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빌메이크라이

SE2 (2/3)

Devil may cry - Sparda/Eva

회유기록 by 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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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하던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냉기와 함께 소리없이 내려앉았다. 덩달아 차게 식은 공기에 눈이 뜨인 에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동은 아직 트지 않았고 몸은 개운했으며 시계는 평소 기상 시간보다는 이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 서늘하긴 해도 어젯밤에 이어 시작이 좋았다. 기지개를 켜던 에바는 떠오른 즐거운 기억에 미소 지었다.

연주회의 주인공이었던 침상 빈자리의 주인은 새벽 이르게 다시 외출에 나선 참이었다. 이웃 도시에 잠시 다녀온다 하였으니 이르면 금일 저녁, 늦으면 내일 아침쯤이면 돌아올 터. 짧지 않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외출이라니 어쩌면 무정해 보일 수도 있는 일정이었지만 에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 없다. 그리고 그런 안전 문제에 대해서라면 그는 글쎄, 큰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이기도 했다.

잘 잔 덕에 더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 에바는 침상을 일어나 침대 맡 전등에 불을 밝혔다. 조금 더 있으면 금방 밝아오겠지만 굳이 어둠 속에서 움직일 필요는 없다. 희미하게 불빛이 들어오자 어슴푸레한 속에서도 익숙한 전경과 그의 귀가 전후로 달라진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두고 나간 여행 가방, 의자 등받이에 걸린 수건, 가지런히 놓인 구두 한 켤레…. 하나씩 확인하듯 다정하게 되짚던 에바의 눈에 어떠한 것이 문득 띄었다.

“어머, 이건….”

사각형의 잘 포장된 꾸러미다. 두께는 크지 않고 폭과 너비는 꼭 같게 한 아름 정도 될까. 한쪽 귀퉁이가 아주 조금 찌그러지긴 했으나 잘 포장되어있는 평평한 형태가 사물의 의도와 쓰임새를 짐작게 하고 있었다. 남편이 두고 간 선물에 그녀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정말이지 귀여운 사람이라니까. 화장대 근처의 전등에 하나 더 불을 밝힌 에바는 천천히 포장을 풀었다. 스르륵 끌러진 끈이 바닥에 떨어지려는 것을 붙잡아 화장대 위에 올려놓는 동안에도 만면에 미소를 가득 건 채 그녀는 기대 속에 내용물을 확인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단히 잘 포장된 그것은 동그랗고 평평하고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그녀가 좋아하는 물건이었다.

그러고 보면 함께 공연을 보러 간지도 좀 된 참이었다. 에바는 저번 남편의 출장 전에 아주 잠깐 공연 이야기를 했던 것을 떠올렸다. 분명 마지막으로 함께 봤던 클래식 공연 이야기를 했었지. 크지 않은 공연이었음에도 기대 이상으로 연주자가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했었다. 그 후로 한참 오래 잊고 있었지만 손에 들린 물건이 바로 그 연주자의 그 곡임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남편이 준 LP를 사랑스럽게 쓰다듬길 한참, 슬슬 LP 선반에 올려둬야겠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딱 한 발짝을 떼었을 때 에바는 사부작하니 무언가를 밟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얗고 얇은 무언가의 모서리가 발아래로 비죽 나와 있었다. 포장을 풀 때 떨어뜨린 걸까. 2차로 쉴틈없이 연이어 찾아온 설렘에 에바는 천천히 그것을 집어 들었다.

“후후, 이건 또 뭘까.”

남편은 깜짝 이벤트에는 영 소질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십여 년간 봐온 그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새삼 가슴에 배어들어서 즐거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렇게나 귀여운 사랑의 인사라니. 그녀는 크고 가는 손길로 얼른 새로운 출현물의 정체를 확인하였다.

상자와 LP 사이에 끼어있던 그것은 장방형의 얇은 카드였다. 조금 더 이전 시대의 활자 교본에서 그대로 따온 듯한 글씨가 수령인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에바에게. 아무래도 좀 더 불빛이 필요할 모양이었다. 다시 화장대 앞에 앉은 그녀는 카드를 펼쳐 들었다. 바르게 2단으로 접혀있는 카드 가운데에 겉면과 같은 필체가 흘러가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카드를 읽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천히 시선 끝으로 글씨를 쫓던 에바가 천천히 길게 숨을 내쉬었다. 행복과 기쁨에 찬 숨이었다. 남편의 감사와 소망은 그녀에게도 같은 것을 안겨주었다. 당신에게 고마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녀는 너무나 소중하게 손가락으로 카드를 매만지다가 이내 그것을 LP판 패키지 틈에 꽂아 넣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굳모닝 인사를 먼저 속삭여주겠지만, 언젠가 아이들이 자란 후에는 장난삼아 이렇게 속삭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옛날에 너희 아버지가 이런 편지를 주었었노라고. 아버지의 첫 연주를 기억하느냐고. 벌써부터 한참 후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그녀가 부모이기 때문이리라. 그때를 위한 증거를 함께 소중히 끌어안으며 에바는 방을 나섰다. 오늘 이 저택 안에서의 하루는 이 귀여운 선물을 선반에 장식한 후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눈치 빠른 꼬맹이들은 금방 알아차리겠지. “못 보던 물건인데!” 하고. 에바가 “네 아버지가 주고 갔단다.”라고 다소 자랑스럽게 말하면 부러워하며 왜 우리 선물은 없냐고 불만스레 볼을 부풀릴 것이다. 적어도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이 중 한 녀석은 대놓고 그럴 것이 눈에 선했다.

그때 제 아버지가 남기고 간 당부를 전해주는 것이다. 얼마나 좋아할까. 언제 부루퉁했냐는 것처럼 신나서 뛰쳐나갈 것이고, 서운함을 감추던 다른 아이도 먼저 찾겠다며 질 새라 따라나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적어도 오전 정도는 오롯이 그녀만의 시간이 될 수도 있으리라.

잠시 눈을 붙였다가 매일같이 쌓이는 집안일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동안 오후가 되면 여기저기 흙먼지를 잔뜩 묻힌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돌아올 것이고, 나간 동안 버질이 어쨌니, 단테가 어쨌니 한참 실랑이를 하며 어머니의 판정을 바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재주 좋은 아이들이니 어떻게든 선물은 찾아내고 말겠지. 아이들 아버지는 눈치 있게 둘 선물을 따로 준비했겠지만, 어쩌면 서로의 선물이 더 마음에 든다며 또 다른 실랑이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여느 형제자매도 별반 다르지 않다지만, 그들 형제는 쌍둥이라 그런지 더 유난스러운 면이 있었다. 한 번 시작되면 한바탕 불벼락을 떨어뜨리기 전까지는 내내 투닥거릴 것이다. 자신이나 그이의 제지는 잘 듣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할까.

그이가 과연 아이들에겐 어떤 걸 준비했을까? 아이들 선물을 뭘로 골랐는지, 어떻게 골랐는지도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들이 찾아내고 나면 과연 그가 어디에 숨겼는지도 묻고 싶었다. 과연 얼마나 센스있는 곳에 두었을 것인가.

오늘 하루도 행복한 날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반듯하게 또 잘 보이게 LP판 패키지를 선반에 꾸며놓으며 에바는 즐거워했다.

 


 사랑하는 아내 에바에게,

 이 편지를 다 쓸 때까지 당신이 잠에서 깨는 일이 없기를.

 당신이 이 쪽지를 볼 때엔 이미 동이 트겠지. 선물을 어제 바로 전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이해해줄 거라 믿소. 깜짝 이벤트라는 걸 해보려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신이 잠들 때까지도 도저히 떠오르질 않더군.

 이전 함께 같던 연주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 선물도 당신 마음에 들길 바라오.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이 당신을 닮는다면 두 형제 다 음악과 연주를 사랑할 테지. 내일은 불확실하다지만, 가능하다면 언젠가 어제와 같이 가족 모두가 모여서 연주해보는 날 또한 있기를. 그 날엔 부디 아이들도 함께 연주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부탁하오.

 당신이 주는 멋진 나날에 항상 감사하며,

 남편 스파다가.

 

p.s 아이들 선물은 저택 어딘가에 숨겨놓았으니 찾아보라 전해주시오. 기운 넘치는 아이들에게 적어도 심심풀이 놀이 정도는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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