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ouflage (6)
유선은 달콤한 선잠을 방해받아 상당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의 단잠을 방해한 이들이 지민과 승현이라는 사실이 더더욱 그녀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오동현한테 전해들었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인간들도 정말 탐정 놀이 좋아하는군. 사람이 죽었으면 조사는 경찰한테 맡겨두면 될 것을 무슨 머리를 찾겠다고 문을 두드리고 이 난리인지. 유선은 다 구겨진 셔츠를 툭툭 털면서 제 객실을 이리저리 살피는 두 예술가를 있는대로 노려보았다.
먼저 시선이 맞은 건 냉장고 안을 살피던 지민이었다. 그녀는 뿔테안경 뒤의 눈동자를 불안하게 떨다가 애써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유선에게는 효과가 없는 웃음이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사람 머리통을 객실에 둡니까?"
"사람의 머리를 자른 것부터 정신이 멀쩡하다고 볼 수는 없죠."
그래도 또박또박하게 할 말은 하는 보브컷이다. 범인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를 잡아내겠다는 패기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유선은 대놓고 한숨을 크게 쉬면서 벽걸이 시계를 흘겨보았다. 여덟 시에 가까운 시간이다. 슬슬 토사 정리 작업이 마무리에 들어가고 있지 않을까. 토사만 치워진다면 그 길로 경찰이 들이닥칠 텐데, 이 사람들은 왜 여기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건가.
"제가 마지막입니까?"
냉장고 문을 닫고 일어서던 지민이 의아하게 객실의 주인을 바라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3층 안쪽 방이니까요. 2층부터 둘러보면서 올라오신 거 아닙니까?"
3층 안쪽 방이라고는 하지만 정확하게는 가운데 방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객실이 세 개 씩 늘어섰는데, 그 중 가장 안쪽 두 객실에는 아무도 묵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 가운데 방에 유선이 묵고, 맞은편 왼쪽 가운데 방에는 언니의 친구인지 애인인지 모를 남자가 묵고 있다.
"네, 맞아요. 2층 객실을 전부 조사하고 왔죠. 순서 상 여기나 맞은편 객실이 마지막이 되네요. 그런데 변호사님이 객실에 계시다고 들어서...... 여길 먼저 들렀어요. 마지막에서 두 번째신 거죠."
그녀의 말을 들으며 유선은 형용하기 힘든 대화의 장벽을 느꼈다. 2층의 여섯 객실을 전부 뒤졌다고. 안채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 머리를 찾기 위해.
"2층에 아무것도 없었나 봅니다. 3층까지 기어코 올라오신 걸 보면."
욕실을 둘러보던 승현이 협소한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귓바퀴에 새빨간 인공 와우를 착용하고 있다. 크지도 않은 거실, 침대가 놓인 거실에 세 사람이 서 있으니 유난히 비좁게 느껴진다. 창의 녹빛 커튼을 걷어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없었다."
승현이 불퉁하게 툭 내뱉은 말을 지민이 받는다.
"네, 저희 방은 물론이고 아영이 방도, 한 선생님, 평론가 분, 도슨트 분들 객실도 전부 조사해봤는데 수상한 물건은 없었어요. 애당초 갑작스럽게 고립된 거라 개인적으로 짐을 챙겨온 사람도 별로 없었고요. 냉장고 안에도, 욕실에도, 하다못해 침대 밑에도 머리, 같은 건...... 없었어요."
"차 키는 아영이 방에 있었다."
뜬금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유선은 미간을 좁히며 승현을 쳐다본다.
"차 키?"
"새벽에 아영이 차에서 경보음이 울렸잖아요. 지금은 멈췄고. 누가 차 키를 써서 경보음을 멈춘 게 아닌가 싶었는데 방에 있는 거 보니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고. 그냥 시간이 지나면 멈추게 되어 있나? 자동차 경보음이 이렇게 오래 울려본 적이 없어서......"
"다들 정신 없는 사이에 몰래 차 키를 가져와서 경보음을 끈 후 돌려놓았거나, 아니면, 단순한 배터리 방전."
"방전된 거면 시동이 안 걸리겠네?"
"그렇지."
진지한 얼굴로 추론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내면의 은은한 분노가 식지를 않는다.
"객실에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잘도 헤집고 다니십니다들."
"아, 아뇨. 다들 밖에 계세요. 한 선생님이랑 도슨트 분들만 선생님 객실에 같이 계시더라고요. 아, 평론가 분도 객실에 계셨지."
"왜 밖에 있는 거지?"
"사건이 터졌으니까 다들 불안한 거겠죠."
"왜 불안한 거지?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경찰이 오잖습니까."
"경찰이 온다고 해서 사건이 바로 해결될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럼, 그쪽들은 사건을 해결하려고 온갖 곳을 쏘다니는 겁니까? 머리 하나 찾으면 사건이 해결될 거라고 믿으면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죠."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다들 모르시나본데 현장 보존이라는 게 경찰 수사에 상당히 중요합니다."
"저흰 친구가 죽었어요, 변호사님."
지민은 그녀가 뭐라 받아치기도 전에 빠르게 뒷말을 이었다.
"친구가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어요. 그냥 살해당한 것도 아니고 목이 잘려서 전시되었단 말이에요. 이런 상황에 현장 보존을 위해 가만히 있을 정도로 저희는 이성적이지 못해요."
따위의 말을 진지한 얼굴로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이 인간들과 더 이야기해봤자 자신의 기분만 잡치게 되리라는 사실을 유선은 깨달았다. 대화의 의지를 잃은 그녀는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내 풀어헤쳤던 머리칼을 하나로 묶어내린다.
"다 보셨으면 나가주시죠. 저도 여길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떠날 준비라고는 했지만 그다지 준비할 건 없었다.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가 든 작은 가방을 풀기 전의 모습으로 복구했을 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에 휩쓸리지 않았다면 분명 부산의 어느 호텔에서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으리라. 오동현과 함께.
그러고 보니 오동현은 어디에 있는 거지. 객실에 있는 사람은 한선혜와 도슨트 둘, 그리고 평론가 조영우뿐이라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유선의 비서를 자처하는 사립탐정 동현은 이상하게 유신과도 사이가 좋아 보인다. 두 사람이 언제 개인적으로 만나기라도 한 건가. 오동현은 맹하게 생겨서 언니 취향이 아닐 텐데.
소나무라는 이상한 이름의 남자를 뒤이어 떠올린다. 정리를 한 듯 안 한 듯 덥수룩한 머리칼과 몰개성해 보이는 사각 테 안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이다. 유신은 그와도 상당히 연이 깊은 듯했다. 나무와 유신은 갤러리에 각자 초대되어 리셉션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하지만, 그게 뻔한 거짓말임을 유선은 알고 있다. 증거는 따로 없다. 순전한 감이다.
단잠에서 억지로 깨어난 아까부터 내면의 분노가 가라앉질 않는다.
기분전환이라도 할까 싶어 커튼이 걷힌 창 너머를 바라보았지만 유선의 객실은 오션뷰가 아니다. 보이는 거라곤 자동차가 띄엄띄엄 주차되어있는 주차장과, 주차장 뒤로 펼쳐진 두 개의 언덕 뿐이다. 언덕 사잇길을 막고 있던 토사가 들썩들썩 움직이는 게 여기까지 보였다. 조만간 길이 뚫리겠다.
차가 여섯 대 세워진 주차장에는 의외로 사람이 있었다. 익숙한 뒷모습들이다. 유신과, 나무와 동현이 소유주가 누구인지 모를 차를 기웃거리고 있다. 수상쩍다 못해 자칫했다간 차 도둑 삼인조로 보일 법하다.
유선은 작게 한숨을 쉬곤 구두에 발을 밀어넣어 객실을 뒤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안채의 정문으로 나간다. 바닥에 깔린 파쇄석을 퍼석퍼석 밟으면서 삼인조를 향해 걸었다. 구두 밑창이 긁히는 거 아닌가 모른다.
"뭐하는 거야? 다들."
동현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귀신을 본 것처럼 깜짝 놀라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으아, 그, 그러니까. 증거를 찾고 있었어."
"하아......"
"건물을 다 뒤져봤는데 머리가 없으면 차에 있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 유선아, 지민 씨랑 승현 씨는 봤어?"
사이드미러를 보며 머리를 다듬던 유신이 거울 안의 유선에게 묻는다. 거울 안의 유선은 미간을 있는대로 찌푸리면서 언니의 목덜미로 시선을 옮겼다.
"내 방 뒤지다가 사람 머리 안 나오니까 나가던데. 마지막으로 이쪽 방 뒤져보고 있을 거야."
유선은 턱짓으로 나무를 가리켰다. 운전석 안쪽을 들여다보던 나무는 그녀의 말에 반응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자기 방을 뒤져보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몸을 조금 굽히고 사이드미러를 보던 유신은 그제야 동생을 돌아본다.
"우리, 용의자를 두 명으로 좁혔어."
"뭔 소리야?"
"아영이 목을 자른 범인 말이야. 두 명, 아니 세 명 중 하나일 거라고 결론내렸다고."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들은 변호사는 잠시 턱을 당겨 고개를 들었다가, 봄날의 환하게 갠 파란 하늘을 눈에 담고,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내렸다.
"그 사람들이 누군데?"
말하는 사람이 언니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고함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한 선생님이랑, 도슨트 두 분."
그리고 그녀는 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가 어떻게 혐의를 벗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요약하자면, 영우는 마스크가 없어 작가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민은 통이 넓은 바지에 피를 묻히지 않고 시신을 운반하기 어려우며, 승현은 비가 오던 밤에 우산 없이 밖을 나다닐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외의 네 사람, 유선과 유신과 나무와 동현은 애시당초 용의자 리스트에 포함하지 않은 듯했다. 그것만은 합리적이라고 유선은 생각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휠체어 타고 다니시는 분이 어떻게 시체를 운반해. 아니, 거기다 그 분 손도 못 쓰시잖아. 손목으로 겨우 휠체어 운전하시던데?"
"그럼 도슨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해?"
"생각하고 자시고 사람을 범인으로 몰 거면 증거를 가져와야지. 물증도, 심지어 심증도 없는데 그 사람들을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 단순히 범행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게 된다면 살인사건 하나에 용의자는 수천이 되겠군."
"한 선생님이랑 다르게 범행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지?"
유신의 말대로였지만 그렇다고 대답하기에는 어딘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의도적으로 대답을 늦추고 있으니 뒤편에서 파쇄석이 끊임없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파쇄석 위로 카트를 끄는 듯한 소리다.
한창 대화의 주제가 되었던 한선혜와 도슨트 두 명이 토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자기 소유도 아닌 차 근처에 네 사람이 모여있는 모습이 이상했는지, 토사를 향하던 발길을 꺾어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건 제 자가용입니다. 용무가 있으십니까?"
단발머리 도슨트가 차갑게 물었다. 서진은 여느 때와 같이 선혜의 휠체어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이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전동 휠체어이니 밀어주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은데도 계속 휠체어 뒤에 서 있는 건, 단순히 엄폐물을 늘리기 위한 그의 조치일 것이라고 유선은 짐작했다. 눈시울이 발갛게 물든 선혜는 그저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무너져내리는 토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은 나무가 냉큼 말했다. 서진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유선은 포착한다. 그와 반대로 은수는 눈썹 한 올 까딱이지 않는다.
"머리라면, 이아영 씨의?"
"예. 건물에는 없다 하니 그렇다면 차에 실어둔 게 아닌가 해서요."
"제 차에는 없습니다."
"누구나 없다고는 하겠죠."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십니까?'
대답은 없다. 무감한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새카만 눈동자는 가만히 은수를 응시하다가, 잠시 서진의 표정을 훑다가, 마지막으로 선혜에게 향한다. 까다로운 인상의 예술가는 그와 시선을 맞췄다.
붉게 물든 눈시울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선생님."
"그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 말하고 나무는 고개를 숙였다.
막바지에 이르른 토사 정리 작업은 빠르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한쪽으로 치워진 토사 너머로 중장비와 경찰차가 대열을 맞춰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을 맞는 건 선혜와 도슨트들의 일이었다. 주차장에서 남의 차를 살피던 세 사람과 유선은 소득 없이 갤러리로 돌아왔다.
동현은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여덟 시 사십 분이다.
"경찰이 얼마나 오려나."
유신이 중얼댔다. 피곤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나머지 세 사람은 반응하지 않았다. 경찰이 얼마나 올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우리, 참고인 조사 같은 거 받겠지? 혐의가 없다고 해도 일단은 살인사건의 관계자니깐."
"글쎄. 범인이 명백해지면 받지 않을 수도 있겠지."
"경찰들이 그렇게 빨리 범인을 잡을 수 있으려나."
"아니, 범인은 자수할 테니까."
"에엥? 무슨 소리야, 그게."
"범인은 한 선생님이야."
침묵.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유신은 속눈썹이 긴 눈을 찌푸리며 나무를 빤히 바라본다. 유선은 입가를 못마땅하게 비틀었다. 동현만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란 채다.
나무는 세 사람의 시선을 전부 무시했다. 허공을 바라보는 두 눈에는 그저 짙은 피로만이 서려 있었다.
"자수하실 거야, 아마."
"......무슨 근거로?"
유신이 조심스레 물었다.
"울고 계셨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것도 궁금하긴 했지만. 내 말은 무슨 근거로 한 선생님이 범인이냐는 거야."
"아, 그건......"
허공을 방황하던 나무의 시선이 갤러리 정문의 유리 문으로 향했다. 이제 막 토사 너머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경찰차가 토사 옆으로 진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역시 보였다.
"2층으로 가자. 경찰이 오기 전에 현장을 보고 설명해 줄게."
Trompe L'œil (1) https://pencil.so/kpota/1246218606
Trompe L'œil (2) https://pencil.so/kpota/1006021840
Trompe L'œil (3) https://pencil.so/kpota/1684307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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