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싫

천국

존 스튜어트 밀이 행복하게 세금을 열 배 냈으면 좋겠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과 해리엇 테일러 밀의 투샷이 너무 좋아서요…☺️


존 스튜어트 밀은 누군가 깨운 것처럼,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아니, 이상했다. 분명 “나는 내 일을 다 끝마쳤다”라는 말과 함께 영영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자신의 명이 다했음을 전혀 모를 정도의 바보가 아니다. 더더욱이 그는 스스로의 명징한 정신이 흐려지고 있었음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죽어가던 자신의 곁에는 해리엇의 장녀이자, 자신의 장녀와도 같이 친밀하게 지낸 헬렌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끝은 고요했고, 암전과도 같이 찾아왔다. 그것이 눈을 뜨기 직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따뜻한 햇살이, 그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비치고 있었다. 그는 눈을 찡그리곤 손을 들어 눈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막았다. 팔이 가벼웠다. 햇살 뒤로 어둡게 보이는 손등은 얼핏 보아도 주름 하나 없는 손이었다. 육십이 넘은 노인네의 손이 아니라.

그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긴 머리카락이 어깨에 사락,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눈뜨기 전에 머리가 상당히 빠졌을 터인데,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보았다. 어색할 정도로 매끄러웠다. 공간에 시선을 옮기자, 따뜻한 햇살 아래 잘 정돈된 방이 보였다. 이것만큼은 항상 머물던 아비뇽의 저택과 유사했다. 딸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그곳의 창문은 이 정도 채광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전체적 분위기는 비슷했다. 딸이 외출이라도 한 건지, 아니면 내가 갑자기 어디론가 이동이라도 한 건지……. 그제야 그는 침대 발치의 벽 거울에 시선이 갔다.

“누구야, 이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젊은 목소리, 누웠다 일어서서 정돈되지 않았지만 윤기나고 풍성한 주황빛 장발의 곱슬머리, 진초록빛의 또렷한 눈동자를 가진 청년이 충격받은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을 얼굴에 가져가 보았다. 거울 속 청년 또한 그의 왼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이상할 정도로 분명하게 느껴지는 촉감은, 부드러웠다.

침대 발치에는 거울뿐만 아니라 옷도 잘 개어져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태로, 그는 옷을 갖춰 입었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꼭 맞는 옷이었다. 그는 옷이 꽤나 편안함을 느꼈다. 방을 좀 둘러보다가, 이곳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라도 그는 밖에 나가야 하겠다는 것에 생각이 다다랐다. 나가려 준비하던 그 순간, 그의 귀에 무언가가 들렸다.

작은 노크 소리와, 그가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던,

그가 가장 원하고 그리워했던 평화가.

“실례합니다. 여기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얼굴 좀 뵐 수 있을까요?”

웃음기 실린 목소리는 처음 듣는 음성이었으나, 억양과 말투에서 묻어나는, 너무나도 익숙한 분위기. 그는 홀린 듯 문을 달칵, 열어보았다. 열린 문 앞에선 갈색 머리의 아름다운 여성이 생긋 웃어 보이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얼굴이 눈물로 젖어있음을 자각했다. 언제부터 흐른 거지?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울음이 억눌린 음성으로, 그가 말했다. “……여보?”

여성은 활짝 웃었다. 처음 보는 여성에게서 너무나 익숙한 표정이 보였다.

“역시 알아보는구나. 모습이 달라졌는지라, 당신이 날 못 알아볼까 봐 걱정했거든. 불현듯 당신이 이곳에 왔다는 감이 생겨서 무턱대고 찾아와 봤는데……. 여기서의 당신, 잘 생겼다.” 말한 여성은 손을 들어 그의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그런데 왜 울어.”

“다신, 못 만날 줄, 알았는데……. 해리엇…….” 이제 그는 마구 흐르는 눈물을 멈출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버지와 대부님은 천국에 관한 관념은 인정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는 이곳이 자신의 신념을 통째로 부정하는 천국이래도 믿을 작정이었다. “당신만큼 깊고 그윽한 지혜의 사람은 내게 당신이 유일했는데…….”

“아하하, 여기엔 지혜로운 분들이 참 많으시더라. 여기에선 여성이란 게 배움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아. 당신도 오면 좋겠다 늘 생각했는데, 이런 날이 다 오네.” 해리엇 테일러 밀은 살짝 눈물이 맺힌 눈을 접어 환히 웃어 보였다. “당신 너무 많이 운다. 나도 기쁜데 이러면 내가 못 울잖아.” 해리엇 밀은 존 밀의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 깊이 안겼다. 존 밀은 그런 그를 부서지랴 조심히 안았다. 품은 따뜻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해리엇 밀만의 포옹이었다.

“어서 와, 당신.” 해리엇 밀이 말했다.

“……여기 있어줘서 고마워…….” 울먹이며 그가 대답했다. 여기가 어딘진 모르겠지만, 그는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재회한 사랑해 마지않는 아내를 긴 시간 꽉 안고 있었다.

얼마 후에 많은 사람들이 들이닥쳤고, 익숙한 말투로 누군가가 “존?! 오자마자 울어?! 아이고 내 대자야 왜 이렇게 울고 있니!!”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으나, 또한 그 말의 주인이 대부님임을 깨달았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이곳은 정말로 천국일지도.

(크레페 메론 님@TD__CN 커미션)


존 스튜어트 밀과 함께 해리엇 테일러 밀이 발할라에 있지 않았다면 조금 슬펐을 것 같은데 작가님께서 공설로 함께한다는 걸 인증해 주셔서 기쁘게 쓴 글입니다. 두 사람의 애틋한 재회의 순간을 써보고 싶었어요.

존 스튜어트 밀 세금 열 배 내라. (농담) 너무 과세욕구를 유발하는 커플이에요.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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