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과 프리지아 꽃다발」
쿠마자키 카렌.
#세포신곡_전력_60분 『헤매어 들어간 길』
쿠마자키 카렌은 길을 잃었다. 친구 집에서 함께 숙제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을 한 정거장 지나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카렌은 타고난 천성이 침착한지라 버스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쩔쩔매지는 않았다. 우선은 침착하게 정거장에서 내린다. 다시금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할까? 곰곰 생각하던 카렌은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거장은 번화가에 있었고, 고작 한 군데 밖에 지나지 않았다. 방향만 잘 잡아 돌아간다면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해도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듯 했다.
그리고 쿠마자키 카렌은 길을 헤맸다.
인생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구나. 어린 아이가 깨닫기에는 가혹하지만 엄연한 진실이 가로놓인다. 서서히 석양이 넘쳐흐르는 시간. 쿠마자키 카렌은 주변 건물 모두가 등을 돌아앉은 듯한 뒷골목을 거닐다가 조금 더 공들여 닦인 도로로 걸어나왔다. 눈 앞을 자전거 탄 여성이 천천히 가로질러 간다. 그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린 카렌은 한창 문을 열고 영업중인 꽃집을 발견했다. 그 앞에 선명할 정도로 노란 꽃이 장식되어 있었다.
"꽃 사러 오셨나요?"
가게 앞에서 서성이는 카렌을 보고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이가 말을 건다. 카렌은 조금 입을 달싹이다가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실은 제가 길을 잃었는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들은 꽃집 주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머나. 집 주소는 기억하고 있나요? 카렌은 제 손에 꼭 쥐고있던 주소 카드를 읽었다. 아직 나고야로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완벽하게 외우지 못하는 탓이다. 꽃집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라면 여기서 금방 갈 수 있어요."
"정말인가요?"
"네. 들어와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꽃집의 전면은 유리로 되어있고 탁 트인 느낌을 준다. 카렌은 조금 망설이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아마도 손님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 같은 나무 의자 위에 앉았다. 꽃집은 한가한 시간인지 찾아오는 손님은 적고, 주인이 종이에 뭔가를 슥슥 적는 소리가 클래식 음악 소리 사이로 간간히 들려왔다. 의자 위에 앉은 다리는 바닥에 닿지 않는다. 카렌은 운동화 신은 발바닥을 앞뒤로 흔들어보다 조금 예의없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멈췄다.
피아노 소리가 잦아들 무렵. 주인이 발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간단하지만 약도를 그려봤어요. 직접 데려다줄 수 없어서 미안하네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받아들어보면, 꽤 상세한 안내가 그려져 있다. 그 안내대로라면 집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성 싶었다. 이대로 나가 오른쪽에 은행이 보일 때까지 직진한 다음…. 약도의 그림을 곰곰히 살펴보던 카렌은 문득 제 앞에서 나는 부스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척 보기에도 눈이 환해질정도로 밝은 색채의 꽃다발이 보였다.
"이건 길을 잃어도 울지 않는 용감한 아이를 위한 선물이에요."
"앗, 고맙습니다. 그치만 그냥 받을 수는 없어요."
"괜찮아요. 뜻밖의 모험에는 보상이 있어야죠."
"그래도…."
"정 신경쓰이면, 다음에 또 꽃을 보러와주세요."
주인의 얼굴은 인자하다. 카렌은 화사한 꽃다발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쳐다보다, 이내 머뭇머뭇 팔을 뻗어 꽃을 받아들었다. 프리지아와 작약이에요. 주인이 조곤조곤 가르쳐주는 이름에 실려 부드러운 향기가 밀려온다. 카렌은 그 노랗고 연한 색깔들을 바라보다 살짝 미소지었다.
"예뻐요."
"그렇죠? 어쩌면 이 꽃은 당신을 만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운명."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숙제를 하러 간 딸이 멋진 꽃다발을 안고 온 것을 본 쿠마자키 리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즈음에는 쿠마자키 스미레의 불단 위에 가장 탐스러운 작약과 프리지아가 놓였다.
엄마, 이제 다시 봄이에요.
꽃이 예쁘지요.
조용히 불단에 기도한다.
피워올린 선향이 봄바람을 타고 한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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