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zer op. 314
란무테
“아, 저녁 공기 시원하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하하하! 버티느라 고생했어. 아직 파티가 끝나기까지는 한참 남았겠지만 메인 이벤트는 끝났고, 얼굴은 비췄으니 됐겠지.”
“유럽까지 와서도 이런 곳에 끌려다니다니……. 다음부터는 참석할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과분한 기대 아닌가? 자네의 신분이나 나이, 무엇보다 용모를 생각해보라고.”
“…….”
“아아, 그렇게 인상 찌푸리면 주름 생긴다? 자네가 그렇게 굳은 표정으로만 있으니 자네에게 관심을 가진 여식들도 섣불리 다가오질 못하는 거 아닌가.”
“바라지도 않아. 오히려 이쪽으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지.”
“흐음.”
“뭐야?”
“아니, 별 건 아니고…… 그러고보니 자네가 누군가와 춤을 추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렇겠지. 앞으로도 없기를 바라고.”
“그래?”
“그래.”
“그럼 자네, 춤 출 줄 아나?”
“…….”
“왜 대답이 없나?”
“생각 중이었어.”
“그래서 대답은?”
“이론이야 알지만, 제대로 춰 본 적은 없으니 그다지 자신은 없네.”
“흐으음.”
“이번엔 또 뭐야?”
“뭔가 의외라면 의외고, 답다면 답달까……. 그 하라다 무테이의 약점!을 찾아냈다는 느낌?”
“약점이라니.”
“알아, 알아. 애초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니까 애써 배우지 않은 거겠지. 그래도 왠지 골리고 싶어진단 말이지. 어디…… 지금 한 번 춰보는 건 어때? 내가 상대역을 해 줄게. 이래봬도 춤에는 나름 조예가 있어서, 여성 스텝이라도 무리 없이 밟을 수 있단 말이지.”
“여기에서? 대로변이잖아.”
“아무도 없잖아! 이쪽은 가로등의 불빛이 잘 들지도 않고. 아무도 보지 않을거야.”
“버젓한 파티장을 놔두고 이런 데서 춤을 춘다니.”
“어쩔 수 없지. 파티장에서라면 우리 둘이 춤을 출 수 있을리가 없잖나. 이것도 나름대로 운치 있지 않아?”
“그다지.”
“너무 그러지 말고. 그럼 이렇게 말해볼까.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무대고, 그 중에서도 이 무도회장은 이 계절의 이 시간에만, 이곳에서만 허용되는 세트인 셈이지. 지금은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으니…… 막간이라고 할까? 막의 뒤에서 뭐든 허용되는 시간이야. 그러니 자, 자. 어서.”
“나 참……. 좋아. 스타일은?”
“음─ 왈츠!”
“왈츠라…….”
“그래, 우선 그렇게 손을 내밀고……홀드.”
“…….”
“앞으로…….”
“…….”
“돌아서, 응.”
“음…….”
“잘 하고 있어. 아, 여기서는 이렇게 체중을 싣는 게 좋아.”
“아.”
“잠깐, 잠깐. 다시 해 볼까.”
“다리를…….”
“응. 먼저 남자 쪽에서 이렇게……. 그럼 여자 쪽이 이렇게 따라가는 거야.”
“이렇게?”
“그래, 그 다음으로는 이렇게 교차해서 돈 다음…….”
“…….”
“…….”
“…….”
“……풉. 아하하하!”
“웃지 마.”
“하하하! 아, 미안, 미안! 아, 생각보다 잘 했어! 정말이야.”
“됐어. 나도 객관적인 평가 정도는 할 줄 알아. 구두에 자국이나 안 남았으면 다행이겠네.”
“음, 자국은 안 남은 것 같은데. 그럼 된 거 아닐까? 실제로 춰 본 적도 없는데 이 정도면 정말 잘하는 거 맞다니까 그러네. 내가 처음 춤을 배울 때 얼마나 가족들과 선생님 발을 밟았는지 알면 놀라 자빠질걸?”
“…….”
“아하. 봐, 자네가 생각해도 웃기지?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이번에는 음악도 더해볼까. 야외이다보니 콧노래밖에는 부를 수 없겠지만, 자아.”
“…….”
“…….”
“……그렇지.”
“…….”
“…….”
“……여기서…….”
“응, 좋아.”
“…….”
“…….”
“……후우.”
“좋아, 좋아. 아까보다 훨씬 나아졌네!”
“슈트라우스?”
“응? 그렇지.”
“좋아하는 곡인가?”
“글쎄? 그렇다기보단 무난하잖아? 방에는 레코드판도 있는데…… 아, 그래! 가끔씩은 방에서 이렇게 같이 춤 연습을 하는 건 어때? 내가 도와줄 테니까.”
“굳이?”
“엑…… 너무한 거 아냐?!”
“아니, 내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입장이잖아. 딱히 그리 간절한 것도 아니고, 네게도 그리 득이 되진 않을 텐데.”
“그렇게 딱딱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분 전환인 거지. 매일같이 연구소에서 연구만 하고 환자만 보면 좀이 쑤시잖아? 방금 전에 그래도 꽤 즐겁지 않았어?”
“그럭저럭.”
“그렇지? 파티장에서야 강제되는 일이니까 싫은 거고, 부담되지 않는 상대와 추는 춤은 즐거운 일이라는 걸 자네도 알면 좋을 텐데 말이야.”
“뭐…… 가끔씩은 괜찮겠지.”
“정말?! 약속한 거다?”
“그래, 그래. 선생님이 알아서 해.”
“으하하! 자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다니. 진기한 경험이로군! 좋아. 그럼 우수한 학생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준비해보지요. 따지고 보면 자네의 첫 춤 상대를 앗아간 셈이기도 하니까.”
“말은 잘 하지. 집에나 어서 돌아가자고.”
“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