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타이 꿈 2

조각조각 by 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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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걸어둔 야마토의 손수건이 바람에 따라 살랑거렸다. 바닥에 누워 만화책을 읽던 타이치는 작은 천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다가 읽던 만화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과 옷에 튀었던 초코우유를 급하게 닦아내고 손수건을 다시 건넸을 때, 야마토는 그것을 받아들고 아직 젖지 않은 부분으로 제 뺨을 문질렀다. 아침부터 정신 못 차리네. 장난기인지 걱정인지 모를 것이 서린 목소리가 물처럼 깊었다. 타이치는 저도 모르게 빨아다 주겠다며 손수건을 뺏어 들었고 야마토는 허락처럼 빈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타이치는 손수건을 직접 세탁했다. 따뜻한 물을 받아 손으로 주물렀다. 푹 젖은 얇은 천은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찢어질 것처럼 연약하게만 느껴졌다. 비누로 거품을 내고 초코우유의 흔적이 모조리 빠질 때까지 타이치는 한참이나 손수건을 주물럭거렸다.

타이치는 아직도 그 꿈이 소화되지 않고 배 속 어딘가에 얹혀 있는 기분이었다. 손을 들어 배를 문지르면 안쪽에서부터 뭉그런 형태가 만져지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꿈에서 연인이 되었던 것도 우스운데 그 상대가 하필이면 야마토라니. 중학생 때는 왜인지 데면데면하다고 느꼈던 사이가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옆 반이 됐다는 이유로 한 발자국 풀어진 것처럼 느껴져서일지도 모른다. 중학생 때의 야마토는 지금보다 더 밴드 활동에 집중하느라 바빴기 때문인지 마주치기만 하면 늘 오랜만이었던 기분이었다. 당시의 야마토는 지금과 다르게 멋있었다. 무대에서는 반짝거렸고 어쩐지 홀가분해 보였다. 지금의 야마토가 멋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멋있었다는 거지. 지금의 야마토는 훨씬 날카롭고 같은 남자인 자신이 봐도 왕자님 같다는 말이 이해가 될 정도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람. 타이치는 얼굴을 가린 만화책을 위로 들어올리고 가볍게 제 뺨을 쳤다.

원래는 야마토와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았다. 처음 입학했을 때, 타이치는 그 특유의 붙임성으로 일찍이 친해진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야마토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한 건 입학으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네 친구들은 어디 갔냐는 말에 야마토는 알 바 아니지 않냐고 일축했다. 그 다음 날에도 야마토는 점심시간에 다른 친구들 사이에 앉으려던 자신을 끌고 왔고, 그 뒤로는 쭉 야마토와 같이 먹었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시합이 있던 날에는 시합에 대해 이야기했고, 시험이 있던 날에는 시험 내용에 관해 이야기했다. 공연이 있던 날에는, 야마토가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라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특별한 건 없었다. 가끔은 말이 없던 날도 있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다른 여학생이 야마토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식사를 끝냈는지 야마토에게 달려와 탄산을 건넸고 야마토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것을 받았다. 곧 있을 2학기 중간고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불퉁한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둘이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타이치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작아서가 아니라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여학생이 돌아가는 것을 빤히 보던 야마토는 그 모습이 사라지자 타이치의 앞으로 탄산을 밀어 건넸다. 타이치는 속이 보글보글 끓는 것 같아서 거절했다. 배가 아프다는 말에 야마토가 물었다.

“양호실 갈래?” 타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

오후 수업은 내내 집중이 되지 않았다. 타이치는 교과서에 의미 없이 밑줄을 긋다가, 책상 위로 엎드렸다가, 노트 끄트머리에 먹구름 같은 것을 그려보다가 결국 선생님에게 한마디 들었다. 죄송하다고 사과한 타이치에게 소라가 왜 그러냐며 입모양으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란 뜻으로 타이치는 고개를 저었지만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예상대로 소라가 물었다. 타이치는 다시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어.” 소라는 여전히 믿지 않는 표정이다.

“말하기 싫구나?”

“정말 아무 일도 없다니까.”

“아니면 많이 아픈 거야? 야마토가 그러던데.”

펜을 빙글빙글 돌리던 타이치는 그 말에 손장난을 멈추고 펜을 내려놨다. 걱정스러운 소라의 표정에 난감하게 웃었다.

“그거 비밀이었는데.” 소라가 한숨을 내쉬며 등을 툭 쳤다. “정말이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란 말이야. 양호실에 가. 선생님께는 내가 말씀 드릴게. 아픈 걸 참아 봤자……” 소라의 잔소리가 쉴 틈 없이 이어졌기에 타이치는 결국 그러겠다고 했다.

양호실 침대에 누워 공간을 나누는 하얀 천을 보자 야마토의 손수건이 생각났다.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나면 돌려주려고 했는데 아침에 책상 위에 두고 챙기지 않은 것 같았다. 타이치는 제 교복 바지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두고 온 게 맞겠지, 아마. 내일 돌려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타이치는 눈을 감고 옅은 잠에 빠져들었다. 야마토가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현실감이 없어서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옆에 야마토가 있었다. 침대 옆에 걸터앉아 휴대 전화를 보고 있었다. 타이치는 내심 ―사실 상당히― 놀랐지만 티 내지 않고 야마토의 이름을 불렀다. 야마토는 휴대 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시선을 내려다 봤다.

“깼네.”

“왜 여기 있어?”

“소라가 너 양호실 갔다고 해서. 오면 안 돼?”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야마토가 제 머리를 만지는 바람에 놀라 소리를 삼켰다. 야마토는 자신의 앞머리를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손을 뗐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킨 타이치는 야마토가 만졌던 곳을 괜히 다시 만지작거렸다.

“…… 고마워. 수업 일찍 끝났어?”

“응. 몸은 괜찮냐?”

“아무렇지도 않아. 그, 손수건은 내일 돌려줄게. 두고 온 것 같아.”

야마토가 파란 눈을 한 번 깜박이고 대꾸했다. “너 가져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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