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작별
영원한 7일의 도시 - 안화 BL 드림 페어 : M***님 연성 교환 샘플
네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은 그저 마지막까지 너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그것뿐이었는데. 이런 결과를 원한 것이 아니었는데.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 없던 네가 엉망인 꼴로 내 앞에 쓰러져 있다.
내가 안일했었다. 항상 무엇이든 자신만만하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게 너무 큰 자책감과 상실감으로 돌아와서.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이 나한테 귀속된 것 같아서. 아니... 책임이 있는 것 같은 게 아니라 내게 책임이 있는 것이 실로 맞았다.
라일리 카토는 안화라는 남자의 오만함에 희생당했다. 심장이 으스러졌다.
*
“...안화라고?”
“...”
“잘 부탁해. 라일리 카토. 내 이름이야.”
상냥한 듯 먼저 인사를 걸어오지만 그어 놓은 선 그 이상은 다가오지 않는다. 라일리 카토. 분명 친절하게 말을 건네고 있는데 동시에 벽을 치고 상대를 대하는 것 같은 묘함이 있는 남자였다. 첫 만남의 인상은 그랬다. 다가가려 하면 멀어졌고 붙잡으면 은근히 밀어냈다. 도저히 사교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일할 때의 모습도 철저하고 침착했다. 절대로 방심하지 않았다.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기준에 들어맞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휘사로 있으면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겠지. 안화는 자기 판단력에 대해 신뢰하고 있었다.
안화가 보기에 라일리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빈틈이 없었다. 신기사들과의 관계도 그럭저럭. 인물 평판도 그럭저럭. 업무 처리 방식은 매우 효율적. 도저히 흠을 잡을 수가 없는 사내. 그래서 안심할 수 있었다가. 그를 마음 놓고 믿을 수 있었다.
풀어진 마음은 어떤 감정이 되어 가슴을 잠식해오기 시작했고, 몰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겼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안화는 라일리를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감정이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그는 라일리에 한해 곁을 내주었다. 몸을 기울이면 서로 닿을 만치 가까운 거리였다. 하루는 파견 업무로 인해 둘이서 순찰을 하고 있을 때였다. 라일리가 말했다.
‘지휘사는, 다가올 이별에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지?’
‘떠날 이들에게 마음을 주면 나중에 힘들어지니까.’
‘라일, 너는... 네 기사들을 믿지 못하는 건가?’
‘그게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굳이 감정에 연연하며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이성만으로도 사람은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안화도 그에 동의하는 바였으나 때로는 감정이라는 요소의 불확실성에 기대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라일리 카토는 아직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것이다. 언제 열릴지 모르는, 어쩌면 영영 열리지 않을 그 문을 열어주면. 어쩌면 그가 지휘사로서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안화는 생각했다. 라일리는 그런 점에서 아직은 미숙한 면이 보이는 지휘사였다. 한 눈 파는 일 없이 일을 처리하고 지시하지만 완벽하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안화는 그에게서 미래를 볼 수 있었다. 그가 불확실함을 받아들이고 주변 이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장래를 기대할 수 있는 지휘사였다. 동시에 자신이 곁을 내어주기로 결정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다.
안화는 너무 라일리를 끼고 사는 것 같아. 너무 어린애 취급 하는 거 아니야? 같은 소리도 들었지만, 무시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정을 주지도 않는 그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를 좀 더 관찰하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그래서 곁에 두고 제 판단대로 그를 휘둘렀다.
오만함으로 무장한 남자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라일리를 움직이려 했다. 말 그대로 감정을 핑계로 한 사람을 제멋대로 차지하려던 것이다. 그러나 라일리 또한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살아있는 이성으로서, 유리한 판단만을 끌어내는 그의 지휘사로서의 능력을 본 안화는 그가 자신에게 하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려 ‘안화’라는 이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저 청휘(靑輝)의 지휘사가. 찾아온 변화는 둘 사이의 무언가를 깨고 들어와 자리 잡았다. 그리움을 닮은 감정은 안화에게 태도의 변화를 가져왔고, 라일리에게는 감정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둘은 그것이 이상하게도 기꺼웠다.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 다른 것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일 텐데도 싫지 않았다. 이제는 좀 더 누군가를 믿어보아도 되겠다고, 둘은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이 잠겼다.
같은 하늘 아래 약속했던 이상이 무너지고 밭은 숨이 스러지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 네 눈빛을 보았다. 분명 이전에 세상에 미련은 없었다고, 쓸모를 다하면 그걸로 됐다고 말하던 너였는데. 너는 후회하고 있었다. 미련이 남은 눈빛이었다.
“...라일.”
“...”
심장이 바스러졌다. 다가올 이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사람은 너가 아니었던가. 왜 지휘사인 네가, 그렇게 곧 사라질 것 같은 모습으로 쓰러져있는지. 안화는 도통 이 상황을 머리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별을 준비해야 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파트너.”
“......”
“이제 알겠어. 이성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 감정도, 무시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 중 하나잖아...”
“...그래. 그걸 이제야 알았군.”
그 말에 희미하게 웃어 보인 남자는 초점이 잡히지 않는 시선을 멀리했다. 눈동자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되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입가에서 붉은 것이 주륵, 흘러내렸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
“네가 알려줬잖아. 이성적인 판단보다도, 어쩌면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라일리가 힘겹게 문장을 뱉어냈다.
“네게서 그걸 확인하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배운 감정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지금 네 모습에서, 네 표정으로 증명받을 수 있어서. 그것이 못내 다행이라고. 너와 울고 웃었던 그 모든 감정이 소중했다는 걸 알지도 못하고 갈 뻔했어.
“...고마워, 내 파트너.”
“라일, 나는...”
입술이 달싹이며 마지막으로 언어가 되지 못한 어떤 것을 입에 담는다.
사랑해.
[일반 글 커미션]
오월의 도서관 - 비문학 전집 루펠리언 타입
- 키워드 : 이별 / 마지막 /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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