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스프 타입] G님 연성교환
4066자, FGO 카르나 드림 작업물입니다.
일상이란 항상 비슷한 경로로 흘러가기 마련이죠. 누군가는 그걸 쳇바퀴 마냥 돌돌돌, 지정된 경로 위 만을 굴러가는 지루한 것이라고 표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런 표현을 쓰는 이는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쉽게 흩어질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겠지요. 비슷한 하루하루, 별것 없는 나날이라는 건 바꿔 말하면 안정적이고, 갑작스런 비극이나 긴장, 고통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아마 일상이란 것은 그것을 잃은 지 오래거나, 혹은 그에 편입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애절한 달콤함으로 다가와 하루하루를 간절히 붙잡고 싶어지는 것일 테지만, 뭐, 일상만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늘 상 비슷한 하루의 순간들을 살아가는 것이 지루할 테면 지루하겠습니다. 일상이란 그렇기에 모두에게 다른 의미를 가지겠습니다. 그 점이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것이겠지만, 뭐, 쓸데없는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그렇다면 일상에 어느 정도 적응된, 그렇지만 풍파란 풍파는 다 겪은 이들에게 갑작스런 경로변경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요?
밤이 끝나고 새벽이 찾아올 때, 새벽의 딸이 일어나 그의 어머니에게 기도를 드립니다. 태양의 아들은 그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 자신의 아버지에게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은 둘의 하루 시작을 끊는 일이자 일상의 첫 조각입니다. 그러니까, 우샤트리야가 늘 먼저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렇기에 늘 소중한 나날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작은 달랐습니다. 먼저 일어난 이가 내는 부스럭대는 이불의 소리, 그 덕에 얕은 잠 속에서 맡아지는 새벽의 정취, 늘 오는 이 것들이 오늘은 카르나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조금의 위화감에 눈을 뜨면, 옆에 우샤트리야가 얌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아마 힘을 많이 쓴 탓에 오늘은 일어나기 버거운 모양입니다. 카르나는 자신의 라트나를 굳이 깨우지 않기로 합니다. 이런 날도 있기 마련이지요. 푹 쉬어야 내일이 또 찾아올겁니다. 시작과는 같을 수 없는 칼데아의 하루하루라도, 가까스로 찾아온 일상이란 것은 달콤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기 마련이죠.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라트나를 위해 카르나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곱게 이불을 덮어준 채로, 아침의 태양께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요.
아침을 그렇게 거나하게 먹는 편은 아니니, 둘이 간단히 먹을 만큼의 음식을 받아옵니다. 아침부터 지나치게 단것을 먹는 것은 그닥 좋지 않을 것 같아 디저트는 과일 정도로 준비합니다. 째깍째깍,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그동안 카르나는 음식을 침대 옆 테이블에 마련해둡니다. 그리고 옆에 가만히 앉아, 부드럽게 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어봅니다. 애정 어린 손길입니다. 그거야 당연하겠지요. 사랑하는 부인에게 향하는 모든 몸짓에 어떻게 애정이 서리지 않겠어요.
시간이 좀처럼 흘러도 우샤트리야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침을 슬슬 먹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곧 해가 가장 높이 뜰 시간입니다. 괜히 잠든 이의 손을 만지작대다가, 손 등에 작게 입맞추고 그의 옆에서 식사를 시작합니다. 느릿하고 가볍게. 당연히 남은 몫을 덮어두고, 카르나도 약간의 쪽잠을 자기로 합니다. 괜히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지나치게 오래 이불 안에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요. 그래서 카르나는 푹신한 의자 하나를 끌어와 잠든 아내의 옆에서 쪽잠을 청합니다. 이 순간이 조금은 심심하고, 조금은 정적이고, 그러나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과 함께요.
카르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할 일은 크지도, 많지도 않습니다. 영웅은 난세에 바쁘고, 지금은 복잡한 고통마저 끝난 일상인걸요. 서두를 이유도, 조급할 이유도 없는 하루입니다. 중간 중간 그가 깼을지 생각은 하지만, 늘상의 애정입니다. 늘 같은 애정. 바꿔말하면, 언제나 같이 소중한 마음.
할 일을 다 마치고 돌아와 푹신한 의자에 몸을 앉힙니다. 카르나가 와도, 우샤트리야는 오늘 도통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안 일어나나, 라트나?”
미동도 없는 제 아내를 보면서 괜시리 웃음이 나옵니다. 작은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리고, 이번엔 잠든 이의 이마에 입술을 가벼이 누릅니다. 자는 모습을 오래 바라보기 힘든데, 오늘은 어쩐지 특별하게 이 순간이 찾아온 것 같네요. 이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지만 않는다면야, 나쁘지 않은 하루가 될겁니다.
아주 오래 전 일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뭉개지고,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오래된, 아주 예전의 기억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카르나의 기억입니다. 우샤트리야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감겼다가 천천히 떠진 그 눈을 마주했을 때. 그때를 기억합니다. 그 때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이 지난하고 긴 운명의 시작이자, 사랑의 처음을... 그 누구도 처음을 잊기는 쉽지 않을텝니다. 그리고 이렇게 돌고 돌아, 모든 것이 바뀌고 어그러지고 많은 것이 달라졌을지라도, 그 마음만큼은, 그 마음의 시작만큼은... 달라지지도, 달라질 수도 없습니다.
두근거립니다. 마치 다시 사랑에 빠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늘상 이렇게 사랑에 매번 빠져버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란 것은 범인凡人을 특별하게 만들고, 그저 길가의 들꽃일지라도 이름을 붙여버리게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평범한 시간, 순간의 들이쉬는 공기 마저도 달콤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늘상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 무엇보다 빛나게 만드는 사랑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카르나와 우샤트리야를 묶어버린 이 지독하고 달큰한 것은, 이제 둘의 일상에 붙어서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르나는 다시금 라트나, 하고 아내를 부릅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둘이 머무는 방, 그 문이 열립니다. 우샤트리야의 마스터 리츠카입니다. 빼꼼 들여다보는 이는 곧 카르나에게 묻습니다.
“카르나, 우샤트리야는 일어났어?”
“아직이다, 마스터.”
“그렇구나~. 일어나면 알려줘.”
“알겠다.”
짧은 대화가 오가고, 괜시리 다시 우샤트리야의 손을 만지작거립니다. 시간은 벌써 흘러 저녁이 다 되었네요. 해가 지겠지요. 그리고 곧 밤이 올겁니다. 하루의 끝입니다. 그리고 다시 새벽이 찾아오고, 태양이 새벽을 좇아 뜨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것은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리고 일상의 틀입니다. 부정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말이에요.
어쩐지 오늘은 달라져버렸지만, 약간의 어긋남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요한 어긋남, 조용한 탈선, 그러나 곧 돌아갈 하루에 카르나는 어쩐지 이상한, 그러나 구체적으로 형용하기 힘든 무언가를 느낍니다. 간질간질하지만, 무엇인지 모를 느낌에 눈을 잠깐 지그시 감습니다. 하루의 정적, 고요함, 혼자 됨이 나쁘지는 않지만, 다시 평소와 같이 우샤트리야가 먼저 일어나고, 카르나가 뒤따라 일어나고, 부모신께 기도를 올리고, 하루를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계속하는 것. 그것, 그 일상이 다시 찾아오겠지요. 그 것을 당연하지만 묘하게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처음에도 말했듯 이렇게 일상이 소중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오랫동안 일상이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기묘한 힘은, 신과 운명은 둘을 갈라놓고, 고통 속에 밀어넣고, 또 변화시키고, 도망치게 만들고, 쫓고 쫓기고, 마음을 아프고 불안하게 만들었죠. 어쩌면 그 고통스러운 숙명 속에 있었기에, 이러한 일상이 달콤하고 또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질리지 않을겁니다. 행복이란 것을 어렵사리 쥐었기에, 사람은 누구나 어렵사리 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하잖아요.
카르나는 가만히 제 보석의 머리칼을 쓰다듬습니다. 라트나, 라트나. 되뇌이는 말이 무거우면서 소중합니다. 한 음절 음절을 단단히, 그러나 부드러이 발음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애정이 실려있습니다. 그렇게 완연한 밤이 찾아오고, 하루를 다시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마 내일은 다시 일어날 겁니다. 혹은, 모르는 일이지만, 우샤트리야는 조금 더 잘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라트나, 너와 나의 일상이기에, 카르나는 이것이 헛되이 빠져나가지 않게 소중하게 손에 쥐게 되는 것이겠지요.
하루를 완전히 마무리하고, 카르나는 다시 우샤트리야가 잠든 이불 안으로, 그러니까 저번 밤에 둘이 같이 잠들었던 침대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합니다. 다시 원과 같은 완전한 하루, 여전한 일상이 시작되는 내일을 향해, 눈을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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