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로서 그녀를 봐온지 십수 년, 여전히 키리에는 혼자 있는 때가 좀처럼 없었다. 늘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돕거나, 함께 있거나, 봉사 활동 준비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를 신경 써서 챙겨주고 있거나. 늘 신경 써주는 것에는 군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늘 기쁘고 감사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선행도 적당히 해야지, 자기 사정이야 어떻든 언제나 어
오빠인 크레도도 그랬고, 그녀도 그랬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듯이 아이들은 금방 부쩍 자라곤 한다. 저녁 무렵이 되어도 활달이 뛰어노는 아이며, 슬슬 졸리다며 투정을 부리는 아이며 모두가 그랬다. 처음 부모님 손을 붙잡고 이곳에 오기 시작한 날이 그 전 나날보다 길어진 지금, 그들과 어울리며 함께 자란 그녀가 또 다른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은 이미 당연한 생
끼걱, 끼걱하고. 소년은 발을 굴렀다. 그 반동으로 작은 몸집을 태운 그네도 앞뒤로 흔들렸다. 다만 전후로 반복되는 움직임에 힘은 없었다. 없는 것은 힘뿐만이 아니다. 아이다운 쾌활함도, 웃음도 없었다. 하얀 후드로 가리고는 있었으나 지나칠 때마다 한 번씩은 돌아볼 법한 백발에 벽안, 예쁘장한 얼굴까지, 주목을 끌 만한 얼굴임에도 소년의 주위엔 아무도
결국, 그녀는 여기에 남았다. 물론 그도 함께였다. 사실, 그녀든 자기 자신이든 이곳을 떠나 이곳 아닌 곳에서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싫어하고 한심하게 여기던 곳이었는데. 네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보이는 전경은 참담했다. 그가 서 있는 곳이 아직 복구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구역인 탓에 더 그러했다. 시야에 들어
네로는 고개를 들어 매표소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보았다. 물론 쳐다본다고 쓰인 날짜가 바뀔 리는 없었다. 그의 바람대로 시간이 앞당겨지지도 않는다. 다른 차량보다 0이 하나 더 붙어있는 특급 열차 편의 가격도. 네로의 손에 들린 펜 끝이 주인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초조하게 책상을 톡톡 두들기자 창구 너머의 직원이 그를 쳐다보았다. 얼른 고르고 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