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라이] 「당신만 괜찮다면」
이소이 *****.
-세포신곡 전력 60분 「꿈에서 당신이 나온 날」
-세포신곡 ASS+ 루트 스포일러 주의!
꿈이라는 건 참 이상하지. 분명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데 내 무의식이 반영되곤 하잖아. 그런 주제에 내가 바라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내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기도 하니 참 골치 아프지. 전자는 악몽이고, 후자는 현실로 돌아왔을 때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해지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꿈이 두려워서 술만 퍼먹다고 하더라. 그래도 꿈에게서는 도망칠 수 없지만 말야.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 사람이 사람인 이상 잠을 잘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인가. 그러고보면 미노루 군이 그랬었지. 그리스 사람들은 잠의 신 히프노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형제지간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만큼 옛날부터 잠과 죽음은 밀접한 관계로 여겨졌다는 얘기겠지? 죽음을 영원한 잠이라고 비유하는 것은 흔한 일이기도 하고. 이건 오컬트 기자인 미노루군에게는 너무 고리타분한 이야기인가.
그래도 우리… 호스트에게 죽음은 좀 머나먼 얘기지. 하츠토리 하지메님의 세포를 이어받은 우리 모두는 보통 사람에겐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고, 상처가 생겨도 금방 낫고, 시간이 흘러도 외모가 거의 늙지 않으니까. 그러고보면 미노루 군, 옛날에 내가 요리를 하려다가 손가락을 베였을 때 엄청 창백해져서 어쩔 줄 몰라 했었지? 그 정도 상처 쯤이야 지혈만 해두면 금방 다시 붙는다고 말했는데도.
어쩐지 어제 일 같기도 하고 엄청나게 먼 옛날 일 같기도 해. 지금 이 순간이 언제인지도 애매한 기분인걸. 그렇지만 이렇게 당신을 보게 되니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네. 사실 조금 전까지는 좀 많이 괴롭고 답답한 느낌이었거든. 마치 커다란 수조 아래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는 듯 했달까.
표정이 왜 그래. 지금은 전혀 힘들지 않으니까 괜찮아. 오히려 가뿐한걸? 아마 꿈자리가 좀 안 좋았나봐. 가끔 있는 일이지 뭐. 너무 신경쓰지 마. 일어나면 또 언제나처럼 미노루군이 있고 하루키가 있고 레이지가 있을 거잖아….
…….
…………….
미노루 군. 머리가 길었네. 여기저기 상처도 생겼고.
아냐,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긴 머리도 잘 어울리는 걸. 상처는 많이 아팠을 것 같지만.
우리 한 번 포옹할까? 옛날에 자주 했었잖아. 아무리 꿈 속 기억이 애매하다고 해도 그 정도는 기억해. 맞아, 이렇게.
에이. 왜 울고 그래.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분명히 괜찮을거야. 그야 살아가면서 행복할 수만은 없을테지만, 힘들고 괴롭고 슬퍼서 견딜 수 없는 때가 마치 파도처럼 밀려올 때가 있을 테지만,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잖아. 하루키랑 레이지도 있고.
있잖아,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서 좋았어. 미노루 군과 만나고 하루키와 만나고, 레이지와 만나 함께 가족을 이룰 수 있었던 게 나에게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몰라. 아니지, 지금도 기뻐. 앞으로도 늘 그럴거야. 나는 미노루 군을 만나고 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않아. 당신도 그렇지?
고마워.
당신을 사랑하길 잘했어.
당신에게서 사랑받아서, 정말로 다행이야.
꿈에서 깨면, 다시 만나러 갈게.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걸테니까 너무 놀라지 말아줘. 아아, 맞아. 알기 쉽게 암호를 정하자. 우리끼리만 아는 암호, 그 도서관에서 나눴던 말을. 이렇게 말하면 뭔지 알겠지? 응, 좋아. 잊어버리면 안돼. 잊어버리면 진짜 화낼거니까. 내가 화내면 무서운 거 미노루 군도 알지?
좋아. 그럼 이제.
잘 있어야 해.
*
꿈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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