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standard cherish

non-standard cherisher 10

-..있..잖아 잉게르….

-네?

아침 일찍 눈을 뜬 후로 계속 심각한 얼굴을 하던 맥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잉게르는 베이컨과 달걀을 식탁으로 가져와 저와 맥스의 접시에 각각 담아냈다.

-...잉게르, 나. 기억이 좀 돌아왔어….

-...네…? 네?

잉게르는 들고 있던 프라이팬을 거의 놓칠뻔했다. 이렇게 갑자기? 왜? 어제 팔을 붙인 게 원인인가?

-네? 네? 맥스…. 어…. 어떤 거요…?

-...그냥…. 뒤죽박죽…. 같아…. 좀 복잡해….

-어…. 어…. 어…. 매…. 맥스…. 어…. 얼마나요…? 어 그리고 어…. 괘…. 괜찮아요…?

다급하게 프라이팬을 부엌에 내려놓고 식탁으로 다가온 잉게르는 맥스와 마주 보며 의자에 앉았다. 잉게르가 읽었던 맥스의 많은 기억은 대부분 무서운 폭력과 고통으로 피칠갑 되어있었다. 돈을 벌기위해 다른 이를 마구잡이로 해치는 무서운 코볼트 였다는 것을 기억해낸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이.. 잉게르 내가…. 내가…. 다른 사람들을 막…. 막….

-... 그…. 부분도…. 돌아왔군요….

-내가 그런 사람인 거 알고 있었어?

-.. ...조금…. 이요

-... ...나…. 어떻게….

-..일단! 맥스!

-...응…?

-식기 전에 밥 먹어요~

-아, 아니….

-아, 밥 먹어요~

-...아…. 알았어….

-....제가 손을 붙여준 후 처음으로 당신 스스로 먹는 식사에요…. 제가 떠먹여 줄 때마다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 안 해도 돼요….

-아... 응… 다... 봤구나…

-못 보는 게 이상해요~ 얼른 같이 먹기나 해요!

-응…. 아…. 알았어….

맥스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포크를 가볍게 쥐고 작은 소시지를 쿡 찔렀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잉게르의 손을 빌려 화장실로 가서 세수하고, 잉게르의 손을 빌려 옷을 갈아입고, 잉게르의 손을 빌려 부엌의 식탁까지 앉았다. 드디어 잉게르에게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냈다.

힘겹게 팔을 구부려 포크를 입가로 가져와 소시지를 물었다. 깊은 흉터가 남아있는 접합 부위가 시큰거리고 욱씬거렸지만, 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그것만으로 기뻤다.

잉게르는 아픈 걸 참아가며 열심히 식사를 시작하는 맥스를 보고 다른 사람에게 들릴 듯 말 듯 한 한숨을 쉬며 저 또한 식사를 시작했다. 맥스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면, 저 어린아이처럼 경험 없는 성격은 사라지고…. 그 노련하고 무뚝뚝한 성격의 맥스가 돌아오겠지.

난 그 녀석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내가 그 녀석 기억을 지웠다는걸 알아챌 텐데….

......피…. 무서울 텐데….

-...맥스, 더 줄까요?

-어…? 어…. 더…. 줘….

아직 다 먹지도 못한 접시 위에는 달걀이며 소시지가 남아있었지만, 어쨌든 저것보단 훨씬 많이 먹을 그이 였다. 온갖 잡다한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고 싶었다. 아무 말이나 해보고, 아무 행동이라도 좋으니 생각을 밀어내고 싶었다.

-...어떤…. 기억이 나요. 맥스…? 말해줄래요?

맥스에게 등만 보인 채로 조리대 앞에서 프라이팬에 남은 달걀과 소시지를 수북이 쌓는 잉게르였다. 일단 들어보고 판단하자. 그다음에 계획을 세우자.

-...내가…. 링 위에 있어…. 아주…. 아주…. 화가 났고….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어…. 이게 정말 나라고…?

-...무서우면 다른 걸 떠올려봐요…. 링 위에 있던 시절만 기억난 건 아닐 텐데…. 다른 건 없어요? 좋아하는 음식이라던가…. 재미있었던 책이라던가…. 하는…. 그런 거요

-... 고구마…. 고구마가…. 맛있었어…. 그리고…. 책…! 어…. 아…. 이…. 읽을 줄 몰라…. 그래서…. 음…. 인간 동생한테 읽어달라고 하네?

-인간 동생이요?

잉게르는 소시지로 탑을 쌓던 것을 멈추고 목소리만 높여 되물어봤다.

-응…. 동생이…. 난 원래…. 동생이 둘 있지만…. 가족끼리 친해서…. 동생처럼 여기는 인간이 하나 있어…. 글을…. 읽을 줄 아는 동생이네…. 응….

-..중요한가요?

-...당장은…. 아닌…. 거…. 같아…. 그냥…. 고향 친구……? 어릴 때 이후로는…. 잘 만나지도 않는구나….

-...그렇군요….

맥스는 작은 안도의 한숨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또 궁금한 거 있어? 기억해 내볼까?

-아…. 억지로 그러진 말아요…. 당신의 기억이…. 좀 무섭고.. 잔인한 게 있으니까…. 충분히 마음을 단단히 먹기 전에 억지로 떠올리는 건…. 좋지 않을 거 같아요….

-응…. 그래야겠어….

잉게르는 맥스의 그릇을 가득 채우다 못해 수북하게 쌓인 소시지 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먹다가 팔 아프면 말해요…. 나은지 얼마 안 된 부위를 너무 많이 쓰는 것도 좋지는 않으니까….

-...잉게르….

맥스는 기억이 4분의 1 정도 돌아왔다. 모든 기억이 돌아오진 않았어도, 그동안 잉게르에게 받기만 하던 호의의 양 정도는 현실적인 감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 ... ...나....한테…. 너무…. 잘 해주는 거 아니야…?

-...네?

-...치료…. 해준 것도 그렇고…. 고용인…. 이라고 해도 말이야…. 너무…. 그냥…. 너무…. 잘 해주고…. 많은걸…. 양보해주고 있다는 게 문득…. 느껴져서….

-그…. 랬나요…? 아하하…. 제가 어…. 많이…. 받아 간 게 있을지도 모르죠~….

-아니야…! 난…. 애처럼…. 그냥…. 받기만 했는걸….

-...맥스….

-... ...이런 말…. 해 봤자 뭐 하나…. 싶긴 하지만…. 응…. 그냥…. 너무…. 너무…. 고마워서…. 응…. 내가 할 말은 그거네….

맥스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바라보다가 슬쩍 눈만 치켜올려 잉게르를 바라봤다. 전부터 네가 나한테 보여준 그 감정들. 내가 읽고 감지한 네 기분은…. 나랑 항상 같았어. 아직…. 이 감정을 뭐라고 부르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나에게 이렇게나 큰 호의를 준다는 건…. 그 감정은 내가 맡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거겠지. 너라는 대단히 멋진 사람의 깊은 호의를 받을만한 사람일까? 내가?

-...그냥…. 제가 사랑하는 걸 가만히 받기만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친구로서…. 가족 같은 당신한테…. 다른 누구한테도 준 적 없는 제 애정을…. 조금…. 나눠주고 싶은걸요….

-...외로웠어?

-...아마도요….

-내가…. 네 옆에서…. 이렇게 받기만 해도…. 괜찮아?

-제가 바라는 건 그게 다예요. 더 바라지도 않는걸요.

-... ...

-... ...

-소시지 맛있다….

-그거 시장에서 제일 비싼 거에요~

-와, 진짜…?

-헤헤…. 맨날 사주진 않을 거예요~ 간만에 좋은 거 먹고 싶어서 산 거뿐이니까~

-...내가 다 먹게 생겼는데…?

-오래 둬 봤자 묵은내 나서 맛없어져요~

-....잉게르 나….

-네~?

-...달걀.. 더 줘….

-아~ 더 먹을 줄 알았어~

-...나…. 엄청…. 많이…. 먹는구나….

맥스는 잉게르의 자그마한 접시에 담긴 그의 식사량을 보고 넋 나간 듯 말했다. 잉게르는 작게 웃으며 달걀 요리와 더불어 삶은 감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꺼내왔다.

애정과 웃음이 가득한 식사 시간이었다. 서로의 세계에서 유일한 친구-가족-동료-보호자였다.


태양은 늘 빛을 쬐려고 하면 구름 속으로 숨고 지평선 너머로 도망가버려, 어느새 깜깜한 밤이었다. 길게 서술하면 늘어지고 지루해지는 자잘한 생활들은 잉게르의 도움으로 겨우 해결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맥스는 제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빛나는 수정 구슬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방 안은 어두침침했고, 이 수정만이 유일하게 따스하고 부드러운 빛을 냈다. 잠시 씻겠다고 방을 나선 잉게르는 공기 중의 물 냄새를 짙게 만들며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방 밖의 잉게르는 그만 바라보고, 방 안에 남아있는 잉게르의 물건들을 구경해볼까? 이젠 손이 있으니까 원하는 건 뭐든지 집어 들고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잉게르가 외출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꼭 쓰는 이 가면! 조금은 무섭지만…. 이제는 약간 멋지다는 생각도 드는 디자인인 것 같다. 잉게르가 들면 무섭게 치켜뜬 노란색 눈들이 여기저기 휙휙 돌아보는데…. 나는 들어도 별로 바뀌는 게 없네…. 아, 안쪽에서 잉게르 냄새가 엄청 많이 난다…. 당연한 거겠지…. 숨 쉬는 부분은 특히나 더….

...아니 내가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친구의 숨결이 남아있는 가면을 보고 무슨…. 무슨 생각을……! 하지만 지금 이 기분은…. 잉게르가 나한테 매일매일 보여주는 그 기분인데….

맥스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 이 기분의 이름을 떠올리려다가도 잉게르의 얼굴이 떠올라서 방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고는 강렬한 열망이 시키는 대로 멍하니 움직이고 만다.

가면의 입술이 닿을만한 그곳에 제 주둥이를 밀어 넣고 입술만 아슬아슬하게 붙였다가 뗀다. 이 행동은 뭔지 알아. 닿을 이유가 없는 두 사람의 신체 부위를 굳이 닿게 하는 어떤 종족들의 행동에서 유래한 애정 표현.


잉게르는 상쾌한 기분으로 옷을 주워입었다. 평소라면 샤워가 끝나고 시원하게 맨몸으로 나와 방까지 올라가서 옷을 입었겠지만, 요즈음부터 맥스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생활방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변화는 반갑지 않은 잉게르였지만 슬슬 `뭐 어때`라는 생각으로 무던히 넘어갈 수 있게 됐다. 씻고 곧장 마법으로 털을 말린 후에 옷을 입는것도 꽤나 기분이 좋으니까..

-맥스! 샤워하면서 생각해봤는데, 당신한테 맞는 옷을 사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 어어…. 내 옷…?

싱숭생숭한 얼굴로 어색하게 앉아있던 맥스는 잉게르가 대뜸 던진 말에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잉게르는 알아채지 못하고 샤워 중에 떠올린 이 즐거운 아이디어를 늘어놓느라 바빴다.

-네~! 당신이 입고 왔던 셔츠 하나만 입고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고, 제 옷을 빌려준대도 너무 커서 불편할 거예요~ 그냥 옷을 좀 사는 건 어때요? 제가 멋진 거로 사 올게요!

-아…. 어어…. 응…. 맘대로 해….

아직 부드럽게 젖어서 온기를 안고 있는 털들이 맥스의 볼에 닿을 만큼 잉게르가 가까이 앉았다. 영차 하고 앉으며 어떤 옷이 좋을까 조잘대는 잉게르의 말에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까지 만지작거린 잉게르의 가면에 남아있는 제 냄새가 신경 쓰였다. 눈치채겠지…. 어떡하지…. 어어 그걸 들어 올려? 어어…?

-맥스! 제 말에 집중 안 하고 뭐해요? 가면에 뭐 있어요? 어….

-어…. 어어….

잉게르는 가면을 집어 들고 한번 훑어보곤 내려놨다. 그냥 만져본 건가?

-제 가면 신기해서 본 거에요…?

-어…? 어…. 어어…. 좀….

잉게르는 마법에 대한 칭찬을 들은 미소를 슬그머니 지으며 가면에 대해 장황하고 느긋하게 설명하려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곧, 가면의 입가에 남아있는 맥스의 냄새를 맡아냈다. 거의 날아갔지만, 분명히 이 녀석의 흔적이다…. 궁금해서 써본 걸까? 귀엽게….

-헤헤…. 다음부턴 물어보고 써봐요~ 아무리 당신이래도 누가 제거 막 만지는거 안좋아하니까.. 말만 하면 괜찮아요~

-어... ..으…. 응…. 미…. 안 해….

-너무 미안해 하지 말아요~ 이제부터 서로 알아가면 되는 건데….

-...그…. 그렇지…? 응….

-네…. 에헤헤….

-...응….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어두침침한 방에는 맥스의 주변을 위성처럼 떠도는 수정구만 따스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잉게르는 문득 가면에 남아있는 맥스의 흔적이 묘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써 봤다기엔 유달리 진하게 남아있는 숨결의 향은….

잉게르가 항상 풍기는 그 감정. 나도 느끼고 있는 그 감정. 분명히 통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그 감정이, 나를 이상하게 만든다. 안절부절하고, 실실거리고, 죄를 지은 듯 긴장하고 있고, 혹시나 손이라도 마주치면 지독하게도 나쁜 짓을 한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고, 그러면서도 닿고 싶은.

맥스가 나만 보면 보여주던 이 우정을 우정이라 확신할 수 없어서 망설이던 수많은 시간이 지금 우르르 몰려와 그게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내 마음속에 심어진 씨앗은 우정이라고. 그럴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오늘 아침까지의 내가 외치고 있다. 사랑이라고. 애욕이라고. 우정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맥스와 우정을 쟁취한 것처럼, 사랑도 한번 손을 뻗어 보라고.

-입술을 부비는건 솜털인간족 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애정표현인거 알아요?

-..솜털 인간족?

-엘프나…. 님프…. 나이아스 엘프나 오크…. 휴먼 같은…. 털이 없는 피부의 종족들이요….

-아…. 돈 많고 똑똑한 이미지의 것들….

-헤…. 말하는 게 거침없네요

-..그러게…. 앞으로 더 말하는 게 나빠지면 어떡하지….

-제가 말려줄게요….

-뭘 알려줘?

-남들과 오해없이 대화하는 법이요.

-너도 부족한거 아니야?

-같이 배워야죠~

-와, 세계 최고의 마법사랑 같이 배우다니!

-영광으로 알아야 해요~

둘은 키득거리며 눈을 진득하니 마주쳤고, 점점 더 고개가 가까워졌다.

마주칠 일 없는 두 신체 부위가 맞닿았다.

닿아도 되냐고 물어봤고, 닿아도 좋다고 대답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의미였고.

서로를 애욕한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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