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름
그렇다면, 기억하고 있어?
그를 모르는 이는 없었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더이상 남지 않았다.
분명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이건만. 노래를 들려주면 아~ 이 곡? 알지 알지. 완전 메가히트 곡이잖아~ 하지만 내 이름을 말한다면 글쎄, 그게 누구냐는 답이 돌아오지 않으려나. 그런 법이었다. 시간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기억하고 있으면 돌아올거라 그리 약속했건만 우리의 자리는 서서히 시간에 의해 풍화되고 바스라지고 있었다. 시간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안일하게도 우리는 잘 나갔으니까, 팬이 두터우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여긴 언제나 우리가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 그렇게 믿었으니까. 그래서 더 용감하게도 각자의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약간 우리의 뒤에는 이 밴드가 있을 것이라 위안삼으면서.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연예계는 새로운 것과 더 새로운 것을 찾는 곳. 그런 곳에서 믿을 걸 믿었어야 했다. 세월이 흐르고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더 새롭고 더 최근의 것이 쏟아져나오는 와중에 구시대의 유물 같은 곡들을 다시 찾아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명곡인들 새로운 앨범이 나오지 않고 활동 또한 언제 재개할 지, 심지어는 그 멤버가 어디가서 뭘 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밴드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주는 사람은 진짜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긴,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데 하늘의 존재조차 불투명하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진짜 초창기 부터 봐주시던 분들도 소식이 없는 우리들에 점점 지쳐가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SNS의 통신망을 넘어서도 생생하게. 그럼에도 내가 다시 나설 수 없는 것은 우리들이 아직은 한 데 모이지 못했다는 것. 나 혼자서는 그 음악을 재현 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그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에. 당신들이 기억하는 그 모습을 나 혼자 해 낼 수 있을리가 없어요.
후회해?
언젠가 나 자신에게 물었던 물음이 다시금 되돌아왔다. 나는 그 때 무어라 대답했더라. 아니라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근데, 지금은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어. 그 날 그렇게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조금 무리해서라도 함께 있었더라면 나도 내 사랑하는 팬분들도, 그리고 어쩌면 너희들도 한 자리에서 웃고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후회해.
아니, 그래도 결정한 일에 대해서 그러면 안되긴 한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회한다고. 조금 더 설득 해 볼 걸. 들어주지 않을 만 한 아이들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상념으로 빠져들어가는 자신을 건져올렸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고, 한 때 우리는 선택으로 인해 울고 웃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면 안돼. 나를 다잡았다. 나의 손으로 선택한 이 길의 댓가가 내 이름이었던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선택에 대한 대금. 그걸 지불한 것 뿐이라고.
다시금 일어서 걸어가야지.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보는 것 또한 선택의 댓가일 테니까.
+후기
오늘도 시솔님과 서로의 멱살을 잡고 마감했답니다. 늘 저희는 서로에게 주제를 줄 때까지만 해도 웃고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남아 있는게 없고 그저 웃지요 상태가 되어있는거 같아요. 그래도 즐겁게 작업하고 있으니 된 게 아닐까요? 하고 합리화 해봅니다.
이 포스트를 연작으로 재 분류 하면서 나름 내용이 이어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늘 글리프는 저에게 시련과도 같은 주제를 던졌기에 잘 모르겠어요 다음주에 불현듯 다른 친구를 데려올지도? 이 밴드친구들 오래 갈 수 있도록 빌어주세요.
오늘의 주제 진짜 힘들었는데 어떻게든 마무리 지었습니다. 기뻐요. 모쪼록 다음 주에도 만나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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