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standard cherish

non-standard cherisher 9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마법사와 지낸 지난 며칠간은 맥스에겐 꽤 기분 좋은 기억이다. 어차피 가진 기억이 얼마 없긴 해도 좋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이틀이었다.

잉게르는 저를 보면 항상 웃어줬다. 가짜 웃음이나 동정에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냥 좋아서 나오는 미소였다. 코볼트니까 알 수 있었다. 잉게르의 미소를 보면, 맥스도 기분이 좋았다. 같이 웃었다. 그러다가도 잉게르가 혼자 있고 싶어지면 맥스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 혼자 지하실에서 당신 기억을 어떻게 되돌릴지 방법을 생각해볼게요.’라고 잉게르가 말하면 맥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상냥하게 말했지만 잉게르는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 얼굴이었으니까. 혼자 있고 싶다면, 그렇게 해줬다. 그럼 나도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지.

잉게르는 시원한 지하실로 들어오면 항상 제일 먼저 맥스의 짐가방을 꺼냈다.

그이의 기억 일부를 모조리 복사해서 백업 수정구를 만들어 놨다. 이 소중한 기억이 날아가지 않도록 여럿 복사했다. 맥스의 모든 기억은 아니었지만 이 만큼의 기억이 돌아온다면, 아마 맥스가 살아오며 형성한 성격과 인격이 상당히 많이 돌아올 것이다. 조금이라도 본래의 그이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하 격투장의 신예 챔피언 코볼트!! 맥스~!!”

눈앞의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잔인한 기억이다. 이렇게 까지 잔인한 장면을 본다면…. 아마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그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으니까…. 다른 기억이 먼저 돌아와서, 조금은 더 단단한 마음이 되면 그때…. 이 기억을 돌려주자.

...눈앞의 시뻘건 기억의 재생을 멈춘 잉게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스를 너무 오래 혼자 둔 것 같았다. 아아, 우리 사랑스러운 맥스. 어떻게 해서든지 그이의 기억을 돌려주고 싶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이대로 영원히 같이 있고 싶기도 하다.

-맥스~ 저 왔어요~ 혼자 뭐 했어요?

-...!

맥스는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더니 주섬주섬 일어났다. 손도 없고, 발도 없고. 글도 읽을 줄 모르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 잤어….

-어휴 얼굴 부은 것 봐….

잉게르는 제 품에 들고 온 것을 한번 꽉 쥐었다. 흰 천으로 감쌌고, 시간 정지 마법이 걸린 길죽한 원통 형의 무언가. 조금 따뜻하고 말랑한 이건….

-맥스, 오늘이 약속했던 그 날이에요.

-...그거…. 내 팔이야…?

-네…. 당신 오른팔이에요….

잉게르는 맥스의 옆으로 다가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가지고 온 그이의 손은 옆에 내려두고 맥스의 얼굴을 한번 손으로 꾸욱 문지르듯 닦아냈다. 저 민둥한 팔로는 눈곱이나 겨우 닦아내겠지….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잃어버린 것을 제자리로 두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응….

-또…. 중간에 갑자기 움직이지 마시고요…. 제가 괜찮다고 할 때까진 최대한 가만히 있어야 해요…. 아, 말을 해도 되지만, 말하지 말라고 할 땐…. 정말로 말하면 안 돼요…? 대답도 안 돼요. 언어로 마력이 빠져나가서 토할 수도 있으니까….

-으아….

-자…. 긴장하지 말고, 가만히만 있으면,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아무 일 없을 것이라 말하는 모습이 꼭 저 자신 에게 말하는 듯 싶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잉게르는 난생 처음 시전하는 마법이었고, 상대가 상대인 만큼 굉장히 긴장했으니….

심호흡을 깊게 하고, 사랑하는 친구의 얼굴을 한번 보고, 잘 될 거라고 속삭이는 말을 듣고, 자신 있게 가까운 마력을 끌어모아 맥스의 오른팔을 단면끼리 가볍게 붙여 마법을 작동 시켜 본다.

우선은 공기 중의 마력을 제 손으로 한번 걸러내서 맥스의 상처와 팔 곳곳으로 침투 시키고, 몸이 기억하는 원래의 모습을 모든 세포들에 각인 시킨다. 가벼운 상해 마법으로 잘 아문 딱지들을 천천히 벗겨내고, 진통 마법을 걸기 시작한다.

-..맥스. 이제부터 말도 하면 안 돼요…. 대답도 하지 마세요.

-...

맥스는 눈만 굴려서 잉게르를 한번 바라보곤 다시 제 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런 신기한 광경이라니….

잉게르는 별안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더니 아주 섬세한 매듭을 푸는 듯한 얼굴로 제 팔을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투명한 수정을 몇 가지 꺼내서 공중에 띄우곤(이 부분이 정말로 신기했다! 공중에 둥둥 뜨는 수정이라니!) 실을 묶어 맥스의 팔 여기저기에 묶었다. 이 실을 묶으면 묘하게 따뜻함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후…. 이게 한시름 놨다…. 긴장 풀어도 돼요…. 이 수정구의 마력이 다 주입될 때까지 팔은 움직이지 말고 편히 있어요….

-우와…. 신기하다….

방금 고난도의 접합 마법과 치료마법, 진통마법을 비롯한 대여섯 가지의 마법이 동시에 발동됐는데, 그건 안중에도 없는 듯 눈앞의 둥둥 떠다니며 빛을 내는 수정구가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보는 맥스를, 잉게르는 조금은 쥐어박고 싶었다.

잉게르는 자기가 해낸 대단하고 난이도 높은 멋진 마법을 알아채지 못하는 맥스를 이해하는 법을 익혔다. 저와 맥스의 살아온 삶이 전혀 다르니까, 나에겐 당연했던 이 마력과 함께 사는 삶을…. 맥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코볼트 들은 살아본 적 없겠지…. 내가 저 사람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것처럼….

-...맥스으~….

-응?

잉게르는 맥스에게 마법이 대단하다는 칭찬이 듣고 싶었지만 저 이가 영 마법에 대해 감이 없는 것 같으니, 직접 칭찬을 쟁취하기로 했다.

-...방금 마법 시전 할 때…. 아프진 않았어요?

-응! 처음엔 조금 따가운가 싶었는데…. 나중에 안 아파졌어.

-헤헤…. 그래요…. 조직 세포의 기억 복구 마법이랑 치유 마법이랑 훼손 마법 세 가지가 동시에 작용하는 복잡한 식이었는데…. 잘 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으…. 응…. 대단하구나….

맥스는 알아듣지 못하는 복잡한 말들에 목소리가 작아지고 주뼛 거렸다. 잉게르가 원한 건 이런 반응이 아닌데….

-..대단하죠? 응? 그렇죠?

-으…. 응…. 대단해…. 멋져….

아닌데…. 이게 아닌데…. 조금 더 우와~ 하면서…. 눈을 크게 뜨면서 날 보는…. 그런 반응을 기대했는데….

맥스는 잉게르가 저에게 무슨 대답을 듣길 바라는 걸까 알 수 없어 답답하고 움츠러들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요…. 당신 잘 때 수정구 빼 놓을게요….

-..저 빛나는 거…. 다른 것도…. 있어…?

-물론 많죠?

-...하나만 옆에 두면 안 돼…?

-그래요. 뭐…. 어….

맥스는 잉게르가 바란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아무리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왔다고 해도 말이야…. 내가 칭찬 받길 바란 부분에서 그런 얼굴을 해 줄 순 없는 거야?

잉게르는 괜히 맥스의 코를 꾹 누르곤 방 안 여기저기를 뒤적 거렸다. 수정구를 ‘빛 나는 거’ 라고 칭했으니, 일단 빛이 나야겠지…. 그리고 마법이 시전 중일 때 일어나는 약한 발열…. 그것도 있으면 좋겠지? 어두컴컴한 방 안에 마법 수정구 하나만 빛나고 있으면 꽤 분위기 좋으니까….

-...이건 어때요…? 이것도 빛나고, 조금 따뜻하고, 둥둥 떠다니고….

-우와…!

맥스에게 보여준 이 작은 수정구를 작동 시켜 공중에 둥둥 띄워본다. 그래…. 내가 사랑에 빠진 그 얼굴로 수정구만 바라보는구나….

....잠깐 사랑에 빠지다니, 난 친구를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

-잉게르, 고마워! 멋지다! 난 이런 거 볼 때마다 신기했는데…. 넌 뭐든지 척척 다 해 버리네? 멋져!

-아…. 으응…. 뭐…. 뭘요….

잉게르는 제 머릿속에서 흐르는 생각들을 애써 멈춘 채 허겁지겁 다른 생각을 틀었다.

-이…. 이건 쌍을 이루는 다른 수정구랑 서로…. 비추는 상을 공유해요

-...어…?

-그…. 그러니까…. 이거 들고 있어 봐요…. 아니, 아니지. 들지 마요. 그냥 주변을 둥둥 떠다니게 해요…. 알아서 당신 추적할 테니까…. 응 그래. 그리고 이제 나머지 하나를 제가 아래층으로 가져갈게요. 빛이 강하게 깜빡이면…. 손으로 꾹 쥐어봐요. 손 붙인 지 얼마 안 됐어도…. 그 정도는 될 거예요….

-이…. 이렇게…?

-네….

잉게르는 다급히 횡설수설하듯 늘어놓은 설명을 맥스가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빠르게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넘어질 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 집 밖으로 나가서 수정구를 작동 시켜 봤다. 그래.. 시원한 곳에 나오니까 좀 낫네…. 맥스는 내 친구지…. 응…. 평생 친구 같은 걸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반했느니 어쩌니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는 거야. 맥스는 내 첫 친구. 응…. 그렇다고 내가 그이에게…. 온갖 감정을…. 바라면 안되지….

-아…. 맥스…. 들려요…? 보이긴 잘 보이는데~ 들려요? 코볼트어도 전달 될 텐데~

-우와.. 잉게르…! 신기해! 너 밖에 있는데…. 여기서도 말하는 걸 알겠어…!

-헤헤. 우리가 하는 말도 전할 수 있게 제가 개조했어요~

-와…! 전부터 생각했는데, 잉게르 너 진짜로~ 못하는 게 없구나…!

-아…. 헤헤…. 더 해 봐요~

-응. 진짜…. 진~짜~!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마법사야!

-아하하~ 그거에요~! 그 말이 듣고 싶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마법사!

-아~ 그만 해요~

수정구가 멀쩡히 작동하는 건 확인했으니 기쁜 마음으로 터벅터벅 맥스가 있는 방으로 돌아간다. 잉게르는 그 얼굴을 다시 봤으니,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반했다거나 사랑에 빠졌다는 등의 다른 말들로 내 친구를 향한 순수한 우정에 다른 색깔을 칠해선 안된다고 스스로 단단히 일렀다.

-잉게르, 이거 줘서 고마워…. 진짜 마음에 들어

-네. 응. 친구로서 당연한 거죠~

-헤헤. 내 친구…!

맥스는 철없이 미소를 지으며 하나 뿐인 손으로 잉게르의 손을 잡았다. 크고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었다. 이 손을 양손으로 꼭 안으며 친구를 껴안아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멍하니 손을 바라보며 만지작 거리다가 깍지를 끼워봤다.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을 내던 하얀 태양이 하품하며 얼굴을 붉혀 창밖이 온통 새빨간 하늘이었다.

붉은 하늘이 잉게르의 얼굴로 내려앉았나 보다. 이렇게 빨간 얼굴은 처음 보는 걸? 정말로 난생 처음 보는 표정이야. 정말이지 처음 맡아보는 감정이야 잉게르. 지금 네 감정은 아마 내가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느낀 감정인가 봐. 네가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어. 기분이 나쁜 건 아니지?

-... ... ...

잉게르는 맥스의 손에 깍지 끼워진 제 손을 미동도 하지 못하고 조심스레 옆에 앉았다. 사랑하는 친구를 향한 순수한 우정을 다른 것으로 바꿔버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

-....맥스 저….

-왜.?

맥스는 조심스레 손을 뺐고 잉게르의 안색을 살폈다. 잉게르는 맥스가 살짝 뺀 손을 양손으로 힘 있게 잡았다.

-...당신은 정말로…. 제…. 소중한 친구. 라고요….

-..헤. 헤헤…. 다행이다…. 나도..

맥스는 잉게르의 감정을 조심스레. 그리고 천천히 신중하게 맡아봤다. 내가 기억이 없어서 이 감정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너랑 같은 기분이야 잉게르!


맥스에게 오른손이 돌아오고 하루가 지나자, 잘린 오른손 만큼의 기억이 완전히 그이와 하나가 됐다.

잉게르의 기억 마법은 몸과 기억을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로 정의한다. 잉게르가 지우거나 조작할 수 있는 기억은 의식이 기억하는 것들 뿐.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 자의 칼날은 무의식도 간섭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하게 도려내 버린다.

의식할 수 있는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 맥스에게 잃어버린 신체가 돌아오자, 몸이 가지고 있던 무의식 속 기억이 맥스의 의식과 완전히 하나가 되며, 기억 또한 돌아왔다.

약 4분의 1 정도, 예전의 맥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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