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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잔향 by R2d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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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김가비

https://youtu.be/SDXWYyRoQVc?si=o41htGNk80J88MaE

세상에 밤이 돌아온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세계를 되찾아준 어둠의 전사들과 그의 동료들 또한 떠난 지 수십 년이나 되어 벌써 과거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기록되었으며, 사람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지는 설화가 된 시대가 되었다. 그 설화 때 존재했던 제1세계라 불리는 이곳의 중심이 되어주었던 크리스타리움이란 이름의 도시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상징물이나 마찬가지던 수정 탑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한순간 사라졌다. 이상하다고 느낄만한 점은 영웅들이 돌아가기 전 탑과 수정공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곳의 주인이었던 수정공을 우리는 끝까지 어떤 존재였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였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겐 그 또한 어둠의 전사 같았고 누군가에게는 그가 진정한 영웅이기도 했다. 가끔 그 시대에 실제로 모든 것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후회하곤 한다. 당시 시대가 혼란스러우며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평화를 맞이한 사람의 생각이란 게 말이다. 그때 대한 문헌과 기록을 찾아보자면 조금은 이상한 부분들이 보이기는 한다. 밤을 되찾았음에도 어째서인지 한편으로 슬픔이 가득한 어둠의 전사와 동료들의 모습이 그림으로 남겨져 있는가 하면. 탑이 제자리를 찾아갔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멸하는 모습과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문헌도 있다. 물론 이는 그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함부로 바깥에서 이야기하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되었지만. 


이 기록은 영웅이 떠나기 직전 원했기에 남겼던 기록이기에 남긴다. 이 기록에는 한 치 거짓이 없음을 맹세하며, 영원토록 보존될 것을 또한 맹세한다. 하지만 이 기록이 알려지는 것은 숨겨진 이 문서를 직접 발견한 사람의 판단에 맡긴다.

고통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일 싸움이 결국에는 끝이 났다. 하지만 끝이라는 것이 상황의 종결이었을 뿐, 모든 것의 끝이 아니었다. 그를 쓰러뜨렸음에도 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고 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빛이 어떻게 고작 어둠과 맞서 싸웠다는 것만으로는 사라질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또 다른 문제를 눈앞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 빛을 해결하지 않으면 분명 나는 죽을 것이고 이 세계에 다시는 밤이라는 것이 정말로 되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만약 방법이 없다면 최후에는 난 이 빛을 품고 사라진다는 결단을 스스로 내리고야 말 것 같아서. 조금 이기적이어도 좋겠지만 나는 세상을 너무도 사랑했다.

해결방법은 수십 가지가 나왔음에도 그중에서 정답은 없었다. 모두가 지쳐갔고 사람들은 다시금 불안에 빠지기 시작했다. 싸움이 끝났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밤과 모습을 비치지 않는 영웅, 누구라도 불안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이었다. 치료와 불안감 조성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탑에서만 있었으니 어떤 소문이 돌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알리제가 화내는 것이 탑까지 들리지 않았던 것을 보니 나쁜 내용은 다행히도 없었나 보다. (영웅은 알리제씨의 이야기를 하며 웃다가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현재 몸이 완전히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상태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본래의 내용으로 돌아와 끝끝내 우리가 선택하게 된 방법은 가장 최초의 방법으로 이미 한번 시도했다가, 에메트셀크의 방해로 수포가 되었었던 `그것`이었다. (한동안 영웅은 말이 없었다. 유일한 기록관이고 이 이야기를 가장 처음으로 듣게 된 나는 감히 그 감각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고 다른 해결 방법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를 떠나보냈어야 했다. (영웅의 목소리가 보기 드물게 떨렸다.) 내가 이 기록을 남기기로 다짐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 있잖나, 그대… 혹시 기억하나? 마지막일 줄 알았던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을 말이야. "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죽어가던 내 손을 잡으며 수정공이 꺼낸 이야기다. 계획이 실행되기 하루 전의 대화였다. 당연히 기억한다. 잘 자라고 인사하던 마지막일 줄 알았던 나의 인사, 나에 대한 동경을 끌어안고 그 탑에 스스로 발을 들이던 모습, 미래라는 희망을 나에게 맡길 수밖에 없던 모습. 너는 수정으로 이루어진 탑처럼 빛나던 사람임을 나는 끝까지 기억한다. 

" 나는 내가 알라그 일족의 피가 나에게 흘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덕분에 그때도, 지금도 이렇게 당신을 도움이 될 수 있게 되었으니까. "

수정공의 말은 분명 순수한 의미의 문장이었음에도 내 가슴은 미어져만 갔다. 당장에라도 그 손을 붙들어 매고 역시 다른 방법을 찾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그건 결심을 하며 여기까지 달려온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기에…. (영웅은 자주 말을 잇지 못하였다. 몸도 성치 않은데 괴롭다고 생각이 들만 한 기억들을 억지로 꺼내고 있었으니 무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고 감정이 무뎌지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를 바라볼수록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이 무력하게만 느껴져서 스스로가 미웠다. 내가 조금만 더 빛을 이겨낼 수 있도록, 아니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도록 강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시간을 들여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결국에 선택하게 된 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통한 생존이라서, 스스로가 역겨웠다. 

" 우, 울지 말게 그대. 나는 정말로 기쁜걸. "

해맑은 웃음에 속을 토해낼 것처럼 울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영웅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가 나의 영웅이었다. 몸속의 빛이 나를 부수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 고통에, 마음속에 남은 수정 파편이 돌아다녔고 그래서 울었던 것이다. 잠들어버리기 전 기억하는 것은 수정이 되어버린 한쪽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주었던 감각이고, 일어났을 때는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아침이었다. 

완벽할 만큼 모든 준비가 되어있었다. 탑 근처에도, 안에도 아무도 없었고 인적이 드문 레이크랜드의 호숫가 근처.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당시의 날씨가 선명한 감각으로 남아있다. 해가 뜨기 조금 전의 새벽이라 살짝은 쌀쌀했고, 호수 근처였기에 안개가 짙게 껴 있었다. 그는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듯한 그런 모습에…. (영웅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힘들다면 잠깐 쉬기를 권했지만, 그는 거부하였다.) 린은 산크레드의 옆에 서서 울음을 참으며 눈물을 흘렸고, 산크레드는 린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위로하면서 그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알피노는 눈을 질끈 감았고 알리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야슈톨라와 위리앙제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듯했지만 얕게 손을 떠는 것을 나는 스치듯이 보았다. 

" …. 자, 그럼. "

그 말이 시작이자 마지막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한 시작, 주변이 빛나고 한번 보았던 풍경인데 어쩐지 이제는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그는 여행을 떠난다. 어딘가의 그가 되어 자유롭게 여행을 할 것이다.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고 우리는 그저 서로만을 바라보다, 그는 떠나갔다. 차마 목소리로 꺼내지 못하던 문장의 입 모양을 나는 다시 떠올리면 괴로워지곤 한다.

` 나의 영웅. `

` 잘 자, 그라하. `

누군가 이 문서를 읽고 진실을 알게 된다면 솔직하게는 이 이야기가 알려졌으면 한다. 진정한 영웅이 그였음을 알리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신들에게 그라하 티아가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므로 기억하길 바란다. 그가 나의 행복을 바랐던 것처럼, 나 또한 그가 행복하기를 바라니 말이다.

문서의 기록은 미흡하나 이것으로 끝마친다. 며칠 후 영웅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고, 세상의 밤에 대한 진실은 이렇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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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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