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크리스마스가 되기 며칠 전, 미코토는 카미조에게 불려 연인이 되어 달라고 고백 받는데… (※파란머리 피어스의 사투리를 구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완벽하지 않아도 봐주세요!)
“미사카! 나와 연인이 되어 줘!”
“하, 에.. 에엑—?!!”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며칠 전, 미코토는 카미조에게 불려 어느 공원에 나와 있다. 축 늘어진 자세로 걱정이 그득한 기색을 보이는 카미조에 또 무슨 사고에 휘말린 건가 싶어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날카롭게 주시하며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면, 냅다 고백 멘트를 받아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커진 미코토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무, 물론 싫다는 건 아닌데…!”
“아, 상황 설명을 안 했네.”
안절부절 몸을 꼬며 말을 더듬는 미코토의 뒷말은 자연스럽게 스루되고, 갑자기 무슨 말을 하냐는 물음에 꽂힌 카미조는 손바닥에 주먹을 가볍게 부딪히며 깨달은 얼굴을 한다. 그렇게 카미조는 이러는 이유에 대한 상황 설명을 시작하겠다며 회상에 들어간다.
───────── ౨ৎ ─────────
그것은 운 좋게 보충수업이 없어서 슈퍼마켓 타임 세일에 맞춰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잠깐, 카미양.”
그런 자신을 막아 세운 것은 두 친구, 츠치미카도와 파란머리 피어스였다. 카미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다 발을 동동 구르며 무슨 용무냐고 물었다. 슈퍼마켓 타임 세일이 얼마 안 남았으니 되도록 빨리 끝내달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이번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지 자세한 계획은 짜고 가야 하지 않겠냥~.”
“그건 나중에 해도 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며 귀찮다는 얼굴로 투덜거리던 카미조는 시계를 계속 쳐다보더니 다음에 시간 내서 들어주겠다며 교실 문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 카미조에 놀라 눈이 커진 츠치미카도는 카미조 앞으로 튀어나와선 긴 팔로 교실 문을 막아 세운다. 카미조의 어깨를 탁 치며, 작년 여름에 고3이 되면 공부에 임하느라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즐길 수 없을 테니, 고2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까지 애인이 없다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자고 한 것을 잊었냐며 닦달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솔로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에 파란머리 피어스는 아무렇지 않게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냈다.
아무튼 작년에 어떻게 지낼 건지에 대해 계획은 미리 짜뒀고, 선물도 서로 어떻게 줄지 정해두긴 했지만, 추가로 하고 싶은 것이 있을지 모르니 얘기해 보자는 그들에 카미조는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문다.
‘그런 이야기, 기억에 없는데—?!’
그렇다. 카미조는 작년 여름의 기억이 없는 상황. 정확히는, 작년 7월 28일 이전의 기억이 없을 뿐이긴 하지만… 두 사람과 이번 연도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자고 계획한 기억은 없다. 그렇다는 얘기는, 기억 상실 이전에 했던 이야기로 지금 카미조는 모르는 것이 맞다. 그럼 아예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 누가 봐도 이상하다. 그의 기억상실을 모르는 그들의 의심을 피하며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순 없는 건지, 무심코 입술을 핥던 카미조는 없는 머리를 쥐어 짜내며 해결책을 내보이려 노력했다.
‘–잠깐, 요약하자면 크리스마스 솔로 파티인 거잖아? 그렇다면….’
“미안, 나 참가 못 해.”
“왜?!”
“몇 달 동안 준비해 온 걸 읎던 걸로 하고 싶은 긴가!”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는데, 애인이 있어서 안 돼. 미리 말해두지 못해서… 저기, 듣고 있어?”
카미조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애인이 있어서 솔로 파티에 참여를 못 한다는 발언이었다. 활달하고 거침없는 의사 표현으로 거짓말을 술술 흘리던 카미조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아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팔을 휘휘 젓는다. 그들은 자신이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입이 떡 벌어진 모습을 보였고, 이에 양심이 찔려 손을 가슴뼈 위에 얹은 카미조는 이렇게 넘길 수 있다면 어쩔 수 없다고 자기 설득하는 것으로 합리화했다.
“은제 여자 친구가 생긴기가?”
“그러게 말이다냥– 지금까지 연애하는 듯한 모습은 본 적 없는데 말이지~?”
얼이 빠져있던 것도 잠시, 주먹으로 책상 끝을 내리친 그들은 이를 갈며 좁은 보폭으로 걸음을 서두르더니 콱 그의 어깨를 쥐어 잡고는 긴장감 있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물었다.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어 금세라도 으르렁거릴 것만 같고, 눈에 보일 정도로 혈관이 씰룩거려오는 두 사람 행색을 위협적으로 느낀 카미조는 몸을 잔뜩 움츠리며 뒷걸음질한다. 해결책은 떠올랐지만, 말만으로는 믿어주지 않을 녀석들이라 그런지 의문을 제시했다. 어차피 잠깐 보여주고 말 계책이니 시도해 본 것인데, 그리 쉽게 풀릴 리 없는 건가, 안색이 초췌해진 카미조는 이마를 꾹꾹 누른다.
카미조에겐 곁에 얼마나 있었는데 애인이 있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고, 그의 말을 불신하며 자신들에게 없는 애인이 그에게 있는 것을 부인하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불신보다 언제부터 연애질하고 있었던 거냐는 질투심이 강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아무렇게나 눈을 흘기는 두 사람을 전혀 느끼지 못한 카미조는 더 말할 거리도 생각나지 않았기에 그렇게 됐으니까, 라며 급하게 정리하고는 자리를 떠나려 했다.
“카미양의 애인이 누군지 알아봐야겠다냥!”
“야! 네 맘대로 보지 마! 그런 건 개인정보인데…!”
뒤를 보인 카미조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멋대로 휴대전화를 빼앗아 든 츠치미카도에 카미조는 그런 건 개인정보라며 뺏으려 들지만, 차이 나는 키에서 패배하고 만다. 지친 카미조가 낙심한 태도로 한숨을 내쉬며 손에 얼굴을 파묻곤 젠장, 조금만 더 컸으면…! 하고 주먹을 움켜쥐고 있을 때, 츠치미카도는 장난기 있는 표정을 지으며 휴대전화의 갤러리를 훑어본다.
“역시 카미양, 거짓말… –응?”
“왜 그르냐… 아아악—?!!”
츠치미카도의 반응에 궁금증이 배어 있는 듯한 억양으로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간 파란머리 피어스는 휴대전화 화면에 보인 사진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꺼풀을 비빈다. 그들의 반응이 저 정도로 나올 만큼의 무언가가 있을 거 같지 않은데, 눈썹을 추켜세우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카미조는 파란머리 피어스가 눈이 앞으로 튀어나온 얼굴로 휴대전화의 화면을 보여주는 것에 뒤늦게 그것이 있었다는 걸 떠올린다.
“여기 있는 여자! 미사카 미코토 아녀!!”
““뭐어어—!!?!””
“아! 그건—!”
파란머리 피어스의 충격적인 발언에 교실에서 떠나지 않고 무의식적인 곁눈질을 하며 그들을 염탐하고 귀를 쫑긋거리며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친구들이 벌떡 일어나 비명을 내질렀다. 카미조가 변명하려고 몸을 던졌지만, 파란머리 피어스한테 달려간 교실 친구들에게 깔리고 밀려서 교실 바닥에 엎어지고 만다.
츠치미카도가 발견한 사진은 1년 전, 대패성제의 벌칙으로 미코토와 페어 계약으로 찍어낸 사진이었다. 거기엔 페어 계약에 제출한 사진과 커플로 보이기엔 애매한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이 몇 장 있었다. 발뺌 못 할 증거에 두 사람은 말을 잇지 못하고, 카미조의 애인은 그 3위의 미사카 미코토인거냐며 주변이 떠들썩해지는 와중, 한 사람이 팔짱을 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근데 카미조의 애인이 정말 그 미사카 미코토라면, 왜 지금까지 들키지 않은 거지?”
반 친구의 의문으로 인해 카미조는 단숨에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밟힌 머리나 허리가 아파 앓는 소리를 내던 카미조는 허리를 짚으며 몸을 일으키는데, 예기치 못한 의문을 받은 것에 움찔하고 놀란다. 잠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망설였지만, 괜히 머뭇거렸다가 그 잠깐의 공백이 괜히 의심을 살 수 있음을 알았기에 카미조는 황급히 수습하려 허둥댄다.
“그거야, 미사카는 학원도시에서 단 7명만 존재하는 레벨5 중 서열 3위잖아? 유명인이니까, 남의 시선을 받는 건 꺼릴 테니 비밀 연애를 하자고 해서—….”
말끝이 흐려지긴 했지만, 어찌저찌 상황을 모면하는 데 성공한 것인지 다들 일리가 있다며 이해하는 분위기라 초조해 보이는 미소를 보이며 잠시 목덜미를 손으로 감싸던 카미조는 슬금슬금 도둑처럼 츠치미카도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그렇게 돼서 너희들과 크리스마스는 못 지내게 됐다! 하고 혼이 나간 사이 손에 힘이 없을 때 폰을 뺏어 든 후, 급히 교실을 빠져나가려 하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두 사람이 양발을 넓게 짚고 서는 것으로 가로막는다.
“으딜 급하게 가나, 카미양?”
“이제 볼일은 끝났으니까 가보려고..?”
“우리랑 있는 시간 따윈 아까우니까 얼른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여자 친구랑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며 치유하겠다는 거냥?”
“내가 언제 그런 식으로 말했…!”
“이 배신자 놈——!!!”
“으아악, 불행해——!!!”
그렇게 카미조는 친구들한테 맞아 터지다가 겨우 빠져나올 수 있게 됐는데, 그냥 놔준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미사카 미코토와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이 맞는지 증거를 제시하라는 조건으로 보내준 거라, 이미 슈퍼마켓 타임 세일은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던 카미조는 일단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려 조건반사적으로 받아들였고, 그게 문제가 되었다.
그들은 한날한시에 찍은 미코토와의 사진이 페어 계약 때밖에 없다는 점에서 불신했고, 크리스마스에 정말 그녀와 함께하는 거라면, 둘이 즐기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보여내라고 했다. 기억상실을 숨기려 한 일이 이렇게나 커져 버려서, 어찌할 도리가 없던 카미조는 기억상실을 알고 있는 미코토를 만나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 지금의 상황으로 이르게 됐다.
현재로 돌아와, 그의 이야기를 들은 미코토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큰 착각을 한 것에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애인이 돼달라는 말을 부탁하는데 써낸 저 바보 같은 놈한테 화가 치밀어 올라 입을 오므리고 어금니를 콱 깨문다. 파직하고 미코토의 어깨 언저리에서 창백한 불꽃이 튀었다. 넘쳐난 불꽃이 포물선을 그리며 일렁거리고, 옷은 물론 머리카락에서부터 정전기가 올라오는 것에 이상함을 눈치챈 카미조는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그거부터 말하라고——!!!”
“으아악—!! 죄송합니다!!!”
분노를 참지 못한 미코토는 카미조를 향해 앞머리에서 번개의 창을 발사했고, 카미조는 비명을 지르며 오른손을 드는 것으로 창백한 불꽃이 자신을 향해 직격하는 것을 막아냄과 동시에 우는 목소리로 사과를 내질렀다.
───────── ౨ৎ ─────────
후우–, 후우–, 숨을 고르는 미코토에 이제 끝났나 싶어 눈치를 보던 카미조는 이런 이상한 상황에 말려든 것으로 화가 난 거라 생각해 두 손 모아 그를 향해 사과한다.
“크리스마스에만 사귀어주면 돼! 그 이후는 내가 차였다고, 헤어졌다고 말하면 되니까!”
울컥,
카미조의 저 말로 인해 미코토는 축 처져 둥그런 어깨선에 늘어진 자세로 광채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을 보인다. 설움이 북받쳐와 눈물이 날 거 같음에 눈가가 점점 뜨거워졌고, 그런 얼굴을 보이기 싫어 눈길을 내리깐다.
자기한텐 그런 기회조차 없고, 그는 자신을 여자로조차 보지 않는다는 게 느껴져서, 심장이 욱신거려왔다. 파르르 떨리면서도 꾹 다문 입술로 터져 나올 거 같은 울음을 참아내며, 미코토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어루만지며 심장이 무겁다고 느껴지는 감각을 가라앉히려 했다.
‘크리스마스라고 했지….”
꾸욱 주먹을 쥔 미코토는 결심한다.
크리스마스에 이 바보를 꼬셔내고 말겠다고.
그날만큼은 솔직하게 굴어서 그의 마음을 얻어내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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