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그아샤 Regasha

[레그아샤] 별똥별에 숨긴 소원

ⓒ유엘쓰(@Scarlet_Express)

* 본 글은 레귤러스 블랙이 호크룩스를 맡기 전으로, 레귤러스 블랙이 죽지 않는if 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레귤러스가 드림주와 함께 도망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충 드림 서사라는 뜻)

* 본 글은 레그아샤 500일 기념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별똥별에 숨긴 소원

ⓒ유엘쓰(@Scarlet_Express)

“아샤. 우리 도망칠까요? 아무도 우릴 모르는 곳으로?”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어서, 아이샤 트와일라잇은 농담하지 말라고 나무랄 수가 없었다. 그 목소리 만큼이나 제 손을 잡은 손도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저 말을 하기 위해 어떤 용기가 필요했을지 아이샤는 감히 짐작할 수 조차 없었다.

 

어쩌면 농담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녀가 아는 레귤러스 블랙이 이런 일로 농담할 위인이 못된다는 걸 안다. 친애하는 제 후배님이 가족을, 가문을 얼마나 아끼는지 다 아는데. 그걸 두고 간다는 선택지를 말하는 마음을, 어찌 농담이라 치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요. 몸은 저보다 컸으나 아직은 한참 어린 소년이 그렇게 울먹였다. 알고 있다. 자신을 지키겠다고 몇 번이고 저를 놓으려다 주저한 것을. 그럼에도 그가 자신을 놓지 않은 것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였으리라. 자신과의 약속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리라.

 

그래서 아이샤는 레귤러스의 손을 맞잡았다. 덜덜 떨면서도 제 손을 놓지 않은 그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었다. 손을 꼭 잡으며 다른 손으로 레귤러스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 다정한 손길에 레귤러스는 아이샤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제발 당신이 이 손을 놓지 않기를. 그리고 내가 놓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랐다.

 

그리고 이어진 아이샤의 대답에 레귤러스는 울고 싶어졌다.

 

“그래. 도망가자. 어디로 갈까?”

 

어차피 아이샤는 잃을 것이 많지 않았다. 가족과는 연을 끊은 지 오래였고 트와일라잇은 이미 거의 멸문되다 시피한 가문이었다. 친구인 자넷이 걱정되기는 했으나 포레스트 가문이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며 거기까지 마수가 뻗치진 않으리라. 게다가 오빠인 시온도 있지 않은가. 시온이라면 제 동생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아이샤에겐 레귤러스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없었다. 그거 아니, 레그?  난 너한테 이미 내 모든 걸 다 줬다는 걸. 이미 레귤러스 블랙이 아이샤의 전부라서 아이샤는 레귤러스와 함께 한다는 선택지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그게 어디든 너와 함께 할 거라고. 아이샤는 대답했고 레귤러스는 울음을 참으며 웃었다.

사실 레귤러스 블랙과 아이샤 트와일라잇을 모르는 곳으로 가려거든, 그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라곤 머글세계 밖에 없었다. 그걸 두 사람 다 알고 있었지만 크게 문제되는 일은 아니었다. 아이샤는 머글세계에 친숙했고 또 그들의 생활에 익숙했으며, 레귤러스는 아이샤와 도망칠 수 있다면 머글세계여도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레귤러스는 머글세계의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아이샤에게 맡겼다. 아이샤는 처음에 제 외할머니와 연이 있는 곳을 떠올렸으나 그곳은 금방 추적당할 것 같아 제법 오랫동안 고민했다. 끝내 정한 곳은 아이샤조차 정보가 적은 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미국에도 마법학교가 있다는 사실이 맘에 걸렸으나 미국에 아이샤의 지인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모습을 조금씩 바꾸기로 했다. 폴리주스는 한계가 있으니 머리색이나 눈동자색을 바꾸는 정도. 특히 누구보다 눈에 띄는 아이샤이기에 아이샤는 둘 다 바꿔야만 했다. 은발에 가까운 잿빛 머리는 흔한 갈색으로 바꾸었고 선명했던 황금색 눈동자는 탁한 호박색으로 바꾸었다. 레귤러스는 눈동자색만 고동색으로 바꾸었다.

짐도 단촐하게 챙겼다. 옷 몇 가지와 여차할 때 쓸 마법 약 몇 병,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 사진이 전부였다. 트와일라잇 가문이 머글세계에도 힘을 쏟고 있던 덕에 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필요한 것만 챙긴 것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아이샤가 먼저 움직였다. 미처 자넷에게 설명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으나 비밀로 하는 것이 더 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레귤러스와 약속 장소에서 조우했다. 리키 콜드런을 통해 나가려던 그들은 목격자를 남기지 말자는 생각에, 투명 망토를 사용하여 넘어갔다. 그 투명망토를 어디서 구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미국으로 갈 때는 비행기를 탔다. 여권은 아이샤가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고 돈도 트와일라잇 가문이 머글세계의 은행 금고에 쌓아둔 것을 조금 챙겨온 것이었다. 레귤러스는 새삼스레 아이샤의 준비성에 놀랐고 혹시 아이샤에게 머글세계로 떠날 생각이 있었나, 싶어 조금 불안해졌다.

멀리, 멀리. 그들은 정말 멀리 떠났다. 그 넓은 미국에서 마저도 사람이 널린 뉴욕을 피해, 우중충한 날씨로 사람이 비교적 적은 포크스에 도착했다. 좁은 동네라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눈에 띄는 이곳은 아이샤의 친척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웬디, 고마워요.”

“별 말씀을. 여기서부터는 너희 몫인 걸.”

웬디 이클립스는 스큅이었다. 그 사실이 누구보다 괴로웠을 웬디는 스스로 마법세계를 떠나 포크스에 정착했다. 제 부모님과 같은 금발 머리에도 괜찮았던 것은 웬디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두 사람은 꾸준히 편지를 주고 받아왔고 웬디는 흔쾌히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아이샤보다 고작 두 살 더 많을 웬디는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가 타고 온 차를 타고 다시 돌아갔다. 그렇게 남겨진 두 사람은 웬디가 그들을 위해 구해준 오두막을 바라보았다. 높은 산 봉우리 위에 있는 오두막은 시내와 거리가 멀어서 웬디가 추천한 곳이었다.

먼 미국이니 마법을 써도 안전하겠지만 마법부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두 사람은 마법 사용은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오두막은 지저분하기만 했지, 허름하거나 부실한 구석없이 튼튼했기 때문에 굳이 마법을 쓸 필요가 없었다.

거진 일주일을 거쳐 오두막 청소를 끝내고 나서야 두 사람은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사실 지금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나 우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겐 큰 안도를 안겨주었다. 특히 이 도주를 제안한 레귤러스로서는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아이샤가 작게 웃으며 레귤러스의 뺨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었다.

“두려운 거야, 기대되는 거야?”

“둘 다요. 근데 기대가 더 커요.”

아이샤랑 같이 살 수 있잖아요. 레귤러스의 말에 아이샤는 조용히 웃었다. 나도. 그래서 기뻐. 아이샤의 웃음에 레귤러스도 마주보며 웃었다. 예견된 두려움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이긴 순간이었다. 레귤러스가 아이샤를 끌어안으며 뺨에 입맞추자 아이샤가 웃으며 마주 안았다.

한참을 서로 끌어안고 있던 두 사람은 하늘이 어두워지자 정신을 차렸다. 정확히는 아이샤가 먼저 떨어졌고 그에 레귤러스가 아쉬워하며 하늘을 바라본 것이다. 금새 어두워진 하늘 위로 별이 수놓아지자 아이샤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이샤가 별을 좋아하는 걸 아는 레귤러스기는 아이샤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보니까 사다리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던데. 가서 구경할래요?”

“음… 그럴까…?”

아이샤의 대답에 레귤러스는 웃었고 아이샤와 함께 사다리를 올랐다. 지붕 위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별똥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별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아이샤가 레귤러스에게 속삭였다. 레그, 우리 소원 빌까? 소원이요?

머글세계에는 떨어지는 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다. 아이샤의 얘기를 들은 레귤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원을 빌기 위해 아이샤가 눈을 감자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지은 것은 덤이었다. 아이샤의 모습을 단 한 순간도 놓치기 싫었는지 그는 아이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샤가 소원을 빌고 나서 눈을 떴을 때에도 마찬가지여서 아이샤가 귀를 붉히며 레귤러스의 눈을 가렸다. 그 모든 행동이 귀여워 레귤러스는 오늘도 아이샤에게 입맞췄다. 레그, 그만. 왜요. 조금만 더 해요, 응? …그, 그치만 낮에도 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알잖아요.

아이샤는 레귤러스를 이기는 법이 없었다. 결국 얌전히 레귤러스의 품에 안겨있는 것으로 합의를 본 아이샤는 레귤러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소원 빌었어?”

“아이샤랑 이렇게 평생 같이 살게 해주세요, 라고요.”

“정말? 그렇게 빌었어?”

“정말이죠. 아이샤한텐 거짓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그 말에 아이샤가 미소지었다. 제 후배님은 정말 약속을 잘 지키는 아이였다. 아샤는요? 레귤러스의 물음에 아이샤는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올렸다. 비밀이야. 그런 게 어딨어요. 레귤러스가 알려달라며 간지렵혀도 아이샤는 얘기해주지 않았다. 이럴 때 아이샤의 고집은 누구도 못 꺾는다는 것을 아는 레귤러스가 포기를 선언했다.

“알았어요. 안 물어볼게요. 대신 늦었으니까 이제 자요.”

“응, 그러자. 내려가야지.”

그렇게 두 사람은 정리가 끝난 오두막에서 서로를 품에 안고 잠들었다. 그 날, 아이샤가 무슨 소원을 빌었냐면.

부디 레귤러스가 다치지도, 죽지도 않게 해주세요.

아이샤는 별똥별에 소원을 숨겼다. 부디 별이 그들을 가엽게 여기시어, 소원을 들어주길 바라며.


그들이 포크스로 온 지도 어연 두 달이 지났다. 처음엔 어색해하고 삐걱대던 레귤러스는 아이샤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머글의 생활에 적응해갔다. 요리는 아이샤가 담당했고 그 외에 힘 쓰는 일에 레귤러스가 나섰다. 두 사람은 이따금 시내에 사는 웬디의 초대를 받아 식사하러 나서기도 했으며 웬디에게 영국 소식을 전해듣기도 했다.

오늘도 웬디에게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고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아이샤였다. 레귤러스와의 행복한 동거와는 별개로 아이샤는 늘 기민하게 주변을 살피며 살아왔고 그 기민함이 낯선 존재를 잡아낸 것이다.

아이샤는 레귤러스의 팔에 팔짱을 꼈다. 부끄러움 많은 아이샤가 이런 행동을 할 리는 절대 없음으로 레귤러스 또한 상황을 인지했다. 웬디의 집에서 나올 때부터 따라온 것으로 보아해선 오두막 위치까지는 모르는 듯 했다. 아이샤와 레귤러스가 시선을 주고 받음과 동시에 돌아섰다.

아이샤는 주변을 살폈고 레귤러스는 뒤따라온 존재에게 기절 주문을 날렸다. 상대가 기절하고 두 사람이 뛰기 시작할 때까지 군더더기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장 오두막으로 돌아가 옷을 환복하고 짐을 챙겼다. 마법부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기절 주문을 외울 때는 마법부의 추적에 대해선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글쎄요. 확실한 건 블랙 가도 마법부도 다 우릴 찾고 있단 사실이죠.”

“…응. 그러네.”

“사촌 분은 괜찮으실까요?”

“응. 웬디는 걱정 마.”

웬디의 안부까지 확인하고 나서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할 때, 항상 용기를 내는 건 아이샤였다. 아이샤는 늘 그랬다. 그렇게 눈부셨고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가 어디로,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아이샤-”

“레그. 우리는 왜 도망쳤어?”

누굴 비난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아이샤 트와일라잇이 그럴 리가 없지. 그래서 레귤러스는 걸음을 멈췄다. 아이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눈치챘기 때문에. 그들이 죄인인가? 아니지.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데. 그럼, 왜 도망치고 있지? 무엇이 두려워서?

“레그. 너랑 사는 건 정말 행복했고 내 최고의 행복일 거야.”

“아이샤…”

“근데 난 도망치는 것만 하고 싶지 않아. 난 늘 도망치는 선택을 했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아.”

아이샤는 겁이 많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여전히 두렵다. 외할머니의 죽음은 아이샤에게 트라우마가 되었고 그래서 떨어지는 별에게 빌었다. 레귤러스마저 데려가지 말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샤는 이번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짧은 동거가 아니라 너와 함께 살고 싶어.”

“아이샤.”

“그래서 도망치고 싶지 않아. 살고 싶으니까. 살아서 같이 살고 싶으니까. …그러면 안 될까?”

아이샤가 처음으로 말하는 욕심이었다. 아이샤는 원체 욕심이 없는 사람이며 그녀의 특이한 가정사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레귤러스와 사귀는 것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가. 늘 바라는 것이 없다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욕심을 말한다. 늘 다 놓아버릴 듯 굴던 사람이 살고 싶다고 한다. 그걸 어찌 안된다고 말할 수 있겠어.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그 말을 기다린 사람이 그일 텐데.

“왜 안되겠어요. 내가 그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레귤러스가 지팡이를 고쳐잡았다.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숫자가 많았다. 아무래도 제 부모님이 이를 가신 모양이다. 레귤러스의 빈 손이 아이샤의 빈 손을 감싸잡았다. 서로의 손으로 느껴지는 온기가 그에게도 용기를 나눠주는 것만 같았다.

점점 인기척이 가까워질 수록 레귤러스의 손위귀에 힘이 들어갔다. 이대로 아이샤를 잃을 순 없어. 레귤러스의 욕심은 아이샤의 욕심을 들어주는 것이었기에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마법부 오러들과 죽음을 먹는 자. 서로가 서로를 보고 당황한 사이, 아이샤가 수차례 심호흡했다.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고 서로를 살피는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레귤러스의 약점이 곧 아이샤였으므로 그들의 목적이 아이샤인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그 사실을 아이샤도 알고 있었기에 수없이 고민하고 각오했다. 다른 누군가를 죽일 용기는 없지만 팔다리를 망가트릴 용기까지는 벌기 위해서.

“크루시오!”

누구의 선창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게 시작이었음은 분명하다. 녹색 빛이 이리저리 날라오는 상황해서도 둘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이샤는 침착하게 눈 앞의 적들부터 기절시켰고 레귤러스는 아이샤를 공격하는 죽먹자를 상대했다. 상대가 간과한 것은 아이샤가 나약한 사람이 아니란 것이었다.

비록 아이샤의 체력이 적긴 하지만 아이샤의 마법 실력은 덤블도어가 인정했을 정도로 좋았고 실패 확률이 극히 적었다. 치료 마법은 물론이오, 상대를 기절시키거나 공격하는 것에도 빈틈이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수적으로 불리했다 한들, 두 사람을 완벽히 이기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적이 하나둘 씩 쓰러질 때마다 두 사람에게도 자잘한 상처가 하나씩 늘어났다. 대부분이 주문이 스친 상처였다. 입은 옷에 피가 튀어도 아이샤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레귤러스와 살아 돌아가겠다는 집념이 두려움과 망설임을 이겨낸 것이다.

마지막 한 명까지 쓰러진 순간, 아이샤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숨을 몰아내쉬는 것을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친 모양이다. 그러나 아이샤가 손은 놓지 않았기에 레귤러스도 그 옆에 기대 앉았다.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서로의 손은 절대 놓지 않았다. 레귤러스가 고개를 들자 어두워진 하늘이 보였다.

그 날과 같이 하늘은 어둡고 별이 찬란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별똥별이 떨어졌다. 사방이 쓰러진 사람 투성이인 이곳과 어울리는 풍경은 아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귤러스가 그동안 묻지 못했던 것을 물었다. 아이샤. 그 날 소원 말이에요. 혹시 내가 죽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나요? 아이샤는 웃었다. 아니.

우리가 계속 사랑하게 해달라고 빌었어.

저멀리서 두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라도 대답을 해주면 참 좋겠다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에겐 대답해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미안해요, 대답해주진 못할 거 같아요. 그래도 찾으러 와줘서 고마워요, 모두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삼킨 채, 아이샤가 수마 속으로 잠겨들었다.

“아이샤!”

“블랙! 트와일라잇!”

“아이샤 선배!”

“작은 블랙!”

“스텔라!”

“레귤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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