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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emblage (2)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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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텅 빈 갤러리를 돌아보며 시간을 죽일 생각이었던 유선은 갤러리 1층에서 마주친 유신과 나무와의 대화로 남은 에너지를 전부 소비한 듯 보였다. 피곤이 달라붙은 안경 뒤의 두 눈을 손으로 꾹 누르던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선 동현을 남겨두고 제 객실로 사라졌다.

3층 복도에 홀로 남은 동현은 객실로 들어가서 쉴까 하다가, 이 건물 지하의 색다른 구조가 떠올라 그대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하 1층의 버튼을 누르고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지하부터 옥상까지 총 다섯 개가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하강했다. 3층부터 지하 1층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이동한다. 문이 열렸다. 밝았다. 몇 시간 전까지 리셉션으로 붐볐던 지하 홀은 여전히 조명이 켜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데 불이 켜져 있는 건 전기 낭비 같네, 라는 생각을 하기도 잠시, 곧장 그의 시야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지민과 승현이 창 근처에 서 있었다. 컴컴한 창 너머를 바라보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쪽에 등을 보이고 있는 승현의 한쪽 귓바퀴에 붉은 인공 와우가 달려있는 모습을 동현은 확인했다.

동현의 인기척을 느낀 두 사람이 그를 돌아보았다. 동현은 어쩐지 머쓱한 기분이 된다.

"안녕하세요. 얘기들 나누시고 계신가 보네......"

홀로 고독을 씹으며 창밖의 파도를 즐기고 싶었던 동현은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슬쩍 몸을 틀어 엘리베이터의 상승 버튼을 눌렀다. 어색한 미소가 입가에 서린 게 제 스스로도 느껴졌다. 지하에 서 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열린다.

"잠깐."

막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들이던 동현을 승현이 멈춰세웠다. 엘리베이터와 지하 홀의 경계에 서 있던 동현은 그녀를 돌아보다가 지체없이 닫히는 문에 몸을 끼었다. 쿵 이니 켁 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지하 홀로 튕겨나오는 그다.

"당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넷?"

엘리베이터에 찝힌 몸의 매무새를 다듬던 탐정은 못미덥게 휘청거리며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염려스러운 표정의 지민과 다르게, 승현은 찌푸린 것처럼도 보이는 무표정을 얼굴에 새기고 있었다.

"제, 제 이야기를요? 무슨, 왜요?"

"당신이 아까 이 자리에서 넘어졌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지하 홀의 창가 앞. 리셉션이 진행되고 있었던 때에는 붉은 샴페인이 놓인 테이블이 위치했던 곳이다. 분명 동현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유선에게 샴페인을 건네주던 중 꼴사납게 넘어져 잔 두 개를 깨먹고 말았다.

그 때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동현에게서 샴페인을 건네받으려다 옷을 적시고만 유선과, 그 옆에 서 있던 나무,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지민과 승현, 도슨트 은수. 원래는 유신과 도슨트 서진도 같이 있었지만, 그들은 동현이 샴페인을 쏟기 전 갤러리에 있던 아영의 부름으로 지하 홀을 떠나 있었다.

"그 때, 당신은 왜 넘어졌지?"

승현이 아주 자연스럽게 반말로 물었다. 당황한 동현은 상대의 말씨를 지적할 생각도 못하고 급작스럽게 기억을 되살렸다.

"어, 글쎄요, 발을 헛디뎠던 거 같은데요......"

"아니야."

"아, 아니면 바닥이 미끄러웠던가? 비가 엄청 왔잖아요."

"비는, 우리가 지하로 내려온 후에 오기 시작했다."

지민이 작게 안승현, 하고 불렀다. 예의를 갖추라는 항변인 듯했지만 승현은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말을 잇는다.

"비가 오기 전에 다들 지하로 내려왔으니 바닥에 물기가 있을 이유가 없지."

"어라...... 그럼 누가 그 앞에서 샴페인을 흘렸나?"

"아니야. 사람이 미끄러질 정도로 샴페인을 흘린 사람은 보지 못했다. 기름도 아니고, 샴페인 한두 방울로 사람은 미끄러지지 않아."

"......리셉션 이전에 물청소를 했는데, 그게 덜 말랐었다든가."

"이 테이블 앞에는 사람이 많았다. 만약 바닥이 덜 말라있었다면 당신 말고도 미끄러지는 사람이 있었을 거야. 하지만 아무도 휘청조차 하지 않았다."

온갖 가능성을 부정하니 동현으로서는 짜증이 섞인 의문이 피어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탐정은 그제야 눈앞의 반삭 예술가가 반말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기요, 바닥이 깨끗한지 아닌지 말랐는지 아닌지 계속 보고 계셨어요? 아니, 그보다 왜 반말......"

"다른 건 봤지. 그 여자가 당신 발을 거는 모습."

악센트가 자유로운 말투로 반박을 늘어놓던 승현이 눈을 부릅떴다. 안 그래도 위로 치켜올라가 사나워 보이는 눈에 힘을 주니 박력이 상당했다. 합당한 불평을 제기하려던 동현은 지레 기가 눌려선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몇 번 끔뻑이기나 한다.

"......그 여자요?"

"그 단발머리 도슨트."

승현이 단박에 대답했다.

"예? 아니, 뭘 잘못 본 거 아니야? 그 분이 나를 왜 넘어뜨려요."

"그래서, 도슨트가 당신을 자빠뜨린 이유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승현은 제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지민을 돌아보았다. 통이 넓은 바지 밑의 발끝을 불안하게 바닥에 비비고 있던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뱉는다. 바닥을 향해 있던 시선을 들어선 동현과 눈을 마주쳤다. 뿔테안경 뒤의 처진 눈이 묘하게 반짝였다.

"솔직히 저는 그분이 발을 거는 건 못 봤는데, 승현이가 계속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애가 아니거든요."

"봤다니까."

승현이 반삭의 뒤통수를 한번 툭툭 털어내다가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이 잔을 건네려고 그 안경 쓴 여자한테 다가갔을 때, 도슨트가 발을 걸었다고."

안경 쓴 여자라는 건 샴페인을 건네주려고 했던 유선을 의미할 테다.

"......정말?"

미간을 찌푸린 동현이 멍청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반삭의 예술가가 관자놀이 부근에 매달린 둥그런 판의 위지를 조정하며 말했다. 청진기의 청진판을 꼭 닮은 그것은 새빨간 인공 와우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머리가 짧아 핀 같은 것으로 머리카락에 고정하지도 못할텐데, 둥그런 판은 관자놀이에 잘만 붙어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그 여자는 왜 당신을 넘어뜨려야 했을까."

그녀의 입에서 악센트가 독특한 문장이 흘러나왔다.

"당신이 넘어지는 것으로 그 여자는 어떤 득을 봤을까."

판의 부착법을 멍하니 생각하던 동현은 의식적으로 사고의 채널을 바꿨다. 넘어졌을 때의 상황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유선에게 잔을 건네기 위해 다가간 순간 몸이 휘청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바닥이 눈앞으로 닥쳐왔다. 넘어지면서 잔 두 개가 시원하게 깨졌다. 당황해선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어느새 티슈를 가져온 도슨트 최은수가 깨진 잔의 조각을 하나하나 줍고 있었다......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어. 당신을 넘어뜨리는 게 목적이었거나, 샴페인이나 샴페인 잔을 떨어뜨리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장소를 어지르는 게 목적이었거나."

"그런데, 저는 두 번째랑 세 번째는 엄밀히 따지면 같은 메소드라고 생각했어요."

막힘없이 말하던 승현에게 지민이 끼어들었다. 흘러내린 뿔테안경의 코받침을 밀어올리는 모습이 꼭 만화 속의 탐정을 닮았다. 이 사람, 친구가 멋대로 상상하며 재잘대는 걸 고까워하는 듯 보였지만 실은 즐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

몇 시간 전의 기억에 파묻혀 있던 동현은 갑작스레 몇 년 전의 추억으로 의식을 떨구었다가, 고개를 홱홱 저으며 기억의 바다에서 빠져나왔다. 그새 두 사람은 제멋대로 가설의 검증을 시작했다.

"샴페인 잔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요? 카펫 위에 떨어지거나 해서 천만다행으로 잔이 깨지지 않더라도, 그 안의 내용물이 보존되지는 않겠죠. 액체니까요. 분명 사방팔방으로 튀어서 마시지 못하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그 분은 샴페인을 마시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일을 벌이신 걸까요?"

지민은 한 번 쉬고 말을 잇는다.

"샴페인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싶었으면, 차라리 잔 안에 뭐가 가라앉아 있다고 하든가 해서 잔을 뺏는 게 나아요. 샴페인 잔 안에 이물을 몰래 넣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테이블에는 여분의 샴페인이 많이 남아 있었잖아요? 다른 잔을 건네주는 것도 이상치 않은걸요. 그러니까, 샴페인 하나 못 마시게 하겠다고 굳이 발을 걸어 넘어뜨려서 주위의 이목이 집중되게 만들 이유는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반대로 말하자면, 그 도슨트 분에게는 주위의 이목을 끌어서라도 넘어뜨릴 이유가 있었다는 거고요."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당신을 넘어뜨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가, 아니면 잔을 떨어뜨려 이 장소를 어지럽히는 게 목적이었던가. 이 때 어지럽힌다는 건 단순히 바닥을 샴페인으로 더럽힌다는 의미가 아니야. 당신의 실족으로 촉발되는 장내의 소란까지를 포함해서 말하는 거다."

"하지만 단순히 그쪽을 넘어뜨리는 걸로 그 분은 어떤 이득을 볼까요?  넘어뜨려서, 상처를 입히고 싶었던 걸까요? 혹시 그 분을 이전에 보신 적 있으세요? 복잡한 인간관계 같은 게 있으신가요?"

탐정 자격증이 있는 정식 탐정보다 훨씬 더 심도 있는 주장을 펼치는 두 사람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동현은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처음 보는 사람이다. 애초에, 그의 주위에 도슨트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다. 서점 사장 겸 큐레이터라면 모를까.

"아뇨, 처음 보는 분이에요."

"구면인데 숨기시는 건 아니죠?"

지민이 물었다. 동현은 입을 비죽 내민다.

"아니에요. 진짜 처음 봐요. 저랑 같이 온 진유선 변호사랑도 관계 없는 사람이고요...... 소개가 늦었네요. 오동현입니다. 진 변호사의 비서입니다."

"당신은 누가 봐도 비서처럼 행동하고 있었지."

승현이 무신경하게 뱉었다. 동현은 한번 더 입을 내밀었다.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단발머리가 당신에게 위해를 가할 개인적인 이유는 사라진다. 아무 연고 없는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 쾌감을 느끼는 성격이상자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런 인종이 남 비위 맞춰 안내하는 도슨트 일을 하고 있다는 건 또 넌센스다."

"왜? 타고난 성격이 나쁜데 어쩌다 보니 도슨트로 일하고 있는 걸수도 있잖아."

지민이 고개를 모로 꼬며 물었다. 시선의 끝에는 승현이 있다.

"그 여자는 리셉션 때만 안내를 맡는다. 임시직,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좋지. 그리고 지금은 대다수의 사람이 일을 쉬는 연휴야. 상식적으로 그런 성격 나쁜 사람이 연휴에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할까?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그 여자가 낀 손목시계는 분명 고가품이었으니까. 어쩌면 선생님과 친해서 이 연휴에 갤러리 안내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선생님께서 그런 말은 하신 적이 없어. 단순히 연휴에 아르바이트를 와서 사람을 괴롭히려는 열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추측은 기초부터 무너뜨려야겠지만."

"알았어, 알았어. 초면의 동현 씨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넘어뜨린 건 아니다, 샴페인을 못 마시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이곳을 어지르기 위해 이 사람을 이용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동현을 향했다. 여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동현은 열기가 느껴지는 시선을 받고 어깨를 움찔했다.

이곳을 어지르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고? 그러니까, 내가 넘어지고 잔이 깨지는 걸로 홀이 소란스러워지길 원했었다고? 그 도슨트 분이?

"자, 잠깐만요. 왜 하필이면 저예요? 넘어뜨릴 사람이라면 많았잖아요. 샴페인이나 다른 음료수가 든 잔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들고 있었어요."

"여기서도 세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승현이 턱을 당기며 대답했다. 고개의 움직임에 따라 붉은 이어커프가 한순간 빛을 반사했다.

"첫째, 그 여자는 당신을 넘어뜨려야만 했다. 둘째, 그 여자는 그곳에서 사람을 넘어뜨려야만 했다. 셋째, 그 여자에게는 그 어느 것도 상관이 없었다. 가장 가치가 없는 세 번째부터 얘기하지. 그 여자는 그저 장내의 소란을 원했다. 그래서 근처의 아무나를 넘어뜨리려고 했는데, 때마침 당신이 잔을 들고 움직여서 발을 걸고 넘어뜨렸다."

"하지만 이걸로는 그 분이 소란으로 뭘 얻은 건지 파악이 안 돼. 다시 생각해보자. 그 분은 동현 씨를 넘어뜨리고 뭘했지?"

"빠르게 휴지를 가져와서 깨진 잔의 조각을 주웠다. 그리고 바닥을 닦기도 했다. 소란으로 촉발된 그녀의 행동은 그게 다였다."

"그렇다면 첫 번째 가설도 애매하게 돼. 깨진 잔 조각도 더럽혀진 바닥도 동현 씨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잖아. 깨진 잔 조각에 동현 씨의 지문 정도는 묻어있을 수 있겠지만, 더럽혀진 바닥, 그러니까 흩뿌려진 샴페인에는 동현 씨의 타액조차 들어있지 않지. 동현 씨는 샴페인을 마시기도 전에 넘어지셨는걸."

"아니, 이 사람이 넘어지는 것으로, 소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상관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승현이 동현을 흘겼다.

"이 사람은 그 안경 쓴 여자에게 샴페인을 쏟았지. 그래서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지하 홀 밖으로 사라졌다."

"......저랑 진 변호사를 홀 밖으로 내보내려고 발을 건 거라고요?"

동현이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승현은 눈썹 사이의 골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 그것 또한 '소란'의 일부이기도 하지."

"아니, 그건 이상하죠. 아무리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해도 샴페인이 진 변한테 옴팡 쏟아질 거라는 확신은 없어요. 진 변이 잽싸게 피할 수도 있고, 제가 균형을 잘 잡아서 바닥에만 쏟뜨릴 수도 있고요. ......애시당초 그 분은 저랑도 진 변이랑도 안면이 없는데 왜 밖으로 내보내려고 합니까?"

"그럼 다른 가능성으로 넘어간다."

승현은 예상 외로 깔끔하게 주장을 굽혔다.

"두 번째 가설, 그 여자는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넘어뜨려야 했다."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해."

지민이 진지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 분은 그 장소에서 잔을 깨뜨릴 이유가 있었던 거야. 다시 생각해 보자. 그 분은 동현 씨를 넘어뜨리고 나서 휴지를 가져와 깨진 잔의 조각을 주웠어. 그리고 바닥에 흘린 샴페인을 닦아내기도 했지. 그 분이 이 동작을 위해 동현 씨를 넘어뜨렸다고 한다면......"

"바닥 내지 발치에 주워야 할 게 있어서 깨진 잔을 줍는 척 함께 주웠다. 아니면 바닥에 흘린 게 있어서 샴페인을 닦는 척 함께 닦아냈다."

승현이 노래를 부르듯이 대답했다.

"아뇨, 아까 승현 씨가 바닥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바닥에 아무 것도 없는데 넘어지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 도슨트 분이 발을 걸어서 넘어진 거다, 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액체. 고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손을 써서 집을 정도면 크기가 좀 있을 텐데요. 눈에도 띌 거고."

"반대일 수 있어요."

지민이 뿔테안경 뒤의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그 시선은 승현도, 동현도 아닌 애매한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자신이 떠올린 가능성에 감탄하는 것처럼도, 어쩌면 두려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반대?"

승현이 미간에 골을 새겼다.

"바닥에 둘 게 있어서, 아니면 바닥에 흘릴 게 있어서 그런 짓을 했다고 한다면?"

"네?"

동현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깨진 잔을 주우면서 바닥에 뭔가를 두는 건 쉬운 일이에요. 조각난 잔을 주우려고 손을 열심히 움직이는 척했지만 실은 잔 파편을 줍다가 은근슬쩍 바닥에 뭘 둔 거죠. 흘리는 것도 그렇고요."

"아니, 바닥에 뭘 둔다는 말이에요? 손으로 집을 정도로 크기가 있는 건 다른 사람들한테 다 보일텐데요. 제가 아까 말했듯이."

"그건......"

허공을 헤매던 시선이 천천히 바닥을 향했다. 꼭, 그곳에 도슨트가 두었던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이. 동현은 무심코 그녀의 시선을 따랐다. 물론 그곳에는 대리석 재질의 바닥이 반질반질하고 깔끔한 표면으로 조명 빛을 반사하고나 있을 뿐이었다.

잠시 세 사람 사이의 대화가 끊겼다. 드물게도 두 사람의 추리는 막다른 길에 당도한 것 같았다. 그건 동현도 같아서, 그녀가 자신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저의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발을 거는 모습을 보았다는 승현의 증언이 의심되는 판이다.

별안간 계단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허공을 향해 있던 승현의 눈동자가 그쪽으로 향한다.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세 사람이 줄곧 도마 위에 올렸던 도슨트 은수의 동료, 서진이었다.

"아, 아아...... 다들 여기에...... 계셨군요."

"무슨 일 있으세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지민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서진은 두 손을 꼬았다 풀었다하며 작게 웃어보였다.

"저, 그. 간단한 저녁을...... 네, 저녁이라기에도, 뭐하지만...... 준비해서요. 1층으로 올라오시죠......"

동현의 코끝에 옅은 빵 냄새가 스쳤다. 동시에 허기가 느껴졌다. 무심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여덟 시를 좀 넘기고야 말았다. 아아, 생각해 보니 오늘은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휴게소에 들러 아침을 먹은 것 외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질 못했다.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던 일이 꼭 까마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껴져서, 동현은 자신에게 쌓인 피로를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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