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별 사랑

비우기 by B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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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었습니다_로_글쓰기 (2020.06.19 작성)

당신과 제가 만난 날은 봄이었습니다. 아직은 추위에 떠는 가련한 것들이 숨어있던 이른 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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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_꽃말은_여름 (2022.12.31 작성)

누군가의 첫사랑은 봄과도 같았다지만, 글쎄요. 제가 겪은 그것은 무척이나 진득했답니다. 처음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풋풋함도, 어설프게 피어난 설렘도 없었지요. 그저 뜨겁도록 불타오르는 심장과 차갑게 떨어지는 거절뿐이었어요. 아아, 그래요. 거절이었습니다. 그 차디찬 바늘 비에도 식지 않는 더위에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것이 나의 첫사랑입니다.

단풍 (2023.10.15 작성)

당신의 길을 따르겠습니다. 자신을 하늘이라 일컫는 것들을 땅으로 떨궈 짓밟겠습니다. 붉은 잎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날, 그리하여 이 어둠이 끝나는 날이 오면, 저는 저의 빛을 따라 스러져도 괜찮은 것이겠지요. 당신을 따라도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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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크리스마스에는 혁명을 (2023.12.25 작성)

“한때는 하루의 시작이 해가 질 무렵이었다는 거 알아요?”

“그랬습니까?”

“오래 전엔 해가 질 무렵 하루가 시작되고 끝난다고 생각했대요. 지금은 해가 뜰 무렵 하루가 시작되고 끝난다고 생각하는데, 참 신기하지 않나요?”

“별 게 다 신기하군요.”

“당신은 너무 이성적이에요. 가끔은 이런 것에 놀라며 꺄르르 웃을 필요가 있다고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뭣 하러 그리 해야 합니까?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일’에 도움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유가 필요한가요? 그저 우리끼리 웃으며 행복해하면 된 거죠. ‘그런 일’에 두려워하며 떠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렇습니까.”

당신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별 신기하지도 않은 일에 쪼르르 달려와 자랑하듯 말하는 게 꼭 다람쥐 같았다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사람들은 당신의 그런 모습에 웃고, 당신은 그런 그들을 보며 웃는 나날. 저는 그것이 낯설었지만, 한편으론 따사로웠습니다. 그런 것을 제가 이 세계의 어느 곳에서 느껴보겠습니까. 당신이 있는 곳이 유일합니다.

저의 빛나는 당신. 저의 유일한 온기. 당신만이 절 살게 하고, 당신만이 절 죽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제 생을 허락했으니, 제 생을 거두어가는 것도 당신이 하실 일입니다. 알지 않습니까,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그러나 당신은 절 버리고 떠났으니, 이제 절 살게 하는 것도 죽게 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군요.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인간은 무어라 불러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처참한 삶을 삶이라 칭해도 되는 것일까요. 당신에게 제 삶을 거두어가라 애원하고 싶건만, 당신의 삶이 먼저 거두어짐은 어떠한 이유일까요.

기억하십니까? 당신이 푸른 하늘을 좋아한다기에, 어린 날의 저는 매일 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를 기도했습니다. 비도 내리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으며, 바람도 불지 않는. 오직 태양만이 존재하는 날씨 말입니다. 당신은 그런 저의 소원을 들으며 웃으셨지요. 제가 바란 하늘은 사람이 살기 힘드니, 다음부턴 특별한 날에만 그런 소원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존재하는 모든 날이 제게 특별함을 모르시고요.

당신은 떠나는 그날마저 저를 모르셨습니다. 푸른 하늘을 바랐던 저를, 빛과 온기를 바랐던 저를, 희망을 놓치지 않고자 온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던 저를. 그리고 당신이 없는 미래를 살아갈 수 없는 저를. 당신은 그 모든 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저를 두고 가신 것이겠지요.

맑은 하늘에 해가 뜨고, 구름이 바람을 타고 뛰노는 동안, 저는 그날의 악몽에 갇혀있습니다. 햇볕 한 줌 들지 않고, 구름만이 어둠을 맴돌던 그때 그 장소에 갇혀있습니다. 그 꿈의 끝에 찾아올 희미한 희망을, 그 유일한 연민을 기다리며. 절 악몽에서 깨워줄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 미련을 버릴 수 없음은 어째서일까요. 오지 못할 빛을 좇음은 어째서일까요.

알고 계십니까? 당신이 떠난 그날의 봄은 몹시도 추웠습니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고 기승을 부리더군요. 이곳은 내 자리이니 모두 떠나라며 저희를 협박했습니다. 저희는 추위에 맞섰지만, 많은 이가 얼어붙어 부서졌습니다. 남은 이들은 모두 다시 찾아올 봄날을 기다리며 어둠에 숨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 누구도 빛을 찾아 떠나지 못했습니다. 잃은 빛을 되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가을, 다시 찾아오는 추위에 결심했습니다. 차갑고 어두운 이곳에 불씨를 던질 것입니다. 의미 없이 떠도는 잿더미에 불을 붙일 것입니다. 당신이 저에게 그러했듯, 제가 이들에게 불을 붙여 어둠을 스러지게 하겠습니다. 빛이 없는 이 땅에, 이 한몸 불살라 빛을 가져오겠습니다. 추위를 떠나게 하고, 어여쁜 새싹이 움트는 봄을 되찾아오겠습니다.

그래요. 이젠 겨울입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지나 겨울이 되었습니다. 흐린 구름이 하늘을 떠돌고, 시커멓게 물들 눈송이가 땅에 내려앉고 있습니다. 하늘도 땅도 어두운 것투성입니다. 당신이 보았다면 어떤 말을 하셨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저 눈송이를 지키고자 하셨을까요, 또는 치우고자 하셨을까요. 눈송이가 밟히지 않게 하셨을까요, 또는 그를 밟은 사람이 넘어지지 않게 하셨을까요. 당신은 무엇을 지키고자 나섰을까요.

저는 그 무엇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빛이지, 불꽃은 아니지 않습니까. 불에는 눈이 없으니 그저 모든 것을 불사를 수밖에요.

불씨가 던져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을 앞두고 웃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긴장한 채 해가 저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하도록, 그 하루에는 모두가 웃을 수 있도록. 모든 불은 타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바랐던, 그리고 제가 바라는 그 푸른 하늘을 위해. 비에도 꺼지지 않고, 눈을 녹이며, 바람 앞에서 더욱 거세게 불탈 것입니다. 그 누구도 추위에 얼어붙지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부서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어둠에 숨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저희를 모를 것입니다. 빛과 온기를 바라며 희망을 움켜쥐고 있던 저희를, 밟히다 못해 억눌린 저희를. 더 이상 추위에 떨지 않는 잿더미 속 불씨를 그들은 모릅니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자에게 구원받으려 이 밤을 밝히겠지요. 자신들만이 하늘 아래 유일한 것이라 여기며, 어둠 속 불결한 자들을 외면하겠지요. 그렇기에 그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자란 이들이 얼마나 불타오르는지. 스스로 구원을 만드는 이들이 얼마나 고결한지! 그들은 영영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늘 아래 존재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으니, 그 누구도 하늘에 오를 수 없고 그 누구도 땅 아래 갇힐 수 없다고요. 알 수 없는 존재를 바라며 스스로의 눈을 가리기보단, 하늘의 눈부심과 땅의 단단함을 직접 깨닫는 것이 옳다고요.

그 말이 맞습니다. 하늘에 오른 것처럼 행동하는 자들을 끌어내리고, 땅 아래 갇혀 신음하는 이들을 끄집어내어 이 세상을 직시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늘은 어떤 색을 품고 있는지, 그 푸르름은 얼마나 눈부신지 직접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온세상이 하얗고 어둡습니다. 새로운 빛이자 진정한 태양이라던 자는 죽었건만, 그들은 어찌하여 그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를 죽인 당사자들이 그의 탄생을 축하하니,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그들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희는 이미 빛을 잃고 삶을 잃었으니, 없는 것을 좇기보단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알 수 없는 새로운 불을 키워, 이 어둠을 쫓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는 삶을 잃지 않으려는 저희의 몸부림이 보이십니까? 분노하여 끓어오르는 이 불길이, 어둠을 살라먹고 이 땅을 붉게 물들이려는 움직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나아가려는 이 불결한 자들이!

저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만들고, 직접 이 땅을 가꾸겠습니다. 해가 뜨고 세상이 밝아지면, 푸른 하늘 아래 붉게 물든 자들이 평화를 추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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