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코토] 크리스마스 데이트 (完)

[카미코토] 크리스마스 데이트 : 마무리

크리스마스 데이트 시리즈가 1월이 되어야 마무리 되었네요! 아무튼 중단편 마무리 지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 완결 축전 추가 (24. 2. 10)

유리온실처럼 꾸며진 라운지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날씨가 괜찮았는데, 구름이 많아져 더 어둑해진 하늘에 카미조는 눈썹을 찌푸린다. 비가 오진 않겠지…? 몰려오는 불안감에 입술을 깨물던 카미조는 내부에서의 동요를 내던지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일단 미사카를 챙기는 게 우선이야.’

코트 정도는 혼자 입을 수 있다고 툴툴대며 제게서 코트를 뺏어 들고는 어느새 단정한 옷매무새의 미코토에게 카미조는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줬다. 제 목에 둘리는 목도리를 두 눈 끔뻑이며 받아들이고 있다가 뒤늦게 그 목도리의 주인이 카미조인 것을 알아챈 미코토는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라선 거칠게 밀쳐내듯 공격적으로 화난 목소리로 뭐냐고 소리쳤지만,

“여자가 남자보다 추위를 잘 탄다고 하니까… 일단 여자아이잖아? 지금 복장으로는 추울 테고.”

‘여, 여자아이…….’

지근거리로 다가와 따뜻하게 목도리를 매주던 카미조는 만족스러운 듯 활짝 편 어깨와 꼿꼿한 자세로 미코토에게서 떨어지더니 즐거운 표정으로 목도리를 잘 맸는지 검토한다.

분명 카미조가 말한 여자의 의미와 자신이 생각하는 여자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얼굴 근육이 늘어지며 멍하니 제 목에 둘러진 목도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미코토는 의미가 다르더라도 자신을 평범한 소녀로 봐준 것이 좋아서,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가려내려 두 손으로 목도리를 입까지 끌어올렸다. 뺨에 스며드는 온기와 목도리에 스며든 카미조의 향기가 자신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는 거 같았다.

아까의 불쾌한 일은 잊은 모양인지 한층 더 활기를 띤 눈을 하는 미코토에 목도리를 매주길 잘했다고 생각하던 카미조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옥상 정원인 만큼 풀숲에 미니 전구들이 꾸며져 있어 반짝반짝했고, 귀여운 난쟁이 인형들이 그곳을 지키듯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옥상 정원의 메인인 크리스마스 트리가 큰 것이 세워져 있었다. 큰 트리라 주위를 훤히 비춰주는 전구와 커다란 물건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트리 주위엔 산타와 산타 요정의 애드벌룬이 띄워져 있었다.

‘여기도 엄청나게 꾸며놨네….’

역시 학원도시라며 감탄하는 카미조의 옆에 찬 바람을 맞으며 정신을 차려가던 미코토가 있었다. 카미조와 나란히 걸어가며 잔잔한 분위기 속에 있다 보니 조금 진정된 듯했다. 느린 눈을 깜빡이며 뭔가 말하려고, 상황에 맞는 의사 표현을 찾으려 생각을 가다듬던 미코토는 차분하게 말을 꺼내 본다.

“오늘 어땠어?”

오히려 자신이 묻고 싶은 말인데 오늘 어땠냐고 물어보는 미코토에 카미조는 생각했던 것을 말로 내뱉지 않는 대신 그러는 너는? 이라고 물었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니 미코토는 가던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우뚝 서있는다.

카미조가 한 행동은 제 질문을 피해버리는 행동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내가 먼저 질문했잖아.”

“그건 그런데….”

난감해하면서 답하기를 주저하는 카미조에 미코토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됐어, 등을 돌렸다. 성큼성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미코토에 카미조는 왜 그러는 건데? 당황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물으며 미코토한테 다가가려 했으나 콰강! 비가 오지 않는 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치는 소리가 나자, 주위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구름이 많이 몰려왔으니, 비가 오려고 벼락이 내리치는 건가 싶었다. 비가 내리기 전에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외치려던 카미조는 날벼락이 내리친 것치고는 크게 소란스러운 상황에 주위를 살폈다. 어두운 밤이 되긴 했지만, 주변엔 트리의 전구와 설치된 가로등이 있으니 그리 어둡지 않을 텐데 유독 자신 쪽에 그늘이 져 있는 것에 카미조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어본다.

“아.”

고개를 들어보면 허공에 있어야 할 애드벌룬이 자신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날벼락에 맞아 고정하던 무언가가 풀린 것으로 인해 제 쪽으로 떨어지는 듯싶었다.

카미조의 불안감이 다른 쪽으로 적중한 것이다.

뭐, 가스가 들어가 있는 풍선이니까 저걸 직통으로 맞는다고 해도 별로 아플 거 같진 않았다. 그렇게 안심하던 것도 잠시, 설상가상으로 떨어지는 풍선에 무게를 못 이긴 것인지 바닥과 풍선을 지탱하던 끈이 팽팽하다 못해 틱! 소리를 내며 끊어져 허공을 휘갈겼고 휘리릭, 바람을 휘감기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트리를 격타했다.

“꺄아아—!!”

애드벌룬이 떨어지는 것도 모자라 거대한 트리까지 쓰러지려고 하니, 옥상 정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애드벌룬을 지탱하던 끈이 2개나 끊어졌으니 떨어지는 속도는 가속되었고, 크게 펄럭이며 아래로 떨어져 오는 애드벌룬과 으드득 소리를 내며 쓰러져가는 트리에 사람들은 혼란 속에 도망치기 바빴다.

날벼락으로부터 시작된 사고의 스케일이 커지자 다들 도망치기 바쁜 가운데, 카미조 토우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

움직이지 못한 게 아니라 잡념에 빠져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피하려고 뛰어봤겠지만, 지금의 카미조는 그럴 정신이 안 됐다. 부정적인 감정이 최고조로 달하고 있었다. 분명 이 사고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양이 카페에서부터 이어진 불행력이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라고.

고양이 카페에선 고양이들이 미코토의 전기에 놀라 일어난 사건이니 카미조의 탓이라곤 할 수 없는데, 보통 사람이 똑같이 겪었더라면 그 정도로 물건이 떨어질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됐던 모양이었다. 그때의 일을 어떻게든 무마하긴 했으나 그 일로 기분이 상한 모양새의 미코토에 그런 미코토를 달래려 백화점의 옥상정원으로 왔다.

그것도 좋은 방안은 아니었던 것일까, 자신이 안내 사항을 제대로 듣지 않은 탓에 미코토의 컨디션이 난조 해졌고, 그것을 해결하려 잠시 혼자 두고 가버렸는데… 그 탓에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버리는, 무서운 상황을 겪게 해버렸다.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여자 혼자 두고 간 것은 제 잘못이었다. 몰려오는 죄책감에 안 좋은 일이 생긴 장소를 빠져나가려 서둘러 미코토를 데리고 나갔다. 속에서부터 모락모락 올라오던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그게 문제였는지, 오늘 어땠냐는 미코토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었다. 찬 바람을 쐬면서 가라앉히려 했지만, 아직 답답한 감정이 피어오르고 있어 거짓말로 좋았다고 말하긴 싫었다. 그렇다고 미코토가 상처 받을만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오히려 저로 인해 크리스마스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내지 못한 건 아닐까 싶어 되물어버리고 말았다.

결국엔 제 탓으로 미코토의 기분은 좋지 않게 됐다.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누군가에게 제 자리를 주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후회됐다.

그럴 것이 지금도 제 불행력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 도망치기 바쁘지 않은가. 자신은 불행한 일에 익숙하지만, 그 불행에 남들이 휘말리는 것은 원치 않았다.

신은 이런 날까지 나를 저버리는구나….

애드벌룬과 트리가 제 쪽으로 떨어지고 있는 데도 도망칠 마음이 들지 않았다. 허무해져서. 크리스마스에 행복을 바라서도 안 되는 사람이었나 싶어서.

두 손으로 허벅지를 문지르며 구부정한 자세를 한 카미조는 해탈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이 감정을 어서 짓눌러 없애달라는 듯 제게로 떨어지는 것들을 기다렸다.

괜찮아, 카미조 토우마란 녀석은 불행한 일에 익숙하니까….

“–토우마!!”

“—!?”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뜬 카미조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가있던 미코토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주위의 어수선함에 미코토는 뭐지? 싶어 뒤를 돌아봤고, 카미조를 향해 떨어지는 애드벌룬에 놀라 입이 쫙 벌어진다. 애드벌룬으로도 모잘라 트리까지 그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그에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하다가 이내 빠르게 요동치자 미코토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며 저 바보! 안 피하고 뭐 하고 있는 거야! 하고 그를 향해 튀어 나간 것이 지금의 상황에 이른다.

“오지 마, 미사카!”

“시끄러워! 이제 와서 멈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다른 사람들처럼 피하고 있을 줄 알았던 미코토가 부츠의 뒷면을 폭발하고 자전을 흩뿌리며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에 카미조는 팔을 펼쳐 보이며 오지 말라고 외쳤지만,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 이마에 주름이 잡힌 얼굴로 그를 향해 발을 내딛던 미코토는 그의 몸 위로 제 몸을 날렸다. 동시에 몸을 튼 미코토는 정면으로 떨어지는 트리를 향해 레일건을 쐈고, 음속의 세 배로 발사된 작은 코인은 오렌지색의 직선이 되어 하늘로 아름답게 뻗어나갔다.

레일건을 맞은 트리는 도망쳐서 사람이 없는 쪽으로 방향을 꺾어 들어갔고, 트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꺾이는 것을 확인한 미코토는 곧바로 애드벌룬을 향해 전격을 내던졌다. 전격을 맞은 애드벌룬은 펑! 하고 크게 터지며 반으로 갈라졌고, 그로 인해 안에 있던 공기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으로 커다란 바람이 주변으로 휘날리며 미처 대피를 못한 사람들이 바람에 나뒹굴어 다니거나 바람을 피해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푸하! 살았다..”

연산대로 처리된 상황에 미코토는 안도했다. 다만, 전격으로 뚫려진 풍선이 갈라졌어도 터졌던 풍선 조각은 거대했던지라 나풀거리며 공중에 흩날리던 풍선 조각은 엎어져 있어 피할 수 없는 두 사람을 덮쳤고, 미코토는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 제 위에 얹어진 풍선 조각을 옆으로 밀어내고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으로 공기를 들이마셨다. 한숨 돌리던 미코토는 아직도 멍하니 제 앞에 주저앉아있는 카미조한테 한소리하려 경직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

카미조의 시선이 제 다리 쪽에 가 있는 것에 살펴보면 카미조한테 달려들면서 스타킹이 뜯기고 무릎이 밀린 모양인지 상처가 난 듯싶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큰바람으로 인해 작은 돌이나 자갈들이 미코토한테 날라왔던 모양인지 볼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제 불행에 자신이 다칠 뻔한 걸 미코토가 구하면서 다치기까지 한 모습에 충격받은 카미조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힘들어하는 표정을 내보이며 입술을 깨문다. 고양이 카페에서도 여러 물건이 떨어져 자신이 다칠 뻔한 걸 미사카가 구해주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정도가 다른 자신의 불행에 휘말려 다쳐버리기까지 한 미코토에 카미조는 아래로 고개를 늘어뜨리며 불안과 두려움에 눈동자가 흔들린다. 입안에 과도하게 침이 고이기 시작하고 아랫배가 싸해지는 느낌이 들자, 카미조는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다. 결심한 듯 주먹을 쥔 손을 비틀던 카미조는 긴장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원래 오려던 사람이 따로 있었지? 그 사람과 같이 있었더라면 이런 일 따위 없었을 텐데..”

쭈뼛거리는 어투로 자책하며 목을 굽혔다. 기력 없어 보이는 움직임으로 시선 교환을 기피하는 카미조의 모습에 미코토는 어이가 없었다. 미코토는 촥! 카미조의 볼을 두 손으로 치듯이 붙잡아 자신과 시선을 마주 보게 만들었다. 두 눈을 끔뻑이며 뭐 하는 것이냐고 물으려던 카미조의 말은 미코토가 먼저 외치는 것에 가로막힌다.

“멋대로 착각하는 거 아니야!”

“미사카…?”

비록 계기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오늘 행복했다고 말하며 같이 보낼 남자 따위 없다고, 쉬지 않고 외치는 미코토에 카미조는 믿기지 않는지 하지만.. 하고 말끝을 흐리며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데이트하려던 사람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냐고 오해하던 부분에 이어 말하자 미코토는 억울한 듯이 외친다.

“내가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헙,”

억울한 나머지 제 감정을 그대로 말해버리던 미코토는 급하게 입을 막는다.

그래봤자 이미 늦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명칭에 카미조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텅 빈 눈망울로 시선을 내리깐다.

“역시 있었던 거네, 좋아하는 사람.”

길고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부들부들 턱이 떨려왔다. 입안에서 신맛이 느껴지고 목울대 안에 망울져 있는 듯한 덩어리의 불쾌한 감촉으로 갈빗대가 꽉 조여있는 느낌이 들며 아랫배가 무거워졌다.

어째서인지 카미조가 화내는 부분은 미코토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부분이었지만, 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언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어 카미조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크리스마스를 잘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일이 꼬여버리니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어 미코토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입술을 오므린다.

손으로 입술과 입가, 얼굴을 더듬거리며 어쩔 줄 모르는 미코토의 모습이 수선스러워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올린 카미조는 생채기가 나 있는 미코토의 얼굴을 보고 눈동자가 커진다.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미코토의 상처부터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카미조는 병원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미코토를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카미조의 시선은 미코토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의 표정에 미코토의 얼굴은 일그러진다.

“알고 싶지 않아?”

“..뭐를?”

“크리스마스에 당신이랑 데이트한 이유.”

“그건 오해를 받아서….”

“오해받았다고 데이트하자고 하지 않아.”

카미조는 이런 말을 하는 미코토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미코토의 상처가 신경 쓰였기에 병원부터 가자고 미코토를 이끌어가려 하지만…

“당신이랑 크리스마스를 같이 즐기고 싶어서 그랬어!”

“좋아하는 사람이랑 있고 싶으니까, 그래서….”

카미조는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미코토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금방 깨달을 수 없었다.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둔감한 카미조에 미코토의 시선이 분주해지며 손놀림도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멈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지 않으면 오해를 한 채 끝날 크리스마스가 싫어서, 목이 메어오고 몸이 파르르 떨려왔지만, 미코토는 용기를 끌어모아 카미조를 향해 외친다.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냈으면 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전부 당신을 가리키고 있는데 왜 모르는 거야! 그만 알아채라고, 바보!!”

촉촉이 젖어있는 눈가에 홧홧하게 달아오른 얼굴이 되었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자신과 마주한 채 외치는 미코토에 카미조는 큥, 하고 마음을 울리는 감정에 넋을 놓는다.

‘미사카가 좋아하는 사람도, 데이트하고 싶었던 사람도, 였다고…?’

미코토의 진심을 알게 된 카미조는 제 속을 휘몰아치는 감정에 혼란스러워져 눈가를 가늘게 찌푸리고는 고개를 숙인다. 이 감정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웃음기가 사라진다. 긴장된 근육에 느리고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고개를 들어 보이며 재차 물어보려던 카미조는 숨을 삼키며 입을 다물게 된다.

이상하게 미코토의 주변만 화사하게 빛이 나는 것이 아름답게 보였고, 눈물이 고여 있어도 상관치 않고 또랑또랑 빛나는 눈동자를 제게 향하는 모습은 눈부셔 보였다.

그의 울고 있는 모습에 걱정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 맞을 텐데.

어째서인지, 그런 모습이 곱고 어여뻐 보여서….

두근, 두근,

갑자기 맥박이 빨라지며 망치질하듯 심장이 마구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몸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 잔잔하게 부는 찬바람에 몸이 움츠러들어 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위장의 울렁거림이 느껴져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아랫입술을 덜덜 떨 정도로 훌쩍이면서도 붉게 상기된 얼굴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미코토의 모습이 환하고,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미코토와 보냈던 날들이 플래시백 되면서 미코토와 함께 일 때 안심이 되고 마음이 평온해졌던 감정들을 느꼈던 것에 카미조는 경직된 곳이 없는 나른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제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 감정의 이름을 차차 알아가기 시작했고, 공연히 미소를 지어가던 카미조는 숨을 깊고 만족스럽게 내쉰다. 느리고 편하게 호흡하며 반쯤 감긴 눈으로 만족스러움이 어려있는 눈길로 미코토를 향해 고개를 들던 순간,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두 사람을 향해 안티스킬과 저지먼트가 달려왔다.

안티스킬은 사고가 난 장소를 정리하는 인솔에 나섰고, 저지먼트는 신속히 다친 사람이 있나 확인하며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온 모양이었다.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저지먼트에 놀란 미코토는 카미조한테 떨어지려 일어나려는데 상처가 나 있는 무릎의 통증에 제대로 걷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사고를 겪고 울다 보니 힘이 빠진 거 같았다. 운 이유는 다른 쪽이 원인이었지만…. 조금만 쉬면 일어날 수 있을 거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미코토의 다리 밑으로 손이 쑥 들어온다.

“꺄?!”

다리 밑으로 손이 들어오며 번쩍 들어 올려지는 감각에 미코토는 비명을 지른다.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것에 두 손으로 입을 가려내던 미코토는 제 허리와 다리를 감싸 번쩍 안아 든 당사자를 노려봤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앞에 있는 저지먼트한테 응급처치를 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고 있었다. 미코토는 무시하지 말라며 내려놓으라고 카미조의 가슴팍을 두들겼다. 이 상황이 좋긴 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한테 시선을 주목받는 것이 부끄러웠던 미코토는 작은 주먹으로 콩콩 때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불만 다 들을 테니까, 이대로 있어.”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말하는 카미조에 그의 말을 받아들인 듯 주먹을 치던 두 손을 제 가슴에 가져다 댄 미코토는 조용해졌고, 그대로 카미조에게 공주님 안기를 당한 채 자리를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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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먼트에게 지급된 젤 약품으로 미코토의 상처는 잘 아물어 들었다. 바르기만 해도 소독, 지혈, 재생 촉진 등이 되는 우수한 제품이라 가능했던 거 같다. 여자아이의 몸이니 좀 더 소중히 하라는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말이다….

뜯어진 스타킹 부분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서둘러 들어가 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시간도 늦었고 해서 기숙사로 돌아가게 된다.

두 사람은 시간에 맞춰 7학구로 돌아왔다. 처음엔 통증이 있어 걷기 힘들었지만, 치료를 받고 나니 걸을 만한 것에 미코토는 알아서 걸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미코토를 두고 볼 카미조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넘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카미조는 기숙사까지 자신이 목발이 되어 바래다줄 테니 제게 기대라며 에스코트 해주려는 사람처럼 팔을 내밀었다. 포장된 케이크를 들고 있으니까, 자신까지 돌보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쉽사리 손을 뻗지 못하면, 팔 떨어지겠다며 장난스레 말하는 카미조에 미코토는 할 수 없다는 듯 툴툴댄다. 발을 절뚝이다가 넘어지면 안 되니까 도움을 받는 거라며 변명하듯이 말하던 미코토는 카미조의 팔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그렇게 옆에 서서 목발 노릇을 해주는 카미조와 그런 카미조에게 기대고 있던 미코토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조용하다. 미코토는 꼴사납게 넘어지지 않으려 집중하느라 말이 없었고, 카미조는 코트 너머라고 해도 제 팔에 닿아있는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긴장되어 말이 없었다.

…모르고 보면 언뜻 팔짱을 낀 듯한 커플의 모습이었다.

허탈하게 시간을 보내며 걸어가던 미코토는 기숙사가 보이는 것에 카미조의 팔에서 손을 뺀다. 이제 기숙사가 보이니 혼자 갈 수 있다며 이만 가도 좋다고, 데려다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즐거웠다며 지금까지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카미조에게 둘러주곤 기숙사로 들어가려 했다.

턱,

“?”

기숙사로 들어가 보려는 미코토의 손을 카미조가 붙잡아낸다. 자신을 붙잡은 카미조에 놀란 듯 미코토는 무슨 일이야? 조심스럽게 물었고, 카미조는 바로 답하지 못한 채 입을 달싹이다 겨우 말을 꺼냈다.

“오늘 어땠냐고 물었지?”

“…응.”

백화점 옥상에서 자신이 물었던 질문에 답할 마음이 들은 듯한 카미조에 미코토는 기숙사를 향했던 몸을 틀어 카미조와 마주했다. 옥상정원에서는 제대로 말할 기분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다고. 결심한 카미조는 있는 그대로 느꼈던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선 커플로 오해받은 일로 시작한 착오가 있긴 했지만, 맛있는 케이크를 얻어먹고, 그곳에서 받은 굿즈로 네가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말과

고양이 카페에선 네가 고양이와 놀 수 있게 제 오른손이 도움 되어 기쁘긴 했지만, 거기서도 제 불행에 말려들게 해버렸고, 그때 제 행동으로 불쾌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물론 미코토는 불쾌하지 않았을뿐더러 사과하는 카미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사과하지 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솔직하게 감상을 꺼내주는 카미조의 말을 괜히 막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대로 헤어졌다간 관계가 어색해질 거 같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백화점 옥상으로 간 것에 대한 감상을 이어갔다.

“역시 학원도시의 스케일이라고 해야 할까, 옥상에 유리온실로 라운지를 세울 줄이야~. 라운지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알코올을 날려버린 음식에 취한 미사카씨를 케어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

“윽.”

자신을 조절하지 못한 잘못을 알기에 찔린 미코토는 미안하게 됐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평소라면 욱하고 화냈을 테지만, 진지하게 가라앉는 분위기에 일부러 장난을 친 듯 보이는 카미조에 그 정도 반응만 해준 것이었다.

“그땐 혼자 둬서 미안해.”

“어..? 별로, 괜찮았어….”

진지한 어투인데 미안한 듯 애달픈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카미조에 미코토는 카미조의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듯 그 정도 남자들은 혼자 해치울 수 있었다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냥함을 보여줬다.

미코토의 상냥함과 자신이 미안하다고 하는 이유에 대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카미조는 힘없이 웃어 보인다. 알코올에 취한 미코토에게 치근덕대며 다가섰던 남자들이 마음에 쓰였기 때문이라고, 그것으로 미안하다고 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전혀 모르는 미코토에 카미조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말하지 않았다.

술을 깨우기 위해 나온 옥상 정원에서-다행히 지금은 구름이 걷히긴 했지만-갑자기 내리친 날벼락으로 사고가 났고, 거기서 카미조는 말을 멈췄다. 미코토의 고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했으니까. 멈칫한 카미조를 눈치챈 미코토는 이다음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상황에 휩쓸려 내뱉은 고백으로 괜히 어색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엷은 미소를 짓던 미코토는 이야기를 끝마치려 입을 열어 보인다.

“그래서, 즐거웠어?”

“..응, 즐거웠어.”

즐거웠다고 말하는 카미조에 미코토는 그제야 안심한 듯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두드러지게 불거진 광대뼈와 생기가 너울거리며 환히 빛나는 눈으로 웃음을 흘리는 미코토에 카미조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제 알았다는 듯 미소를 흘린다.

“미사카, 한 번 더 불러줘.”

“? 뭐를?”

“불렀잖아, 내 이름.”

한 번 더 말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불러달라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미코토는 이름을 불러달라는 것을 알아챈다. 언제 불렀다는 건지 알 수 없어 하던 미코토는 그때의 그 상황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힌다.

“그때는 상황이 급했으니까…!!”

그때는 어떻게 불러도 반응해줄 거 같지 않아 불안해하며 입술을 깨문 미코토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려 그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었다.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꼬고, 목덜미를 문지르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는 듯이 당황하는 미코토에 카미조는 잡고 있던 미코토의 손에 힘을 준다.

“한 번이면 돼.”

간절한 듯이 저를 바라보며 부탁하는 카미조를 미코토는 외면할 수 없었다. 아랫입술을 문지르며 말문을 열까 하다 이내 닫아버리고, 주저하는 미코토를 카미조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점점 더 정적으로 변해가면서 활동성이 줄어들던 미코토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느리게 내뱉더니 목젖까지 실룩거려가며 힘들게 침을 삼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어 보인다.

“토, 토우마..”

기어들어 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였지만, 똑똑히 제 이름을 부르는 미코토를 보고 나서야 카미조는 안심한 듯이 웃는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미코토는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갑자기 훅하고 앞으로 당겨지는 힘에 휘둥그레진다. 폭, 하고 푹신한 그의 품에 안기게 된 미코토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면, 카미조는 그런 미코토를 끌어안으며 미코토의 귓가에 속삭인다.

“좋아해, 미코토.”

에? 미코토가 무엇을 들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카미조는 미코토에게서 떨어지면서 다치게 한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처럼 생채기가 났던 볼에 가볍게 입 맞추고는 가볼게, 하고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갔고, 미코토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는지 돌처럼 굳어 있는 채 벙쪄있는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후에 하도 안 오는 미코토를 마중하러 나온 쿠로코가 주저앉은 미코토를 보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답이 없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에 서둘러 기숙사 안으로 들여보내게 된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은 상태로 정신 차리지 못하는 미코토에게 쿠로코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다그쳤고, 그에 미코토는 무슨 일이라는 초점에 잡혀 중얼거렸다가 기숙사 밖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곤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꿈이야!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리 없잖아!”

하하, 어색한 웃음을 내보이던 미코토는 옷도 엉망진창이니까 씻고 오겠다며 욕실로 들어섰고, 쿠로코는 그러라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미코토가 들어간 욕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댔다.

씻고 나니 정신을 차린 미코토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얻은 피규어를 올려둔 책상에 시선을 두다 곧 소등 시간인 것에 불을 끄고 자려던 참이었다. 그럴 때 미코토의 휴대전화로 지잉, 진동이 울린다. 짧은 진동 소리를 보아 문자가 날아온 모양이라 확인하고 자도 문제는 없겠지 싶어 문자를 본 미코토는 자신이 겪은 것이 꿈이 아님을 직시하게 되며 달뜬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 From : 카미조 토우마

제목 : 잘 들어갔어?

오늘 많이 정신없었지?

잘 자고 내일 봐. 』

여기까지가 끝인 줄 알았는데 좀 더 밑으로 가면 내용이 있는 스크롤에 내려가 보니 『그런데.. 우리 사귀는 거 맞지?』라는 내용이 있었다. 푸핫, 카미조 다운 엉뚱한 질문에 미코토는 웃음이 터진다. 분명 마지막 내용을 보내기 전에 몇 번의 고민을 했을 것이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까지 확인도 했고, 자신이 멋대로 한 것이긴 하지만 뽀뽀까지 했으니 사귀는 거라고 해도 되나? 이걸 사귄다고 하는 건가? 세간에서 사귄다는 정의를 모르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게 맞는지 확인을 받고 싶은 안절부절못하는 카미조의 모습이 그려졌다.

잘 준비에 들어간 쿠로코는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리는 미코토에 뭐 재밌는 거라도 보셨나요? 물었고, 미코토는 아차, 하고 그런 거라며 얼른 자자고 불을 껐다.

침대 속으로 확실히 들어간 쿠로코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코토는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답변을 보낸다.

한편, 이미 기숙사로 돌아왔던 카미조는 다 씻고 난 뒤에 잘 채비를 해둔 욕조에 들어가 누워있었다. 띠롱, 하고 문자가 온 착신음에 카미조는 휴대전화를 열어서 문자를 확인했고, 문자를 다 읽은 카미조는 핸드폰을 든 손을 위로 든 채 몸을 웅크린다.

무슨 문자가 왔는지 감이 올 정도였다.

문자 내용만 봐도 좋아서 주체 못 할 거 같은 마음을 겨우 사그라트린 카미조는 다시 문자를 살핀다.

『 From : 미사카 미코토

제목 : 바―보

당연히 사귀는 거지!

잘 자! 』

서둘러 답변을 끝내는 모습이 보이는 문자에 카미조는 웃음이 났다. 불행했던 사고도 있었지만, 행복한 크리스마스로 마무리된 것에 만족스러웠다.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놓아두고, 발끝을 가볍게 까닥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카미조는 마치 세상을 다 끌어안을 것처럼 팔을 벌리며 고개를 들어 보인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분명 불행했던 사건들이 겹치긴 했지만, 뒤늦게 자각한 마음을 깨닫고 미코토의 고백에 답하여 사귀는 사이가 된 것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산타 씨가 고마운 선물을 준 것으로 생각하며, 많은 일들에 피로해진 카미조는 졸음이 몰려왔고 감겨오는 두 눈에 곧장 잠들었다.

다음날, 하늘은 카미조의 행복을 바라지 않은 것일까. 심상치 않은 두 사람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주변 사람들한테 사귀는 것을 들킨 두 사람은 한동안 고생에 빠졌다고 한다.


✿∘˚˳°∘° 24. 2. 10
친구 Harumi 씨가 크리스마스 시리즈 글을 보고 완결 축전을 그려주셨습니다.
자랑하기 위해 마지막 페이지에 올립니다. (허락 맡았습니다 ^^v)

🎁 팬아트 (🌸하루미 씨)

* 언어의 장벽으로 잘못된 설정이 보일 수 있습니다. 혹시 몰라 의문 갖지 마시라고 적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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