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또 한 사랑일지니

룩(콩둘기) 방생로그

커뮤 모음 by 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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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매일매일 나오는 것 도 귀찮아 한번에 치자고 말하고도 시험 치는 것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전보다는 아니더라도 보내진 책들은 꾸준히 공부하고 있었고, 복습하지 않은 과목도 그토록 노력했던 자신이 겨우 이 정도 시간이 지났다해서 다 잊어버릴리 없었으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몇번의 시험을 치고 당연하게도 훌륭한 성적을 받는걸 반복했다. 문제를 푸는 것 자체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시험 갯수가 워낙 많다보니 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이른 아침에 나왔음에도 바깥을 보면 벌써 방과후가 넘어 저녁이 되고나서야 드디어 마지막이라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마지막 선생님이 들어올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온건 익숙하긴 했지만 선생이 아닌 아카데미로 떠나기 전 샌드위치와 보내줬던 집사의 얼굴이라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집사!"

"오랜만이군요 아가씨.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냥 시험이 아니라 설득시키려고 집사까지 보낸거였나보네요?"

"주인님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저택을 떠나지 않고 집에서 자신을 돌봐주거나 원격으로 보좌하는 집사 아저씨가 이 곳 까지 왔다는건 딱 봐도 자신을 설득하러 보낸게 분명해 허리를 꼿꼿히 펴고 앉아 흠잡을 수 없을만한 상태를 유지한 집사를 바라봤다. 졸업할 때 까지는 봐주겠다고 한 건 그 두분이니 완고한 태도를 보이면 집사 아저씨는 뭐라 크게 더 못하고 걱정하는 이야기만 하다 돌아갈 것 이었다.

"가방에 따로 샌드위치를 넣어두었습니다."

"고마워요 집사."

실제로도 간단한 예법과 매너 시험이라는 이름의 걱정과 잔소리만 잔뜩 하던 집사는 가방에 샌드위치를 넣어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행동없이 떠났기에 나 또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카데미로 돌아와 답답했을 포켓몬들을 꺼내려했다.

그런데 사라졌다. 룩의 몬스터볼이.

"하...!"

아니, 몬스터 볼 자체는 있었다. 다만 룩의 몬스터볼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룩이 아닌 다른 몬스터볼로 대체되어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몬스터볼로.

***

팔데아 대륙으로 돌아가는 길, 집사는 자신의 아가씨에서 몰래 가져온 볼을 만지작거리다 꺼내곤 보고를 위해 스마트 로토무를 꺼내들었다.

"아가씨께서 많이 화나셨을겁니다."

[화가 났더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됐다. 이렇게라도 해야 돌아올 생각을 좀 하겠지. 부인이 지금 자길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그 애는 알 필요가 있어.]

"그건 그렇지만... 이 아이도 걱정됩니다. 갑자기 트레이너에게서 떨어진것 아닙니까."

[아멜리아라면 금방 돌아올테고 그 때 동안은 잘 돌봐줄테니 뭐가 문제지?]

"하아..."

룩은 몬스터볼에 나오자 자신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에 꾸벅꾸벅 졸았다. 엄마는 아니지만 상냥한 이 손길이 나쁜 사람일리가 없고, 이 목소리는 가끔 엄마랑 통화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라는것과 귀찮다고는 했지만 꼬박꼬박 사랑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 만큼은 기억하고 있는 룩은 겁먹지 않았다. 자신이 까먹은거지 또 수학여행이라던가 어딘가 놀러가는 걸 수 도 있었으니까.

"아가씨가 충격받아서 정말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실겁니까."

[그 애가?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칼. 충격이야 받겠지, 하지만 그 애는 돌아올거야. 자기 것은 포기하지 않는 아이니까.]

"그래도 이번에 주인님들 몰래 나가버린걸 보면 작정하고 나간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말로만 하면 끝까지 그 위험한 곳에 있으려 할테니 어쩔 수 없다. 차라리 포켓몬에게서 떨어트리는게 아니라 질릴 때 까지 볼 수 있게 해 줄 걸 그랬군.]

그런 것 들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멀리하게 했다. 어릴 때 하마터면 그 포켓몬 탓에 죽을 뻔 하였으면서 트라우마는 커녕 더욱 흥미를 가지고 좋아한다는것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후회를 해봤자 과거는 바뀌지 않았고 멋대로 아카데미에 가버린데다가 수학여행에서는 테러집단까지 직접 마주쳤다니 부모로써 걱정하는 것이 당연했다.

부모인 자신들에게 아멜리아는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웠고 우리들의 아이라하더래도 아직 어린데다 많은 것이 부족하고 불안하기 그지 없는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과격하고, 강압적이더라도 결국은 아멜리아를 향한 걱정이자 거대한 사랑이었으며 집사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고, 기어코 텅 빈 몬스터볼과 바꿔치는 것을 성공했다. 이제 그들은 아멜리아가 안전한 집으로 돌아오는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이왕이면 파트너 포켓몬을 데려왔으면 좋겠지만 그렇다면 바로 알아챘겠지. 수고했다 칼. 얼른 돌아오도록.]

"알겠습니다."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고를 마지막으로 연락을 끊었다.

"아가씨가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구나. 너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하지만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원래라면 성공했을 작전이긴 했으나, 간접적으로 만족하던 그 때와는 달리 직접 겪은 배틀의 자극과 직접 뭐라하지 않는 자유라는 달콤함을 맛봐버린 아멜리아에게는 통하지 않을 작전이라는 것 을 말이다.

***

솔직한 친구들 사이에 너무 오래 즐기고 있었나? 잠시 잊고 말았다. 집사가 아무리 내 편을 들어주곤 했어도 결국은 부모님의 말을 최우선한다는 것과 결국엔 내가 누굴 가장 닮아있었는지를.

콰직. 쨍그랑-!

화를 참지 못하고 던져 부숴져버린 텅 빈 몬스터볼과 컵의 날카로운 조각들, 지금 당장 꺼내달라는 듯 흔들리는 나이트나 다른 포켓몬들의 볼들에 하마터면 놓을뻔한 정신을 붙들었다. 내 불찰이었다. 기억하고 있어야했는데, 경계를 늦춰선 안됐는데 멍청하게도 순간의 즐거움에 푹 빠진 나머지 허무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제가 당했네요 아버지..."

꾸준한 전화와 메세지, 갑작스럽게 잡힌 시험, 마지막으로 만난 집사의 태도 등등 전부 내가 당장 집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의미로 벌인 짓이고 수상하다는 것 쯤은 눈치챘지만 설마 내 포켓몬 볼과 빈 몬스터볼을 바꿔치기까지 할 줄 이야! 믿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룩을 다시 데려오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그렇게 돌아가버리면? 아마 다시는 모험이라던가 포켓몬을 데리고는 있되 마음대로 배틀하는것도 불가능해질게 분명한데?

까득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시간도 늦었을 뿐더러 지금에서야 다시 쫓아가도 집사가 먼저 집에 도착할테니 무리, 순순히 돌아가는 것 도 싫었다. 졸업까지는 상관없다 했으면서 갑자기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야 뻔했다. 라디오에서도 몇번이나 치안이 안좋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아마 수학여행에 일어난 일 까지 전부 아셔서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이셨겠지!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어떻게 이 즐거움을 얻었는데. 언니가 돌아오거나 내가 만족할 만 한 추억을 얻기 전 까지는 돌아가기 싫었다.

"하아... 진정하고, 반성하자."

이성을 붙잡고 갈 곳 잃은 화를 억지로 누른 속이 울렁거렸다. 금방으로도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감정들이 안에서 휘몰아치지만 쏟아내봤자 변하는건 없다. 자신의 실수였고, 그나마 그 집단에 빼앗긴게 아닌 집으로 돌아간거니 집사한테 연락하면 계속 얼굴은 볼 수 있을 것 이다. 집사는 부모님보다 마음이 약하니까 몬스터볼을 다시 보내주진 못해도 꾸준히 먼저 상태가 어떤지도 보내줄거니 건강은 걱정할 필요 없겠지.

자신의 멍청함과 방심으로 떨어지게 되었지만, 룩은 여전히 자신의 포켓몬이라는 것은 변함없었고 헤어짐은 잠깐이다. 심지어 룩의 경우에는 언니와 달리 위치도 파악되고 원한다면 언제든 얼굴도 목소리도 화면 너머로 볼 수 있으니까 그러니 괜찮을 것 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머리를 굴렸다.

아아 아버지, 제가 당신을 닮아서 참 다행이라고 처음으로 생각해요. 아버지를 닮은 덕에 한번 당한 일을 두번이나 당할정도로 멍청하지 않고, 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는게 무슨 뜻일지는 굳이 직접 연락해서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챌 테니까 말이에요. 오랜만에 하는 저희 둘만의 게임이네요.

제가 바로 돌아가면 아버지의 승리. 기어코 졸업한 뒤 제 목표를 이루면 제 승리인 길고 긴 게임.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절 말릴 수 있는 언니도 없고, 이제 전 집사도 믿지 않을거랍니다. 어처구니 없이 룩을 빼았겼다해도 저에게는 아직 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포켓몬들도 많이 남아있죠. 과연 이 게임에서는 누가 이길지 기대되지 않나요?

"이번 게임에서는 특히 질 생각이 없으니까."

짓물린 입술과 몬스터볼과 부숴진 컵의 조각들을 치우다 큰 파편 중 하나가 깊게 박혀 생긴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방 안에 인간은 자신 혼자 뿐이라는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런 추태를 누군가에게 보였다면 부끄러웠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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