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sunrise

죄악과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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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사건 묘사, 아동 성폭력 간접 표현, 다량의 유혈, 시신 표현, 살해, 자살 언급 등이 들어간 글이니 열람에 주의 부탁드립니다.

2023-03-15, AM 03:23

천근 같은 몸을 이끌고 다시금 마귀 사냥 활동을 시작한 건 사람들이 모두 잠든 뒤였다. 제 육신을 갈아 만든 평화를 누리는 인간들이 고깝거나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 안도한다. 내 행동이 헛된 발버둥만은 아님을 느낀다.

로튼 애플, 썩어버린 사과와 그를 좀 먹고 있는 구더기떼들. 그런 놈들밖에 남지 않은 곳이었다. 어쩌면 이미 사과는 모두 파먹혀 구더기들끼리 서로 파먹고 있는지도 모르지. 부자들은 진작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뉴욕을 뜬 뒤 돌아오지 않았고. 남은 것은 빈자들뿐이었다. 가난한 자, 눌린 자, 소외된 자, 우는 자.¹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지 못해 남의 힘에 기대어 비루한 생을 연명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의도치 않게 발생한 모멸감에 자의식을 제거해야만 했던 자들이 이곳에 남아있다. 나 역시 그런 것에 익숙했다. 그렇기에 힘을 가진 네피림을 질투하고, 끝내 갈망하던 가짜 힘에 취해 잡아먹힌 이들을 보면서 비애를 느꼈다. 네피림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자폭하러 달려드는 인간들을 보면서도 억울하다는 생각 한번 들지 않았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당연하였다. 수치심을 지닌 인간인 이상, 남에게 의존하기만 하는 상황에 안주하는 것은 부끄러웠을 것이다. 또 자기 몸을 스스로 지킬 힘에 대해 갈망하게 되는 것 역시 당연했다. 약자라고 늘 약자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 가진 것 없고 힘이 없는 자들이기에. 쉽게 유혹에 흔들리고 저항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지녀야 할 원죄에 가까웠다. 광기에 차 웃음을 터트리는 목소리나 후회된다며 뒤늦은 회한에 잠기는 이들이 가지는 감정의 결은 한가지처럼 보였다. 자기에게 선택권은 없었다는 비참함. 자기 의지로 이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열등감을 부른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종류의 감정에 대해… 지독할 정도로 많은 것을 겪어왔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조금이라도 더 피하려면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라며 종용하던 놈들 앞에서 몸을 웅크려야 했다. 저들끼리 낄낄대며 너, 저 새끼 한 대 때려. 이러던 놈들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또 다른 피해자였던 그 아이에게 먼저 주먹을 휘두르기보다는. 차라리 나를 때리고 네가 편해지라며 뺨을 내어주는 것을 잘했다. 그러면 좀 더 줄어들겠지.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금방 그만두겠지. 하지만 그런 고고한 모습이 무언갈 자극한 것인지. 두 형제는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더욱 거칠고 강한 것을 요구했다. 원치 않게 주먹을 휘두르게 된 아이들의 미안해하는 표정이나. 종래엔 당연히 네가 맞아야지 않겠느냐며 쳐다보는 시선 속에서 나는…. 나는 무엇을 느꼈어야 했을까. 그들을 미워했어야 했나? 내가 미워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데? 그만하라고 말해봐야 그들이 느끼게 된 감정은 여전하고, 나 역시 여전히…. 남들의 손에 끌려다녀야 했을진대. 거기에 겪게 된 대부분의 성인 역시 내겐 별다를 바 없는 악의로 가득 찬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남을 짓밟는 것으로 삶의 쾌락과 만족감을 얻는 듯했다. 두들겨 맞는 건 예삿일에, 성적 학대를 겪는 다른 아이를 지켜보게 시키거나, 물고문하거나, 엄동설한에 내쫓거나, 지하실에 가둬두고……. 그런 환경 속에서 키울 수 있는 건 분노보다는 무력감에 가까웠다. 18살이 되도록 크리스마스도 추수감사절도 생일도 없었다. 웃음소리를 내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또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숨을 죽인 채 하루하루 제대로 눈 감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시리얼은 지금까지도 보기만 해도 구토감이 올라오는 수준이었다. 누군가에겐 마약이나 술이 마취제가 될 수 있겠지만, 내게는 내 삶 자체가 마취제고 진정제였다.

한때 죽음을 기도하기도 했다. 교도소에 들어가도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약은 주더라. 그런 것을 먹지 않고 하나씩 모아서 한 움큼 정도가 되었을 때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억지로 삼키려는데 목구멍에 걸린 것인지 통 들어가질 않아서. 가슴을 퍽퍽 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다 게워냈다. 지독하게 날 괴롭혔던 두 형제 녀석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겁쟁이 새끼, 주먹질 한 번 못하더니 이젠 죽는 것도 못하네.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안 난다. 자살 시도를 한 번 더 하게 되면 다시 그 목소리를 듣게 될까 봐. 그 뒤에 다시 시도해보진 못했으니.


―덜컹, 오토바이 전륜이 들썩이며 하마터면 그대로 가드레일에 처박힐 뻔했다. 염병. 요즘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됐더니. 급하게 핸들을 꺾어 급제속을 걸고 겨우 넘어지는 걸 면했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숨을 고른다. 아스팔트 길 위에 길게 상흔처럼 남은 자신의 보며 제 헬멧을 턱턱 쳤다. 정신 차려.

대신해서 오늘 가게 된 곳은 엔젤 더스트가 풀리는 유통망 중 하나인 마약상들의 은거지였다. 직접 내부 상황을 보기 전까진 추측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택가 한가운데에서 뻔뻔하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건 역시 마약에 절인 미친놈들밖에 없다. 목재로 지어진 낡은 주택 앞에 오토바이를 세워둔다. 지상은 조용했다. 저 집에 지하를 뚫고 들어가 개미굴처럼 지내고 있는 놈들이 있다고 들었다. 혼자 수색하기엔, 그래. 위험요소가 많다. 개미굴이나 미로처럼 파고든다는 건 즉 전후방과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적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허나 그런 식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건 사람에게 한정되어 있다. 악마 놈들이 다가오는 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신성총을 꺼내 든 채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날개를 접는다. 오른손엔 신성총, 왼손엔 데저트이글.

모두가 잠에 빠져든 주택가 중에 유독 한 곳이 눈에 띌 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차고를 지나 계단을 통해 입구로 올라가자 보이는 엔젤 더스트.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며 폭발하던 그것의 흔적이 입구부터 부스러기처럼 흩어져있다. 이러니……. 아니, 이걸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정말 몰랐다고? 그런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신성총을 꺼내 든 채 창문 너머로 안쪽의 동태를 살폈다. 안쪽에 불이 켜져 있진 않았지만 시끄럽게 소리 지르는 다수의 목소리와 쿵쿵대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가져온 야시경이 아니었다면 수색도 힘들었을 것 같다. 크게 위협 요소가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느껴지는 건 강렬한 불길함 뿐이다.

목재로 지어진 관리 되지 않은 주택이라 총질 몇 번으로도 쉽게 벽이 부스러지게 생겼다. 잠긴 현관문에 총알을 갈겨 잠금쇠를 부쉈다. 너덜거리는 문짝을 걷어차곤 안으로 진입했다. 거실에 있던 놈들부터 잡고 지나가기 위해 신성총으로 미간을 조준해 사격했다. 신성탄이 몸을 뚫고 지나가는 놈은 다행히 있지 않았다. 보이는 놈마다 다 쏘아 죽이며 안으로 진입한다. 들어선 집안 풍경은, 군데군데 어설프게 바른 페인트마저 벗겨져 있었다. 오래 노후화되어 가던 곳이었는지…. 가정집이라기보단 거대한 창고 같은 모습이었다. 1층은 전부 제압했다. 엔젤 더스트에 취한 약쟁이 정도나 몇몇 보일 뿐, 그렇게 큰 위협이 되는 놈은 있지 않았다. 지하로 내려가 보는 건 가장 나중으로 미루고, 2층으로 진입하러 계단을 오른다.

특이점을 맞이한 건 2층에 있던 거대한 욕실과 붙어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선 다음이었다. 아이 방으로 쓰이는 곳이었는지 핑크색 벽지에 곳곳에 알전구나 유아장난감이 놓여있었다. 무엇보다 문앞에 놓인 아이 침대에 어딘가 아파 보이는 어린아이가 누워있었다. 온몸을 비틀며 정신이 나간 것처럼 간헐적인 경련을 보이고 있었다. 침대 옆에는 얇은 주사기가 놓여있었다. 그 옆에 놓인 협탁에는 콘돔까지 놓여있는 걸 확인했다. ……. 좋지 못한 일은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딱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인데……. 잠깐의 고민 끝에 결국 목을 꺾는 것으로 그의 목숨을 거둬주었다.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이다.

그 뒤에 2층에서도 1층처럼 가끔 습격하기 위해 숨어있다 총을 꺼내 드는 놈 몇이 있는 정도였다. 3층인 다락에 올라가니 신성탄이 통하지 않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낼 곳이 없어 남의 집에 숨어들어 숙식 정도만 해결하는 떠돌이들이었다. 바로 손을 들며 투항하는 이들을 기절시켜 제압해 두곤 전체를 클리어했다. 이제 다음은……. 지하다.


여느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뭘까. 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찝찝하고 불쾌한 이 기분은. 단순히 악마나 마귀가 근처에 있어서 느껴지는 기운과는 달랐다. 굴속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미로 속으로 들어간 끝에 보게 된 것은…….

그야말로 잔혹도가 펼쳐져 있었다. 이 참상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누군가를 잡을 때마다 누가 들었다던 절규에 가까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그들’에게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엔젤 더스트에 절여진 인간들이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나체의 인간들이 헐벗은 채 엉켜 나뒹굴고 있었다. 바닥엔 피인지 정액인지… 무엇인지 모를 액체들이 가득했다. 몇몇은 임신이라도 한 것처럼 기이하게 배가 불러 있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이었다.

…….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이런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저 자신을 스스로 지킬 힘을 원했을 뿐인 저들이, 빚진 목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뿐인 그들이, 외로웠을 뿐인 그들이, 고통스럽지 않길 원했을 뿐인 그들이, 어쩌면…. 단순한 쾌락을 좇아왔을 뿐인 그들이. 그렇다 한들 이런 꼴을 겪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약에 취해 정신을 잃고 있다가……. 날개를 가진 네피림을 발견하자 이지를 상실한 하급 마귀 떼처럼 달려드는 그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이런 꼴을 언젠가 보게 될 거로 생각하긴 했지만.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지 않나. 그저 목숨을 거두기 위해 강림한 사신이라도 된 것처럼 죽이고, 또 죽이고…. 총알이 떨어지면 칼을 꺼내 들어 그들의 목을 내리쳤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그들은 마귀 들린 자가 아닌 인간이었다. 인간. 인간. 나와 같이 절규하는 인간……. 괜찮다. 그들에게 안식을 찾아주는 것이 더 도움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문득 제 피가 묻은 손등에 무언가 떨어진 게 느껴졌다. 어느덧 흐른 눈물이 뺨을 타고 손등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와서…. 그들의 죽음에 슬픔이라도 느끼는 것인가? 이미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 놓고? 인정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그저 흐르고 있는 눈물을 멈출 기미가 없었다. 감정은 지극히 평온한데, 왜 눈물이 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둔 채 마지막 한 명의 목숨까지 베었다. 지나온 길엔 총탄과 급소가 찔리고 도려내진 시체가 무질서하게 늘어져 있었다. 발목이 잠길 정도로 차오른 핏물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도 짙은 피 냄새에 눈이 아릴 지경이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노릇을 하는 것일까. 어쩐지 멍해져 칼자루를 쥔 채 앞으로 나아갔다. 무언가 발에 걸려 풀썩 쓰러지며 무릎을 꿇었다. 무릎까지 피에 잠긴다. 당장에라도 속을 게워내고 싶었다. 대신 칼을 지팡이 삼아 바닥에 꽂아둔 채 잠시 기댄다. 숨을 고른다. 비강 안으로 역겨울 정도로 강렬한 피내음이 가득 찬다.

“……. 왜, 왜…….”

의미없는 눈물이 이어진다. 결국, 가지게 되는 건 죄책감뿐이다. 내가 좀 더 강하지 못해서 그들을 돌보지 못했다. 이런 비참하고 무도한 죽음으로 몰아넣게 했다. 너무도 강렬해서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한 죄책감이. 나의 친모 역시 강렬하게 느끼다 못해 끝내 생으로부터 도망치게 한 죄책감이. 그 어떤 목표보다도 뚜렷하게 자리를 잡는다.

한때 당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다. 당신과 떨어지기 싫다 말하는 세 살배기의 외침을 무정히도 외면하던 그 눈동자가. 꾹 다문 입술이. 도망치려는 것처럼 다급히 서류에 서명하던 그 손이. 한 번도 원망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 겨우 그 흔적을 되짚어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날 맞아주리라 기대한 건 어색한 재회 정도였다. 당신의 부고 소식이 아니었다. 한때 나의 친모를 돌봐주었다던 노파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을 수 있었다. 우리를 버리고 10년 정도 뒤였던 그때, 결혼했었다고 했다. 밑으로 두 자녀를 가질 정도로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이었다는 어느 노파의 말을 들었다. 결혼한 남편에겐 끝까지 아무런 말을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그런 말을 했다.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한 번의 실수로 가지게 된 쌍둥이를 저버린 것이…. 몹시도 큰 죄책감에 빠져들게 하였다고 했다. 자기가 망쳐버린 두 아이가 지금의 자녀에게 겹쳐 보여 도저히 행복해질 수가 없다고, 미안하다는 말만 매일같이 중얼거며 식음을 전폐했다고 했다. 그리 시름시름 앓다가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느냐, 하며 중얼이는 노파의 말이 내게는 너무도 무심하게 들렸다. 끝까지 당신에게 들려줄 수 있는 원망의 말은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를 원망할 수 없게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큰 고통 속에 살면 도리어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래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지 논하는 건 다음으로 하고. 지금은……. 일어나야 한다. 칼자루를 두 손으로 쥐고 버팀목 삼아 몸을 일으켰다. 아직, 아직 모든 걸 정리한 것이 아니다. 안에는 다른 것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더는 무리다. 지쳤다며 날 잡아끄는 목소리가 있다. 이는 악마의 유혹일 뿐일 것이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머리를 비운다. 지금 내겐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칼 한 자루와 신성총 한 정뿐. 그 사실을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¹MC스나이퍼 - Piano 가사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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