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People Carry On

1차 / 장례, 6천 자

전쟁이 끝났지만 죽음은 어디든지 널려 있었다. 오래 굶주린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마른 땅에 쓰러졌다. 약탈을 일삼던 버릇을 고치지 못한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누군가는 제 턱밑에 총구를 들이댔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문고리에 목을 맸다. 비탈길에서 발을 헛디딘 사람이나 강에 투신한 사람 혹은 열차에 들이받힌 사람도 있었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었다. 인간이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묘지와 부고란이 날마다 빼곡해졌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먼지 낀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들여다보던 샤를은 느슨한 넥타이를 천천히 고쳐 맸다. 특별히 약속된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헌화는 어디에서 준비하는 게 좋을까. 가장 깔끔한 옷을 골라 차려입은 샤를의 모습은 온통 검정 일색이다. 반쯤 해어진 구두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문간을 나섰다. 찬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 몸을 부딪힌다. 눈부신 오후의 햇살이 발코니에서 추락하는 순백의 시트처럼 흘러넘치고 있었다. 덕분인지 거리는 오래된 적막에서 모처럼 깨어나 제법 소란하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샤를은 잠시 숨을 죽인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르클레르는 성당 부속의 공동묘지 한켠에 묻혔다. 흔해빠진 사고사였다. 알코올에 한껏 절어 밤거리를 배회하던 취객이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자세한 과정을 복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여력도 없었다. 사망 선고가 확인된 이후의 절차는 속전속결이었다. 순식간에 장례가 끝났다. 허망했다. 마음껏 슬퍼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도 살아 돌아왔으면서, 이렇게 훌쩍 가버리는 게 어디 있냐고. 조문객들이 흐느끼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하다. 기어코 주저앉던 이의 옷자락이 허물어지는 모양이나, 창백히 질린 얼굴 위로 번진 눈물 자국 같은 것들 또한. 샤를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실은 송덕문을 낭송하던 그때부터 시간은 진작 멈춰버린 것만 같다. 끔찍할 정도로 선명하게 생동하는 세계 속에 르클레르의 호흡만이 부재한다. 그것이 오늘 이 순간까지도 제대로 실감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먼 여행을 떠났을 뿐인지도 모른다고. 샤를은 생각한다.

 

길모퉁이 꽃집에는 색색깔의 장미가 가득하다. 그것들 전부 죽은 사람을 위해 마련된 몫이다. 이승에 발 붙인 자를 기쁘게 하기 위한 꽃들은 아직 허락되지 않았다. 애도는 아무리 해도 부족한 것. 6피트 아래에 묻혀 잠든 이들을 위해서라면, 앞으로 몇 리터의 눈물을 더 흘릴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샤를의 눈가는 건조하다. 그는 주변을 살피며 어떤 꽃이 가장 싱싱한지 가늠할 뿐이다. 거친 손 끝은 허공을 잠깐 배회하다가, 마침내 노란 장미가 가득한 양동이를 가리킨다. 한 다발 엮어 주게.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점원은 우윳빛 포장지를 꺼내 자르기 시작한다. 곧 연노랑 실크 리본이 가지런히 묶였다. 샤를은 계산대에 구겨진 지폐를 올려놓는다. 풍성한 장미 다발이 그의 빈 손을 채웠다. 점원은 사근사근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구김살 없는 얼굴은 한눈에 보기에도 앳된 티가 난다. 다들 바쁘게 살고 있는 거지. 고개만 꾸벅 숙여 대답을 대신하고, 샤를은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린다. 공동묘지까지는 좀 더 걸어야 했다. 그사이 꽃이 시들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햇빛 작열하는 한여름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뺨을 긁으며 스쳐 간다. 분명한 한기에 샤를의 어깨가 조금쯤 움츠러들었다가, 곧 다시 반듯해졌다. 혹독한 날이 되기 전에 종전을 맞는 행운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무엇인들 마다하겠는가. 문득 입안에 쓰고 찝찔한 맛이 감돈다. 그것은 참호 속으로 밀려들던 흙먼지, 그리고 얼굴을 온통 적시던 피와 땀의 감각을 상기시킨다. 이불처럼 널찍한 면으로 내려앉던 볕의 온기는 그 순간 가시처럼 날카로운 물성을 얻어 샤를을 찌른다.

이명.

전장 한복판의 잔상이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긴다. 꿋꿋하던 샤를의 걸음이 점차 무겁게 느려진다. 전부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면서도 곧바로 떨쳐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약물이나 알코올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왜 끝도 없이 생겨나겠는가. 잠시 휘청이는 사이, 발밑의 아스팔트 도로는 어느새 완만한 산책로의 모습으로 바뀐다. 걸음마다 마른풀이 짓밟혀 발아래에 꺾어진다. 푹신한 흙길로 이어지는 성당 앞뜰에는 갖가지 들꽃이 피어 있다. 희미한 종소리 곁으로 미사를 보러 온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르클레르가 묻힌 구역까지는 아직 더 걸어야 했다. 저 모퉁이를 지나 어디쯤이었던가, 샤를은 눈대중으로 짐작할 뿐이다. 표지판을 따라 묵묵히 걷는다. 손에 움켜쥔 장미 다발을 놓치지 않는 데에만 신경 쓰면서. 주인에게 건네주기 전부터 꽃이 상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기억은 산발적으로 돋아나는 것이고 샤를은 그것을 모두 붙잡을 수가 없다. 지금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참호 속에서 종종 나누던 대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정확히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제대로 기억해낼 수 없다. 매초가 긴박한 전시에 한가로운 사담을 나눌 기회는 많지 않았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몇 개의 토막으로 남겨진 음성만은 여전히 머릿속에 잔여하며, 가끔 고장난 카세트테이프처럼 재생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샤를은 전쟁터 한복판에 도로 떨어진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빛을 모조리 틀어막고 사방에 넘실대던 포화와 희부연 먼지. 무전에 대고 고함을 지르거나 숨죽여 속삭이던 사람들. 어디에나 비명과 절규와 날카로운 쇠 냄새가 가득했다. 그 지옥의 한구석에서 가끔 마주칠 때면. 흙투성이가 된 얼굴로 짧게나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던 르클레르의 표정이 어렴풋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그리워하던 시절. 그것은 범람하는 적군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샤를은 바닥난 수통에서 힘겹게 떨어져나오던 물의 비린 맛을 아직 기억한다. 뜨듯미지근한 진창에 온몸을 적셨을 때의 기분도. 아니, 이런 것쯤 아무래도 좋으니 일단 차치해 두자. 사실은 무엇보다도. 서로를 부축하며 나누던 체온이 간절했다.

르클레르의 몸은 아주 차갑게 굳었을 것이다.

그리고 샤를은 깊은 땅속이 얼마나 추운지 알고 있었다. 전쟁터에 눌러앉아 살다 보면 모를 수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밤이면 더욱 싸늘하겠지. 샤를은 묻고 싶다. 그 아래에서 외롭지 않느냐고. 어쩌면 먼저 죽은 전우들을 만났을지 모르니, 최악은 면했을 수도 있겠다. 하기야 그는 누구나와 서스럼없이 어울리곤 했으니까. 모두를 진정 친구로 여겼는지는 의심해볼 만한 것이었지만…… 샤를은 역시 알고 있었다. 적어도 제게는 그런 가정이 무용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정말 좋은 친구였는데. 샤를의 반쯤 벌어진 입술 틈으로 나직한 숨이 흘러나온다. 너무 젊은 나이에 꺾어진 그의 생이 못내 아쉽다. 한낱 추위 따위는 더 이상 그를 괴롭힐 수 없을 테니 그것만은 다행인 일이다. 어느새 마지막 표지판이 눈앞에 있었다. 묘지는 이미 누군가 놓고 간 꽃들로 가득해, 마치 봄날의 화원처럼 한껏 화사하다.

 

샤를의 걸음이 천천히 멎는다. 그는 깨끗한 은회색 비석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정갈한 글씨체로 새겨진 이름자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클로비스 르클레르. 조용히 입속말로 되뇌인다. 클로비스, 르클레르. 여전히 낯설다. 언제고 그를 부를 때면 장군, 그 한 마디면 충분했으니까. 전쟁이 지나간 후에도 그의 이름을 말해본 적은 몇 없는 듯하다. 샤를은 조용히 몸을 굽혀 꽃다발을 건넨다. 말끔하던 포장지가 구겨지며 바스락대는 소리가 났다. 크림색 종이에 휘감긴 노란 장미들이 일제히 비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주변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정갈한 모양으로 묶인 리본이 가볍게 흔들린다.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그가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미리 물었더라면 좋았을 테지. 하지만 어떻게 죽음의 순간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언제나 마구잡이로 낫을 휘둘러 대는 사신을, 감히 누가. 샤를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진다. 이제 와 그런 것을 따져 봐야 아무런 의미 없다. 시간은 결코 역행하지 않으므로. 두 번의 기회는 없는 것이다. 그저 제가 아는 중에 가장 나은 것을 고르는 수밖에. 우정을 뜻하는 노란 장미에는 사실 다른 꽃말도 여럿 있다지만, 그런 것쯤 아무래도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숨겨진 복선 같은 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간 제자리에 선 채로 비석을 내려다보던 샤를은 결국 맨바닥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잠시 휘청대던 몸은 잔디가 깔린 바닥을 짚고 나서야 균형을 되찾았다. 날씨가 빌어먹게도 좋았다. 세상은 온통 화창하고 멀리 성가대의 경건한 합창도 들려온다. 모든 게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은데, 정작 친우는 멀리 가고 없다. 르클레르의 비석 앞에는 이미 희고 붉은 장미 몇 송이가 놓여 있었다. 지나치게 선명한 빛깔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장군도 죽음만은 이기지 못했군. 샤를이 실소한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았는데 몸이 더웠다. 눈가에 무언가 차오르는 듯하다. 콧등이 시큰거렸다. 울음 대신 긴 숨이 터져나온다. 샤를은 비석을 몇 번이고 쓰다듬는다. 매끈한 곡면을 오가는 손길은 그 위에 먼지 한 점 남아 있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처럼 느리고 꾸준하다. 햇볕이 데워 놓은 돌에서는 묘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것이 언젠가 흩뜨려 놓곤 했던 그의 머리칼이라도 되는 듯이.

왜 하필 그런 식으로 떠나야 했을까. 그를 위해 좀 더 나은 죽음이 마련될 수는 없었나. 하지만 어떤 죽음도 결국은 비참을 동반한다. 최선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곳에는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잔존한다. 소중한 사람을 섣불리 뒤따르지 못한 채로. 겨우 몇 개의 꽃다발만을 끊임없이 건네면서.

단지 그들을 잊지 않으려고.

괴롭더라도 기억해야 했다. 계속해서 그들을 떠올리며 살아가야 했다. 그들이 이곳에 존재했었음을,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갔다는 사실을 매순간 되새겨야만 했다. 세상에 무의미한 죽음이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전쟁을 겪은 뒤라면 더더욱 그랬다.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지독한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스러져야 했을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웠던 걸까, 아니, 무엇이 우리를 싸우게 만들었을까. 지금에 와서는 도대체 누가 승리했다는 말인지.

애써 답을 구한들 샤를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에게 가능한 것은 그저, 먼저 떠난 자를 위한 애도뿐이다. 그것만이 남은 이에게 허용된 몫이었다.

 

내내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이 마침내 벌어진다. 넋두리 같은 말이 중얼중얼 흘러나온다. 장군이라면 지하에서도 잘 지낼 테지. 장군은 뭇 사람들을 이끄는 힘을 갖고 있었잖은가. 누가 자넬 함부로 싫어할 수 있겠나. 오래된 필름들이 차근히 감겨 올라간다. 부드럽던 그의 인상과 서글서글한 말투. 어느 자리에서건 대화를 주도하고, 사람들을 한데 모으던. 그와 함께라면 어디에서든지 분위기가 살아나곤 했다. 동시에 어딘지 벽을 두르고 있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 그는 원체 잘못된 것을 눈 뜨고 봐주지 못하는 성격이라, 가끔 견디지 못하고 항변하던 때도 종종 있었다. 덕분에 상관들은 하나같이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샤를은 그의 곧은 심지가 참 괜찮게 보였다. 좋은 사람 같아, 이야기하던 동생에게도 틈없이 긍정했을 만큼. 그의 분노는 결코 약자를 향해 쏟아지는 법 없이 모두 대의와 진실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가 그리웠다.

샤를의 손끝이 마침내 비석에서 떨어져나온다. 힘없이 추락한 손끝은 여전히 싱싱한 꽃다발을 스치고 다시 제 무릎 위로 자리잡는다. 영원토록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그에게도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고, 다시 걸어가야 할 내일이 있기에. 하지만 그는 언제라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르클레르가, 그의 소중한 전우가. 여기에 기다리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몸을 일으킨 샤를이 끝내 비석을 등지고 걷기 시작한다.

여전히 날씨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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