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커미션 신청하는 사람을 위한 안내

글 커미션을 신청하는 사람을 위한 허술한 안내 3

어쩌다보니 접하게 된 괴상하고 머리 아픈 사례들

2편이 오마카세였으니까 3편은 그럼 맞춤글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아닙니다.... 맞춤글은 그야말로 서로 충분히 대화해서 니즈를 파악한 후에 하는 거라서 만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0번의 사례와 비슷한 원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딱히 뭔가 더 생각나는 것도 해서 이번에는 상당히 자주 들어온 사례와 질문(이랄까 의문)들을 적어보겠습니다. (제가 겪은 이야기가 아닌 경우에는 각색을 덧붙였습니다.) 종합하자면 이런 커미션주 이런 신청자는 피하세요 가 아닐까...

나쁜 일을 부러 곱씹지는 않는 타입이라 다 기억나지는 않아서... 생각나는대로 예고없이 갱신됩니다.

Q. 긴 분량을 많이 쓰는 커미션주라면 존잘님이겠죠?

A. 설마요.......
 제가 생각하는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의 기준은 적은 분량의 글로도 쉽게 읽히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사람입니다. 이 경우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조사 하나까지 신경써가며 썼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단어와 문장의 배치가 절묘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커미션 가격은 왜 분량으로 책정되느냐...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퀄리티라는 질적인 값을 가격이라는 양적인 값으로 환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돈 얼마만큼의 퀄리티로 글을 쓴다' 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너무 좋았어 와 별로였어 라는 느낌은 누구나 들지만 인류 공통적으로 아 이 글은 만원만큼 좋았어 라고 공유하는 기준같은 건 없다는 이야기죠. 가격을 안 매길 수는 없는데 가격의 기준이 될 만한 '퀄리티'라는게 숫자로 환산하기 매우 어렵다보니 숫자로 환산하기 쉬운 분량으로 책정하는 겁니다.
 2. 동일한 퀄리티라는 가정하에서, 짧은 글보다 긴 글이 재료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글은 건축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두꺼비집을 지을 때는 조금의 시간과 인력, 흙만 있으면 되지만 잠실사우론탑을 지으려면 굉장히 많은 재료와 인력과 시간이 들지요. 글도 똑같습니다. 긴 글이 품이 더 들어요. 다만 S대 미대생이 솜씨를 부린 두꺼비집은 7세아동이 만든 것보다 비교 불가능하게 비싸겠지요. 그런 이치입니다.

Q. 분량도 오마카세로 맡기는 건 불가능한가요?

A. 아무래도 그런 편이죠.
 저의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대체로 분량이라는 것은 집을 지을 규모가 어느정도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쓰다 보면 저기 이 디자인은 아무래도 2층집보단 1층집이 더 좋은데 어떡할까요, 같은 거나 왜 초가집을 주문했는데 아파트가 오죠? 같은 일이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글러 자신이 집 규모를 잘못 가늠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분량을 오마카세로 맡긴다는 건 모래성부터 아파트까지 다 지을 수 있는 사람에게 건축의 규모까지 알아서 정해달라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건축가가 들으면 굉장히 난처하겠지요...
 게다가 분량을 마음대로 해주세요! 는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제와 관련있으므로 이어서 서술하겠습니다.

Q. 글러는 원한다면 언제든 분량을 줄이거나 늘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A. 그게 되면 커미션을 왜 합니까 메가히트작가를 하지.
 분량이 너무 늘어났다던가, 분량이 생각보다 나오지 않는다던가 하는 건 어디까지나 '원하지 않았는데 벌어진 일'입니다. 처음 정해진 분량으로 구성했던 게 그 분량이 아니었던 거죠. 의도해서 분량을 줄이거나 늘리는 건 상당히 고역인 일에 속합니다. 특히나 분량을 늘리는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도 분량을 줄이는 것은 글을 다 뜯어고칠 결심을 하거나 결과물을 용두사미로 만들 작정을 한다면 가능합니다. 분량을 억지로 압축하거나 끝을 자르면 되니까요. 기승전결에서 기만 쓰고 끝내면 되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욕하겠지만 어쨌든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분량을 늘리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이건 상업작가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물론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죠. 전세계적인 히트작을 장기연재하는 분들 계시죠. 근데 그런 능력이 있으면 커미션을 왜 합니까 세계적인 작가를 하지... 모든 웹소 웹작의 꿈일걸요? 분량 끝없이 늘려서 연재하기. 이 분량을 끝없이 늘리는 것에는 숨겨진 말이 있습니다. 바로 '동일한 높은 퀄리티로' 입니다. 네, 계속 히트를 칠 퀄이 나오는 게 전제된 말입니다.
 언제든 분량을 늘리는게 된다고 하는 사람은 대충 두세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첫째, 천재적인 작가가 심심해서 커미션을 열었을 경우. 둘째, 어떤 소재로 신청해도 기떡떡떡으로 쓰는 경우. 셋째, 했던 말 또 하고 의미 없이 정보값 없는 묘사를 나열하는 경우. 네, 우리가 마주치는 건 둘째 셋째일 가능성이 굉장히 큽니다. 개인적으로 전 이걸 사기라고 부릅니다......

Q. 왜 내용 수정은 대부분 안 받아주시는 걸까요?

A. 지금까지 구상하고 설정해둔 걸 싹 갈아엎어야 해서요.
 내용수정은 집 일부를 해체하고 다시짓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캐붕 설정붕괴 이건 집 지은 사람이 잘못 설계한 거니까 지가 알아서 해체하고 다시 지어야 하지만, 단순히 이거보다 좀 더 잘 써달라거나 이 부분을 저 부분으로 바꿔달라거나 하는 건... 그게 몇 번씩이면... 그런 게 가능한 걸 우리는 외주라고 부릅니다.
 그림커미션에서 수정사항이 있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눈 색이 다르다거나 점이 잘못 찍혔다거나 하는 건 해당 레이어를 고치면 되는 일이지만 글에서 한 문단을 초과하는 레벨로 내용을 바꿔달라는 이야기는...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전신 커미션을 완성해서 드렸더니 아 이제보니 체형이 너무 마른 것 같은데 두께 두 배인 근육질로 바꿔주세요 하는거랑 비슷해요.(심지어 웃통 깐 그림임) 이렇게 되면 커미션주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역이겠죠...... 외주도 아닌데......

Q. 타자만 치면 되는 건데 왜 이렇게 비싸게 받나요.

A. 동일한 논리로 되묻겠습니다. 그냥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되는 건데 왜 공부가 어렵나요.
 글은 상당한 두뇌노동을 필요로 합니다.(두뇌노동 아니고 쉽다고 느끼는 경우: 세기의 대천재거나 본인 실력이 별로인것도 모르거나) 저의 경우는 그게 좀 극단적이라서, 밥먹다가도 생각하고 한가하면 생각하고 안 한가해도 생각하고 그걸 메모지에 적고 관계도를 그리고 마인드맵을 하고 등등... 머릿속에 완전히 구상하기까지의 시간과 그걸 타자로 쳐서 완성하는 시간의 비율이 7:3 혹은 8:2쯤 됩니다. 순수하게 타자만 치는 시간만 따지자면 전 사기꾼이겠죠? 그치만 그런 게 아닌것입니다... 괜히 작품을 쓰기 전에 인터뷰를 하거나 취재를 하거나 하는게 아닙니다. 그런 시간까지 다 쳐야 올바른 값입니다.

Q. 저 자료 진짜 많이 준비했는데 결과물이 잘 안 나왔어요

A. 소화할 게 너무 많아서 억지로 먹다가 배탈난 상황입니다.
 이전에 커미션 신청서 이야기를 할 때 '너무 많은 자료도 안 되지만 자료가 너무 없어도 곤란하다'같은 뭣같은 소리가 나오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했었지요. 이 경우 '너무 많은 자료'인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낙서커미션을 열어서 신청서가 왔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천지창조 풍에 오브제로 화면 가득 채워서 채색하는 낙서를 해주세요 같은 겁니다. 이걸... 다 읽고... 소화시켜서... 내 걸로 만든 다음에... 딱 만원어치 글을 써야 한다고.......? 저는 크툴루 다음으로 무섭습니다. 십만자 신청에 자료가 장대하다면야 #가보자고 가 되지만......
 소화해야 할 정보값의 분량은 100권인데 가격은 천자로 신청받았다면? 저는 거절합니다. 그러나 성격상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료 다 소화시키려다 탈나서 지각을 하거나 일부만 읽고 떠오르는 걸 대충 갈겨서 내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죠. 어느쪽이든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래서 할인이라는것도 존재하죠. 다음이야기입니다.

Q. 왜 할인 타입의 할인기준이 천차만별인가요

A. 커미션주가 주로 먹고 큰 게 사람마다 달라서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사망우울소재 할인타입을 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청소년기에 그런 걸 많이 읽으며 컸죠... 추리물이라고 하면 일단 호감을 가지고, 배경지식도 이미 갖춰져 있죠.
 그러니까 '새로 먹어야 하는 정보값이 극히 적은', 혹은 '그 분야의 정보는 쉽게 이해하는' 겁니다. 자기가 파는 2차장르는 할인해주는 분도 많으실겁니다. 왜 할인이 될까요?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나 분야잖아요. 이미 그 장르나 분야에 대한 지식이 어느정도 있습니다. 따라서 글을 쓰기 위해 새로 소화해내야 하는 정보가 많지 않죠. 품이 훨씬 덜 드는 겁니다. 그래서 할인이 되는 겁니다. 글 쓰기 전의 과정이 타장르 타분야보다 훨씬 단축되기 때문에.
 저의 경우 추리소설을 좋아하므로 법의학에 대한 정보를 이미 상당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 많이 쓰이는 신청이 들어오면 할인을 해드리죠. 근데 평생 로코만 드신 분께 법의학을 잘 알아야하는 신청이 들어온다? 도저히 할인이 안 되는 겁니다.

Q. 그 외에 가격이 비싼 이유가 있는가

A. 이건 모든 커미션 및 제작품에 해당하는 이유입니다만, 가격이 낮을 수록 진상이 많습니다. 정말로요.
 자기 실력이 어느정도 된다 싶은 분들은 대부분 처음에 가격을 저렴하게 매겼다가 진상에게 호되게 당하고 가격을 확 올린 경험 어느정도 있으실 겁니다. 이런 현상은 어딜 가나 공통이라서요. 진상짓을 겪고도 훌훌 털어내는 분이라면, 혹은 아직 실력이 부족한 분이라면 낮게 가격을 매겨서 수요를 늘리겠지만 아니라면 그냥 가격을 올리는 게 낫습니다. 수요는 줄겠지만 마음의 평화를 위해 나가는 비용은 절약되니 결국 수익은 거기서 거기거든요. 이런 현상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기는 한데 어쨌든, 가격이 너무 낮으면 오히려 진상이 많이 붙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렇기 때문에 너무 낮은 가격이 매겨진 물건은 그게 커미션이든 다른 물건이든 주의해서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중고시장 거래와 비슷합니다. 가격이 저렴한 건 심심해서 뭐라도 써보고 싶으니까 푼돈만 받자 싶은 존잘님일 수도 있지만, 퀄리티라는게 소멸한 결과물을 내놓는 사기꾼도 있습니다. 특히나 고가의 커미션이라면 신중하게 선택하고 여러가지를 따져보시는게 좋겠습니다.

Q. 커미션주는 판매자가 아닌 건가요?

A.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상인'이 아니라고 해야겠지요.
 커미션은 의뢰의 성격이 가장 짙습니다. 돈을 받아서 원하는 것을 해주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커미션은 작업을 하되 저작권을 팔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조악한 예시를 들자면, 셜록홈즈가 사건의뢰를 받아서 해결한 일로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얻지만, 그 해결한 일 자체는 셜록홈즈가 해결한 것이 되는 거지 의뢰인이 한 걸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명성도 셜록홈즈가 얻는 거지 의뢰인이 얻는 게 아니고요. 뭐, 그런 겁니다. 네가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겠고 너는 가능한 영원히 결과를 누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니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입니다.
 제작하는 것 자체에 돈을 주는 건 커미션(의뢰)가 아니라 후원입니다. 뭘 쓰거나 그려도 좋으니 안정적인 곳에서 예술활동을 하라고 돈 주는 거죠. 제작과정에 돈을 주는 건 후원이에요, 커미션이 아닙니다. 이 파트는 커미션은 창조과정에 돈을 내는 거라는 미친 헛소리를 들어서 쓴 게 맞습니다... 커미션주에게는 의뢰를 받았으면 받은 내용대로 완수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반대로 온전한 상업작이라고 하기도 힘들죠. 커미션은 '요청받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소수만을 위한 물건'을 만드는 것이지 자기맘대로 만들어서 파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커미션주를 상인으로 상정해서 이런저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곤란하죠. 모든 일을 셜록홈즈의 사건파일이 아니라 의뢰인의 사건파일로 만들고 싶다면 돈을 좀... 많이... 아주 많이 내야겠지요? 네, 그런 겁니다.

더는 생각나는 게 없으니 다시 커미션 작업하러 갑니다. 추후 추가수정될 수 있습니다. 메세지나 댓글로 문의하시면 이 포스트에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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