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그아샤] 레귤러스 블랙이 약혼을 했다
ⓒ현(@Hyeon_Sev) 님 커미션
레귤러스 블랙이 약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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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귤러스 블랙이 약혼을 했다.
작은 소문은 금새 큰 화마가 되어 호그와트를 덮쳤다. 어딜 가든 블랙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가문끼리 선사된 약혼이다, 아니다 상대 가문에서 여자를 블랙 가문에 바친 거다, 아니다 레귤러스 블랙이 여자를 너무 좋아해 청혼했다더라. 실체없는 소문은 무서우리만치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아이샤가 그 소문을 듣게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걱정스레 자신을 살피는 친구에게 아이샤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보였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양.
당연히 레귤러스 또한 소문을 접했다. 소문을 접한 레귤러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가문에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자신은 그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지만, 가문은 자신에게 일말의 언질도 없이 약혼을 성사시키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레귤러스는 평소답지 않게 어느정도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실제로 약혼이 이뤄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이샤를 포기할 생각따위는 없었지만 아이샤와 둘이 편안하게 연애를 하고, 더 나아가 결혼을 하기까지에도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다행히 가문은 금방 답장을 보내왔다. 상대 가문의 수준은 블랙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약혼은 어불성설이라는 내용이었다. 레귤러스는 안심한 한 편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아이샤의 가문 또한 블랙의 눈에 절대 성에 차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고비는 넘긴 셈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이제 묘한 기대감이 싹텄다. 분명 아이샤와 저는 충분히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들린 약혼 소식이다. 이번에야말로 아이샤가 먼저 자신에게 한 걸음 다가와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었다. 아이샤는 레귤러스가 두 걸음 다가가야 간신히 한 걸음 가까워지는 존재였다. 레귤러스는 그런 아이샤가 언젠간 먼저 한 걸음 다가와주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욕심은 욕심일 뿐이었다. 상황은 더욱 안 좋게만 흘러갔다. 아이샤는 대놓고 레귤러스를 피해다녔다. 설상가상으로 레귤러스가 아이샤를 버렸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마음같아서는 그따위 헛소문을 퍼트린 학생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밟아버리고 싶기까지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소문이 난 여자 아이는 오히려 소문을 긍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소문을 등에 엎고 친한 척 레귤러스의 곁에 다가오기까지 했다. 역겨움을 간신히 참으며 웃으며 그 아이를 밀어낼 때, 레귤러스는 자신을 보고 돌아서서 멀어지는 아이샤의 뒷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급히 달려가 아이샤를 찾았지만 어디로 사라진 건지 레귤러스는 아이샤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아이샤는 피하고, 레귤러스는 쫓는 날들. 레귤러스는 속이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으나 조급해지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소문의 중심이 된 건 자신이었다. 아이샤로서도 속상했을 거고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먼저 다가와 자신이 좋다고, 그런 소문이 나서 속상했노라고 말해준다면,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아이샤라고. 오직 아이샤만 사랑한다고 말해줄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그건 자신만의 욕심이었다. 아이샤도 당황스럽고 힘들 거라고, 그래서 잠시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이라고, 레귤러스는 자신을 타이르고 또 타일렀다.
“아이샤, 이제 갈 곳 없죠? 나랑 얘기 좀 해요.”
아무리 스스로를 타일렀다고 한들 레귤러스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다달아 있었다. 레귤러스는 수업까지 빠지고 아이샤의 강의실 앞에서 아이샤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아이샤와 대화를 나눠야겠다는 집념이었다. 아이샤는 당황한 표정이었으나 차마 레귤러스 앞에서 대놓고 도망가지는 못 했다.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샤는.
“무슨 일이야, 후배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히 던진 그 말에 레귤러스는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걸 느꼈다. 가타부타 말도 덧붙이지 않고 아이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이샤의 당황하면서도 고통에 찬 소리도, 주변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도 지금의 레귤러스에겐 들리지 않았다. 아이샤가 내뱉은 ‘후배님’ 그 한 단어만이 레귤러스의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지금껏 아이샤와 보낸 시간들이 다 거짓말처럼 변하는 것 같은 한 단어였다. 아이샤에게서 레귤러스, 아니 블랙이라는 이름을 듣기까지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가. 처음 아이샤가 이름을 불러주었던 시간이 떠오르니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함께한 모든 시간들을 아이샤가 나서서 부정하는 기분이었다. 학생들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레귤러스가 아이샤를 놓아주었다. 아이샤가 보기 드문 당황한 모습으로 제 손목을 매만졌다. 아이샤가 아는 레귤러스는 배려심이 깊은 아이었다. 언제나 본인보다도 자신을 우선적으로 살피던 아이었다. 그런 레귤러스가 아프다는 자신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힘으로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왔다는 사실은 아이샤에게도 충격이었다.
“후배님, 대체 무슨...”
“그만! 후배님 소리 좀 안 하면 안 돼요? 지금 나한테 선 긋는 거에요? 레귤러스, 레그. 이름 잘만 불러놓고 이제와서 왜 후배님이에요?”
“나는 그냥, 네가 불편할까봐..”
“하, 내가 불편할까봐? 내가 언제 아이샤한테 이름 부르지 말라고 한 적 있어요? 내 이름 불러주기 전에도 몇 번이나 이름 불러달라고 말했잖아요. 그래놓고도 한참이나 후배님이라고 부르다 간신히 이름으로 부르나 싶더니 다시 후배님? 나한테 선 긋는 거에요, 지금?”
레귤러스는 스스로도 자신이 이렇게 말을 많이 빨리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놀랐다. 당황하고 어딘가 겁먹은 듯한 아이샤의 표정에 이제 멈춰야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멈출수 없었다. 자신을 후배님이라 부르는 아이샤를 절대로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또 다시 서로 선배와 후배일 뿐이던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레귤러스는 그저 차오르는 분노를 다스리기 힘들었다.
“...당연히 선 그어야지. 너 약혼했다며.”
“그걸 믿어요? 아니, 믿기 전에 저한테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생기면 당연히 대화를 해야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 생각한 거에요?”
“내가 뭐라고 너한테 그런 걸 물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요.”
그렇게 말하는 레귤러스의 눈동자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샤마저도 그 말을 그저 믿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레귤러스는 블랙이었고, 누구보다 빛났으며, 자신보다 훨씬 잘난 사람과 약혼까지 한 몸이었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쉽게 넘어가 또 다시 상처받을 생각은 없었다.
“약혼까지 했으면서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약혼한 적 없어요. 제가 나서서 그런적은 당연히 절대 없고, 가문에서도 아니라고 답변 받았어요. 자, 봐요. 이래도 안 믿어줄 거에요?”
레귤러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내보였다. 약혼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적힌 서신의 말미에는 블랙가의 가주를 상징하는 문장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샤가 보기에도 약혼에 관해서는 레귤러스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제 알았어요? 저 약혼같은 거 한 적 없어요. 할 생각도 없고요. 내가 만약 약혼을 하게된다면, 그건 아이샤 당신하고 하는 걸 거에요.”
“...후배님.”
“제발, 후배님이라고 부르지 좀 마요. 왜 자꾸 나한테서 멀어지려고 해요? 좋아한다고요. 나 아이샤 정말 많이 좋아해요, 아니 사랑해요. 아이샤도 그런 거 아니었어요?”
“나는, 블랙, 너랑 달라. 너랑 어울리는 상대도 아니고.”
“그걸 왜 아이샤가 단정지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나랑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다르다고요?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어요. 나는 아이샤가 나랑 다른 그 모든 것까지도 좋아해요.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정말, 내 말 안 들어줄 거에요?”
절절하기까지 한 레귤러스의 말은 굳게 닫히 아이샤의 마음까지도 흔들었다. 도저히 진심이 아니라고 믿기 힘든 절박한 목소리였다. 동시에 진심이라고 믿는 것도 어려웠다. 도대체 레귤러스가 왜 나를, 설마 나를, 하는 의심들이 끊임없이 아이샤의 발목을 잡았다. 나를 좋아하고 끝까지 내 곁에 남아줄 사람은 없다던 절대적인 아이샤의 명제가 흔들리고 있었다.
“...진짜 너무하네. 약혼 소식이 없었어도, 아이샤는 그냥 나를 두고 졸업할 생각이었어요?”
“블랙.”
“나는 절대 그럴 생각 없었어요. 절대 이렇게 애매한 관계로 아이샤를 졸업하게 둘 생각 없었다고요. 어떻게할까요, 내가. 어떻게하면 아이샤도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줄래요? 대체 어떻게 하면, 내 옆에 있어줄래요?”
“널 못 믿는 게 아니야, 레그. 믿어. 너는 거짓말 같은 거 할 애가 아니라는 거. 내가 못 믿는 건.. 나야. 누군가 내 옆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누군가 나만을 사랑해줄 수 있다는 걸, 내가 그걸 믿지 못 하는 거야.”
이 한 마디를 하기까지도 아이샤에게는 너무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더 이상 레귤러스를 밀어내기만 할 수도 없었다. 진심을 다해오는 상대에게, 자신 또한 자신의 진심을 전달해줘야만 했다.
“내가 옆에서 증명할게요.”
“...어떻게?”
“온 몸으로, 모든 행동과 말로, 절대 아이샤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증명할게요. 내가 좋아하는 건 아이샤 하나 뿐이라는 걸, 내 모든 걸 걸고 보여줄게요. 그러니까 한 번만, 한 걸음만 나한테 와주면 안 돼요?”
레귤러스가 절절한 표정으로 아이샤를 바라보며 팔을 벌렸다. 모든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레귤러스의 말에도 아이샤에게 그 한 걸음은 너무도 무거웠다. 믿어도 될까. 정말 날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있어줄까. 아이샤는 한참을 고민했고 레귤러스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그 시간동안 레귤러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절절하지만 진심을 가득 담은 굳건한 눈빛. 자신에게서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그 눈빛이 결국 아이샤를 움직였다. 아이샤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다가 레귤러스의 품에 안겼다. 레귤러스는 그런 아이샤를 놓칠 새라 있는 힘을 다해 껴안았다.
“평생 사랑할게요. 약속 꼭 지킬게요. 어디에도 가지 않고 아이샤만 바라볼게요. 사랑해요.”
“나도, 나도 사랑해, 레그.”
아이샤는 이제 믿고 싶었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언제까지고 제 곁에 있어주리라는 걸. 레귤러스 또한 다짐했다. 언제까지고 아이샤의 곁에 있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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