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pose

그러니까 이건, 내 욕심이다.

버섯숲 by 양송
9
0
0

에스체트는 언제나 퀴빌라 리즈크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고질적인 불안이었고, 우울이었다. 불우한 유년기, 애착 형성의 불가능 부터 시작된 이 우울과 불안은 관계에서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는 퀴빌라의 연인이었으나 그 것에 별 확신이 없었다. 그의 생각은 항상 흘러흘러 불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곧 떨림으로 변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는 횡설수설했다. 첫 고백부터, 결혼하자는 프로포즈까지 전부 엉망진창이었다. 뭐, 결국 잘 되긴 했다만,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꼭 다시 멋지게 고백할게. 그러니까… 하며 눈치를 보는 것을 퀴빌라는 퍽 귀여워하는 것 같았으나, 그 것이 에스체트의 불안을 더 가속화시켰다.

에스체트는 꼴에 사내랍시고 “상대방에게 어른스럽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했다. 그 시작은 열등감이겠지. 이 관계의 시작에는 열등과 불신이라는 두 감정이 끈적이처럼 붙어있었으니까. 퀴빌라가 자신을 귀엽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럽고 싫었다. 그 것이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일지라도, 자신이 능숙하지 못한 어린애라고 상대가 생각한다는 거니까. 이 걸로 한 번 다툰 적도 있지만 에스체트의 이 열등감은 도저히 사라지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제 머릿속을 박박 긁어내버리고 싶었다.

두서없는 생각들을 에스체트는 뒤로 물려두었다. 오늘은 정말로 멋져야 하는 날이다. “진짜” 고백을 하는 날이니까. 형식은 중요하다. 연인에서 가족이 되는, 부부가 되는, 그 시작점, 다시 말해 임계점. 저번 것은 너무 날 것이었고 엉터리, 형식도 없는 멍청한… 충동적인 행동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처사였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에스체트는 제 연인에게 진짜 프로포즈를 기대해달라고 연신 말한 것이다.

에스체트는 평소와는 다르게 세팅한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대충 늘어뜨린 앞머리가 아니라, 빗어 이마를 슬 드러내도록 가르마를 탔다. 뒤엣 머리는 반묶음으로 땋아내렸고, 옷은 한껏 멋을 낸 고급 정장이었다. 누가 봐도 프로포즈를 하겠다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차림.

여름의 지중해는 햇빛이 지나치게 따가웠으므로, 둘은 선선한 저녁 즈음, 해가 슬슬 기울어질 때 쯤에 한 식당으로 향했다. 이 작은 섬, 산토리니에서 조금 더 육지로 나가면 있는 고급 식당.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이 곳에 올 때 에스체트는 제 품에 들어있는 결혼반지 케이스를 신경썼다. 오늘은 절대로 망치지 않을거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다짐은 언제나 망가지기 마련이었다.

로맨틱한 음악과 고급스러운 식사가 얼추 마무리 되었다. 저도수의 디저트 와인이 서빙될 때, 에스체트는 목을 울렸다. 퀴빌라는 한 껏 기대한 채로 제 연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스체트는 온 힘을 다해 떨리지 않은 척을 했지만 소용 없음을, 제 노력이 모두 헛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빌어먹을, 친구들을 붙잡고 했던 말들, 아주 여러번 준비했던 대사가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분명히 아주 낭만적이고 멋드러진 대사들이었는데. 뭐 부터 말해야 할 지 다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 심지어 이미 전의 프로포즈에서 동의를 받지 않았던가? 에스체트는 제 자신이 한심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퀴빌라의 눈길이 약간 의아해질 즈음에 에스체트는 긴 침묵을 깼다.

“퀴빌라.”

“응.”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어.”

“응, 뭐를?”

음. 역시 준비된 것은 때려치자. 지금 떠오른 옛 연습들은 다 부질없고, 촌스러운 것 같다.

“내가 널 아주 예전부터 사랑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네가 날 선택해줘서 고맙다는 사실을.”

퀴빌라의 표정을 흘끔 보았다. 어지럽고 울렁이는 속을 가라앉히려 애쓰면서 에스체트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네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을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아. 나는 네 생각보다도 더 불안하고, 이기적이고, 우울한 사람이야. 좋은 말 양파라고 하기에는 그닥이야. 그렇지만, 나는 너와의 관계에서 늘 최선을 다했어. 앞으로도 그럴거야.”

속을 다 토해낼 수 있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울렁거림과 불쾌한 긴장감이 괴로웠다. 그러나…

“그러니까, 허락해줄래? 우리 관계에 부부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도록. 네 남편이 되도록.”

말을 다 뱉고 에스체트는 고개를 들었다. 반지, 그래 반지! 반지를 품에서 꺼내고 퀴빌라에게 내밀었다.

“…신중히 선택해줘. 거절해도 괜찮아. 이미 수락한 건 알지만, 그래도… 정말로, 정말로 날 원한다고 생각하면, 반지를 받아줘.”

그리고 얌전히,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에스체트는 퀴빌라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