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외자
서점 앞 도로를 지나는 차는 그리 많지 않다.
주 도심과는 거리가 있는 골목. 그 중에서도 끝자락에 위치한 현의 서점은, 몇 년 전 완공된 한 동짜리 아파트와 가까이 위치해 있다. 엄밀하지 못한 대강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걸어서 십 분, 차를 타면 순식간.
한 동짜리 아파트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현의 서점 앞 도로길을 경유하는 수밖에 없다. 도보라면 약간 험하게 돌아가는 길이 있을 수야 있겠으나 (아마 아파트 근처의 손타지 않은 산을 헤쳐나가야 할 테다) 적어도 차를 끌고 다니는 운전자에게 우회로란 존재하지 않는다.
평일에는 손님이 많지 않다. 서점을 쓸고 닦아도 폐점 시간은 영 다가오질 않는다. 마케팅 서적을 들입다 읽고 있기도 지쳐서, 깨끗한 유리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볼 때가 많다.
아침에는 윤필규의 아반떼가 도심 방향으로 사라진다. 낮에는, 가끔 나이 많은 스트리머의 빨간색 소형차가 같은 방향으로 나가기도 하고, 나간 걸 보지 못했는데 들어오기도 하고. 저녁에는 당연스럽게도 아반떼의 귀가.
그런데 요 사이 처음 보는 차가 아파트에 드나들었다. 시점은 기이하게도 평일 낮. 차종은 제네시스. 눈에 익지 않은 번호판. 처음에는, 아파트 거주민 중 누군가가 차를 바꾼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현이 알기로 그 아파트의 거주민은 현재 네 사람 뿐이다. 전혀 수요가 없는 곳에 지어졌으니 텅텅 빌 만도 하다. 게다가 몇 년 전에는 사람도 떨어져 죽었지. 그러니 입주자들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도진은 면허가 없다. 필규의 아반떼는 매일매일 도심을 향한다. 스트리머의 번쩍이는 붉은 소형차도 이따금 도로를 지난다. 편집자는, 현이 알기로 자주 밖에 나가는 편이 아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택배 차량만이 그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최근에 차를 바꾼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두 번째로 떠오르는 가능성은 입주자와 친한 외부인의 방문. 두 명이 손쉽게 용의선상에서 벗어난다. 윤필규는 온종일 바쁘니 평일 낮에 손님을 받을 여유 따위는 없을 것이다. 도진은 인간관계가 넓지 못하다. 이 동네 사람들을 제한다면, 아마 유진 작가 정도를 '친한 사람' 리스트에 겨우 올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는 제네시스를 타지 않는다.
스트리머와 편집자가 남는다. 편집자는 도진과 비슷한 궤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스트리머는, 역시 현이 알기로는 철저한 신비주의.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때도 포장지 하나 보이지 않게끔 세팅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집에 지인을 불렀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지 않겠는가.
현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댄다. 턱을 당겨 천장을 바라보다가, 눈을 꾸욱 감아선 몇 번이고 눈동자를 굴려 본다.
'윤서천? 그럴 리가......'
서천은 꽤 오랜 기간 부재중이다. 집을 내놓지 않은 걸 보면, 언젠가 돌아올 생각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저 팔리지 않을 걸 알기에 내놓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만약 서천이라고 한다면 (죽은 부모의 재산이 상당했다고 들었으니, 차 정도는 바꿀 수 있겠거니.) 대체 누굴 만났나 고민해 본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도진. 그 반대는 편집자. 단순히 교제 강도에만 기인한 순서이지만, 도진을 만났다손 쳐도 그 이유를 도저히 떠올릴 수 없다.
형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아니, 그럴 리 없다. 사람을 붙였으면 붙였지 작가님에게 직접 묻지는 않을 테다. 물론 작가님도 그렇게까지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다. 윤필규의 머리가 깨진 이후로는 무언가의 심경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보이니까. 포섭이 전처럼 쉽진 않을 거다.
솔직히 그 외에는 별로 만날 인물이 없다. 설마 스트리머나 편집자를 만나러 온 건 아닐 테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역시 스트리머의 불규칙한 귀가가 마음에 걸린다. 아침에 귀가하는 경우가 특히나. 서점은 열 시에 닫으니 이따금 그 이후에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된다. 그의 방송 시간은 저녁 여덟 시에서 새벽 두 시. 마음이 내키면 세네 시까지. 매주 수요일에 정기 휴방. 하지만 나가는 시간은 상당히 불규칙. 언젠가 금요일 아침에 돌아오는 것을 본 적 있다.
'뭘 하는 사람이지?'
그다지 좋지 못한 상상이 떠오른다. 제 친구가 하고 있는 일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질이 나쁘거나, 하지 않을까, 하고.
그렇다면 남을 집에 들이는 것도 이해가 되는데......
"작가님."
"응?"
빈 백에 파묻혀 있던 도진은 화들짝 정신을 차린다. 휴대폰을 가슴께에 둔 채 꾸벅꾸벅 졸던 참이다.
"아파트에서 모르는 사람 본 적 있으세요?"
"어, 음, 모르는 사람?"
"가끔 처음 보는 제네시스가 아파트 쪽으로 드나들던데."
"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더니, 스르르 눈을 감으려 든다.
"아잇, 작가님!"
"응? 음, 으응. 누구 말하는 건지 알아. 응."
"아세요?"
"응, 아마도...... 도화... 씨...... 친구..."
"친구?"
"1층에서...... 얘기하던 걸 봤어."
"정말?"
"음, 정말인데... 구석에서 담배 피우다가 우연히, 봐 버려서."
"이상하지 않아요?"
현은 니은 자 카운터 너머로 상반신을 불쑥 내민다. 빈 백에 앉은 도진을 내려다 보는 꼴이 되었지만, 도진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점 주인을 올려다 본다.
"뭐가?"
"그 분, 인터넷 방송 하면서 신상을 엄청나게 숨기시잖아요."
"정말?"
"모르셨어요? 백도화라는 이름도 가명인데."
"어, 그런가......"
아직 완전히 잠이 깨지 않은 작가는 고개를 휘휘 젓는다.
"친한 사람...... 인 거 아냐?"
"친해 보였어요?"
도진은 가만히 그날의 광경을 떠올려 본다. 늘상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던 그가 의외로 적대적인 표정을 짓고 있어서, 괜스레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음...... 친하니까 집까지 찾아왔겠지."
"안 친해 보였구나?"
"안 친한 친구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안 친한 친구면 친하지 않으니까 집에 들였을 리 없겠죠."
"음......"
팔짱을 끼던 도진이 낮게 신음했다. 미간에 얕은 골이 새겨진 채다. 열심히 졸다가 일어난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반인륜적이라는 시그널로 읽힌다.
"음, 뭐, 사채업자일 수도 있고...... 집요한 사람들이니까 주소 정도는 간단하게 알아내겠지."
"사채업자라...... 불법적이네요. 불법적이라 하니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나한테?"
"네."
"뭘?"
"작가님 늦게 주무시죠? 새벽에 차 나가는 소리 자주 듣지 않으세요?"
"음...... 그것도 도화 씨...... 이긴 한데..."
"수상하죠?"
도진은 이상하게 우물쭈물하는 눈치다. 제가 알고 있는 걸 눈앞의 젊은 사장에게 털어놓아도 될는지 고뇌하는 모양이다.
"뭐 아는 거 있으세요?"
"음... 나랑 동갑이지..."
"좀 이상한 일 하시죠, 그 분?"
"이상한 일?"
"사람 뒷조사라든가."
"그건...... 얼굴이 팔리면 못 하는 일이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라 현은 일순 입을 다문다. 카운터에 한쪽 팔꿈치를 대곤 턱을 깊게 괴고 있다.
"변장이라도 하겠죠."
"왜 그렇게 도화 씨를 의심해? 오늘따라 이상하네......"
"의심스러우니까 의심하죠."
"그, 그런 일을 하더라도...... 우리가 피해 볼 건 없지 않을까......"
"몇 년 전에 피해 보셨잖아요?"
이번에는 도진이 입을 다물었다. 제 목덜미를 슬슬 만지작대더니, 시무룩한 얼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왜 그렇게 단언하세요?"
"으음, 성격이 좋잖아."
"윤서천도 사회생활은 잘했죠."
도진의 얼굴에 더한 그늘이 진다. 현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턱을 괴던 팔을 물린다. 후드티의 주머니에 두 손을 푹 꽂아넣는다.
"뭔가 꺼림칙해."
"나쁜 사람 아니라니깐......"
"그런 직업을 가졌다면, 누군가에게는 분명 나쁜 사람일 거예요.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우리한테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도?"
"작가님, 남이 좀 잘해준다고 덥석덥석 좋아하지 마세요."
윤필규가 그래서 골머리를 썩히고 있던데요, 라는 뒷말은 부러 삼켜냈다. 도진은 여전히 시무룩해선 시선을 들지 않는다.
이 이상 추궁하는 건 무리겠군......
현은 작게 한숨을 뱉어낸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요."
분장 테이프를 뜯어냈다. 눈매를 순하게 연출하는 효과가 있다. 코앞에서나 보아야 변장임을 알아챌 수 있는 고급품이다.
렌즈를 착용하고, 머리스타일을 달리 하고, 약간의 화장을 가미하는 것만으로, 상당히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이란 겨우 그 정도다.
외출할 때면 언제나 가벼운 변장을 했다. 안경을 벗고, 귀를 가리는 머리칼을 뒤로 질끈 묶는다. 약간의 테이프로 인상에 변화를 준다. 그것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다른 사람으로 인지한다. 위조한 민증으로 추가타를 날리면 모두가 속아 넘어간다.
위조한 민증은, 실은 어디서든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김민석'이라는 사람은 정말로 존재했으므로. 하지만 천애고아였던 그는 연고도 모르는 곳에서 죽어버렸다. 도화에게 주민정보를 팔아넘긴 브로커는 그렇게 둘러댔다. 물론, 전혀 믿지 않았다. 아마 쥐도새도 모르게 바닷속 어딘가에 묻어버린 조직 따까리의 신상 아닐까.
신상의 주인이 어떻게 되었든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 적당한 값을 지불했으면 그걸로 끝이다. 도화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뒷세계의 일이란 의외로 스릴 넘치지 않는 법이다. 질 나쁜 깡패들과 엮이지 않는 한 크게 목숨을 위협받을 일도 없다. 오늘의 안건도 현역 조사원이 할 법한 일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는 썩 괜찮은 완성도로 업무를 완결시켰다. 외투 안주머니의 지갑에는 김민석의 민증을 넣어둔 채로.
오늘은 방송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오전 열한 시. 즉, 열두 시간을 내리 자도 날짜가 바뀌진 않는다.
오늘 치 보수는 들어온 걸 확인했으니, 하루 정도는 마음 놓고 자도 되겠지. 눈동자에 달라붙은 렌즈를 떼어내며 생각한다. 간단한 세수를 하고 안경을 집어올린다. 뿔테 안경은 얼굴의 윤곽을 가리는 효과를 준다.
욕실에서 나와 침실로 향한다. 부엌과 이어진 거실을 가로지른다. 집값에 비하면 넓은 평수다. 사고매물이니 그럴 법도 한가. 이 집에서 사람이 하나 죽었다고 들었다. 방금 몸단장을 한 욕실에서도 끔찍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웃이자 동료인 성훈에게 사건의 개관 정도는 들었지만, 정돈되지 않은 설명은 이해에 어려움만을 남겼다.
사람이 욕조 안 핏물에 잠겨있었다고? 그래서 욕조를 교체했는데도 집이 팔리지 않았다고. 무슨 괴담 같은 소리를 하는 건지.
강성훈. 그래, 강성훈과 얽힌 문제가 또 있었지.
아마 그 녀석을 방송에 내보낸 게 패착이었을 거다. 자주 드나드니 근처에 산다는 것 정도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을 거고. 그 녀석은 남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으니 팬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에 넘어가고 말았던 거고.
시청자들은 내 신상을 궁금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직접 손을 써서 캐내는 일은 드물다. 단순히 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나를 그 정도로 좋아하는 팬이라면 오히려 신상을 지켜주려 들 것이다. 안티라면 죽기살기로 덤벼들 수야 있겠지만, 설마 일개 아저씨 스트리머를 매장시키고 싶어하는 녀석이 있을 리가. 지금까지의 방송 역사에서 그렇게 골이 깊은 적을 만든 기억은 없다. 시청자와 진지한 말싸움을 한 기억 역시 없다.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전직 동료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백도화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기 좋게 한 방을 맞고, 한 번 더 만나버려서, 있는대로 성질을 긁어주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모든 걸 갖고 태어난 인간이란......'
아주 꼴 보기 싫은 법이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집에 돈이 없었다. 언제부터, 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적어도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은 분명했다. 걸음마를 떼었을 적에 양 손으로 짚었던 퀴퀴한 벽지를 기억한다. 유년기의 기억이란 나이를 먹으며 바래기 마련이지만, 이상하게도 뇌리에 박혀 세월의 흐름에 쓸려가지 않는 기억이랄 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 않나. 나의 경우는 그 벽지가 그러했다.
본래 하얀색에 가까웠을 테지만, 담뱃진이라도 눌어붙었는지 누리끼리하게 찌들어버린, 축축한 얼룩인지 곰팡인지 모를 것이 군데군데에 장식된, 잔뜩 울어서 울룩불룩한, 쿰쿰하니 이상한 냄새가 나는 벽지를, 부드럽고 포동포동한 손으로 짚었던 것을 기억한다. 앞뒤의 기억은 없다. 이어지는 기억도, 연관되는 기억도 없다. 넓죽한 케이크의 정가운데를 스푼으로 푹 퍼올린 듯한, 아주 동떨어진, 괴이한 기억이다.
아무튼 집에는 돈이 없었다. 무언가 손이 풍족했던 경험 역시 없었다. 아버지는 돈을 벌다가 사고로 죽었다. 말도 안 되게 허망한 사고로, 겨우 그런 거로도 사람이 죽는 건가, 싶을 정도로 허망한 사고로, 죽었다.
물론 어머니도 돈을 벌었다. 채널이 몇 개 없는 TV 안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딴따라'나 '탤런트'를 하고 싶었지만, 나와 어머니의 처지로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군말 없이 공고를 갔다. 기술을 잘 배워서 적당한 곳에 취직을 했다. 월급은 쥐꼬리만했다. 아버지의 보험금과 '사고'의 '합의금'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다가 조사원 일로 빠지고 말았다. 처음부터 직장을 때려쳤던 것은 아니다. 3교대였으니까, 시간이 나는 대로 일감을 받아서 하다가, 떳떳하지 못하고 냄새가 구린 일은 페이가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전업 조사원의 길로 들어섰다.
몸을 혹사시키는 일에는 도가 텄다. 잔머리도 남들에 비해 제법 굴릴 줄 안다. 기술도 빠르게 익힌다.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덕에 고참에게도 나름의 신임을 받았다. 생명보험도 비싼 걸로 들어뒀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목숨값은 비싸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안심했다.
뜻밖에도 나는 오래도록 죽지 않았다. 조사원 일을 시작하고도 오 년을 넘게 살아있었다. 중간중간 위기야 당연히 있었지만, 목숨만이라도 부지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행동하니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손패를 한 장 더 만들어두자는 마음으로 변장을 하기 시작한 게 이 쯤의 일이다.
그 이후 인터넷 방송이라는 게 유행한다는 걸 알았다. 방구석에 앉아서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법 유혹적이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얼굴이 팔리면 위험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변장은 전부터 해왔으니까, 오히려 본 얼굴을 까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고민했다.
처음으로 방송을 켠 게 육 년 전. 얼굴에 맞지도 않는 뿔테 안경을 끼고, 머리를 길러서 귀를 덮고, 헐렁한 오버핏을 입어서 체형을 가렸다. 창문에는 커튼을 쳤다. 배달 음식이 오면 화면 밖에서 포장을 벗겼다. 집에 있는 접시에 음식을 옮겼다. 신상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만반의 주의를 기울였다.
방송은 즐거웠다. 불특정다수가 나를 보고 즐거워한다는 사실이 더할 수 없이 기뻤다. 몸에 엔도르핀이 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방송을 켰다. 지금과 같은 사이클이 정착된 건 겨우 사 년 전의 일. 그 즈음하여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아마 동영상 사이트의 알고리즘 덕이었으리라) 이젠 방송만 해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되었지만.
이상하게 조사 일을 관둘 수는 없었다. 쉬는 날이면 꼬박꼬박 일감을 받았다. 변장을 하고 뒷세계로 나섰다. 그 원동력이 대체 무엇일까, 스스로 고민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 일을 완전히 관둔다면 어딘가 허전할 것 같았다. 고작 그 정도의 감상이 멍하니 떠올랐다.
'왜 관둘 수 없는 거지......'
오늘도 침대에 누운 채 고민했지만, 역시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백도화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답장이 없네."
"응? 뭐가."
"오늘까지 컨펌 주기로 했는데, 답장이 없어."
"누가?"
"스트리머."
"하루 밀리면 큰일나?"
"나보단 저쪽이 큰일이겠지. 자칫하면 영상 올라가는 게 밀리니까."
"아~하, 썸네일!"
"맞아."
소나무는 오른손으로 타블렛 펜을 돌리다가, 이내 책상에 내려놓는다.
"휴방일이니까 쉬고 계시는 모양인데......"
진유신은 가만히 그 손을 내려다 본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다. 손가락 사이사이에는 가려진 굳은살이 있겠지.
"뭐, 밤까진 주시겠지. 밥 먹을까? 나가서 먹을래? 아니면 뭐라도 할까."
"나! 주민센터 앞에 새로 생긴 중국집 가 보고 싶어."
"중국집?"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너무 좋아서."
"웃기시네. 미간에 힘이나 풀어~"
"화면을 너무 오래 봐서 이래. 눈이 뻑뻑해."
"중화 요리는 기름기가 많으니까 눈도 촉촉해질 거야."
"왜 그렇게 되는데?"
"먹어 보면 알아!"
"그래, 그래......"
소나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민센터 근처의 상권을 떠올려 본다. 아, 그래. 분명 피자집이 사라지고 새로운 음식점이 들어온다고 했던가. 그 근처를 방문할 일이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중화 요리는 슬슬 질리려고 하지만서도......
외투를 챙겨 입었다. 유신은 이미 신발을 발에 쑤셔넣고 있다. 나무는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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