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그아샤 Regasha

[레그아샤] 레귤러스 블랙의 결혼식

ⓒ현(@Hyeon_Sev) 님 커미션

* 레귤러스 블랙 약혼 소동 썰 기반.

레귤러스 블랙의 결혼식

ⓒ현(@Hyeon_Sev) 님 CM

그 어떤 축제와 비교해도 더 화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결혼식이었다. 당연했다. 블랙 가의 차남 레귤러스 블랙의 결혼식이었으니까. 그의 형 시리우스 블랙이 집안에서 받는 대접을 생각 해보자면, 블랙 가의 외동아들이라 표현해도 과장이 없는 레귤러스였다. 그런 그의 결혼식은 성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호그와트를 졸업한 어린 나이었음에도 레귤러스를 축하하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몰렸 다. 오리온과 발부르가도 평소라면 그들의 출신 성분을 따져 깐깐하게 출입을 통제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들의 소중한 아들의 결혼식을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준다는 것에 만족했다.

 

레귤러스는 웃는 낯으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레귤러스를 아는 이들은 그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레귤러스를 잘 아는 이들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실수를 하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조용히 레귤 러스에게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형식적인 인사가 수백번 쯤 오갔을까, 레귤러스는 간신히 그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식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 레귤러스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곧 웨딩 로드를 걸어야 할 시간이었다.

 

신부는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레귤러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레귤러스의 표정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레귤러스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고 싶었다. 답답한 턱시도를 벗어던지고 얼굴에 뒤집어 쓴 가면도 내팽개치고 싶었다. 하지만 블랙이라는 이름이 그를 묶어두었다. 레귤러스는 언제나 레귤러스일 수 없었다. 평생을 레귤러 스 블랙으로 살아온 것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레귤러스가 마지 못 해 내민 손을 신부가 기쁘게 마주 잡았다. 레귤러스는 하객들을 맞이하며 지은 거짓된 미소마저 지운 상태였다. 그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 거지같은 연극을 끝내고 싶었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이 성대한 축복의 축제 속에서, 오직 당사자만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대한 축제 속, 차분한 옷을 차려입은 아이샤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기 직전이었다. 아이샤를 알아본 호그와트 출신 아이들 몇몇이 자기들끼리 소근댔다. 레귤러스와 아이샤의 관계를 모르는 호그와트 학생은 없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아이샤가 레귤러스의 결혼식에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몇몇 아이들이 용기있게 아이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샤는 늘 그랬 듯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도무지 예전 남자친구의 결혼식에 온 예전 여자친구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호그와트 출신 아이들이 아이샤 근처로 모여들었다. 아이샤는 조금 당황했으나 학창시절에 그랬 듯 친절하게 아이들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아이샤를 알게 모르게 동경하고 그리워하던 아이들이 신나서 조잘거리 는 동안, 사회자가 신랑, 신부의 입장을 알렸다. 모두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며 끝나고 볼 것을 약속하며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웃으며 그들을 상대한 아이샤가 조용히 맨 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레귤러스와 신부가 나란히 웨딩 로드를 걸어나왔다. 아이샤는 부러 정면만 응시했다. 차마 신부와 손을 잡고 있는 레귤러스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레귤러스와 신부가 천천히 걸어서 아이샤를 지나쳤다. 레귤러스의 뒷모습이 아이샤의 눈에 담겼다. 레귤러스는 지금 웃고 있을까? 알 수 없었다. 알 자신도 없었다.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 는 레귤러스를 본다면 울어버리고 말 것 같았다.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남의 결혼식장 에 와서 우는 여자라니, 최악이었다. 아이샤는 레귤러스에게 그렇게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진심을 담아 레귤러스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온 자리었다. 그렇기에 아이샤는 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우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괴로워하는 것도, 모두 이 결혼식장에 들어오기 전에 끝내놓았다. 앞으로 자신이 할 일은 웃으며 축하해 주는 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비겁하게 레귤러스를 마주볼 자신이 없어 입장 시간이 끝날 때가 다 되어서야 결혼식장에 온 아이샤였다. 스스로의 모순에 스스로가 한없이 못나 보였다. 그런 생각들을 하자 어느새 결혼식은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레귤러스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신부 의 손에 결혼 반지를 끼워주고 있었다. 레귤러스의 표정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 던 아이샤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아무런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레귤러스가 어떤 마음으로 저 자리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행복해하고 있을까? 감정이 너무 벅차올라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아니면, 혹시, 만에 하나라도, 자신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주진 않을 까. 마지막 생각에 아이샤가 자조섞인 미소를 지었다. 레귤러스의 행복을 축하해주기 위해 결혼식장까지 와놓고 마지막 미련을 버리지 못 하는 스스로가 멍청하기 그지 없었다. 하긴, 그러니 레귤러스도 자신을 떠났을 터였다. 멍청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

 

결혼식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신부의 손을 잡은 레귤러스가 하객들을 바라보고 섰다. 곧 웅장한 음악이 울려퍼지고 레귤러스와 신부가 나란히 웨딩 로드를 걸어나갔다. 사람 들이 꽃가루를 뿌리고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했다. 레귤러스는 예의 그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일일이 화답했다. 레귤러스와 신부의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샤는 마 지막 용기를 쥐어짜내 웨딩 로드 가까이에 섰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지막 쪽인지라 아직 레귤 러스와의 거리는 멀었다. 아이샤가 떨리는 눈으로 가까워지는 레귤러스를 바라보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던 레귤러스의 시선이 마침내 아이샤에게 닿았다. 아이샤를 발견한 레귤 러스의 눈이 놀라 커졌다. 오늘 처음으로 내비치는 레귤러스의 솔직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아이샤는 살풋 미소지었다. 오늘 처음으로 내비치는 아이샤의 진심어린 미소였다. 레귤러스의 귀에 순간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을 축복하는 인사말도, 장내가 떠나가라 울려퍼지는 박수소리도. 오로지 아이샤만이 레귤러스의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걸음을 멈춘 레귤러스에 당황한 신부가 레귤러스의 맞잡은 손을 살짝 당겼다. 하지만 레귤러스에겐 그것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하루 블랙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 도 블랙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아이샤에게 달려가 아이샤를 품에 안고 싶었다. 아이샤도 자 신과 같은 심정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이라도, 지금 이 순간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 이샤가 자신을 불러주기만 한다면, 자신은 모든 걸 던지고 아이샤에게 달려갈 수 있었다. 레귤러스와 아이샤의 시선이 오래토록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샤의 입술이 열렸다.

 

‘행.복.해.’

 

입모양으로 말을 전한 아이샤가 미련없이 등을 돌려 식장을 떠났다. 아이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레귤러스는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이샤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혼자만의 마음이 아니라 믿었다. 그랬기에 평생 자신을 옭매던 블랙이라는 이름을 아이샤를 발견한 단 한 순간에 내려놓을 마음까지도 가질 수 있었 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아이샤는 레귤러스에게 다가와주지 않았다.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둘이 함께 나눴다고 생각한 마음은 사실 혼자만의 일방적인 바람이었을까. 어쩌면 이제 평생 알지 못 하게될 질문을 홀로 떠올린 레귤러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레귤러스에 소란스러움이 식장을 뒤덮었다. 신부 또한 놀라 레귤러스의 눈치를 살폈 다. 오리온과 발부르가가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든 게 레귤러스의 눈에, 귀 에, 닿지 않았다. 레귤러스는 한참이나 아이샤가 나간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눈물을 멈춘 레귤러스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행복하겠습니다. 그 누구보다 더.”

 

레귤러스의 한 마디는 그의 눈물을 절절한 사랑으로 포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전보다 더한 박 수소리와 함성이 결혼식장을 덮쳤다. 신부 또한 붉게 물든 얼굴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많은 사람 속에서 레귤러스는 오직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결혼식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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