꽉 쥔 채 웃어 보였다.

04. (@ cellddeok)

처음에는 분명히 소소한 농담이었을 뿐인데. 세오도아 리들은 둥근 쟁반을 손에 든 채 쓴웃음을 지었다. 발단은 세오도아 리들이 우연히 손에 넣은 낡은 만화책이었다. 장르는 가벼운 일상의 모험 이야기. 대사나 효과음은 일본어로 적혀있기에 내용의 이해에 어려움은 없었다. 재미는 크게 없었지만. 하지만 그 만화책 중에 유달리 세오도아의 눈을 사로잡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만화 캐릭터 중 언제나 침착하고 냉정한 캐릭터의 뒷통수를 몰래 쟁반으로 때려 성격을 바꿔본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방법 자체의 신빙성은 그렇다치고 그 결과가 제법 흥미로웠던 것이다.

물론 사람의 인격이 쟁반 하나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재밌지 않을까? 실험해보자고!"

우츠기 란기리가 얼마나 진심인지 파악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면 패인이었다. 그리고 하라다 무테이가 그 작전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것도 충격이었다. 제대로 이해한 거야? 쟁반을 느닷없이 머리에 맞는 거다만? 루메르트 오토마이어가 재차 확인했지만 무테이는 그 정도야 별것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누가 보면 인류를 위한 인체실험에라도 응하는 줄 알았겠지. 그리하여 세오도아 리들은 우츠기 란기리가 어디선가 구해온 쟁반으로 하라다 무테이의 뒤통수를 때리게 되었다.

"테오도르! 단숨에 휙, 하는 거야! 망설이지 말고!"

"안다니까. 정말… 몇 번을 말하는 거야."

물론 불의의 충격에 혀를 씹거나 하면 큰일이니 사전에 신호를 주고 쟁반을 머리에 때리기로 되어있다. 세오도아는 멀찍이 있는 (대체 왜?) 루메르트와 란기리를 한 번 쳐다보았다가, 자신의 앞에 차분히 앉아있는 하라다 무테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아, 모르겠다.

세오도아는 신호를 주곤 크게 팔을 휘둘렀다.

깡.

"……."

"……."

"……."

"……그, 어때?"

세 사람의 침묵 속에서 세오도아 리들이 묻는다. 하라다 무테이는 뒤통수를 한 번 쓰다듬어 보고는,

"잘 모르겠군."

그렇게만 대답했다.

05. (@ potchii_coe)

하루키츠네는 어딘가를 파고드는 걸 재밌어했다. 소파 틈새, 가구 사이, 때로는 벗어놓은 코트의 소매 안. 그렇게 온 집안을 탐색하며 파고들 곳을 찾는 하루키츠네에게 뭔가 좋은 장난감이 없을까 해서 찾아보던 오토와 루이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고 있는 어떤 물건을 발견하고 주문했다. 발송은 얼마 걸리지 않았고, 마침내 열어본 택배상자 속에는 중앙에 구멍이 뚫린 화분 모양 장난감이 들어가 있었다. 부드러운 천에 푹신한 솜. 그걸 하루키츠네 앞에서 흔들어 보이자 하루키는 곧장 관심을 보이더니 구멍 사이로 쑈샥쑈샥 몸을 비집어 넣고 들어갔다. 이윽고 바깥 구멍에 뾱, 하고 얼굴이 나온다. 퍽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맘에 드나?"

"뀪."

하루키츠네는 얼굴을 한 번 푸르르 털고는 화분 위에 고개를 얹었다. 꽤 즐거운 모양이군. 루이는 여우 화분을 품에 안은 채 토닥토닥 보듬어주고는 하루키의 귀 뒤쪽을 긁어주었다.

화분에 하루키의 이름을 바느질해도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03 (* 카미토모 대학 캠퍼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세오도아가 란기리 장례식장에 가 있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추측 기반 연성.)

우츠기 란기리가 죽었다.

끝내, 혹은 드디어. 세오도아 리들은 둘 중 어느 표현을 끼워 맞출지를 생각하다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느 쪽이건 무슨 상관이겠는가. 죽음이란 돌이킬 수도 부술 수도 녹일 수도 없는 것이니… 하얀 담배가 단숨에 불타서 재가 된다. 세오도아는 깊게 깊게 들이마신 연기를 뱉는다. 사과 향이 물에 떨어뜨린 잉크 한 방울처럼 온몸에 퍼져나간다. 기실 습격이나 공격이 일어날 리도 없는데 공연히 나팔을 불게 되는 것은 그만큼 초조하다는 증거일까.

하지만 그럴 만하다.

그렇지 않냐고 세오도아 리들은 생각한다.

첫 만남은 어리둥절하고도 유쾌했다. 한때는 웃으면서 함께 사진을 찍은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그 앞에서 전기톱으로 자신의 목을 날려버렸었지. 찢어버린 종잇조각처럼 너덜너덜한 기억을 한데 맞춰보는 순간은 기쁨보다는 회한과 우울감으로 가득한 모자이크 작업이었다. 세오도아 리들은 조금 더 깊이 연기를 빨아들였다. 화장터에서는 이제 우츠기 란기리의 시체의 화장이 거의 끝났을 것이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야!"

남성의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흡연 구역에서 나와 복도로 돌아온 세오도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우츠기 란기리의 장례식 상주를 맡고 있던 남자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직원들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분노보다는 당혹감과 두려움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듯했다.

"아버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다! 제대로 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곧바로 다시 화장 절차를 밟겠습니다. 그런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세오도아 리들은 방에 가까운 벽에 슬쩍 등을 붙이고 기댄 채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을 곱씹다가 화장터의 로비로 돌아갔다. 얼마쯤 기다리자 화장 현황을 알리는 전광판에 「우츠기 란기리」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화장 진행 중」간결한 글씨를 바라보며 세오도아 리들은 생각한다.

우츠기, 사라져.

제발 사라져.

사라져서 한낱 재가 되어줘.

바란다.

기도한다.

깊이깊이 되뇐다.

귓가를 가득 메우는 빗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로부터 한나절이 지난 뒤에야 우츠기 란기리의 화장이 종료되었다.

*

아카시아의 신민 활동에 함께 하고 싶은 이가 있다고, 하츠토리 하지메가 운을 뗀다. 그래? 너 치고는 제법 적극적인 행동이구나. 그런 말을 하면 하츠토리가 짧게 대답한다. 그는 내 곁에 있어 줬어. 세오도아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서류 따위를 보던 시선을 들어 올려 천장을 바라본다. 대각선으로 비스듬한 각도에 서있는 하츠토리의 머리카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 내가 사과하길 바라?"

"나는 그가 아카시아의 신민에 함께 하길 바라."

성대한 어긋남이었다. 세오도아는 그걸 조정하는 대신 보란 듯이 방치하기로 했다.

"그래, 그것도 뭔가의 사랑이겠지…. 새 친구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데?"

"우츠기 노리유키."

그 말을 믿을 수 없어 눈을 크게 뜨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지 않은 것은 그 타격이 너무나 깊고 은밀했음이다. 세오도아 리들은 천장을 바라보던 동작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류가 걸린 CPU처럼 입술 사이로 방금 들은 단어가 튀어나왔다. 어떤 오류처럼.

"우츠기 노리유키."

"그래."

"………좋은 이름이네."

하츠토리 하지메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세오도아 리들은 그를 데리고 오면 아카시아의 신민에 들어오기 위한 간단한 절차를 밟겠다는 말로 대강 상황을 갈무리하고 하츠토리를 내보냈다. 다소 성급한 행동이었지만 그의 피보호자는 그런 소소한 차이를 의아하게 여기며 질문을 던질 정도로 서로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시계 초침이 째깍거리기 시작했을 무렵, 세오도아는 천천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손가락이 떨린다. 사과 향이 후드득 떨어졌다.

사라져 달라고,

사라져 달라고 했잖아.

우츠기 란기리는 대답하지 않는다.

영악하게도 잿더미로 돌아간 탓이다.

#04

세오도아의 정신력은 바닥나지 않는다 이미 말라비틀어진 것이 또 바닥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오도아는 이따금 정상적인 감각을 되찾을 때가 있었는데 LDL과 함께 있을 때가 대체로 그러했다 웃음과 온기 염려와 신뢰같은 것들 그때마다 세오도아의 세상이 재조정된다 붉은 노이즈에서 보다 정상적인 형체와 감각이 빚어진다 그때는 세오도아도 조금은 맘 편히 웃을 수 있었고...

....

그리고 다시 착란이 찾아올 무렵에, 세오도아는 그나마 맑은 정신으로 루메르트를 떠올린다. 직접 닿은 것은 아니기에, 안개처럼 끼는 반점들을 털어낼 순 없었지만.

#05 첫번째로_멘션온_캐릭터가_두번째로_멘션온_캐릭터의_상황에서_세번째로_멘션온_캐릭터의_대사를_한다

니죠 류가 물속에 처박히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용병의 일이란 대개 그런 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장거리에서 이루어진 저격 소총에 의한 할로우 포인트탄 발포. 그 잔혹한 기능 때문에 국제법으로 군사적 사용이 금지된 탄환이지만, 그 법률조차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법지대에서는 의외로 적지 않게 쓰인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흔하지 않은가. 고속 착탄의 충격으로 그대로 뒤쪽 수로까지 내던져진 니죠 류는 빠른 물살에 번져가는 붉은 빛을 보며 냉정하게 판단한다. 공포나 분노는 없었다. 용병이란 자신이 당한 일에 일일이 두려워하고 화를 낼 정도로 여유로운 직업군이 아닌 탓이다.

보통 인간이라면 즉사다. 하지만 니죠 류에게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어머니의 은혜가 있었다. 그 은혜가 해체된 퍼즐처럼 뿔뿔이 흩어진 니죠 류의 조각들을 한데 그러모은다. 끊어진 것들이 실낱같이 얽히고설키며 원래의 형태를 되찾는다. 니죠 류는 그 모든 과정을 눈에 담으며 수면을 거슬러 올랐다. 출혈량은 상당하다. 저격한 상대방은 아마 니죠 류가 즉사했다고 판단했으리라. 조금 전 자신이 서 있던 위치와 탄환의 착탄 각도, 바람의 세기 등을 머릿속으로 계산해본 그는 상류 기슭의 폐허에 몸을 숨기며 수면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과연 저 멀리에 딱 좋은 높이의 폐건물이 있다. 그러면 여기서부터는 스피드와 지능 싸움이다. 과연 저격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철수했을 것인가? 철수했다면 어디로 갔는가? 추적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단서로 잡아야 하는가? 몇 십 년간 전장의 칼날로 살아온 자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한다. 두 다리는 이미 그보다 더 눈부신 속도로 땅을 박차고 달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건 좀 지치는군."

일이 끝나면 식당에 가서 밥을 좀 먹고 한숨 자야겠어.

니죠 류는 느긋하게 중얼거리곤 폐건물의 무너진 벽면을 타고 올라가, 단숨에 옥상으로 향했다.

저격수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길리 슈트를 입은 채 서둘러 철수하려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이후의 일이 순식간에 끝난 것은 서로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니죠 류]가 [이소이 하루키]의 상황에서 [야나기 니나]의 대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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