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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ouflage (3)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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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대략 한 시간 정도가 필요했다. 그 사이 소방서와 경찰차는 이미 갤러리의 외길을 막아버린 토사 바깥에 도착해 있었고, 경보음을 빽빽 내뱉던 아영의 차는 제가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듯 얌전해졌다. 아무도 아영의 사체에서 혹은 객실에서 차 키를 꺼낼 생각은 하지 않았으므로, 경보음의 한계 시간에 도달했든가 자동차의 배터리가 다 되었든가 했을 것이었다.

건물 안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으레 가장 처음으로 확인하고는 하는 CCTV는 아직 작동하지 않았다. 갤러리가 정식으로 오픈하는 날 그쪽의 CCTV와 함께 가동을 시작할 모양이었던 듯했다. 건물 천장 구석구석에 매달린 봉긋한 감시기구들은 인테리어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종일 부산을 적셨던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유선은 갤러리의 주인인 선혜와 함께 토사 앞으로 다가가 건너편의 소방관들과 이야기를 시도했다. 동현은 당연스럽게 그녀의 뒤를 따랐다.

결과만 말하자면 토사를 사이에 두고 직접 대화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전화선이 하늘에 연결되어 있는 현대이기에 휴대전화로 대화는 가능했다. 중장비가 덜컹이는 소음을 스피커폰으로 들으며 동현은 현재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토사가 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언덕 사이의 길이 좁아 토사 정리에 필수적인 중장비의 거동이 원활하지 못하단다. 차근차근 진행해보려고 하니 늦어도 두세 시간만 있으면 사람은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소방관은 이야기했다.

"그런데, 안에서 사건이 있었다고요?"

아무래도 함께 출동한 경찰에게서 사건을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경찰은 토사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현장에 돌입할 거라는 언질을 주었다. 토사를 다 치워도 도망치지 말라는 말을 에둘러 하는군, 이라고 동현은 생각했다.

결국 갤러리 안의 사람들에게는 소방서의 일처리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빗발로 젖어 진흙이 된 토사 앞에서 전화를 끝마친 세 사람은 말없이 갤러리로 돌아왔다.

경사로 밑, 갤러리 1층의 소파 세트에 도슨트 두 사람과 예술가 둘, 평론가 한 명이 모여 있었다. 나무와 유신의 모습만이 보이지 않는다. 단발머리 도슨트는 갤러리 정문으로 들어오는 세 사람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유선이었다.

"토사를 치우는 데 두세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건 수사를 위해 경찰이 이쪽으로 건너올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나갈 생각 말고 가만히 있으랍니다."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2인용 소파가 두 개 놓여있다. 그 중 하나에 지민과 승현이, 반대편에 영우와 은수가 앉아 있었다. 서진은 은수가 앉은 자리 뒤편에 얌전히 서 있다. 유선의 말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불편한 분위기를 가중시키고나 있다...... 동현은 그렇게 느꼈다.

좌중을 둘러보던 유선이 꺼림칙한 침묵을 깼다.

"자수하실 분 계십니까?"

날카롭고, 또 무게가 실린 질문이었다.

"안 계십니까?"

말할 리 없다, 라는 시선이 이따금 그들의 안에서 옮겨갔다.

유선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

가냘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민이었다. 유선은 그녀에게 발언권을 주듯 가볍게 턱을 들어올렸다.

"아영이 머리는 혹시 찾으셨나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유선은 고개를 살짝 젓고 대답한다.

"아니요, 찾으려는 생각도 않았습니다만. 그건 왜 물으시죠?"

그녀의 매몰찬 대답에 지민은 조금 주눅이 든 것 같았다.

"아니, 그...... 머리 없이 두는 건 가엾지 않나 싶어서요......"

유선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가 천천히 폈다. 어이가 없을 때 보이는 반응이라는 걸 동현은 알고 있었다. 어차피 죽었는데 가엾고 말고가 뭐가 중요하냐, 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개인적으로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군요."

"애초에, 왜 머리를 숨긴 거지?"

승현이 돌연 입을 열었다. 독특한 억양에 일동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녀는 그러거나 말거나 유선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유창한 어조로 의문을 말하는 목소리가 어제보다 살짝 잠겨있음을, 동현은 알아챘다.

"자른 머리를 현장에 두지 않고 숨겨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라면 숨기지 않습니다. 사람 머리를 숨기는 데에는 시간과 품이 드니까요. 이미 머리까지 자를 정도로 노력을 들였는데 거기에 더한 위험 부담을 질 이유가 없어요."

"그건 경찰들이 조사하겠죠. 범인이 자수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니 전문 수사관도 아닌 우리가 이런저런 논쟁을 해 봤자 무의미합니다. 아니면, 혹시 범인을 잡아낼 생각이십니까? 늦어도 세 시간만 있으면 경찰이 들이닥치는데 그래야 할까요?"

승현은 옅은 분노가 일렁이는 시선을 유선에게서 떼지 않았다. 지민은 승현의 손목을 잡아 무언가를 제지하려는 듯 보였다. 친구에게 자중을 부탁받은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무는가 싶더니 귓바퀴의 인공 와우를 떼냈다. 관자놀이 근처에 달라붙어 있던 원형의 판도 함께 떨어져 나간다.

승현은 소파에서 일어섰다. 유선과, 그 옆의 동현과 선혜를 지나쳐 안채로 이어진 통로로 향했다. 당황스러운 기색의 지민은 남은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의 인사를 하고 나서야 그녀를 뒤쫓았다. 캐릭터성 하나는 뚜렷한 이들이다. 아니, 이곳에 개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거장 선혜, 반삭에 인공 와우를 드러낸 승현, 그녀에게 끌려다니는 듯한 지민, 아이보리색 정장이 눈에 튀는 영우, 능력 있지만 싸늘한 도슨트 은수와 소심한 서진, 그리고 변호사와 비서와 일러스트레이터와 모델러가......

그러고 보니 나무와 유신은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안채 로비 소파에 앉아있는 걸까.

"그럼, 경찰이 올 때까지 다들 허튼 짓은 마시길."

유선은 퉁명스럽게 말하곤 소파 앞에서 멀어졌다. 동현은 허둥지둥 그녀를 따른다. 유선 역시 안채로 향하는 것 같았다.

"어디 가려고?"

"쉴 거야."

"시, 시신을 저렇게 둬도 돼?"

갤러리 2층, 작품 안에 쓰러진 아영의 시신을 따로 수습하지는 않았다. 작품 안에 흐른 피가 점점 검게 말라가는 모습을 동현은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뭐 어디에 묻어 드릴까? 너 현장 보존이라는 걸 모르냐?"

안채로 향하는 통로는 이제 조용했다. 비는 이미 그쳤고, 새벽까지 불던 거센 바람도 어느 순간 멎어버렸다. 두 사람의 구둣발 소리만이 텅 빈 통로 안에서 산란되어 울리기나 한다.

"......누가 저런 짓을 한 걸까?"

"생각해 봤자야. 사람을 그냥 죽인 것도 아니고 목을 잘랐어. 제정신인 인간이라고 볼 수 없지. 차라리 심신미약에 가까울 걸. 그런 인간을 경찰도 아닌 우리가 찾아내겠다고? 허튼 소리지."

─변호사의 일은 사건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히는 게 아니다. 그건 범인을 잡아내 심판대로 올리는 경찰들이나 하는 짓이지. 안타깝지만 우리 변호사들의 주 고객이 바로 그 경찰이 애써 잡아낸 범인들, 심판대에서 판사의 눈을 가려 벌을 피하기 위해 용쓰는 범인들이란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진상 추구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어.

언젠가 유선이 읊었던 말이 귓가에 되살아났다.

그녀는 형사 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다. 형사 사건이라 함은 피의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다는 의미다. 그녀를 찾아오는 고객은 물론 피해자 측의 사람들도 있지만, 감형을 위해 거액의 돈을 지참하고 오는 사람들 역시 있다. 비율로 따지면 후자가 좀 더 높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순간 사회 정의라는 것에서는 눈을 돌린 듯했다. 세상이 주장하는 정의를 적극적으로 부정하거나 비관하지는 않는다. 그저, 재판장에서 정의란 대체로 무의미하고 단지 법전과 판례만이 공명정대히 피고와 원고를 재단하기에, 변호사로서 좀 더 효과적인 삶의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가만히 있어. 여기서 더 사건 관계자로 몰려서 좋을 건 없어. 귀찮은 일이나 많아질 뿐이지."

자신과 관련 없는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어 잘못을 따진다. 얄팍한 사회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구태여 진창 속으로 발을 들이민다. 유선의 머릿속에는 그런 따스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가 법조계로 발을 들인 이후로는, 그러한 기능이 휴지통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하지만 동현은 그럴 수 없었다.

전업 탐정이라는 길을 택한 이유랄 것이, 유치하지만 유선과는 정반대였다.

"객실에 있으려고?"

"어."

"무슨 일 있으면 불러."

"무슨 일?"

"갑자기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든가......"

유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말이었다고 생각한 듯했다. 안채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부르기 위해 상승 버튼을 누르려던 그녀는, 엘리베이터의 현 위치를 알리는 문자판을 보고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F?"

유선이 말을 흘렸다. 안채는 지하의 홀과, 1층의 로비, 2층과 3층의 객실로 이루어져 있다. 4층을 뜻하는 Four의 F라고 한다면, 엘리베이터는 옥상에 있다는 게 된다.

"야, 아까 갤러리에 있었던 사람들 누구누구였지?"

F에서 변하지 않는 문자판을 응시하며 유선이 물었다. 상승 버튼도 누르지 않은 채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동현은 황급히 기억을 떠올린다.

"어, 너랑, 나랑, 한선혜 선생님. 도슨트 두 분에 영우 씨. 그리고 지민 씨랑 승현 씨가 먼저 갤러리를 나갔고......"

"그 인간들이겠군."

유선은 불퉁한 어조로 툭 내뱉고는 드디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육중한 승강기가 하강하는 소리가 났다. 굳게 닫혔던 문이 빠르게 열린다.

"옥상에 머리가 굴러다닐 거라고 생각한 건가?"

"있을 수도 있지."

"제정신이 아니군."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유선을 객실까지 배웅한 뒤, 동현은 소리 없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3층에서 계단을 오르면 바로 옥상이다.

안채의 옥상은 꾸며져 있지 않았다. 콘크리트 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고, 모서리에 추락 방지용 난간이 빙 둘러져 있다. 그 외 눈에 띄는 거라곤 나무와 유신이 방금 나온 엘리베이터 홀과 굴뚝 비스무리하게 생긴 환기구들 뿐이다.

간밤의 폭우로 아직까지 완전히 마르지 않은 콘크리트가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아침까지만 해도 휭휭 불어대던 강풍은 어느새 멎었다. 절벽에서 불어오는 기분 좋은 정도의 해풍이 그들의 뺨을 간지럽히기나 했다. 꾸며지지 않은 옥상이긴 하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해안은 언제나 절경이긴 하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홀을 나와 옥상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특별한 건 찾지 못했다. 예술가의 머리가 굴러다니고 있지 않았다는 의미다.

안채는 갤러리와 같은 3층이지만 갤러리 쪽의 층고가 더 높은지, 이곳에서는 갤러리의 옥상이 보이지 않았다. 얼룩 하나 지지 않은 갤러리의 석조 벽만이 안채 옥상 한쪽의 경관을 메우고 있었다. 절벽 쪽으로 통창을 크게 내 둔 것과는 다르게, 이쪽으로는 창문 하나 뚫려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 갤러리의 옥상에서는 안채의 옥상이 보이리라. 보이기만 할 뿐이지, 옥상과 옥상 사이의 거리가 상당해 어떤 파쿠르 실력자가 와도 장비 없이는 뛰어넘을 수 없어 보였다. 열정 하나만으로 갤러리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간 갤러리와 안채를 잇는 통로 천장에 처박히지 않을까.

"없네."

나무가 말했다. 주어는 생략했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머리를 잘라서 여기까지 들고 왔을 리 없지."

유신이 대답했다. 바람을 좀 맞고서야 정신이 든 듯한 나무는 안경 다리를 집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 콧구멍을 여전히 피에 젖은 휴지로 막고 있다.

"머리는 단순히 작품에 필요 없어서 잘라낸 걸 테니까. 그냥 처분했을 거야. 쓰레기통을 뒤져보는 게 확률적으로 낫겠는데."

"여기 쓰레기통이 어디 있는데?"

유신이 어이없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사람 머리를 집어넣고도 눈에 띄지 않을 크기의 쓰레기통은 없을 거야."

"쓰레기통하고 비슷한 건?"

"전시하지 않는 작품을 보관해 두는 수장고가 그나마 비슷하려나."

"그런 데가 보통 열려있나?"

"닫혀 있겠지. 도난 문제도 있으니. 애초에 수장고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군. 갤러리에 지하가 있나?"

"송 군 말대로 수장고에 머리를 넣어 뒀으면, 범인은 이 갤러리를 잘 아는 사람이 되겠네."

"한 선생님이나, 도슨트 두 분. 그런데 도슨트 분들은 분명 정규직으로 계약한 게 아니라 일용직이라고 했지."

"그래도 작품 관리를 한다고 했으니까, 수장고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 않을까?"

나무는 대답이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고 싶지 않다, 라는 뜻이 담긴 침묵이었다. 옥상을 휘휘 둘러보던 그는 어느새 토사로 뒤덮인 언덕 사이 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토사 너머로 어렴풋하게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다.

옥상에 가 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건 유신이었다. 애당초 나무에게는 다음으로 취할 행동을 정할 정신이 없기는 했다. 그런 나무에게 바람을 쐬어 정신을 차리게 만들 의도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영의 머리가 옥상에 있을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옥상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은 건 사실이다.

유신은 나무의 옆얼굴을 슬쩍 흘겨보았다. 평소와 같은 새카만 눈동자가 저 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어도 아까와 같은 초점 없이 멍한 시선은 결코 아니었다.

송 군은 대체 왜 그랬던 걸까.

그는 미대를 졸업했다고 했다.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그가 말했고 또 한선혜라는 증인이 있으니 딱히 거짓은 아닐 것이다. 어렸을 때는 바둑을 한참 두다가 어느 순간 무상함을 느껴 반상 앞에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그 자신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바둑보다는 미술이 재미있었어.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 너는 그냥 미술을 재밌어하는 게 아니야, 하고 유신은 뒤늦은 대답을 골랐다.

작가의 죽음으로 완성된 예술 작품을 보고 그 정도로 환희에 빠지는 인간을 그냥 애호가라고 하지는 않아.

"흙더미가 움직이고 있네."

토사에 휩쓸려 함께 뿌리가 뽑히고 말았던 소나무를 보면서 그가 말했다.

"송 군."

"응?"

"새벽에 내가 봤던 물기는 어떻게 생각해?"

"물기?"

"로비 정문이 젖어있었다고 했잖아."

"누가 밤에 담배라도 피우고 들어온 거겠지."

"아영이는 죽은 지 얼마나 된 거 같아?"

"변호사님도 모르시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영이는 왜 죽어야 했을까?"

"그건 명확하지."

등 뒤에서 띵 하고 엘리베이터의 도착음이 울렸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야. 그거 말고는 말이 안 돼."

동현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객실로 돌아갔다는 유선은 사건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기색을 팍팍 낸 듯 싶었다. 주인을 잃은 동현에게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해들은 유신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민 씨랑 승현 씨? 옥상에는 안 왔는데. 그분들도 객실로 가신 거 아니야? 그 분들 객실은 2층에 있잖아."

"그게요, 하도 두 분이서 조사를 하고 싶어하시는 거 같아서. 옥상에 계신 줄만 알았어요."

"음, 아무도 안 왔어. 나랑 송 군이 옥상을 대충 둘러보긴 했는데 아무 것도 없었고."

물론 사람 머리도 없었다, 라는 말을 구태여 덧붙이지는 않았다.

"아, 맞아. 아영이는 죽은 지 얼마나 된 거 같아? 탐정님이니까 그런 거 잘 알지 않아?"

"그, 글쎄요."

동현이 과장되게 어깨를 움츠렸다. 봄바람이 부는 안채의 옥상이 싸늘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무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추락방지용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드러나있지 않다. 언제나의 무감한 눈초리는 피곤한 것도 같고 그저 아무 생각을 않고 있는 것도 같다.

"진변이 하도 가만히 냅두라고 그래서 시신을 잘 보진 못했거든요. 그래도, 음."

탐정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시신의 상태를 떠올리고 있는 걸까.

"돌아가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다리를 좀 만져 봤어요. 사후경직은 몸 위쪽부터 시작되어서 천천히 아래까지 내려오거든요. 그런데 다리가 단단하게 굳지는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엔 팔을 만졌는데, 팔은 좀 굳어있었어요. 사후경직이 팔까지 내려오는 데에 한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고 들었으니까......"

"사망추정시각은 열두 시에서 한 시 정도겠네. 내가 일어난 게 다섯 시 좀 넘어서거든. 다섯 시 십 분 정도? 먼저 일어나있었던 지민 씨가 문을 두드려서 깨워주셨어."

"난 다섯 시에 일어났던 거 같은데."

나무가 난간에서 등을 떼고 끼어들었다.

"그보다, 정말로 범행이 열두 시에서 한 시에 일어났다면, 네가 봤다는 안채 정문의 물기가 수상해지긴 하네."

"물기요?"

동현이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아, 응. 두 시 쯤인가, 바람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한 번 깼었어. 깬 김에 음료수라도 마실까 싶어서 로비로 내려갔더니, 안채 정문 바닥에 물기가 있더라고. 꼭 누가 밖에 다녀온 것처럼."

"물기요? 그럼 발자국 같은 것도 있던가요?"

"발자국? 아니, 발자국은...... 없었어. 어머?"

유신이 덩달아 눈을 크게 떴다. 동현은 어딘가 조금 흥분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정문 바닥에 물기는 있는데 발자국은 없는 건 이상하죠. 누군가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생긴 물기라고 한다면, 나갔다 들어온 사람의 신발 밑창은 분명 빗물로 젖어있을 테니까요. 젖은 신발로 안채에 들어왔는데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 건 이상해요. 그럼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밖으로 나가서 그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나무가 또다시 끼어들었다. 동현은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는, 밖으로 나가서 다른 통로로 들어온 거겠죠. 적어도 우리 중에 간밤에 사라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누군지는 몰라도 안채 정문으로 나가서 갤러리 입구로 들어갈 일이 있었던 거군요. 그 외의 통로는 없으니."

피곤한 티가 나는 눈두덩을 손으로 누르며 나무가 추리를 거들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했을까요? 건물 밖에는 아직 폭우가 내리고 있었을 텐데요. 비에 젖을 바에는 편하게 안채와 갤러리를 잇는 통로를 지나는 게 낫지."

"그건......"

"아!"

동현이 말을 고르는 사이 유신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갤러리에 가기 전에 차에서 가져가야 할 게 있었던 거야. 왜, 안채 정문이랑 갤러리 정문은 거리가 좀 있잖아. 주차장을 거의 가로질러서 가야 해. 그러니 주차장을 들릴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지."

"차에서 뭘 가져가야 했는데?"

나무가 차분하게 물었다.

"......아영이를 죽일 때 쓴 도구?"

유신은 그런 말을 내뱉는 데에 저항감이 있었다.

"그럼 범인은 사람을 죽일 도구를 차에 준비해두고 있었다는 건가?"

"그렇지. 송 군이 말한대로 작가를 죽여서 작품을 완성할 목적이었다면, 그건 완전히 계획적인 범죄잖아."

"아니, 우리가 여기 갇힌 건 우연한 사고야."

"앗!"

"알겠지. 우연히 진로가 대폭 바뀐 태풍의 영향으로 갤러리에 갇힐 걸 예상하고 살인 계획을 세우는 범인이 있다면 그건 범인의 노고를 보아서 무죄방면해도 될 거라 생각해."

"잠깐, 잠깐잠깐. 그럼 범인은 어떻게 작품을 완성할 생각을 한 거야? 아영이가 누워있었던 그 작품, 오늘 아침이 되기 전까진 흰 천으로 덮여있었잖아. 작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몰랐다고."

"그러니 범인은 예술가라는 거지."

나무가 짧게 대답을 쳐냈다. 두 사람이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잇는다.

"이아영의 작품 『조화』의 구성을 먼저 알고 있었던 예술가 말이야."

파도가 몰고 온 바람에서 짠내가 났다. 오 월의 아침 해는 오랜만에 하늘에 얼굴을 들이민다. 빗발로 서늘해진 공기가 햇살을 받아 따스히 덥혀진다. 절벽 아래에서 막 눈을 뜬 갈매기가 깍깍대며 울기 시작한다.

새 생명이 돋아나는 봄날의 정취를 느낄 새도 없이 동현은 핏빛 정경을 다시 떠올렸다. 그 정경에 관련한 이들을 차례차례 되짚는다. 갤러리에는 예술가들이 많았다. 전시의 주인공인 이아영의 주위에서 예술가들은 어떠한 역할을 각기 수행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스승, 두 사람은 동료이자 친구, 또다른 한 사람은 평론을, 남은 두 사람은 안내를.

그런데, 설마 이 사람은 정말로 범인이 작품을 완성시키고자 살인을 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동기가 있을 리가...

"어젯밤에 아영이는 한선혜 씨랑 작품에 대해 의논했었지. 두 사람이 작가의 방에서 의논하던 사이 조영우 씨가 평론을 검수받으러 작가의 방에 들어갔었고."

유신이 힘없이 정리했다. 범인 색출에 가까워졌다는 피로감이 얼굴에 드러났다. 가볍게 색이 들어간 입술을 깨물고는 정리를 계속한다.

"그럼 적어도 한선혜 씨랑 조영우 씨는 작품 구성을 알고 있었다는 소리가 돼. 그리고 도슨트 두 분도 사전에 작품 리스트를 받았다고 했으니 자세히는 몰라도 대강의 구성은 알고 있었을 테고."

"이아영 씨의 친구 두 사람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리셉션 시작하기 전에 2층에 다녀왔잖아, 내가. 그 때 오지민 씨가 이아영 씨랑 같이 작가의 방에서 나오는 걸 봤어. 그 때 주제작에 대해 얘기했을지도 몰라."

"잠깐만요!"

동현이 양손을 들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예측을 이어가던 두 사람의 시선이 탐정에게로 쏠렸다. 이 사람들의 시선은 이상하게 부담감이 있다니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말을 꺼냈다.

"혹시, 설마, 범인은 아영 씨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아영 씨를 죽였다고 이야기하고 계신 거예요?"

"그런데요."

한쪽 콧구멍이 여전히 막힌 나무가 대답했다. 동현은 기겁하는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고 경악한다.

"그,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생각해 봤자야. 사람을 그냥 죽인 것도 아니고 목을 잘랐어. 제정신인 인간이라고 볼 수 없지. 차라리 심신미약에 가까울 걸. 그런 인간을 경찰도 아닌 우리가 찾아내겠다고? 허튼 소리지.

유선의 충고가 문득 귓가에 되살아났다.

그래, 사람을 죽여 목을 잘랐다. 그리고 작품 안에 배치했다.

사람의 목을 자를 이유는 백번 양보해서 있었다고 하자. 하지만 구태여 힘을 들여 작가의 방의 폴딩 도어를 열고 주제작을 덮은 천을 끌어내어 목 잘린 시신을 끌어와 작품 안에 둘 이유는, 하나 뿐일 것이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그 외에는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기온은 분명 따뜻할 텐데도 불구하고 팔에 소름이 돋았다.

이 사람은 시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한 거야?

"아시겠죠?"

나무가 나직하게 물었다.

"사람의 목을 절단기로 손수 잘라서, 작가의 방을 활짝 열어 시신을 질질 끌어와 작품의 요소로 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인간을 작품의 요소로 배치하는 것이지 머리를 잘라내는 게 아닙니다. 그저 마네킹들에게는 모두 머리가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요소인 인간에게도 머리가 있으면 미학적으로 불균형해 보였을 테니까요. 누군가는 그런 불균형에서 미를 찾아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범인은 왕도를 추구했던 모양입니다."

동현은 기겁한 채 눈앞의 그를 빤히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콧구멍을 막고 있던 마른 휴지가 다시 축축한 붉은 빛깔로 물들어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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