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어떤 짧은 독백에 불과하다
이소이 사네미츠 생일축하글.
-세포신곡 본편 ~ 막간에 이르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9월의_작가_사네미츠_생일축하해 해시태그 참가 글 백업(및 약간의 수정).
이소이 사네미츠. 축하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이제 권리와 기쁨을 누리세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는 공고합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바는 분명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당신의 만년필은 계승될 것입니다.
당신이 겪은 고난과 슬픔을 떠올려보세요. 그건 너무나 합당하지 못한 폭력이었습니다. 당신은 피해자입니다. 이 이상 고통을 껴안고 고뇌하는 것은 당신 자신의 삶에 대한 파괴행위입니다. 자, 당신에게 남은 것을 보세요. 동료와 아들을 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행복에 자격이 존재한다면 그 1차 합격자는 다름 아닌 당신일 겁니다. 불합리한 애정, 납득할 수 없는 전개, 축을 세워 고정할 수 없었던 인생들. 그건 당신이 추악하거나 못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아주 약간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평안한 때를. 온기와 웃음을.
…그만두세요. 왜 스스로 모든 걸 짊어지려 하는 건가요? 그건 영웅 심리조차 아닌 만용입니다. 하라다 무테이의 유산은 평온과 행복에 방해됩니다. 부술 수도 없는 저주입니다. 얼른 인계하고 잊어버리세요. 사랑하는 아들 중 어느 쪽이든 그걸 어떻게든 해결할 겁니다. 설마 믿지 못하나요?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잊어버리고 온건한 일상을 보내면 너는 평온을 맞이할 수 있어. 더는 고통받지 않아도 돼. 장막 뒤로 물러서서 새로운 배우들의 등을 도닥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대체 왜 조명 앞으로 나아 가려 하는 거야! 그 앞에 펼쳐지는 것은 모든 걸 찢어버리는 허무의 길일 뿐인데!
그렇군. 나는 허무한 길을 가고 있는 거군. 사네미츠는 주머니에 넣어 둔 만년필을 만지작거린다. 머릿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틀림없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 가벼운 자아분열은 기구한 삶을 살아온 작가에게는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지만.
소중한 것이 늘어났다는 자각은 있다. 웃을 수 있는 동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가족, 다시는 속죄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친아들. 세상은 오묘해서 좁고 삭막하던 시야에 야생화가 피듯이 색채가 더해지고 향과 바람이 더해졌다. 그걸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자신은 뿌리부터 망가진 인간이겠지.
다만 애매하다는 자각은 있다. 아무래도 그런 인간이다. 주워올린 돌을 보며 미소짓다가, 문득 주머니가 돌로 전부 가득 찬 것을 알고 곤란해하는 성정이었단 뜻이다. 그래서… 전부 잃었다. 주머니째로 뜯겨나갔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금 손에 넣은 조약돌은 정말로 잃고 싶지 않다.
잃고 싶지 않은데도 잃을지도 모르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모순이다. 그래서 다정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이대로 시간의 품에 안겨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자는 시나리오를. 하지만 그건 신뢰가 아니라 폭력이다. 나는 이제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선언이다.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는 방관이다.
폭력과 고통과 슬픔의 사슬. 그러니까 일찌감치 물러난 채 안온하게 의자에 앉아 다음 일이 벌어지는 모습을 응시할 수는 없었다. 이건 내가 매듭지어야 할 일이다. 상처받고 배신하고 고뇌하고 결단한 끝에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록해야 한다…. 나의 만년필은 어느 누구에게도 인계되지 않는다. 계승되지 않는다. 하라다의 저주는 여기서 파탄을 맞이하고 나는 그 파탄의 일부가 된다. 바보 같은 이야기도 인자의 액자 틀도 전부 망가져서 농담거리로 전락할 때까지. 그리하여 모든 것이 정말로 웃어 넘겨지는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종막이겠지.
축하는 그때 받도록 할게. 오래 걸리진 않아. 기다려주지 않을래. 분열된 자아에 이소이 사네미츠가 말을 건다. 어둠 속 얼굴이 무언가가 되려고 휘날리다가 결국 하라다 미노루가 되었다. 조금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런 표정은 하지 마. 이건 내 선택인걸. 그리고 오늘은 너의 생일이기도 하잖아.
"생일 축하해, 하라다 미노루 씨."
마음을 정한 지금, 건네지 못할 마음은 없다.
깨진 거울 조각 같은 자아는 오래오래 침묵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하얀 테이블에 케이크 조각만이 남아있었다. 좀 모자라겠지만 내일 아들들에게 반절 나눠줄까. 사네미츠는 그런 생각을 하고 웃었다.
올해는,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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