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단편들

[슬램덩크] 창백한 크리스마스

30대 후반의 우성명헌이 보내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입니다

3RD by 자엉

크리스마스 연휴 중에 재활 겸 썼는데... 25일을 넘겨버렸네요 죄송 (딱콩

주의: 야한 묘사는 거의 없지만 성행위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이 정도는 성인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전연령 공개로 해둡니다

 

 

 

 

 

 

정우성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니지만, 우성은 겨울에 늘 바빴었다. 농구는 콜드 게임 따위가 없는 실내 경기였고 겨울은 그런 경기 진행에 딱 알맞은 시즌이었다. 농구 선수를 꿈꿨으며 실제로 선수로서 죽어라 뛰고 3년 전에 은퇴한 우성은 겨울을 한가하게 보낸 적이 없었다. 크리스마스는 달력에서만 빨간 날이 되어 금방 지나갔다. 연인과의 이벤트? 가족과의 따뜻한 연말연시? 불가능했다. 그래서 우성은 은퇴하게 되면 크리스마스를 화려하게 챙기리라 벼르고 있었다.

서른다섯 살. 우성이 은퇴한 나이였다.

서른 살부터 우성은 은퇴할 거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맘때에 애매한 관계로 남아있던 명헌과 겨우 마음이 닿았다. 매일매일 붙어 지내고 데이트를 하고 섹스도 잔뜩 하고 싶었는데 현생이 방해였다. 우성이 노래를 불렀던 그 나이, 서른에 프로 선수에서 은퇴한 명헌이 미국에 자주 가겠다며 우성을 솜씨 좋게 달랬다. 실제로 명헌은 자주 우성을 보러 왔다. 명헌은 20대에 얻은 어깨 부상으로 우성보다 몇 년 이르게 선수 생활을 접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도자 코스가 아니라 그냥 외국어 공부였지만 말이다.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나. 그럼 미국으로 오라고 열심히 꼬셨는데 그건 안 먹혔다. 그래도 명헌이 서른, 우성이 스물아홉에 시작한 연애는 꽤 달달하고 아기자기하게 이어졌다. 우성이 서른다섯까지 뛸 수 있었던 건 그를 사랑한 팬과 구단 덕분이기도 했지만, 명헌과의 연애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잔뜩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른다섯의 봄에 우성은 은퇴하고 명헌에게 청혼했다.

우여곡절이 좀 있었으나 명헌은 프러포즈를 받아줬다. 크리스마스에 한이 맺혀 있던 우성은 (명헌을 설득한 끝에) 식을 12월 24일로 잡았다. 산왕공고 농구부였던 지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명헌의 대학 동창, 우성의 구단 팀메이트, 명헌과 함께 프로로 뛴 선수들이 결혼식을 빙자한 행사장에 몰려들어 합법적인 흥청망청 파티를 벌였다. 축하는 덤으로 받았다. 둘은 남의 축복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장밋빛 미래를 알아서 잘 꾸려나가고 있었다.

서른여섯의 크리스마스 전날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우성은 명헌과 연애한 이래 처음으로 크게 다퉜다. 십 몇 년 만에 주전으로 뛰지 않는 한가한 겨울을 못 견뎌했던 탓이다.

거슬리는 게 있으면 거친 섹스로나마 화해하고 냉전이 오래 이어지지 않았는데, 우성은 그때 빈정이 완전히 상했고 명헌은 우성을 달래주지 않았다. 연말이 되어서야 우성과 명헌은 싸늘한 거실에서 마주보고 앉아 합의했다. 화해가 아니라 합의.

‘넌 할 만큼 했어. 나이를 먹는 건 네가 노력한다 해서 극복할 수 없는 거고 이제 스물인 친구들보다 네 기량이 뒤떨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야. 구단에서도 은퇴하기 전까지 잘해줬잖아. 그건 커리어를 마무리하려는 선수가 딱해서가 아니라 네가 온몸으로 부딪혀서 얻은 노하우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넌 훌륭한 선수였어. 우리 세대에서는 최고의 스타였고. 하지만 널 뛰어넘는 스타는 언제고 나올 수 있는 거였어. 원래 농구가 그런 거라서 사랑했던 거 아냐?’

‘맞아요.’

‘말은 잘 하지. 내가 네 남편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 넌 정말로 최선을 다 했어. 앞으로는 너 자신을 가여워하지 마. 혼자 땅굴 파지도 마.’

‘응……. 안 그럴게요.’

눈물 나게 구구절절 맞는 소리였다. 실제로 조금 울먹거렸던 우성의 블루 크리스마스는 어쨌거나 지나갔다. 냉전은 끝났고 다시 봄이 왔다.

서른일곱의 크리스마스가 직전이었을 때 우성은 이번에야말로 결혼기념일을 끝내주게 보내야지 결심했다. 물론, 하늘은 우성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둘은 그 해 크리스마스 휴가를 병원에서 보냈다. 명헌의 어깨 통증이 심해져 입원을 했던 탓이다.

‘미안……. 거의 완치된 부상인데 방심했네. 나도 나이 먹긴 먹었나보다.’

‘…….’

‘그만 울고용. 심한 거 아니랬잖아. 난 어깨보다 간 수치 조심하라 그랬어. 너도 발목 조심해야지.’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우성도 시즌 중에 발목 염좌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평생 어깨를 조심해야하는 명헌에 비하면 별 거 아닌 건데, 한 살 더 먹었다고 열 살 웃어른처럼 그를 달래는 배우자가 참 답답했다. 답답한 만큼 사랑스러웠다. 둘은 아픈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신년이 되자마자 유럽의 온천 마을로 가벼운 재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도합 삼년짜리 우여곡절의 크리스마스를 보낸 우성은 서른여덟의 끝자락에 마음의 준비만 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닥쳐도 명헌이 형과 크리스마스를 견뎌낼 것이라는 그런 준비 말이다.

“우성, 나 왔……. 뭐야, 이거.”

오후 5시가 되면 칼같이 퇴근하는 명헌이 집에 도착했다. 명헌은 신발을 벗다 말고, 현관 정면에 보이는 2미터 트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트리 뒤에서 오너먼트와 가렌드를 걸던 우성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명헌은 관광 가이드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빌 거라며 밤톨 같은 애인의 속을 태우더니 고만고만한 IT 회사에 프로젝트 매니저로 취직했다. 기존의 경력과는 완전히 다른 직군이었으나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에 이어 프로 구단에서도 주장 노릇을 했던 명헌은 개인주의 끝판왕의 실무자들을 금방 휘어잡고 질서를 부여했다. 결혼할 즈음 급히 사람을 구한다고 하여 들어간 자리였는데, 생각보다 적응도 빨랐고 회사가 먼저 계약연장을 제안해 왔다. 우성이 국내로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명헌은 같은 회사에서 경력을 계속 쌓을 생각이었다.

반면에 우성은 20대와 30대 초반에 벌어둔 재산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매일이 벅찼다. 사업하자고 꼬여드는 부나방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전부 거절했다. 질풍노도의 은퇴 후 시기가 지난 우성은 매일 성실하게 출근하는 배우자의 뒷바라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준비도.

마음의 준비만 한다 했지만, 역시 크리스마스는 일 년에 한 번 뿐인데다 그들의 결혼기념일이 있는 시기였다. 그러니 트리는 있어야한다(이전 해까지 쓰던 미니 트리가 있었으나 올해는 진짜 전나무로 만든 트리를 공수해왔다). 트리가 있으면 장식도 사야했다(인터넷에서 품절 대란이라는 오너먼트를 구입했다). 명헌이 눈치 채지 못했을 뿐, 우성이 얘기했던 ‘마음의 준비’는 그 규모가 남달라진 지 오래였다.

“이거 예쁘죠.”

“갑자기 웬 트리야?”

“트리 살 거라고 얘기했잖아요. 일주일 전인가, 저녁 먹으면서.”

“너무 본격적인데.”

명헌의 회사에도 진짜 나무로 만든 트리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집에서 전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건 처음이었다. 명헌은 우성이 신이 나서 트리에 건 천사 오너먼트를 만지작거렸다. 금색과 은색의 천사는 표면이 얼룩 하나 없이 매끈했고 이목구비가 또렷했다―공장에서 마구잡이로 찍어낸 제품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오너먼트들도 만듦새가 수상쩍게 좋았다. 명헌은 트리 장식에 우성이 얼마를 쏟아 부었을지 현명하게 묻지 않기로 했다.

“도와줄까?”

“이것만 달고요. 형 배고프잖아요. 밥 먹고 같이 해요.”

우성이 씻고 오라면서 명헌을 밀어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냐고 물을 틈도 없었다. 뺨을 긁적인 명헌이 침실에 딸린 욕실로 퇴장했다가 따끈따끈하고 조금 촉촉해져서 거실로 돌아왔다.

우성과 명헌의 신혼 3년차 주택은 침실을 포함한 방이 세 개에 주방이 넓은 대신 거실이 소담했다. 거실과 주방을 편히 오갈 수 있는 구조라 그런지, 요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우성의 기분에 따라 식사 장소가 달라졌다. 명헌이 어슬렁어슬렁 거실로 나왔을 때 우성이 마침 파스타가 수북이 쌓인 접시와 앞 접시를 들고 와 탁자에 세팅하고 있었다.

“수저만 챙겨 와요.”

분부대로 따른 명헌이 자리에 앉자 우성이 명헌의 뺨에 소리 나게 뽀뽀했다.

“오늘 고생했어요.”

“응.”

“나도 트리 들여오느라 고생했는데.”

연애 중이었더라면 어리광쟁이라 핀잔부터 박고 뽀뽀해줬을 것이나 결혼 후에는 명헌도 많이 물러졌다. 정확히는 농구에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코트를 떠나고서 내리막길 인생을 걷듯 구는 그에게 매사 다정해지려 했다. 농구는 어떤 형태로든 평생 할 수 있다. 명헌을 비롯한 모두가 그렇게 설득했지만, 가끔 우성은 브라운관 속 농구 코트를 볼 때마다 지독한 짝사랑을 앓는 기분에 휩싸이고는 했다.

어쨌거나 뽀뽀를 얻어 낸 우성이 헤벌쭉 웃었다. 명헌도 마주 웃었다. 무뚝뚝하던 사람이 매일 저녁 그를 향해 웃어줬다. 저 웃음과 코트로 복귀하는 것 중에 선택하라면, 이제 우성은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살림은 당분간 정우성의 몫―이라는 거에 명헌도 토를 단 적은 없으나 인테리어에 한해서는 종종 고집을 부렸다. 명헌은 전선이 지저분하게 길어지는 걸 싫어했다. 반면 우성은 눈에 띄거나 걷는 데 방해되지만 않으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우성은 트리는 현관에 들어왔을 때 바로 보여야 한다고 우겼다. 명헌은 반대했다. 전구 가렌드의 전선이 너무 길어져서 보기 흉하다는 게 이유였다. 치열하고도 다소 유치한 입씨름 끝에 둘은 트리를 두 개 놓기로 했다. 전선이 필요한 큰 트리는 거실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고 기존에 쓰던 미니 트리가 빈자리를 채웠다.

몸이 재산이었던지라 큰 짐을 드는 요령 따위를 모르는 둘이 큼직한 트리를 끙끙대며 옮겼다. 한숨 돌린 명헌이 조금 무리하면 금방 티가 나는 왼쪽 어깨를 천천히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지난해의 악몽이 떠오른 우성이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요?”

“자기 전에 찜질하면 돼. 그보다, 크리스마스 너무 기대하는 거 아냐?”

우성이 시시덕댔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 오면 좋겠다~”

“올해는 전년도보다 따뜻하댔어. 지구온난화가 이렇게 무섭다.”

“기왕이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기대할 수 있는 거 아녜요? 나 이런 거는 운이 좋던데. 기대한대로 되더라고요.”

그때는 우성도 농담한 거였다. 어차피 화려한 파티는 취향이 아니었고 크리스마스에 배우자가 몸 건강하게 그의 옆에 있어주면 그걸로 족했다. 그나마 명헌의 프로젝트가 23일에 종료되어 다행이었다. 명헌은 프로젝트 마무리 때문에 기념일 준비를 못했다며 미안해했지만, 우성은 서운해 하지 않았다. 출근 걱정 없이 그의 품에 느긋하게 안겨 자는 명헌이야말로 근래 들어 가장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결혼기념일은 우성이 야심차게 도전하여 직접 만든 생크림케이크에 명헌이 마트에서 사 온 와인과 함께 오붓하게 지나갔다. 그날의 마무리 이벤트였던 섹스조차도 잔잔했다. 상대적으로 잔잔했던 거고 명헌이 그만하자고 우성의 허리를 허벅지로 졸랐던 건 변함이 없었지만, 아무튼.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진짜 눈이 오네…….”

명헌이 황당해하며 걷었던 커튼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우성은 보일러 위에서 식빵을 굽는 고양이처럼 따끈한 침대 안에서 졸고 있었다. 알몸에 가운만 입고 바깥 날씨를 확인했던 명헌이 가운을 입은 채 침대에 들어가 우성을 안았다. 차가운 천의 감촉에 화들짝 놀란 우성이 명헌을 마주안고는 하품을 했다.

“눈 와요?”

“함박눈은 아닌데. 조금씩.”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일기예보에서 눈 온다는 소리 없었는데.”

“그래서 싫어요?”

명헌이 대답 대신 우성의 뒤통수를 토닥였다. 그리고는 냅다 이불을 차버렸다.

“아, 추워!”

“크리스마스인데 비싼 트리 구경해야지.”

“어젯밤에도 트리 봤는데 왜요. 난 침대에 있을래.”

우성이 뒤집어진 이불을 끌어당기며 떼를 썼다. 명헌은 우성의 알궁둥이를 찰싹 때려주고는 이불을 도로 빼앗았다.

“같이 트리 보자고.”

“이 아저씨가 미쳤나.”

“코코아 타줄게. 마시멜로도 넣어줄게.”

“난 원래 단 거 안 좋아해요. 알면서?”

“덜 달게 타줄게.”

“아, 씨.”

하릴없이 일어난 우성이 뒷덜미를 박박 긁었다. 우성의 가운을 정확히 사타구니 위로 던져준 명헌이 피식 웃고서 침실을 벗어났다.

20여분 뒤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우성은 명헌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인정했다. 거실 너머 보이는 바깥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있었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크리스마스 화가의 작품 같기도 했고, 설경을 묘사한 우키요에가 생각나기도 했다. 문짝만한 트리는 고요하게 반짝반짝 빛을 내며 크리스마스라는 눈 오는 요정의 나라에 둘을 초대하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전구 스위치를 켜 두어 전기세는 좀 나왔겠으나 그런 건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을 만큼 평화롭고 아늑한 풍경이었다.

“안 춥지?”

마시멜로를 넣은 코코아를 두 잔 가져온 명헌이 우성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침실로 돌아가 이불을 가지고 왔다. 멍하니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특별함을 즐기던 우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옷장에 담요 있는데.”

“이게 더 따뜻하잖아.”

춥다고 앵알거려서 신경이 쓰였나보다. 명헌은 우성의 길쭉한 다리가 행여나 이불 밖으로 튀어나올까봐 꼼꼼히 덮어주고는 그 옆에 웅크려 앉았다. 우성이 이불을 살짝 들어 올리니 고개를 저었다. 본래 이명헌은 침대나 이불 안에서 뭘 먹는 법이 없었다.

“그냥 들어와요.”

“너무 따뜻하면 졸릴 것 같아.”

“고집부리지 말고 얼른.”

우성이 어르고 달램을 반복하니 명헌이 못이기는 척 이불 안으로 들어왔다. 따뜻한 음료, 아름다운 정경, 사랑하는 사람의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지자 만족스러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성은 명헌의 어깨를 끌어안아 자신과 꼭 붙어 있게 하고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조용한데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에요. 예전에 혼자 있을 때는 다음 경기 준비하느라 정신없었거든요. 아니면 혼자 있어서 좀, 뭐랄까. 알죠? 명절에 혼자 있으면 기분 별로인 거.”

명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 데이트했던 사람들 있었잖아.”

“시즌에는 완전 혼자였어요. 주변에서 별나다고 했는데 오히려 난 뭐라 하는 사람들이 이상했거든요. 서른쯤 되니까 여유가 생겨서 딴 생각이 가능해진 거지 그 전에는 도무지.”

“그래서 서른쯤에 날 꼬셨어?”

“꼬신 건 형이 먼저였지. 얌전히 호텔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형네 집이 가깝다고 그랬잖아요.”

“우리끼리 2차 가자고 한 건 내가 아닌데.”

“아니, 그건…….”

결혼 전부터 유구하게 주고받았던 투닥거림인데 우성은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입맛을 다신 우성이 화제를 바꿨다.

“아무튼 단둘이 지내는 크리스마스는 이제 소원 성취했으니까, 내년에는 근사한 곳에 놀러 가요.”

“그거 듣기 좋네. 단둘이, 근사한 곳.”

“또 야한 생각하지.”

명헌이 음흉하게 웃었다. 아니, 우성을 도발한답시고 괜히 저러는 거였다. 그는 명헌이 밝힌다고 한들 저보다는 훨씬 담백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우성은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고 말하려다 진취적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명헌의 관자놀이에 한 번, 명헌의 턱을 돌려 또 한 번의 입술도장을 찍었다. 명헌의 입술에서는 너무 달아서 우성의 취향이 아닌 코코아 맛이 났다. 그래도 우성은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혀를 섞었다. 그의 취향은 코코아나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라, 이명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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