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먼 기억

2013. 03. 01


 항상 네게선 단 향이 났다. 향에는 색이 없다지마는 색이 있다면 필시 분홍색일 향이었다. 꽃 같기도 하고, 단 과자 같기도 한 향이었다. 맡으면 한 입 베어 물고 싶어지는 향이 사시사철 네게서 났다. 이제 와 다시 생각해보면 복숭아 비슷한 향이었을지도 모른다. 종종 네가 내 곁에 앉을 때마다 달큰한 향이 물씬 코를 자극해 오곤 했다. 하지만 너는 그 예쁜 향과 상반되는 인물이었다. 퍽 예쁘지도 않았는데 성적 또한 나빴으며, 성격은 두말할 것 없이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주제에 눈치는 백 단이라 고민 상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해 타인의 원성은 커녕 환심을 사곤 했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배알이 뒤틀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눈치 백 단이라고 혼자 으스대던 네 앞에선 코웃음만 치곤 했지만 너는 정말로 눈치가 빨랐다. 특히 누군가가 네게 보이는 호의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네가 내게 '저 새끼, 나 좋아하는 것 같아.' 라고 속삭일 때면 그 새끼가 정말로 내게 은근히 썩 꺼지라는 식의 눈치를 주곤 했다. 너는 시시콜콜한 연애를 싫어했다. 네게 호의를 보낸 남자는 중학교 3년 내내 수도 없이 많았고 그만큼 네게 들어오는 고백도 많았다. 하지만 너는 개중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내 마음을 네게 내비치지 않았다. 내쳐질 것이 분명한 것인데 무모하게 시도하는 것이 뭔 소용이 있겠는가.

 재차 말해보지만 너는 정말로 눈치가 빨랐다. 필사적으로 숨긴 것이 무색하게도 너는 내 마음 역시 쉬이 눈치챘다. 언제 알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는 차츰 나와 멀어져갔다. 너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말한 주제에 도망치듯 다른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아직도 그 일은 내 기억 속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로 나는 너를 더는 만나지 못했다. 너는 네가 다니는 고등학교 근처서도, 우리가 6년이 넘도록 함께한 동네 골목길에서도, 주말마다 함께했던 역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네 유일한 친구는 나였고 네 부모님과의 교류도 없었기에 물을 곳 또한 없었다. 이사를 했다는 얘기도 간간이 들려왔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었다. 그렇게 너는 내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실 나는 네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자그마치 6년이란 시간을 함께한 이로써, 너를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서 네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썩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따금 너를 떠올리려 할 때면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고, 너에 대한 아주 단편적인 기억과 함께 네게서 아주 좋은 향이 났다는 것만 어렴풋하게 기억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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