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록 제1권

第一章. 춘풍 도령 (02)

*

 

“으아, 늦었다, 늦었어!”

기방에서 최 참봉을 놀리던 젊은 선비는 여유라고는 온데간데없이 헐레벌떡 뛰고 있었다. 먼지 묻은 도포 자락과 기울어진 갓이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오늘 첫 대면인데, 지각이다. 최 참봉, 그 썩을 놈팡이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 늦을 일도, 없었다고!”

숨을 헉헉거리며 달리는 그의 입이 조금 전과는 달리 거칠기가 이를 데 없었다. 선비의 일정이 예상보다 지체된 데에는 그가 길을 잘못 들기도 한 탓도 있지만, 지금은 무조건 최 참봉의 잘못이다. 본래 길이 어둑해지면 익숙한 길도 영 딴판으로 보이기 마련이지 않던가. 기방에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져버려서, 선비는 지도를 보면서도 길을 좀 헤맸다. 빙 돌아가는 저잣거리 대신 숲길을 지나 화방 거리 뒷골목에 들어선 그는 잠시 무릎을 짚고 숨을 골랐다.

“힘들어 뒤지겄네.”

아, 망할. 집에는 나중에 들를 걸 그랬나? 그는 후우, 하고 깊은숨을 내뱉고 옷에 묻은 흙먼지들을 털어내고는 성큼성큼 화방 거리로 힘차게 발을 내디뎠으나,

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에 부딪힌 호리호리한 체구의 그는, 비틀거리다 겨우 균형을 잡고는 빽 소리를 질렀다.

“앞 좀 잘 보고 다니시오!”

“앞 좀 잘 보고 다녀라!”

잉? 이게 뭔가. 동시에, 그것도 같은 말을 내뱉은 두 사람 사이에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그건 내가 할 말이다.”

“그건 내가 할 소리요!”

어라? 가뜩이나 기분이 나쁜 데다가 바쁘고 정신없는데 시비까지 붙다니, 게다가 자신이 할 말을 빼앗기기까지 한 젊은 선비는 앞사람 얼굴이나 보자 하고 한껏 흘겨주었다. 그러나 ‘뭐야, 그렇게까지 무서운 표정 지을 필요는 없잖아.’하고 속으로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른 그였다. 그렇다 하여 우리의 당찬 서생께서 어디 기죽은 티를 낼 사람이던가. 기어코 지지 않고, 재수가 없으려니 이런 일을 당하는군! 하고 퉤퉤 침 뱉는 시늉까지 하고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저놈이……!”

무서운 표정의 사내는 쥐방울만 한 것이-실은 그리 작지 않았으나 이 사내의 신장이 육 척이 넘는지라-소리치고 있는 꼴이 거슬렸으나 그저 ‘한성에 저런 허여멀건 놈이 또 있었군.’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화방 앞에 도착한 지성은 기둥에 달린 간판을 보았다. 풍운 화방이라고 언문으로 새겨놓은 간판은 누가 보아도 대충 쓴 글씨였다. 스승님도 참, 간판 정도는 제대로 달아주시지. 투덜거리던 이의 시선은 곧 문으로 옮겨갔다. 켜져 있어야 할 화방의 불이 꺼져있었다. 그는 미간을 좁혔다.

‘내가 조금, 아니 많이 늦기는 했지만서도 그렇다구 벌써 집에 가버리신 건가? 아니면 일이 있어 그분도 늦으시는 건가?’

그는 문을 슬쩍 두드려보았다. 인기척은 없었다. 그는 그저 정적과 어둠만이 가득한 화방의 문을 열었다. 드르륵. 잠기지 않은 문에 어린 서생이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앞에서 늘어지게 울리는 하품 소리에 그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누누누누구요?”

“반대지.”

“예?”

“반대라고. 보통. 내가 그대에게 누구냐고 물어야 맞지 않나?”

잠에서 덜 깬 듯 나른하면서도 어딘가 예리한 말에 서생은 아차 싶어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사내가 스승님 화방을 운영하는 대리인인가?’

“아, 저는 오늘부터 이 화방에서 일할 윤지성이라 합니다!”

“자네, 기방에 다녀왔나?”

어둠 속에서 순식간에 제 앞으로 다가온 이의 물음에 지성은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있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어…….”

“아하하하하!”

‘잉?’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후배가 귀여운 구석이 있으이.”

그는 이 종잡을 수 없는 반응에 당황스러워 멀뚱히 서 있었다. 곧 탁자와 방, 근처 화방들에 불이 동시에 켜졌다.

‘어떻게 동시에 불이 켜지지?’

“어떻게 동시에 불이 켜지지, 라고 생각하는 표정이군 그래. 그야, 여기 오른쪽 왼쪽 앞, 대각선으로 전부 내 소유이니 말이야. 여기 누가 들어오면 등에 불을 붙이라고 말했거든.”

“예?”

스승님께서 대리인이 궁을 제외하고 제일가는 부잣집 아들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일 줄 예상하지 못한지라,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깜빡 자신의 선배 되는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 화방과 옆 화방들은 서로 쪽문으로 이어져 있고, 앞의 화방 셋에서는 화구와 그림 등을 파는 곳이네. 내가 이 화방의 대리인이기는 하나, 전에 화방을 운영하던 사람이 어찌나 참견이 많은지, 그냥 내가 사버렸네.”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가진 재력을 자랑하고 있는 선배의 모습이 기가 찼는지 지성은 허, 하는 소리를 냈다. 선배는 의자에 털썩 앉고는 차를 따랐다.

“계속 거기 서 있을 건가?”

“아, 아닙니다.”

쪼르륵. 달빛 품은 고운 찻잔에 수색 맑은 찻물이 담기니 그 자체로 그림이라. 어쩐지 그 모습이 선배와도 닮은 듯도 하였다. 지성은 선배가 주는 찻잔을 말없이 받아 들고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조금 식었어도, 향 좋다. 국화차인가.’

“그나저나 그대, 이리 보니 곱소.”

“풉!”

아뿔싸!

지성은 입에 머금었던 차를 그대로 제 선배 얼굴 뿜어내고야 말았다. 그는 잽싸게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선배의 얼굴을 닦았다. 조금 전 선배와 이 아름다운 찻잔의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한 것을, 그는 취소했다.

“괜찮으십니까? 그러게 왜 이상한 말을 뱉으십니까?”

“뱉기는, 그건 그대가 입에 머금었던 차 아닌가?”

선배는 헤실헤실 웃고는 지성의 손수건을 받아 마저 닦아냈다.

“이 상황에 화도 안 나십니까? 제가 약속된 시간보다 늦었고 게다가 무례하게 굴었는데요.”

“차를 뿜은 건 내가 무례한 말을 해서이고, 자네가 늦어 차가 식었으니 얼굴이 뜨겁지 않아 다행이지. 그렇지 않소?”

어딘가 묘해진 말투에 그는 속으로 갸우뚱했으나 제가 잘못한 것이 있기에 잠자코 있었다.

“그래, 기방에선 잘 놀다 왔는가?”

“놀기는 누가……!”

“흐음? 하면 첫날부터 뭐하러 기방에 갔다 왔소?”

“그게…….”

지성은 선배에게 기방에 들렀던 이유를 설명했다.

“하여, 그 개자식, 아니지 그 참봉 나리 아드님이 낭자를 희롱하다 뺨 맞았다 하니 사색이 되어 달아났습니다.”

“한데 그 집 도령이 뺨 맞은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 않은가?”

선배가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말하는 것을 보니 최 참봉의 아들이 한성에서 유명한 개차반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야 그 낭자가 영상 대감이 애지중지하는 막내 따님이시니 그렇지요.”

“뭐, 뭐! 영상 댁 막내딸?”

선배는 갑자기 탁자를 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의자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의 얼굴이 저녁해처럼 벌겋다.

“그, 그래서, 그자는 어찌 되었소?”

“그야 낭자께서 명하시니 근처에 있던 종들이 끌고 갔지요. 자고로 사내들이란 요 입하고 아랫도리 함부로 놀리면 언젠가는 꼭 그렇게 화를 당하는 법이라고 어르신들이 말하더이다.”

그제야 선배가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쉰다.

“그나저나, 제가 기방에 갔던 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향. 향 때문이네. 기생들이 바르는 분 냄새가 자네 옷에서 나더군.”

지성은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기방을 빠져나오기 전, 그는 기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저, 지나가던 서생이외다.”

그 말을 하자마자 기생들은 그에게 더 가까이 모여들었다.

“사내가 어찌 이리 고울까?”

“선비님! 좀 전에는 너무 멋있으셨습니다!”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밀지 마십시오! 이러다 누구 하나 다치겠습니다!”

지성의 외침에 기생들은 그에게서 조금 떨어졌으나 낯설고 멋진 이에 대한 호기심을 어찌 막을 손가. 그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 그들 사이로 엄한 목소리 하나가 날아들었다. 최 참봉에게 희롱을 당한 조금 전의 그 기생이었다.

“그만하거라. 선비님이 곤란해하시지 않느냐.”

“낭자, 괜찮으십니까?”

“예.”

“무섭지 않으셨습니까? 최 참봉 그 작자, 아마 당분간은 여기 들를 정신은 없을 겁니다.”

“…….”

그의 표정이 찡그리듯 오묘하여 지성이 의아한 듯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낭자?”

“어찌 존대하십니까? 저희는 천한 신분이요, 선비님은 귀한 양반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림을 그리는 예인입니다. 한데 어찌 같은 예인들을 천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얼핏 들으니 낭자는 시를 잘 짓는 듯한데, 맞습니까?”

그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이내 고운 호선을 그렸다.

“그저 언문을 조금 익혀 흉내나 내는 정도지요.”

“하면, 나중에 다시 들를 터이니 제게 시를 한 수 지어주시겠습니까?”

지성이 품에서 작은 자기 그릇을 꺼내며 말했다.

“멍이 들고 부은 곳에 바르십시오. 빨리 가라앉고 아픈 것이 덜할 것입니다.”

그는 약을 건네주고는 저는 선약이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하며 그렇게 기방을 나섰다.

이보게! 지성의 회상 속으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멍하니 있던 그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아, 예.”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가?”

“별거 아닙니다.”

“흐음. 그보다 그대는 내 이름을 아시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성함을 모릅니다. 스승님께서도 그저 그 녀석은, 그놈은 하셔서.”

“그럼 나를 뭐라고 부를 텐가?”

“글쎄요. 선배님 정도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선배님도 편한 대로 불러주십시오.”

“선배님은 너무 딱딱하지 않나? 류 형님 어떤가?”

“류 형님이라니, 왜 형입니까? 제 친형님도 아니시면서.”

저를 류 형이라 불러 달라 말한 사내는 상처받는 사슴처럼 서글픈 눈망울로 지성을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딱 잘라 말할 것까지는 없잖나.”

“저는 싫습니다. 근데 왜 류입니까? 그게 이름 같지는 않은데.”

“음, 내 별명일세. 나는 내 이름은 썩 마음에 차지 않거든.”

그가 민망한 듯 제 볼을 긁적였다.

“알겠습니다. 하면, 류 선배님으로 합시다.”

“좋구나. 나는 어찌 부르면 좋으려나. 지성아―.”

지성은 어쩐지 그의 말투가 묘하여 소름이 돋아나는 듯하였다.

“아! 됐습니다. 무슨 사람 이름을 제집 강아지 부르듯 합니까? 다른 분들이 저를 윤 도령이라 부르니 선배님도 그리 불러주십시오.”

쳇. 이것도 아니 된다, 저것도 아니 된다……. 후배가 선배에게 하지 말라 하는 것이 무에 이리 많아? 중얼거리는 류를 보고 지성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화방에서의 첫날이 지나고 있었다.

 

“여기서 자고 간다고?”

류가 눈을 끔뻑거리며 지성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등에 메고 있던 짐을 풀었다.

“날이 너무 늦지 않았습니까. 집까지 걸어 반 시진은 족히 걸립니다. 곧 인정人定 종이 칠 것인데요. 어쩔 수 없지요.”

“어쩔 수 없다니, 내 눈엔 애초에 자고 가려 작정한 사람으로 보이네만.”

그는 황당하여 방 앞 마루 위에 늘어놓는 지성의 짐들을 바라보았다.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방도 많은데 저 하나 궁둥이 붙인다고 피해가 갈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스승님께 허락도 받았습니다.”

“궁둥이라니……! 여, 여……!”

류의 입매가 씰룩거렸다.

“여, 여태껏 내, 선비들 입에서 궁둥이라는 말이 나온 것을 들어본 적이 없네.”

아하하하하! 웃으며 눈물까지 찔끔 흘리는 그를 보며 지성이 어색하게 웃었다.

“궁, 궁둥, 궁둥이! 궁둥이라니! 아하하하핫!”

지성의 눈이 가늘어진다. 궁둥 궁둥 거리던 류가 지성이 아무 말이 없자 눈치를 한번 보고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흠. 그래, 여기 어디에서 자려고?”

“어디라니요. 이 넓은 화방에 제 몸 하나 누일 곳 없겠습니까?”

“없네.”

“그렇지요, 없겠……, 예? 없습니까?”

“응.”

“아니 이렇게 넓은데요?”

“없어.”

싱긋 웃는 류의 얼굴에 지성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럼 당장 어디서 잠을 청한단 말인가. 그보다 도대체 이 큰 화방에 잠잘 곳이 없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게 말이지. 여기 잠을 잘 수 있는 방이 세 곳이 있는데, 두 곳은 내가 여기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내 짐을 잔뜩 어질러 놓았고, 방 하나밖에 없는데 이미 선객이 있어 말이야.”

“선객이라니요?”

류는 지성의 말에 웃으며 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황당함에 지성은 허, 하는 소리를 냈다. 분명 스승님께서 방 하나는 저에게 주었건만 방 세 칸 전부를 이 하늘 같은 선배님께서 쓰신다고 하시오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지성은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날씨가 쌀쌀하여 이곳에서 자고 가겠노라 결심을 굳힌바,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선배님, 같이 주무시지요.”

“같이 자자니?”

류가 화들짝 놀라자 지성은 이상한 표정 짓지 말라는 듯 쏘아보며 말했다.

“저는 스승님께 방 한 칸을 쓰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한데 선배님께서 방을 혼자서 무려 세 칸을 쓰고 계신다고 하니 제 계획이 틀어진 것 아닙니까? 이제 곧 종이 칠 것이고 밖에 나갔다가 제시간에 집에 도착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맨살에 곤장행입니다. 게다가 밖에는 칼바람이 부는데 이 추위에 저를 내쫓으실 건 아니시지요? 서얼마, 선배님이 그렇게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지성이 가련한 강아지처럼 바라보자 류는 가만히 듣고 있다 한마디 던졌다.

“나는 누군가와 한 이불 덮고는 잠을 자지 못하오.”

“누, 누가 한 이불을 덮자 하였습니까?”

“하나 여기 이불은 한 장뿐인데?”

‘스승님, 정말 이러시기입니까?’

지성이 속으로 제 스승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이불, 선배님만 덮으십시오.”

“음, 밤새 고뿔에 걸릴 것인데?”

“저는 괜찮습니다. 불을 세게 때면 이불 없어도 따끈따끈하니 잠이 잘 오겠지요.”

“도령, 보기보다 고집이 세군.”

“어찌 아셨습니까? 제 별명이 원래 고집불통입니다.”

류는 피식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내가 졌소,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불은 도령이 덮으시오.”

“하지만…….”

“방 두 개나 차지하는 짐 중에 이불 한 장 없을까 봐?”

그는 지성을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악의는 없었으나 놀림당한 기분에 지성은 잔뜩 약이 올랐다. 그러나 대놓고 뭐라 할 수는 없으니 그저 저도 똑같이 웃을 뿐이었다.

파루罷漏의 북이 서른세 번 울렸다. 해가 뜨려면 아직 한참 멀었으나 지성은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개켜놓았던 저고리와 바지를 집었다. 꿈지럭거리며 이불속에서 옷을 챙겨 입은 그는 류를 슬쩍 보고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겉옷을 챙겨 방을 나왔다. 어쩐지 서늘한 공기에 그는 장작 몇 개를 집어 아궁이에 넣고는 밖으로 나섰다.

“눈이다…….”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것이 아직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도 밝게 느껴졌다. 첫눈이었다. 벌써 눈이 올 때가 되었던가. 한참 눈 쌓인 풍경을 바라보던 지성은 비로 화방 앞길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사악사악― 눈 쓰는 소리가 듣기 좋다. 그의 볼이 금세 사과처럼 붉어졌다. 하얀 김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으으, 춥다. 하루아침에 이리도 추워지나.”

“자네는 이 추운데 무얼 하고 있나?”

지성은 등으로 날아드는 목소리에 뒤를 바라보았다. 류가 잠이 덜 깼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새끼 고양이 같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와서요. 올해는 좀 이르네요. 선배님은 어찌 이리 일찍 일어나셨습니까?”

“도령이 할 말은 아니군. 나는 잠귀가 밝은 편이네.”

“아, 저 때문에 깨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좀 일찍 일어나는 편인지라.”

“그건 그렇다 치고 도령이 왜 길을 닦고 있소?”

“해가 뜨면 길이 얼지 않습니까. 손님이 오다 코라도 깨지면 그 욕은 누가 다 먹겠습니까.”

투덜대는 지성의 빗자루질은 그러나 퍽 상냥한 것이었다.

“그럼 내가 하겠네.”

“두십시오. 선배님이 이런 일을 언제 해보셨으려고요.”

“도령은 꽤나 익숙한 듯이 말하오.”

지성은 류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아무 말 없이 빙긋 예의 그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그들이 맞는 첫 겨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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