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타카긴] 재난대비는 틈틈이

K-패치 청게, 천둥 트라우마 긴토키

태평양에서 생성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내일 저녁이면 에도에 도착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데이트는 힘들겠군. 그 녀석 집에서 놀까.

타카스기는 내일의 일정을 생각하다 시계를 확인하고는, 텔레비전의 전원을 끄고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 학교 갈 시간이다.

 

타카스기는 집에서 나와 옆집 문을 두드렸다. 최근에 이 집으로 이사 온 녀석은 우연히 타카스기의 같은 반, 옆자리로 전학을 왔다. 그 때문에 이 녀석을 챙기는 것은 전부 그의 몫이 되었다.

 

고등학생이면 알아서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타카스기는 선생님의 부탁 이상으로 긴토키를 신경 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곧 자신이 그에게 한눈에 반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뭐, 전생에 인연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원수였다던가.

 

타카스기는 긴토키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보통은 초인종을 누르면 금방 문이 열리고 나갈 준비를 마친 긴토키가 나왔다. 하지만 오늘은 기척이 없었다. 타카스기는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렀다.

 

"긴토키!"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부르며 문을 두드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창백한 낯의 긴토키가 인사했다.

"어, 가자."

"...? 아프냐?"

 

아니, 아니야.

긴토키의 대답이 묘하게 굼떴다.

 

* * *

 

"어, 야!"

축구공이 날아가 긴토키의 코를 강타했다. 긴토키는 공에 맞아 뒤로 꺾인 고개를 따라 주저앉았다. 멀리 있어 막아주지 못한 타카스기가 그에게 달려갔다. 긴토키에게 공을 날렸던 학생도 달려와 사과했다.

 

"정말 미안! 괜찮아?"

긴토키는 맞은 코를 몇 번 문지르더니, 괜찮다며 손사래 쳤다.

"내가 멍 때린 거야. 미안해할 필요 없어."

 

타카스기는 말없이 긴토키를 바라보다, 긴토키의 주변을 둘러싸던 아이들이 다시 게임을 계속하기 위해 떠나자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어? 평소보다 반응이 느리다."

"...그냥 날씨가 좀 안 좋아서 그래."

타카스기의 말을 들은 긴토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태풍이 오기 전의 하늘은 맑기만 했다.

 

* * *

 

기상청의 예보는 정확하지 않았다. 에도를 향해 올라오던 태풍은 경로와 진행속도가 변경되어 훨씬 일찍 도착했다. 저녁이 아닌, 이른 아침으로.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태풍의 영향으로 오늘 학교는 휴교합니다.'

아무런 조치 없이 있다가 등교 직전이 되어서야 메시지가 왔다. 학교가 얼마나 일 처리가 느린지 다시금 깨닫는 아침이었다.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떠올렸다.

분명 문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 텐데. 설마 등교하겠다고 나간 건 아니겠지.

타카스기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차게 내리는 비와 휘몰아치는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차피 긴토키 집에서 놀기로 했던 거, 지금 찾아가자. 그럼 빗속에서 단둘이 집에 있는 건가?

타카스기의 어린 마음이 두근거렸다. 집에 혼자 있어 아무도 그를 볼 리 만무하건만,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타카스기는 헛기침하며 손등으로 하관을 가렸다.

현관문 옆 신발장에 설치된 거울에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타카스기는 우산을 쓰고 긴토키의 집으로 향했다.

 

비가 우산을 묵직하게 때렸다. 바람에 휘청이는 우산을 힘주어 잡고 버티며,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찾아갔다. 태풍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의 들뜨는 기분을 가라앉힐 수도 없었다.

그의 심장을 내려앉게 한 것은, 대문 아래에 떨어진 긴토키의 우산과 책가방이었다.

있어선 안 될 곳에서 흠뻑 젖어있는 긴토키의 흔적을, 타카스기가 놀란 표정으로 주워들었다. 긴토키의 집 대문과 현관이 전부 열려있었다. 타카스기는 바로 긴토키의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긴토키!”

빠르게 신발을 벗어 던진 타카스기는 거실로 달렸다. 긴토키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소리가 집안을 흔들었고, 침실에서 비명이 들렸다. 긴토키의 목소리였다.

 

“긴토키!”

타카스기는 침실로 들어갔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침대 위에 둥그렇게 뭉쳐있는 이불이 보였다. 벌벌 떠는 이불 안에서 울음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번쩍이는 불빛과 몇 초 뒤에 찾아오는 천둥.

 

“으아악!”

“긴토키!”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비명에 몸이 저절로 움직여 그를 이불째 감싸 안았다. 갑작스럽게 끌어안은 타카스기에 놀란 긴토키가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발작을 일으켰다.

 

“아악! 악! 쇼요! 쇼요! 아아악!”

“긴토키! 긴토키! 나야!”

 

바로 옆의 타카스기의 말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못하는 긴토키는 계속 한 사람의 이름만 부르며 울부짖었다. 창밖의 비처럼 쏟아지는 눈물은 그의 책가방처럼 얼굴을 적셨다.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몸을 돌려 그의 양 귀를 막고 이마를 맞댔다.

 

“긴토키. 나야, 타카스기. 이제 괜찮아.”

“흐. 흐으. 타, 타카스기?”

 

그래, 나야.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정신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품에 안아 등을 쓸어내렸다. 긴토키의 과호흡이 돌아올 때까지.

불안정한 호흡으로 헐떡대던 긴토키는 타카스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숨을 골랐다. 그러다 편안해진 그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긴토키가 다시 깨어난 것은 몇 시간이 지난 뒤였다. 침대 위에서 일어난 긴토키는 주방에서 나는 음식 냄새에 침실 밖을 나왔다. 타카스기가 앞치마를 매고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어났나.”

“......네가 왜 여기 있냐? 학교는?”

“휴교.”

 

식탁에는 따뜻한 찌개와 밥이 차려져 있었다. 긴토키는 수저를 준비해 의자에 앉았고, 그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밥이 반쯤 비워질 때, 타카스기가 긴토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쇼요가 누구야?”

“어?”

 

긴토키는 처음 듣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몰라, 그게 누군데?”

“기억 안 나? 네가 찾던데.”

“......그래?”

 

이상하네. 긴토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기억을 되짚어보려는 것 같았다.

 

“됐어. 괜히 떠올리려고 하지 마. 힘들어하던데.”

“......엉.”

타카스기는 밥 한술을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쇼요. 뭔가 낯이 익은 이름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은 듯한….

마음이 먹먹해지는 느낌이다. 긴토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작게 웅얼거렸다.

 

“뭔가 그리운 이름이네. 왜일까.”

 

 

재난대비는 틈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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