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긴른] 속이 답답할 땐 식도염을 의심해라 (3-완)

하나하키 소재 긴른

에서 계속됩니다.


제가 토해놓고도 황당해 벙 쪄서 바라보던 긴토키가 카츠라를 불렀다.

 

“……즈라?”

“즈라가 아니라, 카ㅊ…. 영령지사 Z다!”

 

카츠라는 평소처럼 답하려다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리고는 빠르게 말을 바꿨다.

그는 자기가 흘린 복면까지 찾아서 얼굴까지 가렸지만, 그것에 속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충격에 빠진 사람들 사이에서 신파치가 소리쳤다.

 

“진짜 카츠라 씨 맞아요? 방금 긴 상한테서 나온 거예요? 말이 돼?!”

 

남들을 충격에 빠트리고도 카츠라는 태연했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아, 내가 긴토키에게서 나왔는가? 분명 나는 나올 타이밍을 기다리며 숨어있었지…. 그러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빨려 들어간 후론 기억이 없다네.”

“블랙홀에 들어갔던 거냐!”

 

블랙홀에 빠진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하면 긴토키의 뱃속에서 다시 튀어나올 수 있는 건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신파치의 대답을 들은 카츠라는 자신이 어디에 빨려 들어갔다 나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오, 내가 블랙홀에 들어갔던 건가?’

 

“그럼 긴토키 자네가 내 생명의 은인이군! 자, 내 답례의 키스를 받게.”

“너 미쳤냐?”

“미쳤냐가 아니라 카츠라다. 다시 키스하면 이번엔 엘리자베스가 나오겠지. 자! 이리 오게!”

 

엘리자베스도 빨려 들어간 거군.

카츠라가 긴토키의 얼굴을 향해 양손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긴토키는 그 손을 붙잡고 밀어내며 버텼다.

 

“으아아악! 싫어! 꺼져!”

“하하. 마다하지 말게, 긴토키. 자네도 키스가 필요하지 않나?”

“내가 네놈이랑 왜! 어이, 요 녀석들아! 도대체 몇명한테 얘기를 뿌리고 온 거야?!”

“긴 상이 누굴 좋아하는지 모르는데, 있는 사람에겐 다 물어봐야죠!”

“긴 쨩이 솔직히 안 불은 게 잘못이다, 해!”

 

긴토키가 해결사들을 향해 소리치고, 카구라와 신파치도 지지 않고 말을 받아쳤다. 그 대화에 끼어들며, 카츠라가 여전히 긴토키와 손을 잡은 채로 말했다.

 

“긴토키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바로 나일세.”

 

카츠라의 황당하고 뻔뻔한 말에 긴토키는 양손을 아래로 내치며 소리쳤다.

 

“또 뭔 헛소리야! 이놈들이 단체로 뭐 잘못 먹었냐?!”

“이런, 기억 안 나는가?”

 

카츠라의 대답에 순간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또 나왔다. 이번엔 무슨 패러디를 하려고!”

 

신파치가 독백하듯 소리치고, 카츠라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2일 전이었지….”

 

* * *

 

『 그날은 해가 떠오르는 새벽이었다.

영령 지사의 길을 이어가는 나는 경찰에게 밤새 쫓기고 있었지.

고개를 내민 태양의 빛줄기를 향해,

피가 떨어지는 팔을 눌러 잡고…….

 

경찰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갔고,

나는 위험에 빠지고 있었네.

하지만, 골목을 달리고 있던 순간 명예 영령 지사 긴토키가 나를 숨겨 주었다.

놀란 나는 긴토키에게 물었지.

 

“이 시간에 왜 여기 있나, 긴토키?”

 

긴토키는 이렇게 대답했네.

 

“귀가 중이었다.”

“하하. 긴토키 자네가 새벽 귀가라…….”

 

경찰들이 전부 떠날 때까지,

우리는 잠시 어두운 골목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왜 안 자고 있었나?”

 

나는 긴토키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긴토키는 질문을 듣고는 가만히 길을 쳐다보며 말했네.

 

“너한테 궁금한 게 생겨서.”

“궁금한 것? 무엇이든 물어보게.”

 

 

“혹시……. 나 너 좋아하냐.”

 

그날 우리는……. 』

 

* * *

 

“그만!!!”

 

긴토키가 비명을 지르며 가츠라의 턱을 주먹으로 올려쳤다.

 

“그런 적 없다고! 패러디 재미없다고!! 그만 좀 해! 처음엔 낄낄대면서 쓰다가 점점 웃음을 잃어가는 작가가 눈에 보인다고!”

“커억. 말도 안 돼. 완벽한 피치의 하이펀치다.”

카츠라가 주먹에 우주선 쪽으로 날아가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신파치가 중얼거렸다.

“와…. 끝까지….”

“이제 질린다, 해.”

 

카츠라는 저를 바라보는 식은 눈들을 보며 헛기침했다.

 

“아무튼, 긴토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확실하네.”

“저기, 앞선 분들도 다 그렇게 말씀하셨었거든요.”

“아니, 나는 다를 거다.”

 

카츠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뒤로 물러 지탱하고 상체를 살짝 숙여 전투 준비 자세를 취했다. 카츠라가 한 손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와라, 긴토키!”

 

그 도발에 긴토키는 그를 보고 마주 서며 자세를 잡았다.

 

“그래. 아주 박살을 내주마!”

 

긴토키가 먼저 카츠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츠라도 고함을 지르며 달렸다. 둘의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때, 카츠라가 뒤에 서 있는 사람들 틈에서 엘리자베스가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를 보고 갑작스럽게 달리는 방향을 바꾼 카츠라가 긴토키의 다리에 발이 걸려 휘청거렸다. 그 탓에 균형을 잡지 못한 그는 긴토키를 붙잡고 넘어졌고, 긴토키도 함께 쓰러졌다.

 

-쿠당탕.

카츠라는 긴토키의 다리 사이에 한쪽 다리를 겹치고, 양팔을 긴토키의 머리 옆 바닥을 지탱해 상체를 띄운 자세를 하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카츠라와 긴토키가 서로를 응시했다.

 

‘너. 키스하면 죽인다.’

긴토키는 그렇게 말하는 눈빛으로 카츠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긴토키가 뭐라 할 틈도 없이, 카츠라는 긴토키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포갰다.

입술이 맞닿자마자 긴토키는 카츠라의 다리 사이를 걷어찼다.

 

“크억!”

 

카츠라가 제 중심부를 잡고 부들대며 일어섰다. 한참 정지 자세로 비틀거리던 카츠라는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 상체를 숙였다.

긴토키가 아닌 그가 곧 속을 게워낼 것 같은 자세를 취하자 사람들이 눈을 키웠다.

 

“뭐야, 카츠라 씨가 토를 해?”

“흐어억!”

 

카츠라의 몸이 요동치고, 그가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냈다.

그의 속에서 나온 것은…….

 

 

“그냥 토잖아요.”

“그냥 토다, 해.”

“아. 더러워.”

 

보통의 그것이었다.

평범한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불쾌한 것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함께 그것을 보고 있었던 긴토키가 뒤늦게 신호가 와 벽을 짚었다.

 

“하악. 흑.”

 

계속되는 구토에 고통이 심한지 긴토키의 눈에 생리적인 눈물이 맺혔다. 손톱으로 벽을 긁으면서 헛구역질을 하자 사람들이 긴토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긴 쨩!”

“긴 상!”

“긴토키! 어서 황금 꽃을 토하게! 나를 향한 고백을!!”

“그래, 긴 쨩! 그것만 있으면 앞으로 몇 달은 집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해! 다시마 초절임 사달라, 해! 자! 토해라! 산만큼 토해라!”

 

카츠라와 카구라가 사이좋게 긴토키의 등을 두드리고, 신파치가 그들을 말릴 때, 긴토키가 무언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황금 꽃은 아니었다. 대신,

황금 우마이 봉이었다.

 

“우오오오오!!! 잘했다, 긴 쨩!”

“오오! 한다면 할 수 있지 않은가! 긴토키!”

 

카구라와 카츠라가 환호하며 긴토키를 칭찬했다. 같은 황금이지만 뭔가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신파치는 떨떠름한 태도로 말했다.

 

“아니. 다른 거 아냐?”

“아니다, 해! 누가 봐도 황금 꽃이다, 해!”

“음. 음. 우마이 봉이야말로 간식계의 혁명, 간식계의 황금 꽃이라고 할 수 있지. 식사시간까지 아끼며 달리는 사무라이들의 구원자라고.”

 

카구라와 카츠라는 신파치의 의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잔뜩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저건 꽃이 아니다.

 

“아니, 근데 누가 봐도 꽃이 아니라 봉이잖아요?”

 

신파치의 말에 우마이봉을 들고 있던 카구라가 그것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말했다.

 

“아냐. 이건 봉이 아니라 봉우리다, 해. 잘 봐라, 이런 식으로 만지면 꽃이 된다, 해.”

 

부스럭대는 소리가 이어지고 완성이 되었는지 카구라가 외쳤다.

됐다!

 

하지만 카구라가 내민 손에는 가루만 남아있었다. 황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불어 들어온 바람이 카구라의 손바닥 위를 스쳐 지나갔다.

 

 

-후.

해결사의 집세가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흐에. 내 다시마 초절임…….”

 

카구라는 망연자실해진 채로 가루가 날아간 허공을 바라았다.

그러다 곧 눈빛을 번뜩이더니 긴토키의 등을 두들겼다. 그 눈빛은 황금을 포기하지 않은 자의 것이었다. 카구라가 소리쳤다.

 

“긴 쨩! 토해! 토하는 거다, 해!”

“악! 왁! 그만 때려 이 녀석아! 두들긴다고 안 나온다고! 내가 자판기냐!”

 

몇 번을 두드려도 더는 황금 기둥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황금을 포기한 카구라는 슬픈 표정으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긴토키와 신파치도 카구라 옆에 앉고, 히지카타와 오키타가 건너편에 앉았다. 사카모토와 카츠라도 말없이 다가왔다.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금방 진정되고, 신파치가 입을 열었다.

 

“긴 상. 이제 남은 남자라고는 하세가와 씨, 콘도 씨, 야마자키 씨밖엔 없는데요…….”

 

카구라와 신파치는 당황했다. 인연이 오래된 남자 중에, 긴토키가 연애감정을 느끼리라 생각한 사람들이 저 4명이었다. 당연히 4명 안에서 해결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긴토키로부터 황금 꽃을 피워내지 못했다.

 

“하나는 자식 있는 유부마다오에 하나는 고릴 스토커잖냐. 차라리 배드민턴 바보가 낫다, 해. 긴 쨩, 빨리 셔틀콕에 키스하라, 해.”

“야마자키 씨에요? 확실히 야마자키 씨일 수도…….”

 

흐름은 야마자키로 흘러갔다. 어서 야마자키에게 연락하라고 신센구미들을 보채는 구라파치들 뒤로, 긴토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 거냐? 좋아하는 사람 없다니까?”

“정말 없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죠. 휴, 야마자키 씨도 아니면 카무이 씨라던가, 젠죠 씨에게도 연락해야 하는데….”

“뭐?! 바보 오빠는 아니다, 해. 절대 싫어!”

 

신파치의 고민에 히지카타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의견을 덧붙었다.

 

“너도 있잖냐.”

“예?”

 

히지카타의 말에 여러 쌍의 시선이 신파치로 꽂혔다.

 

“넌 남자 아니냐?”

“아?”

 

 

해결사 사무소에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신파치가 경악하며 부정했다.

 

“이에에엑! 말도 안 되죠!!! 해결사는 그거잖아?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사는 가족이라고!”

 

신파치의 말을 들은 카구라는 히지카타 대신 대답했다. 거기에 오키타도 한마디 거들었다.

 

“음, 확실히. 가능성 있다, 해. 가족 간 금단의 사랑을 탐하는 근X게이…….”

“으아아아악! 카구라!!”

“확실히, 그런 부류가 인기가 있기도 하죠. 주황색 머리 쌍둥이라던가, 연약한 형을 가두겠다, 잡아먹겠다 하는 동생을 귀여워하는 헌터라던가……. 친형제가 부담스러우면 재혼가정 형제로 만드는 예도 있고….”

“아니, 오키타 씨, 왜 그렇게 잘 알고 계신 건데요?”

 

 

그때, 긴토키가 그들의 말을 끊었다.

 

“됐어, 그만해. 소용없으니까.”

 

긴토키의 한마디가 시끌벅적한 사람들을 멈춰 세우고 사늘하게 분위기를 식혔다. 그는 말없이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며 천장을 응시했다.

 

“긴 상……. 긴 상 일인데 왜 이렇게 무심해요? 긴 상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요.”

 

신파치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카구라도, 히지카타도, 오키타도 긴토키에게 한마디씩 얹었다.

 

“생명이 위험한 병이라고 했다, 해. 긴 쨩 죽을 수도 있다, 해.”

“처음부터 네놈이 제대로 누군지 말을 했으면 이렇게 번거로울 일 없었잖냐. 왜 숨기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자존심이 중요한가?”

“아니면, 목숨까지 걸 만큼 말하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형씨?”

 

다른 사람들이 긴토키에게 뭐라 말하든, 긴토키는 코를 후비며 딴청을 피웠다. 그의 답답한 태도를 지켜보던 신파치가 결국 화를 냈다.

 

“긴 상! 제발! 정신 차려요! 당신 죽는다고!”

 

카구라는 말없이 긴토키의 멱살을 잡고는 주먹을 날렸다.

 

-퍽.

카구라의 주먹질에 긴토키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긴토키는 신음도 내지 않으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의 멱살을 놓지 않은 채로 카구라가 말했다.

 

“긴 쨩을. 긴 쨩을 살리려고 우리가 이만큼 움직이고 있다, 해. 긴 쨩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이만큼 붙잡고 있다, 해.”

 

긴토키의 옷을 쥔 카구라의 주먹이 떨렸다. 긴토키의 바지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신파치가 팔로 자신의 눈을 닦으며 카구라의 말을 이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불안은 커지고, 긴 상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줄어드는데도……. 모두 괜찮을 거라고,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고 있잖아요.

겨우, 겨우 다시 모였는데…. 힘들게 되찾은 일상인데…….”

 

말을 잃고 훌쩍이는 카구라와 신파치를 보던 오키타가 자신의 뒷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애들이 이렇게 말하는데……. 형씨도 힘 좀 내시죠?”

 

긴토키는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잠시 한숨을 내쉬고, 그가 말했다.

 

“의미가 없다니까. 계속 얘기했잖냐.”

 

긴토키는 앞에 앉은 카구라의 눈물을 닦아주며 계속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긴토키의 말을 들은 카구라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 말았다.

구라파치와 신센구미들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시선들의 끝엔 카츠라와 사카모토가 있었다.

 

말이 없었던 그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한 사람을 짐작하고 있었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콜록거리는 소리에 다시 시선은 긴토키로 돌아왔다.

사람들 앞에서 격하게 기침을 하는 긴토키가, 카구라의 앞에 빨간 꽃을 뱉어냈다.

 

“내가 그놈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만……. 망령을 쫓는 사람에게 이런 병을 주는 것 보면….”

 

그 꽃은 빨간 백합이 아니라, 피로 물든 흰 백합이었다.

 

“아무래도, 제 인연을 지켜내지 못해 세상이 주는 벌인 것 같다.”

“긴 쨩!!!”

“긴 상!!!”

 

 

긴토키가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 * *

 

긴토키가 벚꽃 나무 아래에서 눈을 떴다. 그는 누워있던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은 하늘에 만개한 벚꽃들이 반사되어 분홍빛으로 빛났다. 연분홍빛 꽃잎들이 쌓여 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흐르는 강도, 잔디가 있을 바닥도 모두 벚꽃잎으로 덮인 이곳을 보고, 긴토키는 생각했다.

여기, 꿈인가.

그는 이곳에 오기 전의 기억을 되돌리고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설마 여기 저승인가. 지옥에 온 건가?

 

“제법 운치 있는 지옥이잖아. 관을 짜놓으랬더니, 길을 깔아놓았나.”

 

긴토키는 실소하며 중얼거렸다. 그때, 그의 말 사이로 그리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네놈이 오라고 만든 것 아니다.”

 

놀란 긴토키의 시선 끝에 한 남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표정을 보며 웃었다.

 

“무단침입한 주제에 팔자가 좋군.”

“타…. 타카스기…….”

 

타카스기는 천천히 다가와 긴토키의 왼 쪽에 앉았다. 긴토키는 타카스기의 얼굴을 바라보다 강으로 눈을 돌렸다.

 

타카스기와 긴토키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단,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그 말들을 서로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그들은 말 대신 술을 나누었다. 강풍경을 보며 타카스기가 가져온 술을 마셨다. 아주 느리게, 천천히.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을 술과 함께 영혼에 새기려는 것처럼.

 

술을 다 비워갈 때 즈음, 긴토키가 마지막 잔을 들고 타카스기를 곁눈질로 일별하며 말했다.

 

“내가 널 좋아한대.”

 

타카스기는 그 말을 듣고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들고 있는 술잔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다 조용히 웃었다.

 

“웃긴 이야기군.”

“어. 그러게.”

 

 

두 사람은 마지막 잔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이 잔을 비우기 전에 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다.

 

“……타카스기, 난 아직 너에게 갈 수 없어.”

“그래.”

“아직은,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아.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긴토키의 말엔 망설임이 가득했다. 미련도 가득했다. 억지로 짜내는 듯이 뚝뚝 끊겨서 나오는 말에, 타카스기는 말없이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건배하라는 듯이. 긴토키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 잔을 부딪쳤다.

각자의 잔을 깨끗이 비우고, 타카스기가 말했다.

 

“어서 가라. 네가 있을 자리는 여기가 아냐.”

“…어.”

“그리고. 네놈이 지옥 문턱까지 와서 웃긴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순순히 져줄 수 없지.”

“……어?”

 

묵묵히 타카스기의 말을 조용히 듣던 긴토키가 되물었다. 타카스기는 말을 더 잇지 않고 슬며시 잔을 내려놓았다. 긴토키의 잔까지 부드럽게 빼앗아 내려두고, 자리를 당겨 앉아 고개를 가까이했다. 그들의 코끝이 살짝 닿았다.

 

“긴토키.”

“……타카스기, 너.”

 

그들은 서로 닿은 손끝을 서서히 겹쳐 손바닥까지 맞닿게 했다. 서서히 감기는 긴토키의 시야에 아름답게 휜 타카스기의 눈꼬리가 담겼다.

 

“이승에서 길 닦아놓고 기다려라, 긴토키. 너에게 지지 않을 더 웃긴 이야기를 들고 갈 테니.”

 

입술과 손바닥에 닿은 따뜻한 감촉을 끝으로, 긴토키의 정신이 흐려졌다.

 

 

* * *

 

긴토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익숙한 천장이 보이는 이불 위였다. 그는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깨끗하게 치운 것인지, 주변에 가득 쌓여있던 꽃들은 보이지 않았다.

곧 긴토키의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온 신파치가 그를 발견하고는 울상지으며 이름을 불렀다.

 

“긴 상!”

 

 

긴토키는 제 오른쪽에 앉아 우는 신파치의 머리를 쓰다듬고, 신파치의 목소리를 듣고 울면서 달려오는 카구라에게 왼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때, 자신이 왼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카스기의 손을 잡았던 그 손엔 금색의 꽃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운 나비를 떠올리게 하는 금빛의 꽃 한 송이.

긴토키는 그 꽃을 바라보다 심장이 죄어오는 통증을 느끼며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긴토키의 움직임에 신파치와 카구라가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긴 쨩! 긴 쨩! 괜찮냐, 해? 가슴이 아파?”

“긴 상? 가슴 아파요?”

“…아니.”

 

 

긴토키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크게 호흡했다. 올라오는 감정을, 토할 듯 느껴지는 그것을, 그는 천천히 흘려보냈다.

통증이 진정된 것을 느낀 긴토키는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에는 자신을 걱정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신파치와 카구라에게, 긴토키는 웃으며 말했다.

 

“식도염이야.”

 

 

속이 답답할 땐 식도염을 의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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