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room
빛바랜 낙원
주의 요소: 잔혹한 시신 묘사
산 자는 죽은 자를 보지 못하고, 죽은 자 역시 산 자를 어루만지지 못한다. 죽은 이는 지상의 것들에게 고요한 침묵으로만 지난한 삶을 보이지만, 지상의 것들은 죽은 이들을 그리워하며 한평생 그 위로 곡소리를 쌓는다. 이는 삶과 죽음이란 순리가 고고히 흐르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명제다. 하여 그 순리를 거스르려 드는 자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엔돌의 마녀’니 뭐니 하는 것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 유영의 흐름이 깨어질 위기에 놓였다는 걸 뜻했다.
죽은 애인愛人과의 재회를 원하거나, 짧은 생을 살다 간 반려동물과의 재회를 원하거나, 남들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쉽게 물질을 구하거나,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던 인간을 죽일 수 있게 되거나, ‘아무런 이상’도 없이 원하던 것을 손에 넣거나, 짙고 농후한 쾌락에 취하거나, 종교에 빠지거나, 내 것이 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들. 드높은 곳에 존재한 유리 장식장 속에만 있던 선망의 대상을 비로소 ‘내’가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인간은 그럴 때 쉽게 함정에 빠진다. 인간의 간절함을 이용해 벌이는 행위는 그 형태가 무엇이든 결과가 항상 극단을 달렸다.
천천히 피 묻은 구둣발을 내딛는 이 역시 그랬다. 그 역시 한때는 죽은 가족과의 재회를 원했던 이였으며, 잃은 반려동물과의 재회를 원했었다. 그러나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걸 한 번도 내주지 않는 곳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였다. 그에게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생존능력과 불신밖에 없었다. 믿어온 모든 것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비참하고 남루한 그의 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이마저, 끝내 차디찬 바닥에서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생의 끝에 다다랐다. 따뜻한 곳에서 배부르고 행복하게 사는 것들을 질투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시기하고 탐내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청명한 푸른 빛과 하얗고 맑은 빛이 드리워지는 저 하늘은 어찌 이리 맑은지. 원망 한 점 쉽게 삼킬 수 없게 했다.
폐가에 가까울 정도로 을씨년스럽게 삭은 주택을 벗어났다. 전부터 이 주택가 근처에서 괴한에게 살해된 시신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지속해서 들어왔다. 발견되는 시신은 전부 토막 내지거나 한 게 아니라, 시신 일부만 도려내진 채 버려졌다는 것이었다. 살해된 이들의 연령대도, 성별도 다 제각각이었다. 중년의 성인 여성과 남성, 젊은 청년, 여아부터 남아까지. 도려낸 신체 부위도 다 달라 처음엔 지나가던 마귀에게 시체가 뜯어먹힌 것이겠거니 했었다. 조사가 한참 막바지에 다다랐을 땐 그렇게 살해된 인간의 수가 두 자리를 넘어갔을 때였다.
“……. 좆같네.”
발치에 나뒹구는 마귀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좀 전에 봤던 광경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가히 광경狂景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상황이었다. 그런 식으로 시신을 조각조각 잘라냈던 인간이 한 짓은……. 쉽게 말하자면 ‘인체 퍼즐 맞추기’였다. 중년의 여성, 남성 두 명, 젊은 성인 남성, 여아와 남아……. 살해 대상이 다 달랐다는 것은 그만큼 모아야 할 것도 많다는 뜻이었다. 다양한 피해구성원 목록을 모아두고 처음엔 가족이라도 만들려는가… 생각했지만, 그보단 인체 실험을 하는 중이라는 가설을 좀 더 염두에 두었다. 그렇잖은가. 시체 좀 모아서 기운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던 중 ‘엔젤 더스트’에 대해 조사하다 악마의 힘으로 자신의 죽은 가족과 대화를 나눴다는 소문을 들었을 땐 기함을 했다. 가능성이 제로에 달하는 일이라면 분명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희망을 본 뒤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설령 그 희망이 백일몽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게다가 처음엔 시신을 도려낸 부위가 지저분했지만, 횟수가 지나갈수록 절개 솜씨마저 깔끔해졌다. 이미 어느 정도 확신을 하고 매달리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염병, 차라리 클럽에서 인간들이랑 섹스하고 마약 뿌리는 악마 새끼가 낫지. 미친놈에겐 약도 매도 없다. 게다가 믿을만한 정보통이던 ‘트릭밤’마저 엔젤 더스트 건으로 먹통이었으니. 내 손으로, 내 발로 뛰어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신이 이 정도로 많이 나왔는데 못 잡으면 그것도 머저리 인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에서야 드디어 근거지를 추려내 마지막 한 곳을 목표로 두고 잡아 죽이려 했는데…….
내가 갔을 땐 먼저 망을 보고 있겠다고 갔던 준 조직원 놈의 시체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러게 나보다 먼저 움직이지 마라니까. 내 말을 듣는 게 좀 더 생을 연장하는 방법이라는 걸 깨닫기도 전에 죽는 놈들밖에 없었다. 이러니 내가 누굴 못 들이는 거다. 이름이…… 올리버랬던가. 시체나 수습해줘야겠단 생각을 하며 쓰러진 시신을 끌어 벽에 붙여뒀다. 일어나 깨진 현관문 유리창 사이로 섬광탄을 까 넣었다. 수습한 시신에 탄흔은 없었으니 근접전으로 붙지만 않으면 되겠지. 안에 있는 놈이 인간인지, 악마인지도 모르니. 일단 인간이라 생각하고 대응법을 펼치기로 했다. 악마? 악마라면 굳이 이런 짓을 왜 하겠나. 죽은 인간에게 집착하는 건 같은 인간밖에 없다.
하얀 빛이 안쪽에서 터진 뒤에 집안에 진입했다. 신성총 옆에 글록을 십자로 겹쳐둔 채 몸을 낮춰 들어간다. 악마나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매번 하는 것이었지만, 단순히 죽고 죽이는 걸 넘어 사연 있는 미친놈들을 상대하는 것엔 늘 긴장이 됐다. 주변은 조용했다. 사람이 시야가 멀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나올법한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단 말은…. 악마인가 싶어 신성총을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벽면을 타고 왼쪽부터 방을 하나씩 클리어해나갔지만, 반대편에 있는 주방 쪽에 이르기 전까진 이렇다 할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이상했다. 시체는 분명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는데. 아무도 없을 리는 없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오는 식탁 위에 누군가 앉아있는 듯이 등을 보이고 있었다.
“……. 핏불이다. 투항해.”
내 목소리를 들었음이 분명한데도 정체불명의 인영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조금씩, 경계를 늦추지 않고 다가갔다.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쏠 수 있게끔. 따라서 천천히 넓어지는 시야를 따라 눈을 의심하게 하는 광경이 보였다. 이건.
“…….”
시체로 기워 만든 인형人形이었다. 그것도 한 구가 아니라, 여러 구의. ……. 마치 다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모인 가족처럼 보였다. 그들의 신체 곳곳을 잇고 있는 것이 피부가 아니라 희고 반투명한 실이라는 점만을 빼면. 정말…. 단란한 가족 모임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 광경을 두고 할 말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젠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속에서 구역감이 치밀었다. 게다가 방부처리까지 해둔 것인지 시취조차 나지 않았다. 그제야 조사 진행이 더뎠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미친놈인 주제에 꼴에 완벽주의까지 있었던 모양이었다. 중년의 부부가 식탁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그 부부의 앞에 젊은 부부가 앉아있다. 그 옆엔 남매처럼 보이는 아이 둘이 앉아서 ‘웃는 얼굴’로 식탁을 둘러싼 채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어린 애 중 여자아이 쪽은 어쩐지 낯이 익었다. 저 얼굴은 분명……. 어저께 공원에 들렀을 때 구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어디선가 꺾어온 꽃송이를 쥐여주고 간 아이였다. 정말이지……. 잠깐, 젊은 부부? 젊은 여자는 살해된 적이, 없는데.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해 젊은 여자를 돌아봤다. 그에게선 다른 인형들에겐 볼 수 없는 생기가 느껴졌다. 건강한 인간의 생기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는 생기 정도가. 뭣보다 실자국이 없었다. 그때까지 생글생글 웃고 있던 여자가 움직였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어머, 누구시죠? 어머님 손님이신가요? 좀 전에 한 분 왔다 가셨는데……. 어긋나셨나 보네요. 일찍 오시지. 마침 식사 시간이….”
직감했다. 이미 악마의 힘에 취해있는 인간이다. 자기를 죽이러 들어온 네피림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지 않나. 저 시체 덩어리들이 그의 눈엔 생경하게 살아숨쉬는 자기 ‘가족’들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사연 따위, 더 알고 싶지 않아 바로 그의 이마에 총구를 마주 댔다. 애도의 시간 따위 보내지 않고 그대로 발포했다. 이어지는 두 번의 총성이 공간을 메운다.
더는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아 글록으로 확인 사살까지만 하고 바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총성을 듣고 이목이 쏠린 건지. 도로변에서 달려오던 마귀 몇 놈은 분풀이 삼아 가볍게 쏴 죽였다. 그래도, 씨발. 맨 처음 봤던 그 광경보다 강렬한 건 아직 없었다는 게.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걷어찬 머리통을 바라봤다. 결국, 토하는 대신 비타스틱을 입에 물고 민트 섞인 멘톨향 연기를 뿜는다. 무너져가는 집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내 손으로 모조리 불태워 재만 남은 본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다림의 공간 따위. 남겨둬 봐야 독이 될 뿐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끝내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심장을 짓이기고 부수기만 할 뿐인 것을.
「*beep* 로웰, JFK 국제공항이요. 호텔 카지노에 마귀 들린 자 발생했어요. 현장에 다 일반인뿐이라 대량 피해 발생 중이랍니다. 바로 가주셔야겠는데요.」
“……. 그래.”
정말이지. 쉴 틈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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