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국민

지구를 벗어나는 겨레호는 세작부터 말이 많았다.

손경수G by 손경수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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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호는 출발하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2512년 은하연방의 외계인들이 더 이상 지구에서 일어난 환경 파괴를 두고 볼 수 없어 인간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배일이는 갑자기 자신의 모니터에 뜬 은하연방의 외계인 대사 크무니아로의 끔찍한 얼굴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순식간에 지구의 모든 통신망을 장악한 은하연방은 인간들은 기술 수준을 훌쩍 상회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들은 저항다운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들의 명령에 순순히 응했다. 은하연방은 모든 인류 문명을 제거하지 않는 대신 정해준 일시에 인류는 단 한명의 인간도 빠짐없이 지구를 떠가기를 조건을 내걸었다. 전 세계는 대 이주를 위해 우주선을 건조했다. 각국은 외계인이 지정한 기일에 지구를 떠나기 위해 총력을 다 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단상에 올라가 국민들에게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우주선의 이름도 전 국민에게 공모했다. 배일이도 상금에 혹해서 응모했다. 각종 기발하고 의미 깊은 이름들이 후보로 올랐지만 모든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이 조찬회의에서 즉석에서 내뱉은 겨레호라는 이름 공식명칭으로 지정됐다. 이럴 거면 왜 공모했냐는 소동이 있었지만 배일이는 대통령이 이런 것쯤은 정할 수 있지 않나 생각했다. 결국 이 소동은 갑자기 터진 연예인 가십사건으로 인해 금방 잠잠해졌다.

 

궤도 엘리베이터 끝의 우주항에서 건조되는 겨레호는 각 기의 수용인원은 10만 명으로 300만 명에 달하는 모든 한국인이 탑승하기위해 1호에서 30호까지 제작될 예정이었다. 배일이는 5천만이 넘어가던 2024년 같이 인구수가 많았으면 모든 한국인들이 타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아찔한 기분이 들며 현재의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동안 겨레호의 제작은 순조로운 듯 했다. 하지만 언론에 설계도면이 유출되면서 여론이 한차례 술렁였다. 겨레호의 설계도에는 고위층을 위해 각종 호화로운 편의 시설로 가득한 동면캡슐 방이 따로 존재했다. 고위층을 위한 동면캡슐 방은 다른 일반 서민들이 자리한 동면캡슐구역과는 따로 구분되고 면적도 넓었다. 동면캡슐에 들어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잠들기에 굳이 방의 크기가 넓을 필요가 없다. 반면 일반 국민들의 동면캡슐 구역은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이 캡슐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대통령 비서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에서 유출한 설계도의 틀린 정보이며 실제로는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기존의 동면 캡슐 규격에 맞지 않는 국민들을 배려한 공간이며 그 곳에 들어갈 사람중에 몸이 불편한 고위층이 존재한다가 비서실의 설명이었다. 여론은 두 개로 갈라져 싸웠다. 여전히 따로 마련된 동면 캡슐방의 호화시설에 대한 해명이 부족하다며 의심하는 부류와 정부의 의견을 굳게 믿는 부류들이 인터넷에서 격돌했다.

 

배일이도 이 싸움에 끼어들었다. 배일이는 상류층의 공간에 대해 옹호했다. 오히려 당연한 아닌가? 능력이 있으니 당연히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부당하다 느꼈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상류층에 입성해야지 그게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가? 배일의 이런 생각은 인테넷의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도 다수 있었다. 인터넷 속의 설전이 서로를 향한 인신공격 양상으로 변할 때쯤 설계도를 공개한 기자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알고 보니 기자는 개인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회사나 단체에 대해 돈을 받고 좋은 기사를 써주거나 혹은 반대의 기사를 써주고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기사였다. 기자는 잘못된 사실이라며 반박문을 올렸지만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결국 기자는 어느 인적 드문 모텔에서 자살했다. 배일이는 쓰레기 기자에게 어울리는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설계도면 뿐만 아니라 겨레호의 건조 과정에서도 많은 부침이 있었다. 한때 국가가 우주선 제작 기술의 핵심 기술을 다수 보유했지만 어느 순간 민간기업에 기술이 이전되어 국가는 실질적으로 겨레호 제작을 민간에 맞길 수밖에 없었다. 겨레호의 제작의 대부분이 국내 우주선 개발기술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던 홍익공영이 맞아서 하기로 했다. 배일이는 열광했다. 홍익공영은 한국의 최첨단 기술을 많이 보유한 명실상부 일위 기업이었다. 배일이는 홍익공영의 주식도 가지고 있을 만큼 홍익공영을 신뢰했다. 그들이 출시한 제품들이 가끔 사소한 부작용으로 인명피해를 내기도 했지만 인류의 진보에 있어 작은 위험 감수는 당연했다.

홍익공영은 기술 유출을 이유로 들어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던 겨레호의 제작 방식을 비공개로 진행했다. 이제 국민들은 특정 언론을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겨레호의 제작과정 정보를 제공 받아야했다. 일부 국민들은 이러한 조치로 인해 불만이 많았다. 배일이는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혀를 찼다. 회사가 자신의 기술에 즉 자산에 대한 보호는 당연한 일 아닌가? 그리고 회사가 하는 일이니 합리적으로 진행해할 것이다. 문제는 홍익공영의 노조였다. 국가의 명운이 달려있는 일에 모든 재원을 쏟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동권을 보장 따위의 한가한 소리를 했다. 방송에는 붉은 띠를 두른 노조원들이 연일 시위를 한다. 이러면 어떻게 우리가 우주선을 제 시간에 만든단 말인가? 배일이는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참을 수 없어 국가 청원 게시판에 달려가 당장 이 빨갱이 놈들을 단죄하라는 청원을 올렸다. 순식간에 청원의 목표치를 훌쩍 넘었다. 다음날에는 배일이의 청원을 정부에서 보았는지 당장 홍익공영의 노조간부를 구속조치하고 노조원들을 해산하겠다는 방침이 올라왔다. 줄줄이 연행되어가는 노조원들을 보며 배일이는 쾌재를 불렀다.

 

시간은 흘러 은하연방이 고지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각국은 우주선은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각국의 정부는 각지에 흩어진 인원들을 정해진 장소에 소집했다. 모인 국민들은 정부의 인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우주선으로 가는 궤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전 인류가 지구를 비워야하는 일이니 시일도 만만치 않았다.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장장 2년에 걸쳐 우주선으로의 탑승 계획을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어째서인지 겨레호로의 탑승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지구를 비워야할 시기가 한 달로 앞두고 대통령 비서실을 특별 기자회견을 열었다. 존경하는 국민으로 시작하는 장황한 인사와 현란한 수식어를 모두 빼고 핵심만을 간단히 말한다면 글의 요지는 이랬다.

 

겨레호는 10기중 6기만 완성 된 상태, 모든 국민들을 수용할 수 가 없어 탑승 인원을 선별해야 한다.

 

여론이 들끓었다. 각지에서 정부와 홍익공영의 무능함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연일 쏟아져 나왔다. 당장이라도 나라를 뒤집을 기세였다. 배일이는 이 모든 일이 답답했다. 이게 어떻게 정부와 문제인가? 잊었는가? 전부 이게 노조 놈들의 문제였다. 자기들 편하자고 일을 게을리 한 탓이다. 배일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노조 놈들을 죽이자는 쪽과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사람들이 격렬하게 싸웠다. 이제는 인터넷에서만 싸우지 않았다. 양 쪽은 광화문 광장에 쏟아져 나와 서로에게 주먹다짐을 했다. 연일 악화일로를 겪는 와중에 언론에서 홍익공영의 노조 간부가 적성 국가의 공작원과 룸싸롱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이 속보로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여론은 반전되었다. 노조 측에서는 조작된 영상이라며 반박했다. 배일이는 모든 일의 실마리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정부와 홍익공영을 방해하는 세력은 적국을 뒤에 둔 매국노들이었다. 나라 팔아먹으면서 까지 자신의 배를 불리는 빨갱이 놈들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정의로운 검찰은 재빠르게 노조 사무실을 급습해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검사들이 사무실에서 들고 나오는 산더미 같은 증거 상자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법원은 사안의 무거움을 알고 이례적으로 빠르게 판결했다. 피고에게 사형을 구형한다. 땅! 땅! 땅! 국민들은 환호했다. 죄질이 무거운 노조 간부들에게 항소는 사치였다. 집행은 빠르게 시행되었고 사형 장면은 방송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정부와 홍익공영은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일부 국민들을 선별해 뇌만을 적출해 우주선에 싣는 계획이었다. 선별된 국민들은 향후 목적지에 도착하면 젊고 튼튼한 육체를 새로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선별된 국민들은 나이가 많은 노인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시술을 두려워하며 적출을 거부했다. 안전성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일부는 선별 명단에 속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정부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어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시술의 정당성에 의문을 가하는 이도 있었다. 배일이는 국가의 계획에 차질을 주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들을 배려해 낙오시키지 않고 우주선에 오를 방법을 제시해도 불만이라니! 더군다나 불편한 몸을 버리면 새로운 몸까지 제공해준다고 하지 않나?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 무지한 저들이 답답할 따름이었다. 배일이 마음에는 저들을 그냥 버리고 같으면 좋겠다. 하지만 관대한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정부에서 파견한 요원들은 선별된 인원들을 모조리 잡아와서 뇌 적출을 시행했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궤도 엘리베이터을 통해 대기권을 넘어 우주항으로 입성했다. 국민들은 우주항의 조명에 의해 반사되는 겨레 1호의 위용을 보고 감탄했다. 하지만 감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겨레1호 옆에 나란히 정박한 다른 5기의 겨레호들은 어딘지 모습이 이상했다. 기존의 설계대로 만들어진 겨레1호와는 달리 나머지 겨레호들은 설계와는 한참 달랐다. 의아한 국민들이 많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이의를 제기할만한 사람들은 전부 뇌만 적출된 채 탱크 속에 적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순차적으로 6대의 겨레호에 나누어 탑승했다. 2호에서부터 6호까지는 일반 국민들이 골고루 배정되었다. 1호로 배정된 국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배일이는 마지막 탑승단인 제 6차 탑승 단에 포함되어 겨레4호에 올라탔다. 배일이는 속으로 감탄했다. 내가 드디어 홍익공영에서 만든 우주선에 오를 수 있다니! 모습이 설계와는 다소 상이하지만 분명 어떤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흥분한 자신과는 다르게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여기저기 들려왔다.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저들끼리 모여 쑥덕대는 사람들은 겨레1호를 제외한 다른 우주선들의 안전성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또 겨레1호는 사회 고위층만 타고 있다는 낭설을 사실인양 퍼뜨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불만을 품는 불순분자를 봐야한다니! 배일이는 그만 무지한 사람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부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습니까? 왜 이렇게 불만이 많습니까? 당신들은 빨갱입니까? 배일이의 외침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겨레6호의 관리자들은 자칫 혼란에 빠질 뻔한 배의 분위기를 바로잡은 배일이를 보고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일이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탑승원들이 모두 동면에 들기 전, 정부는 전체 공지 방송을 했다. 겨레 2호와 6호는 모든 시스템이 전자동으로 사람이 관리할 필요가 없는 최신 우주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거 봐 우주선의 설계가 변경된 건 다 국민들을 위해서라고 뒤에서 수군거린 사람들은 다 반성해야 돼. 앞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시스템이 전자동으로 국민들을 돌봐주며 그러지 못한 1호에는 정부 관료들과 사회적 책임이 막중한 상류층이 타게 된다는 사정을 설명했다. 배일이는 감동으로 인해 눈물이 차올랐다. 무사여행을 기원하는 대통령의 인사를 끝으로 배일이는 동면캡슐에 누워 눈을 감았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한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 세계의 모든 궤도 엘리베이터에서 각국에 건조된 우주선이 분리되어 우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궤도 엘리베이터에서도 겨레1호도 필두로 총 6대의 우주선이 지구를 벗어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문제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겨레1호와는 달리 나머지 5대의 상태가 이상했다.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이 불규칙하게 나오더니 어느 순간 서로의 항로를 침범했다. 항로를 방해하던 겨레호들은 서로의 선체가 부딪혔고 파손되었다. 커다란 구멍이 난 겨레호들 사이로 동면캡슐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배일이의 캡슐도 있었다. 대파된 겨레호들은 결국 불을 뿜으며 폭파되었다. 사건을 사건으로 덮고 날조와 선동으로 만들어진 겨레호들은 한줌의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졸지에 우주미아가 된 배일이는 동면 캡슐 속에서 즐거운 꿈을 꾸었다. 그동안에도 사회 사위계층을 태운 튼튼한 겨레1호는 광속으로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국민, 배일이는 국가에 의해서 잊혀진 국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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