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릭서: 메모리아-01. 2화
“쯧”
하여간 책임지는건 더럽게 싫어하지.
[자신들도 받은 서류고, 서류에 손댄 적이 없으니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는군. 크리쳐를 퇴치하든 정찰만 하든 알아서 하라는 답만 받았다. 이일은 상부에 올릴 예정이다. 지원이 필요하면 말해라. 내가 직접 가지]
하루키는 여우가 물어온 쪽지를 읽고는 혀를 찼다. 짜증난다는듯, 쪽지를 가차없이 구기고 적갈색의 눈동자는 창밖을 향했다. 가차없이 구기던 모습과 대조되게 하루키의 눈빛은 차분했다.
들어온 입구로 벗어나기엔 예상외의 크리쳐의 양 때문에 소란이 있었기에, 상당한 양의 크리쳐가 모여들어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하루키의 능력으로 못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크리쳐를 함부로 자극할 수는 없었다. 약간의 소란으로 입구에 몰린 양을 생각하면 탈출을 도모하다 되려 밟힐 여지가 있었다. 시나노의 안전이 제 1 우선 이기에,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선택지는 되도록 피해야 했다. 아무리 하루키라도, 저정도의 크리쳐를 처리하면서 시나노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하는 것은 무리였다. 어떻게 해야할까.
‘차라리 시나노를 먼저 내보내고, 자극받을 크리쳐를 처리할까’
시선을 시나노에게 돌렸다. 시나노의 능력 이라면 크리쳐가 몇마리 달려들어도 시간을 버는건 충분히 가능할 터.
“시나노”
“네?”
“지원을 요청하면 아무리 빨리 나가게 되도 다음날이 되야 나갈수 있을꺼야.”
차라리, 네가 먼저 부지 밖으로 나가고 내가 남아서 크리쳐를 처리하는게 나을거 같은데.
“물론, 무섭다면 지원을 요청해도 돼.”
아무래도 첫 임무이니 네 의견에 따를께.
“...그렇다면, 아토씨가 크리쳐를 처리한다는건 결정한건가요?”
“어…뭐 그렇지?”
하루키의 말에 시나노의 눈이 반짝 거렸다.
***
“음...시나노?”
“아토씨 왜요??”
방실방실, 웃는 얼굴의 시나노는 신난다는듯이 하루키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부지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나 보네.”
“헤헤, 무섭긴 해도 전 방어계열 이거든요! 아토씨의 능력을 두눈으로 담을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어떻게 놓칠수 있겠어요!!”
눈을 반짝거리며 외치는 시나노의 주위에는 연한 주황빛 막이 있었다.
"도쿄 쪽에서 아토씨와 나고야 지점장님이 크리처 처리했던일은 유명하니까요!!"
아니, 그일을???
녹음의 끈으로 벽에 매달려 있는 하루키는 헛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짚었다. 아니…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말이나오냐고….
“그걸 실물로 보다니!! 늘 도쿄쪽에서 왜 나고야는 본격적으로 안하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그거 때문이잖아요!!”
녹화 못하는게 한이예요!!
“그거 녹화한다고 설쳤으면 널 크리처 밥으로 먹으라고 던졌을꺼야”
방어계열 능력자니 죽지는 않겠지.
약간은 음산하게 살기를 띄며 하루키는 시나노를 바라봤다. 짙은 적갈색의 눈동자에서 적나라하게 들어난 살기에 시나노는 헤헤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슬금슬금 돌렸다. 한숨을 쉰 하루키는 시나노의 입에서 나오는 너무하다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몸을 빙글 돌렸다. 그 잠깐사이 거뭇거뭇한 크리쳐를 향해 언제 사람좋게 웃고있었냐는듯 무표정 한 얼굴이었다. 몸에서 서서히 회백색의 빛과 녹음의 빛이 올라왔다. 녹음의 빛깔은 이내 끈이되어 오른손 손끝에서 아지러졌고, 회백색의 빛은 왼손을 감싸올랐다. 하루키가 힘이 깃든 두손을 허공에 가볍게 휘두르자, 근방의 크리쳐는 모두 사그라들었다. 주위의 크리쳐들이 사그라들어가는 소리에 남아있는 크리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루키에게 집중됐다. 그의 입에서 무감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토와 탐정사무소 소속 이능력자. 아토 하루키. 크리처 토벌. 시작합니다”
***
녹음의 빛무리가 휘감아 올랐다. 검은 덩어리들이 틈새로 삐져나오다가 터져 찢어져 내렸다. 녹음의 빛에 반응해 주위의 식물들이 자라 크리쳐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지면에서 바위가 솟아올랐다. 크리쳐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 바위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계속해서 빈틈없이 달려드는 크리쳐들에게 한번의 밀림없이 곧게 서있는 채로 크리쳐를 처리했다. 두 색의 빛무리는 사그라들지 않고 하루키의 주위를 휘감아 어우러지고 있었다.
“와 아토씨!! 역시 복합 능력자 다워요!!”
머리위로 시나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리쳐 몇이 그에 반응해 벽을 타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고 곧바로 녹빛의 끈이 크리쳐의 목을 휘감아 바닥으로 쳐박았다.
“큰소리 내지 마!!”
시선이 하늘로 올라간 크리쳐들을 금새 캐치한 하루키는 곧바로 녹빛의 끈으로 휘감아 터쳤다. 다시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에 하루키는 다시한번 손을 휘둘렀다. 강한 타격음과 함께 그자리에 있던 크리쳐들 전부가 터졌다. 한층 속도가 올랐다. 시나노에게 시선이 쏠릴것을 염려하는것인지, 하루키의 움직임은 거침없었다. 시야를 빼곡히 채우던 크리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더 이상 움직임을 보이는 크리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붉은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
“수고했어”
“크리처 처리하는건 적성에 안맞아…”
그리고 루이,
“응?”
“도쿄쪽 입단속 시키자. 시나노가 크리쳐 잡는거 녹화하고 싶다고 얼마나 난리쳤는지 모르겠어”
다른것보다 그거에 더 진절머리가 났다고…
하루키는 질린 얼굴로 머리를 짚었다. 짐작이 간다는듯 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몇 년전이더라”
“아마 3년전 일꺼야”
“자료는 기관쪽에서 가지고 있는게 다일 테니 걱정하지마”
뭐, 기억까지 없앨수는 없잖아?
맘같아서는 기억도 지워버리고싶다고… 하루키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도 시나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듯 양 귀를 통통 손으로 때렸다.
“시나노는?”
그러고 보니 시나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하루키는 이에 의문을 가지고 루이에게 물어보았다.
“시나노? 글쎄. 아마 서류지옥이지 않을까”
“다 떠넘긴거야?”
하루키에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씩 웃는 표정의 루이였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뭐, 많이 넘기지 않았어. 뒷처리만 맡겼을뿐이야”
“그게 다맡긴거잖아…”
그런가? 뭐, 그렇게 동내방내 소문 다 날것같이 떠들고 다녔으니 뒷감당은 알아서 해야하지 않겠어?
“꽤나 고생하겠네 시나노”
“서류처리뿐이니까 난이도는 없어. 단지 오래걸리는 단순노동일뿐”
사악해… 하루키는 그런 감정을 숨김없이 가감히 들어냈다. 그에 맞춰 모르겠다는듯 으쓱하는 루이에 가볍게 흘겨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게?”
“아,응. 아무래도 좀 신경쓰여서”
“시나노에게준 것은 간단한 서류정리 뿐이다”
“그거말고”
“흠?”
이번일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조사해볼 생각이야?”
“어차피 우리쪽에서 뒷정리 까지 해야하니까, 이참에 겸사겸사?”
라고 말하며 하루키는 기지개를 폈다. 으으- 오랜만에 움직여서 뻐근한 몸을 한번 쫙 풀고 책상위에 얹어놓은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새 한바탕 찾아보았는지 서류봉투 속에 서류가 가득 들어있었다.
“너무 깊게 파고들지는마”
“당연한 소릴. 난 탐정이라고”
“시말서 라니…”
사무소로 복귀한 시나노는 책상에 엎드려 우는 소리를 했다.
“시말서로 끝나는게 다행이지”
하루키는 엎드려서 우는 시나노의 머리를 보고서로 가볍게 눌렀다. 시나노는 생각보다 두툼했던지 우아악- 소리를 내었다. 하루키는 바둥바둥 대면서 보고서를 치우기 위해 손을 이리저리 휘적이는 모습에 보고서를 치웠다.
“으아아… 하지만 아토씨가 처리하는거 보면 누구라도 소리치지 않고는 못버틸껄요!”
왁 하며 소리치며 툴툴 거렸지만 시나노의 손은 쉬지않고 노트북을 타이핑 했다. 도쿄쪽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은 금새 정리해서 책상 옆에 쌓여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시말서를 쓰고 있는거지. 툴툴되는 시나노에게 잔소리를 한 하루키는 보고서를 마저 정리하고 소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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