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잊히고 망각은 미학이 된다

조각 by 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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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마법사를 위하여.


피어나는 꽃들이 서로 향기를 뽐내는 계절, 봄. 하늘은 참으로 맑고 투명했다. 그 날의 비극은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지만...

푸르고 푸른 하늘이 기분 좋게 흔들리는 나무를 돋보이게 하는 계절, 여름. 푸르른 하늘에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아직 방학은 시작되지 않았기에.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흐려진 것은 왜일까.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해를 만끽하고 있었던 나는 그 날 무엇을...

점점 쌀쌀해지면서도 아직은 나를 감싸는 계절, 가을. 올 것이 오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하늘은 높고 깨끗했음에도 나는...

솜털을 쏟아내는 하늘은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다 되었음을 알렸다. 겨울, 오지 않기를 바란 계절. 아직도 그 날의 비극을 기억하는데 너는 이제 이 곳에 없구나. 널 기억하는 건 나 뿐인걸 감사할 수는 없었지만 너의 뜻 이었기에 안고 살아온 기억이었다. 네가 날 찾아준 것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 이것은 불변하는 사실이 분명하다. 너는 내가 자신을 찾아준 거라 말했지. 그래서 나는 이제 너를 찾아가려 한다. 다시 한 번 내가 발견될 수 있도록. 겨울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놓인 의자는 너의 부재를 더욱 아프게 했다. 빈 자리는 너의 것. 하지만 이제 괜찮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어떤 엔딩일 지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01.

잊을 수 없는 종류의 기억들이 있다. 이건 그런 종류의 이야기다.

마법 사실 별 거 없다─고 ■■■이 말했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내 오랜 단짝이다. 그 애는 맨 뒷 줄 창가 자리에 앉아서 수업 시간 내내 멍 때리는 그런 애였다. 어디 몸이 안 좋은지 학교도 가끔 빠졌고 조퇴도 자주 했다.

나는 특별할 것 없는 전학생인데 그 애가 학교에 잘 없는 탓에 친해질 시간도 없었다. 다른 애들이랑은 금방 친해졌는데, 그 애는 아는 게 없어서 궁금해하던 차에 그 애가 마법사라는 걸 들었다. 너무 놀라서 의자째로 뒤로 넘어졌던 기억이 난다─의자 뒷 다리로만 균형을 잡고 있었다─.

02.

그 애가 등교하는 날에는 사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내가 내 스마트폰의 사용을 자제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나도 마법사였거든.

정확히는 마법사의 자질이 있는 비마법사였다. 엄마가 알려줬다. 나는 자질은 있지만 부모님이 내켜하시지 않아서 마법사로서의 개화는 하지 않은 비마법사였다. 당연히 등록도 안했다.

이번 세대에 들어서 마법사는 거의 멸종 위기였다. 마법사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르다.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었지만 어쨌든 이 '개화'를 통해서 진짜 마법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 전에는 그냥 인간이고 검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 자질을 검사하는 법도 있는데다 어릴 때 다들 검사를 하기는 했지만 나는 좀 예외적인 존재─원래 마법사는 태어날 때부터 자질을 가지고 있으므로─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나한테서 자질이 느껴진다며─엄마는 마법사였고 그런 걸 판별할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가족 회의를 소집했다. 나는 내가 반쪽짜리 마법사란 사실을 그때 알았다. 어쨌든 엄마 세대까지만 해도 수가 꽤 되었는데 그 바로 아래 세대인 내 또래에는 마법사 수가 급감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은 마법을 배울 수도 없는 걸 생각하면 마법사는 '멸종 위기'인 게 맞았다. 애초에 그냥 사람은 아니니까.

나중에 가서 생각해보니 마법사 수가 급감한 건 나같은 반쪽짜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거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의 개화를 막은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등록만이라도 막았거나. 사실 마법사라는 것이 직업적으로나 생물종으로나 그다지 좋은 건 아니라는 뜻이다. 엄마다 일하는 걸 보고 자라서 알았지만 별로 순탄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직종은 아니었다.

03.

스마트폰의 사용을 줄였다는 게 무슨 의미냐하면, 그게 내 마법의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쉽게 표현하면 그게 내 마법봉─실제로는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나는 진짜 마법사는 아니므로 가끔 그렇게 불렀다. 진퉁 마법사가 아닌 한편 매개의 도움으로 마법은 사용하는 존재가 마법소녀말고 또 있겠는가? 집에서 내 별명도 그거였다─이었다. 결국 스마트폰을 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내가 학교에서 내 마법을 남발하는 걸 그만뒀다는 의미를 가졌다.

언제 어디에 마법을 썼냐고?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은 '마법'이 해 모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마법'은 그렇게 편리하지도 않고 포괄적이라거나 광범위하지도 않다. 자세히 설명하려면 끝도 없으니 한 문장으로 정리하겠다: 한 명의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한계란 종류의 한계를 뜻한다. 해 모 소설에서는 주문과 동작을 아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연습을 통해 특정 마법을 익힐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마법사에게 '마법'이란 '자신의 마법'을 말하므로 마법은 대체로 포괄적이지 못하다. 소설에서처럼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마법을 가진 마법사는 정말 극히 드물었다. 그 정도면 수 세기에 한 명 겨우 가질 수 있는 재능이다. 그러니까, 모든 마법사에게는 자신만의 마법이 있었다. 내가 반쪽짜리이긴 해도 자질을 가진 이상 나에게도 '나의 마법'이 있었고, 그건 인간 본연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종류의 것이었다. 좀 순화하자면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그런 마법이었고 그게 굳이 분류하자면 정신 간섭 계열인 '나의 마법'이었다.

엄마가 마법사여서 자주 일터가 바뀌었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자주 이사를 했고 전학을 다녔다. 그래서 나는 보통 전학 초기에 마법을 두르고 다녔다. 개화를 하지 않아서 숙련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하지 않았고, 마법을 개선, 개조하거나 혹은 강화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나는 내 마법에 그런대로 만족했다. 그야 맨날 전학을 다녀도 친구를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근본적으로 좀 더 깊은 관계를 만드는 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부분이 아쉽긴 했지만 이만하면 나에게는 충분히 쓸모있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대뜸 같은 반에 마법사가 있다지 않나. 그것도 나같은 반쪽짜리랑은 다른 진또배기가. 걸리면 무조건 등록 후 개화행일 게 뻔한데 안 걸리려면 내가 사려야지 별 수 있어?

04.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솔직히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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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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