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영

길 잃은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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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을 태울 때 나는 어땠는지. 그들의 시신을 태울 때 나는 어땠는지. 그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막연히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는 직감만이 나를 잡아 이끌었을 뿐이었다. 누군가 돌아올 거란 희망을 품은 적은 없었다. 거짓말이었다. 당신들을 사랑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당신들이 그립지 아니하지 아니한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 사랑은 쓰디쓴 것이었다. 타고 남은 잿더미를 코를 막고 나서야 겨우 삼킬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신들의 온정은 따스했지만 나는 그것을 쥘 수 없었다. 그것들은 언제고 떠날 수 있는 것이었다. 작별 없이 맞이하는 이별엔 익숙했다. 익숙했지만 완전히 무감해지진 못한 것이었다. 괜찮다 말하자면 결국 한 번은 밟히게 되는 것이었고, 미처 치우지 못한 유릿가루처럼 살갗을 뚫고 들어오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제야 당신들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아무것도 가져본 적이 없던 내가. 닫힌 빗장 아래에 끼인 손가락을 무던히 바라보기만 하던 나를. 진정으로 무언가를 가져보았을 땐 그것이 너무도 버겁고 두려워 손에 쥐어보지 못했다. 한 번도 제대로 쥐어본 적 없던 것은 결국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도 쥐지 않고 가만히 보는 것. 당신들을 통해서 세상을 엿볼 수 있는 따스한 톤의 색안경을 빌릴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지하의 것 이상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저 높은 세상에 내 몸을 더럽히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버거웠다. 내게 한 번도 비치지 않았던 햇살이 지상엔 그렇게 쉽게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싶지 않았다. 종종 숨을 참는 일이 많아졌다. 죽음은 쉽지만 간단하게 찾아오진 않는다. 사람의 몸에 갇혀있는 한, 자신의 의지로 취할 수 있는 죽음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 이상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를 무릎 꿇리고 꺾어 넘어트리는 것이 있어도 덤덤해졌다. 풍랑의 바람 앞에서 덫 하나 없이 나부끼고 흔들리는 돛단배였다. 나아가지 못하고 한 곳에서 출렁이기만 하는 배였다. 선장도 항해사도 없이 그저 떠 있기만 하는 것이 고작인 나룻배였다. 이제 곧 몰아쳐 오는 폭풍과 거대한 파도 앞에 부스러질 조각배.

경쟁하지 않고 식탁에 앉을 수 있었을 때, 처음으로 눈치 보지 않고 식사를 마칠 수 있었을 때, 당신의 손과 함께 축음기 다루는 법을 배웠을 때,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이 처음 생겼을 때, 그곳을 직접 가꾸고 정돈하는 법을 배웠을 때, 계절의 변화가 더는 춥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게 되었을 때, 잔디깎이 쓰는 법을 처음 배웠을 때, 면도기 쓰는 법을 배우다 베인 상처에 약을 발라주던 손길을 느낄 때, 내 손으로 처음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을 때, 책에 종이를 베여 보았을 때, 더는 주변 소리에 놀라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되었을 때, 내 표정만 보고 손을 잡아주던 당신의 눈을 보았을 때, 내 귀를 붙잡고 안에 든 지저분한 귀지를 파주던 당신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 당신들과 함께 있을 때 의식하지 않고도 웃게 되는 나를 알게 되었을 때…….

그 집에 있던 나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던 나를 받아들여 준 당신들을 사랑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너무도, 늦어버렸다.

당신들을 잃게 한 것들을 모두 없애는 것만이. 내가 받은 것들을 돌려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쓴다.

많이 고마웠고, 아파했다고.

너무 늦지 않게 가겠다고.

사랑했음을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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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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